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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교회론 특강

                                                  섬김과 교제의 공동체

말씀:마20:20-27; 행2:42-47


   교회의 가장 기본적인 사명은 하나님 나라를 증시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임하여온 하나님 나라를 증시하는 첫째 방법은, 교회가 공동체로서 예배하는 것을 통해서 이루어짐을 지난주에 배웠습니다. 그러나 예배 행위로서만 하나님 나라가 증시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외에 어떻게 우리 가운데 하나님 나라를 증시해 낼 수 있을까요? 오늘은 마태복음20장 말씀과 행전2:42-47절 말씀을 기초로 섬김과 교제를 통한 하나님 나라의 증시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I. 섬김을 통한 하나님 나라의 증시.
   마20:20-27절을 보면 세상 나라의 원리와 하나님 나라의 원리가 다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공생애를 마쳐 가시는 즈음에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예수께 나아와 경배하며 한 가지를 부탁했습니다. 주의 나라에서 자기의 두 아들에게 좌우편 자리 곧 좌의정, 우의정 자리를 달라는 것입니다. 세베대와 요한도 주의 나라에서 좌우편 자리만 주신다면 예수님께서 마시는 잔을 마시겠다고 큰 소리를 쳤습니다. 이들의 청탁 소식을 들은 나머지 제자들은 두 제자들에게 분을 품었습니다. 이것을 보면 모든 제자들이 좌우편 자리를 차지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이 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요? 이들이 예수님을 좇았지만 하나님의 원리를 좇아 사는 삶의 원리를 가지고 있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세상 집권자들처럼 백성들 위에 군림하며 섬김을 받고 싶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원리는 세상 나라의 원리와는 다르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곧 하나님 나라에서는 첫째가 되고, 권세를 부리고 대접을 받는 자가 큰 자가 아니라 섬기는 자라고 하십니다. 세상 나라의 원리는 섬김을 받고 남을 지배하는 자가 큰 자입니다. 첫째가 되고 대접을 받는 자가 큰 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원리는 이와는 다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서로 큰 자가 되고자 하는 문제로 마음이 편하지 못한 제자들에게 남을 섬기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의 핵심은 바로 남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를 지배하는 원리입니다. 교회 공동체는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되어 있어서 남을 섬기며 살려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공동체입니다. 곧 섬김의 공동체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공동체는 섬김의 공동체가 되어서 하나님 나라의 원리가 사람들에게 잘 드러나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가 저런 나라구나.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이 왕이 되는 나라니까 우리 모두가 하나님을 섬기고 우리가 서로 섬기는 그런 나라구나”하는 이런 고백이 나오게 해야 합니다. 교회가 이것이 안 되면 이 세상 앞에 하나님의 나라를 증시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를 증시하기 위해서는 섬김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하나님 나라를 증시하는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는 이 예수님의 가르침의 원리에 충실해야 합니다. 우리가 서로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섬긴다는 것은 어디서 나타나는 것입니까? 생각에서부터 나타납니다. 우리의 생각 속에 섬기는 삶을 살고자 하는 분명한 생각이 없으면 섬기는 삶이 우리의 삶 속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의 생각에서 섬기는 삶을 살고자 하는 분명한 생각이 있을 때 그 섬김의 실체가 우리의 마음과 삶의 현장 속에서 나타나게 됩니다. 그래서 먼저 우리의 생각이 바뀌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생각에서만 그치지 않고 그 마음 속 깊은 곳에 이것을 새겨야 합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남들을 섬기며 살겠다”라고 하는 소원이 있을 때 남을 향하여 우리의 마음을 열 수 있습니다. 섬기는 생각과 마음이 없이는 남들에게 우리의 마음이 열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섬기고자 하는 마음이 있을 때 우리가 먼저 상대방에다가 갈 수 다가갈 수 있고, 이야기를 건낼 수 있습니다. 이것이 섬기는 것입니다.

