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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고전 12:1-3
성경본문내용 (1)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는 내가 너희의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2)너희도 알거니와 너희가 이방인으로 있을 때에 말 못하는 우상에게로 끄는 그대로 끌려 갔느니라(3)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강설날짜 2013-09-25

 
2013년 고린도전서 공부

 

신령한 것에 대하여

 

말씀:고린도전서 12:1-3

 

오늘부터 우리는 고린도전서 12장 말씀을 공부하겠습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바울 사도가 고린도교회에 성찬에 대해서 권면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우리는 성찬에 믿음으로 참예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주의 죽으심을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증거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왜 주의 죽으심을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 날까지 증거 해야 하는 것입니까? 주님의 죽으심만이 곧 주님의 십자가만이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이요, 지혜가 되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1장에 보면 사람들이 다 주님의 십자가를 싫어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유대인들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헬라인들에게는 미련하게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22-24절을 보면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지혜를 구하는 헬라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전혀 지혜롭거나 아름답거나 능력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미련한 것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자는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표적을 구하는 유대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거리끼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정치적인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힘없이 죽어 버렸습니다. 오직 부르심을 입은 사람들에게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인 것입니다(고전 1:18).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신령한 것이 무엇인지 배우고자 합니다.

 

1절을 보면 “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는 내가 너희의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라고 합니다. 여기서 ‘너희의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한다’는 말은 이중부정으로써 아주 강한 긍정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곧 ‘신령한 것에 대하여는 너희가 반드시 알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바울 사도가 고린도교회 교인들이 반드시 알아야 한다고 하는 그 신령한 것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성령의 은사들입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교회 교인들이 성령의 은사에 대해서 반드시 알기를 바란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고린도교회 교인들이 성령의 은사에 대해 바르게 알지 못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그로인해 많은 문제가 생겨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성령의 은사에 대해서 반드시 알아야 한다고 하면 당장 어떤 생각이 듭니까? ‘그래 나도 은사를 많이 받아서 많은 능력을 행하여야 겠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과연 바울 사도가 여기서 말하는 것이 이런 의미일까요? 우리가 이미 잘 알듯이 고린도교회에는 많은 은사들이 나타났습니다. 교회 가운데 은사가 나타났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까지만 하시고 그 다음에는 우리가 믿고 가는 것이 아니라 믿는 것 까지도 십자가를 지신 주님께서 일하신다는 것을 알게 하시기 위하여 성령의 은사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의미에서 교회에 은사가 나타난다는 것은 그 교회가 부족함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성숙한 교회는 은사가 없어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잘 믿어 나갑니다. 이 일에 부족함이 있기 때문에 이 일을 위하여 은사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의 은사를 받았다고 하는 고린도교회 교인들의 모습은 교만하였습니다. 이들의 모습은 마치 이방인들이 종교적인 체험들을 가지고 사람들 앞에서 우월감을 가지고 사는 모습과 같았습니다. 세상의 모든 종교는 그것이 발달하였든 원시적인 모습이든 어디에서나 초월적인 현상들이 나타납니다. 고린도 지역은 특히 헬라의 신비 종교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었기 때문에 초자연적인 현상들을 보기도 하고 경험하기도 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들의 종교적인 체험에는 황홀경이나 무아지경에 끌려들어가서 방언도 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그들은 신적인 능력으로 보았기 때문에 그런 능력이 나타나지 않으면 신의 능력이 의심을 받는 것입니다.

 

