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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고전 12:4-11
성경본문내용 (4)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5)직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6)또 역사는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같으니(7)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8)어떤 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9)다른 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10)어떤 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11)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
강설날짜 2013-10-02

2013년 고린도전서 공부


은사를 주신 목적

말씀:고린도전서 12:4-11

 

우리는 지난 시간에 신령한 것에 대하여 공부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신령한 것 그러면 신비하고 초월적인 것을 신령한 것으로 여깁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난주에 본 말씀에 의하면 신령한 것이란 십자가에서 저주 받아 죽으신 예수님을 저주할 자라고 하지 않고, 주라고 고백하는 것이 신령한 것임을 보았습니다(12:1-3). 그러므로 누가 신령한 자인지 아닌지의 구별을 무엇으로 하면 되는 것입니까? 예수님의 십자가를 어떻게 보느냐로 구별하면 되는 것입니다. 성령의 은사 중에 영들 분별함도 은사입니다. 그러므로 신령한 것인지 아닌지를 구별하는 가장 분명하고 확실한 기준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다’고 하신 말씀을 믿느냐 안 믿느냐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은사 운동을 하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초보 단계이고, 고급단계로 올라갈수록 초월적인 능력들이 많이 나타나는 것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문제가 바로 고린도교회의 문제였습니다. 고린도교회는 은사가 나타나지 않아서가 아니라 수많은 은사가 나타났는데, 그 은사의 목적을 모르고 자기에게 은사가 나타난 것으로 인해 자랑하고 교만하여 진 것입니다. 이로인해 교회가 많은 분쟁 가운데 빠지게 된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바울 사도는 그들을 책망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의 은사가 나타나 신령한 것을 말하게 된 사람들이 무엇을 증거 하였는지를 먼저 확인해 보겠습니다. 사도행전 2:36절을 보면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정녕 알찌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사도행전 2:1절부터 성령이 임하신 내용을 다루고 있는 부분의 결론 부분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하기까지 기다리라고 하시면서 승천을 하셨습니다(행 1:6-11). 승천하신지 10일 만에 곧 그 때가 오순절입니다. 오순절에 성령이 임하여 제자들이 복음을 전하였는데 그 복음이 각 지역 사람들이 다 알아듣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각 지역의 언어로 알아듣게 되는 내용이 무엇입니까? 사도행전 2:1-13절을 보면 “오순절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그 때에 경건한 유대인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우거하더니. 이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의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 다 놀라 기이히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의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찜이뇨. 우리는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림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가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 온 사람들과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방언으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 다 놀라며 의혹하여 서로 가로되 이 어찐 일이냐 하며 또 어떤 이들은 조롱하여 가로되 저희가 새 술이 취하였다 하더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각 지역의 언어로 알아 듣게 된 그 내용이 하나님의 큰일 이었습니다(행 2:11). 여기서 하나님의 큰일이란 십자가의 예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셨다는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 주와 그리스도가 되셔서 지금 보고 듣는 이 성령을 부어주셨다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요엘서와 시편을 인용하면서 해석하는 것입니다(행 2:14-32).

 

성령이 임하여 구약을 제대로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 구약의 선지자들이 누구를 증거 하기 위하여 그렇게 예언하였는지를 성령이 임한 사도들이 밝히 알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말세에 성령을 부어 주리라는 말씀이 성취된 것이며, 그 성령을 보내시기 위하여 주가 오셔야 하셨고,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죽임을 당하시고 부활하셔서 하늘에 오르셔야 하셨던 것입니다. 이 일의 증인이라고 사도들이 말하는 것입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행 2:32).

