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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고전 9:16-18
성경본문내용 (16)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17)내가 내 임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임의로 아니한다 할지라도 나는 직분을 맡았노라(18)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 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인하여 내게 있는 권을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라
강설날짜 2013-07-17

 
2013년 고린도전서 공부

 

사도 바울의 자랑과 상

 

말씀:고린도전서 9:16-18

 

오늘도 계속해서 지난 시간에 이어서 고린도전서 9장 말씀을 공부하겠습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바울이 복음을 위하여 자신의 사도권을 변호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고린도교회 교인들 가운데는 바울의 사도권을 무시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바울 사도가 복음을 위하여 자신의 권리를 사용하지 아니하고 종의 모습으로 그들을 섬겼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도리어 이러한 바울의 중심을 헤아리지 못하고 무시한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오히려 강압적으로 목회하는 다른 사람들의 말은 잘 따랐던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1:19-20절을 보면 “너희는 지혜로운 자로서 어리석은 자들을 기쁘게 용납하는구나. 누가 너희로 종을 삼거나 잡아 먹거나 사로잡거나 자고하다 하거나 뺨을 칠찌라도 너희가 용납하는도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에도 봤습니다만 고린도후서 11:4절에도 보면 “만일 누가 가서 우리의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바울의 사도됨을 부인하면서도 다른 복음을 전하고 다른 영을 받게 하는 거짓 선생들은 잘도 용납했습니다. 이들이 이렇게 된 것은 결국 그들이 교만해 졌기 때문입니다.

 

또한 고린도교회 교인들이 바울의 사도권을 무시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는 그들의 자랑거리들 때문이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2장에 보면 고린도교회에 성령의 은사들이 많이 나타났습니다. 그러한 많은 은사들이 나타나니 자기들이 마치 무언가 특별한 사람들이어서 그런 은사가 주어진 줄로 생각하고 서로 자기들의 은사를 자랑하였던 것입니다. 그들에게 은사가 임했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 그들의 부족함을 말해 줍니다. 온전한 교회는 사실 은사가 필요 없습니다. 말씀의 가르침을 잘 받아 나가면 됩니다. 그러나 은사가 임했다는 것은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함인데 그것은 어떤 면에서 그 교회의 부족함을 나타내 주는 것입니다. 그들이 얼마나 부족하고 못났으면 은사가 주어졌겠습니까? 고린도전서 4:7절에 보면 “누가 너를 구별하였느뇨.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뇨.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뇨”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고린도교회 교인들 가운데 임한 모든 은사들은 다 받은 것입니다. 그들이 받았다는 것은 그들에게 능력이 없기에 은혜로 주어졌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자기들이 무언가 잘 났어 그렇게 된 것인 양 자기를 자랑한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2장에 보면 바울 사도는 고린도교회 교인들이 하도 자기를 자랑하기에 하는 수 없이 자기를 자랑한다고 합니다. 고린도후서 12:1-13절을 보면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십 사년 전에 그가 세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내가 이런 사람을 위하여 자랑하겠으나 나를 위하여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치 아니하리라. 내가 만일 자랑하고자 하여도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아니할 것은 내가 참말을 함이라. 그러나 누가 나를 보는 바와 내게 듣는 바에 지나치게 생각할까 두려워하여 그만 두노라.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내가 세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 내가 어리석은 자가 되었으나 너희가 억지로 시킨 것이니 내가 너희에게 칭찬을 받아야 마땅하도다. 내가 아무 것도 아니나 지극히 큰 사도들보다 조금도 부족하지 아니하니라. 사도의 표 된 것은 내가 너희 가운데서 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한 것이라. 내 자신이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아니한 일 밖에 다른 교회보다 부족하게 한 것이 무엇이 있느냐. 너희는 나의 이 공평치 못한 것을 용서하라”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자신이 셋째 하늘에까지 이끌려 올라갔다 왔다고 합니다. 바울은 하늘나라를 보고 왔는데 그 영광은 사람의 말로는 다 말할 수 없다고 합니다. 곧 무엇으로도 표현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처럼 놀라운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보고 왔지만 그것이 주의 은혜로 된 것이지 자신이 잘 나서 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계시가 너무 커서 하나님께서 자고하지 않도록 사단의 가시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사단의 가시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바울이 지니고 있던 육체의 고질병으로 봅니다. 바울이 하나님께 자신의 육체의 가시가 떠나게 해 달라고 세 번이나 기도했지만 하나님께서는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고 하시며 거절하셨습니다. 왜냐하면 능력이 약한데서 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기의 약함을 자랑한다고 합니다. 그리스도를 위해 받는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한다고 합니다. 이는 자기가 약해야 그리스도의 능력이 머물기에 자신의 약함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자신이 어떤 사도보다 못하지 아니하다고 합니다. 혈통적으로나 신분으로나 학식으로나 못난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자랑하는 것을 어리석은 자의 자랑으로 여기고 좀 들어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수고도 그 누구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나를 자랑하라면 나의 연약함만을 자랑하겠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바울은 자기의 수고만이 아니라 자기가 보았던 그 영광의 나라에 대해서는 말로 다 할 수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요즈음 한국교회에는 천국을 보고 왔다는 이야기가 넘쳐나고 있습니다. 그런 분들의 책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천국을 보고 왔다는 자들의 공통된 특징이 무엇인가 하면 이 땅에서 행한 대로 천국에서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 복도 천국에서 자기가 사는 집의 평수가 넓어진다는 것입니다. 아무 것도 행하지 않고 천국에 온 사람은 자기 집이 없어서 합숙소에 있고, 전도와 십일조와 구제와 봉사를 많이 한 사람일수록 고급 맨션에서 그것도 큰 평수에서 산다고 합니다. 만약 천국이 이런 곳이라면 그것은 천국이 아니라 지옥일 것입니다. 이들은 거짓 선지자들입니다. 이들은 이 땅의 지옥을 천국으로 바꾸어 놓고서 천국이라고 거짓말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들의 말을 좋아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말 천국에 갔다 온 바울 사도는 도저히 사람의 말로는 그것을 말 할 수 없다고 하는데 이들은 세상의 이름다운 말로 천국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 외의 다른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려서는 안됩니다.

