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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교회론 특강

                                                      예배하는 공동체

말씀:요한복음4:23-26

   우리는 지난주부터 교회의 사명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주에 교회의 사명은 크게 말해서 하나인데 그것은 이 땅 위에 온 하나님 나라를 증시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교회의 이 위대한 사명, 하나님 나라를 이 세상에 펼쳐내는 일, 이 세상에 확연하게 드러내는 일, 이 일을 위해서 구체적으로 해야 될 일이 무엇일까요? 오늘은 그 중에 하나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그 중에 하나가 우리가 주님 앞에 경배하는 일, 곧 주님 앞에 예배하는 일입니다. 이 일이 하나님의 나라를 이 세상에 비추어 내는 일입니다. 우리가 이 일을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벗어나야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예배에 대한 고정관념입니다. 우리의 고정관념 중에 하나는 예배하면 교회에 속한 일종의 요식행위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매 주일과 수요일 의례히 하는 것이니까, 해야만 하니까 습관적으로 의무적으로 형식적으로 드리기 쉽습니다. 만약 우리가 드리는 예배가 이런 것이 되어 버린다면 이것은 마치 강압적인 사회에서 국민의례를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께 드려는 참된 의미로서의 예배는 무엇입니까? 우리가 매주 일요일과 수요일 이렇게 모이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엄밀하게 이야기하면 우리에게 맡겨진 사명을 주 앞에서 감당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 사명이 지난주에 살펴본 대로 하나님의 나라를 증시하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이 이 세상을 통치하시고 구체적으로 지금 우리들을 여기서 통치하고 있다는 것을 이 세상 앞에 확연하게 드러내는데 있습니다.

   그러면 예배와 하나님의 나라를 증시하는 것이 무슨 관련이 있을까요? 우리는 예배를 통해서 세 가지를 드러냅니다. 첫째는, 하나님과 관련해서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분이시니까 우리의 경배를 받아 마땅하십니다.”라는 것을 하나님 앞에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배라고 하는 일은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예배는 우리가 하나님께 “하나님은 마땅히 우리들을 포함해서 모든 피조물들의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라는 것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와 관련해서는 “우리들은 마땅히 하나님께 경배하면서 살아가는 존재들, 곧 하나님께 우리 영혼의 무릎을 꿇어서 우리 자신을 드려야 하는 존재입니다”라는 것을 표현해 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것이 잘 드러나게끔 예배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예배는 세상을 향해서 우리가 하나님을 경배함으로서 하나님이 이 세상을 직접 통치하시고 계심을 세상 앞에 나타내 보여주는 일이기 때문에 중요한 것입니다. 이상에서 볼 때 예배 행위는 하나님께 대해서, 우리 자신에 대해서, 세상에 대해서 의미있는 일입니다. 한 마디로 예배는 온 세상 앞에 우리가 하나님과 그의 통치를 선포하는 일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배라고 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이것은 그저 요식행위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의 생각 가운데 만일 예배에 대해서 요식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거기서 빨리 벗어나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오래한 사람일수록 예배에 대해서 “교회에 나오면 늘 해야하는 일이니까, 그냥해야 되는 일인가보다”라고 요식적으로 생각하고 참여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의 사명을 생각하면서 “우리가 무엇을 하려고 주일과 수요일에 이 자리에 모이는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가장 고귀한 일이고 중요한 일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이 세상에 증시하는데 예배 만큼 중요한 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앞에서 예배를 통해 증시되는 세 가지에 대해서 살펴 보았습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를 통해서 이 세 가지가 드러나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배에 대한 의미를 분명히 알고, 예배에 온 마음을 다 쏟아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참 예배가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참 예배에 대해서 배울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잘 알 듯이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이 나눈 대화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하셨습니다. 사람들이 피하는 대낮에 혼자 물 길으러 나온 것을 볼 때 여인은 문제 많은 여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먼저 그 여인에게 물 좀 달라고 요청하셨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보면 도리어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영생수를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여인은 대낮에 사람들의 눈을 피해 물 길러 오는 생활에 지쳐 영생하도록 있는 물을 달라고 했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여인은 없다고 했습니다. 