 

그런데 사도행전 2:33절을 보면 “하나님이 오른 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오른손’이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구약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때에 무엇으로 구원하셨습니까? 하나님의 오른손으로 구원하셨습니다. 출애굽기 15:6절을 보면 “여호와여 주의 오른손이 권능으로 영광을 나타내시니이다. 여호와여 주의 오른손이 원수를 부수시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실 때에 애굽을 치시고 홍해를 가르신 손이 바로 여호와의 오른손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그 오른손이 십자가를 지시면서 하나님의 의를 다 이루신 예수님을 높이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히신 것입니다. 이 자리는 예수님께서 이미 창세전부터 앉아계셨던 자리입니다. 그곳에서 자기를 비워 종으로 오셔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종하심으로 아버지의 뜻을 다 이루셨습니다. 이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시고 승천하게 하셔서 하나님의 보좌 오른 편에 앉히신 것입니다. 그 오른편이 무엇을 하시는 자리입니까? 구원하시기도 하시고, 심판하시기도 하시는 구원과 심판의 자리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 자리에 앉으셔서 누구를 보내시는 것입니까? 성령님을 보내시는 것입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오른 손의 역할을 예수님께서 지상에서 십자가로 이루셨고, 이제는 그 일을 성령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것입니다. 그 일을 위하여 예수님께서 성령 하나님을 보내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 4절에 보면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다”라고 합니다. 또 5-6절에서는 “직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역사는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행하시는 하나님은 같으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역사가 주님의 일이나, 하나님의 일이나 다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성령의 은사를 받았다고 하면서 주님을 높이지 않을 수가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자기를 내세우고 자기를 자랑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은사를 주신 것은 유익하게 하려 함이라고 합니다. 7절을 보면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무엇의 유익을 위한 것입니까? 각 사람에게 성령의 은사를 주신 것은 그리스도의 몸의 유익을 위한 것입니다(고전 12:12-31). 그러므로 성령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어떤 개인이 사유화하여 특권처럼 사용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성령의 은사를 개인이 사유화 하거나 자기 개인의 유익을 구하는 도구로 사용하는 것은 주님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사의 진정한 목적과 방향을 알지 못하면 자기 치장용으로 곧 자기 과시용으로 그 은사를 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은사란 구한다고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주시는 분의 뜻대로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11절을 보면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 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그 뜻’이란 아버지의 뜻이며, 동일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뜻입니다. 그래서 성령이 임하심으로 이 땅에 종말론적인 공동체가 탄생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란 철저하게 은사 공동체입니다. 은사 공동체라고 하니 많은 사람들이 오해를 합니다. 나는 방언도 못 하고, 통역도 못 하는데 어떻게 은사를 받았는가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동안 우리가 은사 그러면 워낙 능력 중심으로 잘못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국교회는 마치 방언이나 예언이나 이런 은사를 받지 못하면 열등한 신자처럼 교육을 받아 왔습니다. 그러나 은사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지난 시간에 배웠습니다만 우리가 신령한 은사를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를 무엇으로 점검한다고 하였습니까? 예수님의 십자가였습니다. 곧 예수님의 십자가를 어떻게 보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십자가를 어떻게 믿습니까? 예수님이 저주 할 자입니까? 아니면 우리의 주와 그리스도가 되십니까? 예수님의 십자가가 저주할 자가 아니라 우리의 주와 그리스도로 믿는 것이 신령한 은사를 받은 증거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셨다는 것을 증거 하기 위하여 성령이 임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다른 은사들은 무엇 때문에 주어지는 것입니까? 예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심을 믿는 자들의 유익을 위하여 주어진 것입니다. 곧 성도들의 유익을 위하여 주어진 것입니다. 그 유익이 무엇입니까? 은사를 통하여 계시가 분명하여 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도 예언이나 방언이나 통역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이미 계시가 완전하게 드러났기 때문에 그 계시로 충분한 것입니다.

 

8절을 보면 “어떤 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이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성령 하나님께서 어떤 이에게 성령의 은사로 지혜의 말씀과 지식의 말씀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서신이 쓰여질 때에는 아직도 계시가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지혜와 지식의 말씀을 더하시는 것입니다. 그 결과 복음서가 기록되고, 서신서가 기록되고, 요한계시록이 기록이 된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여 기록이 된 것이지 그 이전에는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성령의 은사로 된 것입니다. 복음서와 서신서와 요한계시록으로 계시가 완성이 되었습니다. 더 이상 더하거나 빼거나 하면 안 됩니다.