 

오늘날 교회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는 어디로 다 사라져 버리고, 인간들의 탐욕에 찬 경쟁심만이 차고 넘치고 있습니다. 삯꾼 목자들은 교인들로 하여금 경쟁심을 북돋우어서 전도에 열심을 내게 하고, 헌금에 열심을 내게 합니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을 끌어 모우고 많은 돈으로 큰 예배당과 교육관을 짓고 하나님의 영광을 이야기 합니다. 그래서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가리켜 기업이라고 합니다. 사단이 광명의 천사로 위장을 합니다. 천국을 인간들의 욕망의 투기장으로 바꾸어 놓고서 그런 자들을 간증자로 모셔다가 집회를 하고 있습니다. 지옥이 따로 없는 것입니다. 그런 곳을 그대로 고정시켜 버리면 지옥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심판을 이런 교회에서부터 시작하십니다.

 

오늘 본문 16절을 보면 “내가 복음을 전할찌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자기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화가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천국을 갔다 왔다는 자들의 간증에 보면 이 땅에서 자기가 전도를 하거나 헌금을 하거나 봉사를 하거나 간에 그러한 헌신의 것들이 재료가 되어서 하늘나라에서 집이 지어진다고 합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전도한 것이 자기 자랑이나 공로나 재료가 된다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다른 성경에는 행한 대로 갚아주신다고 하지 않습니까? 마태복음 16:27절에 보면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때에 각 사람의 행한대로 갚으리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행한 대로 받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하였습니까? 모든 우선순위가 나를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까? 주님을 위하여 한다고 하여도 그것이 나중에 보상을 바라고 한 것이라면 그것은 결국 나를 위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행한 대로 갚으시는 주님 앞에서 지옥 가야 마땅한 자들이 아닙니까? 그런데도 자기의 행함을 자랑하겠습니까? 아니면 십자가를 붙드시겠습니까? 이것은 너무나 자명한 것입니다. 십자가를 붙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자기가 전도한 것이 자기 자랑이 될 수가 없는 이유는 부득불 할 일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부득불 할 일이라는 것은 억지로 마지못해 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마땅함으로, 감사함으로 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말하는가 하면 바울 사도 자신이 복음을 선택하거나, 복음을 위하여 헌신한 사람이라면 자랑할 것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 자신은 도리어 복음을 핍박한 사람입니다. 복음을 믿는 자들을 잡아 죽이던 하나님의 원수로 행하던 자였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복음에 사로잡힌바 되고 복음에 정복당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복음의 종이 되고 복음의 노예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약 전하지 아니하면 화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마땅한 자세입니까? 복음에 정복당하고 보니 그 복음이 너무 좋은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복음을 위하여 내가 얼마나 헌신하고 내가 얼마나 열심을 내는가를 자랑할 수는 결코 없다는 말입니다. 복음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기에 내가 목숨을 바쳐 복음을 전할지라도 그것이 결코 나의 자랑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17절을 보면 “내가 내 임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임의로 아니한다 할찌라도 나는 직분을 맡았노라”라고 합니다. 직분을 맡은 자의 구할 것은 충성입니다. 어느 정도의 충성입니까? 누가복음 17장에 보면 종이 하루 종일 수고하며 일하고 돌아와서도 주인의 밥상을 차려드리고 시중을 다 들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였다고 해서 주인이 사례하겠느냐는 것입니다. 주인이 아무런 사례를 하지 않을지라도 종은 무어라고 해야 합니까?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 것 뿐입니다’라고 해야 합니다. 이것이 직분을 맡은 자의 마땅히 할일 인 것입니다(눅 17:10). 무익한 종의 자세! 이것이 참된 신앙의 자세입니다.