옛날뿐만 아니라 오늘날과 같이 과학과 기술이 발달한 이 시대에도 여전히 사람들은 신비하고 초월적인 것에 매력을 느끼고 그런 것을 찾아 나섭니다. 그 이유는 인간은 종교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종교성을 과학과 기술이라는 이름으로 다 벗겨버렸으니 사람들이 공허한 것입니다. 그래서 마약을 의지하여 황홀경을 맛보고자 하는 사람들도 있고, 동양의 신비한 종교를 찾아 나서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종교성들이 교회 안에서는 어떻게 나타나겠습니까? 역시 신비한 체험 쪽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무엇을 보았다, 무엇을 들었다, 병자를 고쳤다, 방언을 하였다는 것으로 자기들은 대단한 신앙을 소유한 사람으로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영성운동이라는 이름으로 특별집회를 하는 곳이 한 두 곳이 아닙니다. 여러 가지 시각적이고 감각적인 분위기를 연출하여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것입니다. 그런 곳에 가서 특별한 경험을 하고서는 그것이 진짜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무언가 끌리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마음에 와 닿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를 보십시오. 능력을 행한다고 하는 사람들과 교회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몰려갑니까? 그래서 교회를 부흥시키려면 능력을 행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온갖 능력 집회를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그것이 성령의 일인지 악령의 일인지 알 수가 있습니까? 자기 마음에 좋고 안 좋고, 와 닿고 안 와 닿고의 문제가 아니라 바른 기준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령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1절을 다시 보면 “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는 내가 너희의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라고 합니다. 우리가 참으로 신령한 것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는 이방인들이 신령하다고 하는 것, 곧 이방인들이 신비하고 초월적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먼저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럴 때 성경이 말하는 신령한 것의 의미를 바르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앞에서 병을 고치고, 방언을 하는 문제 등 몇 가지 예를 들었습니다만 모든 종교라는 곳에는 이런 초자연적인 현상들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것들이 무슨 능력으로 나타나는가 하는 것입니다. 2절을 보면 “너희도 알거니와 너희가 이방인으로 있을 때에 말 못하는 우상에게로 끄는 그대로 끌려 갔느니라”고 합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 ‘너희가 이방인으로 있을 때에는 말 못하는 우상이 끄는 대로 끌려 다녔다’고 책망하고 있습니다. 우상이란 입이 있어도 말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우상이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 우상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고린도교회 교인들은 그런 우상이 끌면 그들이 끄는 대로 끌려 다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우상에게 끌려 다녔다는 것은 그 우상에게 무언가 매력이 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딱 꼬집어 말은 못하겠는데 그곳에 무언가 끌리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배후가 무엇입니까? 마귀입니다. 그러므로 마귀가 여러 가지 신기한 능력들을 나타내어서 미혹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끌려 다녔던 자들이 바로 고린도교회 교인들이었습니다.

 

에베소서 2:1-2절을 보면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에베소교회 교인들에게 허물과 죄로 죽어 있던 상태, 곧 그 때에는 너희가 이 땅의 공중 권세 잡은 자를 따랐다고 합니다. 곧 마귀가 끌면 끌리는 대로 따라갔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무언가 신비하고 초월적인 것이 나타나면 대단한 신의 능력이 나타난 것으로 알고 따라나선 것입니다. 그래서 악한 자의 임함이 어떤 모습으로 오는지를 성경은 잘 경고하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9-12절을 보면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을 저의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한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모습이 이렇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못하여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말씀하시는 진리가 무엇입니까? 그 진리의 사랑을 받지 못하여 표적과 기사를 따라가는데 그 진리가 과연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4장에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셨습니다(요 14:6). 그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서 무엇을 보여 주셨습니까? 최종적으로 이 땅에 남기신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생애가 무엇을 위하여 기록되어 있습니까? 4복음서가 다 무엇을 중심으로 기록되었습니까? 그것은 예수님의 어린 시절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청소년기도 아닙니다. 마지막 3년 공생애 기간이 기록되었는데 그 내용은 바로 십자가를 향한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에게 거듭 말씀하시면서 인자가 고난을 받고 죽은지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조차 예수님이 세상의 왕이 되는 것, 곧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을 바라본 것입니다. 그들은 비록 당장 고난이 따른다고 하여도 그런 고난쯤은 나중에 나타날 영광을 생각하면서 견뎌내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삼년이나 고생하며 따라다닌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는 열두 제자들마저도 다 돌아선 것입니다. 그것은 그들조차도 예수님의 십자가를 실패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율법에 의하면 십자가는 저주 받은 죽음이기에 더욱 더 실패로 본 것입니다. 열두 제자들만이 아니라 예수님이 메시아가 아닐까 하면서 일말의 기대를 가지고 따랐던 사람들조차도 나무에 달려 힘없이 죽은 예수님을 보고서는 “남은 구원하면서 자기는 구원하지 못하는 구나!”하며 돌아서 버린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13절을 보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고 했습니다.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는 이 말씀이 신명기 21:23절의 말씀입니다. 신명기 21:23절을 보면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당일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율법에 의하면 저주 받아 죽은 죽음이 바로 나무에 달려 죽은 죽음입니다. 그러므로 나무에 달린 예수님을 보고서 두 가지 반응이 나오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죽은 예수님을 저주를 받아 죽은 자라고 하든지, 아니면 주라고 고백하든지 둘 중의 한 가지 반응이 나오는 것입니다.