 

그러면 그렇게 지혜와 지식의 은사로 기록된 성경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그 통일성이 무엇입니까?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은사의 목적입니다. 그런데 지금도 직통계시를 받는다는 사람들이 자기가 받은 것이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이라고 말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도대체 몇 권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도 보았다, 들었다고 하는 그런 자들의 말에 귀 기울이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은 지혜와 지식의 은사가 없습니까? 아닙니다. 있습니다. 어떤 지혜와 지식의 은사들이 있겠습니까? 새로운 계시를 추가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계시를 바르게 알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1:17-23절을 보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또 만물을 그 발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고 했습니다.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지혜와 계시의 영으로도 번역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혜와 계시의 영이 임하시면 무엇을 알게 됩니까? 하나님을 알고 성도의 소망과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과 그의 힘의 강력한 역사를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이 지극히 크심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신 것입니다. 그 오른편에서 모든 권세를 다 행사하시는 것입니다. 그 분이 교회의 머리가 되십니다. 교회는 그의 몸입니다.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 입니다. 이러한 신령한 것을 알게 하시기 위하여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제 왜 하나님께서 교회 가운데 은사를 주시는지, 은사를 주신 그 목표가 무엇인지 분명히 알 수 있습니까? 우리는 성경 말씀에 기초해서 은사에 대한 분명한 관을 소유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잘못된 사상에 미혹되지 말아야 합니다. 더나아가 우리에게 주신 그 은사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분명히 증거 해 갈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통해서 주님의 몸된 교회를 바르게 세워나가야 합니다. 이런 은혜가 우리 교회 가운데 있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9절을 보면 “다른 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이라고 합니다. 바울은 어떤 이에게는 믿음과 어떤 이에게는 병 고치는 은사를 주셨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특별한 상황에서 특별한 믿음을 주시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2장에 보면 베드로가 감옥에서 내일 죽을 것을 알고서도 깊이 잠을 자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무엇이 베드로로 하여금 그렇게 하였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입니다. 그런 믿음은 사람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베드로를 다스리시는 주가 주신 것입니다. 베드로의 그러한 믿음을 통해서 주님을 증거 하게 됩니다.

 

사도행전 14장에 보면 바울 사도가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자 사람들이 신으로 섬기려고 합니다. 그러자 자기 옷을 찢으면서 자기를 부인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합니다. 이것이 은사로 주어진 믿음과 병 고치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신유를 행한다는 사람들에게서 이런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까? 물론 입으로야 주님의 능력이라고 합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 병 고친다는 광고를 하고서 병 고친 적이 한 번이라도 있습니까? 없습니다. 모두가 우발적입니다. 그리고 다 고쳐준 것도 아닙니다. 이것은 병고치는 은사가 있다고 해서 자기가 전매특허인 것처럼 사용하는 경우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그때그때 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교회의 유익을 위하여 곧 그리스도를 증거 하기 위하여 나누어주실 뿐입니다. 절대로 은사를 사유화하거나 반복하거나 하지 않는 것입니다. 반복이 안 된다는 것은 이렇게 하니 무엇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말할 수 없게 만들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사람이 조절하고 조작할 수가 있기에 그렇게 맡겨두지 않는 것입니다.

 

10-11절을 보면 “어떤 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고 합니다. 여기서 언급되는 말씀들은 14장에서도 다루는 부분입니다. 그러면 은사를 주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성도를 유익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성도가 어떻게 되는 것이 성도의 유익입니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하늘의 신령한 복들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것을 감사하며 사모하며 누리며 사는 것입니다. 내 개인이 능력을 받고 높아지고 특별한 사람이 되기 위한 은사는 없습니다. 교회의 유익을 위하여, 그리스도의 몸의 유익을 위하여 은사를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모두 다 은사를 받은 사람입니다.

 

에베소서 4:1-16절을 보면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 올라가셨다 하였은즉 땅 아랫 곳으로 내리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내리셨던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 이는 만물을 충만케 하려 하심이니라.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찌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승리하시고 승천하셔서 은사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렇게 은사를 선물로 주신 이유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입니다. 그러므로 은사의 목적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일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그 안에 있는 것이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러므로 은사의 목적은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주님께서 은사를 주신 목적을 분명히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에게 주신 그 은사를 통해서 우리 주님의 몸된 교회를 잘 세워나가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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