 

그런데 이 직분이 얼마나 놀라운 직분이며, 얼마나 영광스러운 직분인지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살든지 죽든지 자기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케 되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또한 “죽는 것도 유익이라”고 했습니다. 빌립보서 1:20-21절을 보면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참예하는 것이 영광입니다. 복음이란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함을 받는 것입니다(롬 4:5). 이 복음에 참예하기 위하여 바울 사도는 모든 것을 행한다고 합니다. 바울은 복음에 참예시켜 주신 그 은혜에 감사하여 마땅함으로 모든 것을 행하는 것입니다. 복음에 참예시켜 주셨기에 자신은 종이 되어도 괜찮고, 죽어도 괜찮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인 것입니다.

 

그러면 바울 사도가 이렇게 복음에 참예한 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상을 주신다고 하셨는데 그 상이란 영광의 면류관(벧전 5:4), 의의 면류관(딤후 4:8), 생명의 면류관(계 2:10)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상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다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았다면 그것이 영광이요, 그것이 생명인 것입니다. 그런데도 거짓된 자들은 이러한 묵시적인 상의 개념을 이 땅의 물질적인 개념으로 바꾸어서 천국에서 상의 차등을 이야기 하면서 인간들이 상상한 천국과 상급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바울이 말하는 상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18절을 보면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인하여 내게 있는 권을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라”라고 합니다. 바울은 자신의 상이 무엇이냐고 반문 합니까? 그리고 자신이 대답을 합니다. 자신의 상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하고, 복음으로 인하여 자신에게 있는 권리를 다 쓰지 아니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복음을 전하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는 것입니다. 임의로 아니할지라도 직분으로 받았기에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자신이 복음을 전하는 사도의 직분을 받았는데 그 상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인하여 자신에게 있는 권한을 다 사용하지 아니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도대체 복음이 얼마나 좋았으면 그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고 고생하는 것을 상으로 여기는 것입니까? 복음은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입니다(고전 1:18; 롬 1:16). 복음은 하나님의 영광이요, 능력입니다. 바울은 그 복음의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 사랑과 그 용서를 알고 나니 주님의 복음을 전하면서 당하는 그 모든 고난들이 도리어 기쁘고 감사하고 행복한 것입니다. 어찌 나 같은 죄인이 주님을 위하여 고생을 당할 수 있는가 하는 기쁨인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 사람들이 볼 때는 미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복음에 접촉된 자는 세상에서 볼 때는 미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것입니다.

 

복음에 접촉된 자는 주님의 그 사랑에 눈이 멀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 사랑은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값없이 주신 주님의 그 사랑에 빠지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사도들이 예수님의 이름을 전하다가 매를 맞고 나오면서도 어떻게 생각하는 것입니까? 주의 이름으로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5:41-42절을 보면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저희가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5:10절에서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바울의 자랑과 상이 무엇인지 조금이라도 이해가 되십니까? 바울의 자랑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바울의 상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사로잡히게 된 것이 상입니다. 그 십자가 안에 하늘의 영광과 생명이 다 감추어져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택함을 입고 그 고난의 자리에 들어선 그것이 너무나 감사하여 자기의 권리마저 사용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바울 사도가 받은 그 은혜를 우리에게도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 복음의 영광과 생명에 우리도 참예케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자랑과 상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임을 알게 하시고, 복음을 인해 당하는 모든 고난을 인내하며, 자랑하며, 기뻐하며 사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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