이 때 예수님께서는 네 말이 옳다 하시며 네 남편 다섯이 있었는데, 지금 있는 남편도 네 남편이 아니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녀의 삶을 훤히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여인은 자신의 삶을 훤히 알고 있는 예수님을 선지자로 인정하고 예배 문제를 물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그리심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당시 사마리아 사람들은 그리심 산에 산당을 지어 놓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반면에 유대 사람들은 예루살렘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유대인들은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에서 드리는 예배가 진짜 예배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사마리아 여인이 어디서 예배해야 하느냐고 물은 것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의 질문에 예수님께서 무엇이라고 대답하셨습니까? 요한복음4:23,24절에 보면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 속에서 진정한 예배, 우리가 하나님께 드려야할 예배에 대해서 배울 수 있습니다. 여기서 “이 때라”하는 때는 메시야가 오신 때, 곧 예수님이 오신 때입니다. 예수님이 오신 다음에는 어느 곳에서든 상관이 없고 우리가 참되게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입니다. 또 이제는 예루살렘에서 예배해야 되는 것이 아닙니다. 즉 장소의 구애가 없습니다. 어디 곳에서든지 우리가 예배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또 잘 못 생각하면 안 됩니다. “아 그래요. 그러면 주일날 구태여 내가 예배당 안나가고 우리 집에서 예배하면 되겠네요”라고 하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원칙상으로 그것이 가능하지만 그런 생각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이 다 각기 예배들이겠지요. 그러나 우리가 그렇게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 나라가 극치에 달하기 전까지는 주님께서 일정한 날을 정해 놓으시고, 우리로 모여서 예배하도록 하셨습니다. 그것이 우리 주님께서 부활하신 주일입니다. 주일을 정해 놓으시고 이날 모인 성도들, 그 지역에 사는 모든 성도들이 같이 모여서 예배하도록 하셨습니다. 이 예배 행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가를 증거하고, 그 사람들이 어떤 존재인가를 증명해 내고, 그 사람들을 통하여 다른 사람들 앞에 “여기 이런 사람들이 있다. 하나님을 섬기면서 하나님이 지금도 이 세상을 통치하고 자기들의 삶을 지배라고 있다고 믿고 그것을 인정하여 드리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밝혀내는 행위를 하도록 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가운데서는 “하나님은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발견당해야 합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러 오시면, 우리 공동체가 그렇게 예배드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발견하십니다. 그래야 우리가 우리의 사명을 다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사명을 다하기 위해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려면 우리가 이것에 온 마음을 다해야 합니다. 전심으로 예배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배를 보면 안 됩니다.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흔히 우리는 예 보려 간다고 합니다. 그리고 많은 분들이 예배 행위를 지켜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어떻게 됩니까? 구경꾼이 됩니다. 우리가 구경꾼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 교회 안에 구경꾼이 있다면 딱 한 분뿐이십니다. 그 분이 누구십니까?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우리 예배를 지켜보시면서 우리 예배를 받으시는 것입니다. 다른 모든 사람들은 온 힘을 다해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모든 순서가 다 그렇습니다. 찬양대가 찬양할 때도 우리가 들으면 안 됩니다. “아! 노래 잘한다.” 그러고 있으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찬양대가 우리를 대표해서 드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모든 사람들이 온 힘을 다해서, 전심으로 찬송을 주 앞에 드리는 것입니다. 대표 기도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이 모든 일이 제대로 되게 하기 위해서는 마음을 그렇게 써야 합니다. 같이 찬양에 동참하고, 같이 기도에 동참해야 합니다. 그런데 예배를 오래 드리다보면 습관적이 되기 쉽습니다. 그러다보면 사람들의 심정이 자기 좋은 데를 찾아다닙니다. 분위가 좋은 곳, 모든 환경과 시스템이 잘 된 곳, 자기가 듣기에 좋은 설교를 하는 곳, 자기 편리를 좇아 이리저리 찾아다닙니다. 그렇게 되면 그것을 주님 앞에 드리는 예배가 아닙니다. 결국 자기를 위해서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겉으로 볼 때 똑같이 예배를 드리지만 그 예배가 진짜 예배인지, 아니면 가짜 예배인지 곧 하나님을 위한 예배인지, 자기를 위한 예배인지 구별되어져야 합니다. 우리가 다같이 하나님께 전심으로 예배를 해서 그것이 하나님 앞에 인정 받는 일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자신도 하나님을 그런 분으로 인정해 내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세상 앞에 하나님을 그렇게 선포하는 행위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드리는 예배가 그렇게 되기 위해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될까요? 