 

3절을 보면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 합니다. 바울은 ‘그러므로 이제 네게 알게 한다’라고 합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무엇이 신령한 것인지, 무엇이 참된 성령의 은사인지를 알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고 하지 않습니다. 성령의 은사를 받은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르게 알고 믿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십자가에 못 박하신 예수님을 주라고 고백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령한 것은 이것으로 판단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어떻게 믿느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령한 것이란 종교적인 초월현상이 나타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주라고 고백하느냐 하는 것이 신령한 문제입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거듭난 사람은 십자가의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가 되신다고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한 기적은 없습니다. 이 보다 더한 표적은 없습니다.

 

마태복음 12:38-4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도 표적을 구하는 유대인들에게 요나의 표적 밖에 보일 것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 중 몇 사람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에게 표적 보여주시기를 원하나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속에 있으리라.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어니와 요나보다 더 큰이가 여기 있으며,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어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이가 여기 있느니라.” 다른 종교적인 표적들과 기적들과 초월적인 것들은 마귀들도 얼마든지 흉내 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그들의 주로 믿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교회가 신령한 것, 즉 성령의 은사를 판단하는 기준은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믿고 고백하는가, 고백하지 아니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판단 기준은 바울 사도에게 일관적으로 흐르고 있는 내용입니다. 이미 우리가 앞에서도 보았습니다만 바울이 고린도교회 안에 생긴 파당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였습니까? “누가 십자가를 졌는가?”하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파당 문제를 십자가로 해결하였습니다. 십자가를 지지도 아니한 자들이 어떻게 자기들의 파당을 만들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고린도전서 2:2절에 보면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고린도교회에 있는 모든 문제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다 해결되는 것입니다. 은사의 문제도 예수 그리스도가 그 판단의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령의 사역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그를 영화롭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깨닫게 하시고, 기억하게 하시며, 그를 영화롭게 하기 위하여 성령 하나님이 오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예수님을 믿는 것은 초보단계이고, 그 다음에 성령의 은사들이 나타나는 것은 고급 단계로 보려고 하지는 않습니까? 이런 현상이 한국교회 가운데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 교회에 성령의 은사를 더하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믿게 하려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2장에서 여러 가지 은사를 말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을 위한 것입니다.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교회에 은사를 주신 것은 몸을 위한 것입니다. 13장의 사랑도 그리스도의 성품을 말씀합니다. 14장의 은사도 결국 그리스도의 몸을 위한 은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참으로 신령하게 사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는 그 다 이루심을 믿고 사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한 은사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 십자가를 믿지 못하기 때문에 은사를 주셔서 믿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고린도교회 교인들은 오히려 은사를 받았다고 교만하여지고 자기들이 무엇이나 된 것처럼 행동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십자가와 거꾸로 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문제가 고린도교회의 문제였습니다. 또한 오늘날 우리교회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열광적인 분위기나 눈에 보이는 표적과 기적은 없지만 묵묵히 바보처럼, 십자가의 예수님을 주로 믿고 가는 것이 참으로 신령한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십자가만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시고자 하신 참된 표적임을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믿고, 그 주님의 십자가를 더 깊이 알아가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에게 주신 성령의 은사로 우리 주님의 몸된 교회를 바르게 세워가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이런 은혜가 우리 교회 가운데 있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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