먼저 예배하는 일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공예배는 같이 드리기로 한 것이 때문에 시간을 맞추어 드려야 합니다. 주일 11시에 드리기로 했으면 딱 그 시간에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형편에 따라 마음대로 변경시키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이를 위해서 먼저 내가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주님 앞에 참된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을 미리 준비 시켜야 합니다. 또한 공예배로 드리는 것이므로 원칙상 모든 성도들이 다 참여하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은 주일 예배 때만 말하지 않고 수요 예배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우리의 생활 시간표를 공예배 시간에 맞추어야 합니다. 자신의 일 때문에, 혹은 집안의 일과 세상의 일 때문에 함부로 빠지거나 비디오 예배드리면 되지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물론 특별한 경우는 예외가 되겠죠. 나의 인간적인 것, 다른 사람의 인간적인 것, 인간성이 구현되는 것이 중요하지만 이것이 하나님보다 더 높아지면 안 됩니다. 한국 사회에서는 우리의 예배가 그렇게 될 가능성이 많이 있습니다. 주말에 가정의 대소사가 많고, 친구들과의 약속이 많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문제에 대해서 율법적으로 강요하면 우리 마음에 반발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저도 이 문제에 대해서 이떻게 성도들을 도와야 할지 고민이 많습니다. 우리 교회를 보면 요즘 너무나 공예배에 대한 절대성이 무너져 있습니다. 우리가 이 문제에 대해서 율법적으로 강요해서는 안되겠지만 피치못할 일이 아니고서는 모든 성도들이 참여하여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우리가 지난 강의에서 생각해 봤듯이 우리의 삶이 인간답게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종교적인 것 때문에 인간성이 말살되어지는 것은 옳지 않는 일이요, 하나님께서도 원하지 않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인간적인 것, 다른 사람의 인간적인 것, 인간성이 구현되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것이 너무 높아져서 하나님보다 더 높아져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보다 우선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것은 다 양보가 되어도 한 기자만은 양보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다른 어떤 일보다 먼저 하나님을 예배하는 문제입니다. 우리들의 자유로운 인간다움, 인간적인 풍요로운 생활, 그것이 중요하지만 하나님보다 더 높아져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인간다움을 만족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존재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일 때문에 임의로 빠지거나 시간을 변경해서는 안됩니다. 다른 어떤 일보다 먼저 공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공예배가 중요시 되어야 합니다. 공예배가 하나님 앞에 바로 드려져야 합니다. 이것이 제대로 되지 않고서는 교회의 사명을 감당하고 있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앞에서 말한 두 가지 일이 다 되었다고 해서 다 된 것이 아닙니다. 진짜 하나님 앞에 올바른 예배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의 삶이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정말 예배와 관련된 사람다운 삶이 되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늘 자신의 일을 신실하게 감당하는 사람이 주일날 장사하는 것을 그만 두고 예배를 드리려 간다면 사람들은 저 사람은 정말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사람이구나 생각할 것입니다. 이렇게 될 때 하나님의 통치하심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반면에 우리의 삶이 신실하지 못할 때 사람들이 무엇이라고 하겠습니까? “저 사람들이 이상하게 살더니 주일에서 모여서 무엇하는 것이지? 위선적인 사람들이야”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통치하심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도리어 하나님께서 조롱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과 예배가 분리 되어서는 안 되고 하나가 되어져야 합니다. 진정한 예배란 삶과 예배가 분리되어서는 안되고 삶과 예배가 서로 연결되어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예배는 교회의 사명 중에 하나이고,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따라서 교회는 다른 어떤 일보다도, 다른 것은 못해도 예배는 드려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하는 것을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려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를 통치하신다.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를 다스리고 계신다. 그 다스리시는 하나님 앞에 우리가 지금 우리의 모든 것을 다하여서 경배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야 하겠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 교회가 하나님 앞에 하나님의 교회된 사명을 온전히 드러내는 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