   또 무엇으로 섬깁니까? 우리의 손으로 섬깁니다. 교회 공동체는 서로가 스스로 알아서 하는 공동체입니다. 누가 시켜서 하는 공동체가 아닙니다. 주님의 은혜에 감사해서 스스로 자원해서 섬기는 공동체입니다. 주님의 은혜에 감사해서 자원해서 열심히 섬기시는 분이 있을 때 참으로 은혜롭습니다. 그런 성도를 보면 마음속에서 감사하고 존경하며 저런 분들이 교회 공동체에 많았으면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섬기는 일은 전도하고 예배를 섬기는 일 뿐 아니라 교회 환경을 예비하기도 하고, 청소를 하기도 하고, 식사를 섬기기도 하고, 우리가 손으로 섬겨야 할 일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런 섬김이 교회 안에서만 하면 안 됩니다. 그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그 원리가 우리의 삶의 원리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에서 섬기는 사람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권세와 물질로 섬김을 받으며 살고자 합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됩니다. 삶 전체로 섬기는 삶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은 내 발걸음으로도 나타납니다. 어디로 가느냐? 섬기려고 하는 일에 가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이것을 실현해 나가야만 우리 가운데서 하나님 나라를 증시해 나갈 수 있습니다. “아! 그 공동체에 가니까 사람들이 서로 섬기려고 하는 구나” 그렇게 사람들이 성도들이 서로 섬기는 삶을 바라보면서 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공동체의 일원이 되기를 원하고 하나님 나라의 빛을 비추임 받는 것입니다. 다른 모든 일이 다 잘 된다고 해도 이 일이 안되면 우리는 교회로서의 사명을 다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이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우리는 간혹 가다가 이런 딜레마에 빠집니다. “우리가 이 원리 곧 섬기는 삶의 원리에 충실할 것인가? 이 원리를 희생시키더라도 일이 되게 할 것인가? 곧 교회의 외적 성장을 위해 일 중심으로 할 것인가?” 우리는 이런 딜레마 속에서 사람 중심으로 가기보다 일 중심으로 갈 때가 많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일을 열심히 하고자 하는 마음은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다보면 일 중심이 되어버립니다. 그렇게 되면 사람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면 일 때문에 도리어 사람에게 상처를 줄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지난날 전도와 세계 선교를 위해, 곧 사역의 성장을 위해 얼마나 일 중심으로 살아왔습니까? 사명 제일주의로 살아왔습니다. 사명을 위해서 사람이 희생되고, 우리의 삶이 희생되었습니다. 물론 사명이 귀한 것입니다. 사명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사명을 귀히 여겨야 합니다. 그러나 사명 자체를 위한 사명이 되어서 사람들이 사명을 위해 존재하는, 사명의 도구로 전락하는 것은 잘 못된 것입니다. 우리 모임은 없잖아 이런 모습이 우리 속에 있었습니다. 이런 비정상적인 일로 인해 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하나님 나라의 증시를 방해하였습니다. 아리러니칼 하게도 하나님의 나라의 증시를 위해 사명 제일주의로 살아왔는데 그것이 도리어 하나님의 나라의 증시를 막은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사명 제일주의에 상처를 받고 우리의 공동체가 부담이 되었습니다. 이런 사람이 제외된 사명 중심은 비정상적인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서 이 세상을 삽니까? 교회 공동체가 왜 존재하는 것입니까? 사람을 위해서 입니다. 이 말을 잘 못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지난번에도 살펴보았듯이 하나님보다 인간이 앞서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하나님을 위해서 사는 것이요,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교회 공동체를 이루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섬기면서 살도록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우리의 공동체가 일 중심이 되어 버리면 섬기는 공동체로서 그 원리가 드러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중심으로 생각해야 합니까? 일을 중심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일중심의 생각은 사람을 해치는 치명적인 독소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일, 그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진짜로 잘 되려면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내 마음과 손과 발을 주는 것입니다. 곧 우리의 마음과 손과 발로 즉 우리의 전 삶을 통해서 섬기는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를 통해서 교회 공동체로서의 참 모습이 잘 드러나게 해야 합니다. 그럴 때 교회 공동체를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증시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때 일도 잘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런 섬기는 삶을 살길 위해서는 많은 희생과 헌신을 기쁨으로 감당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 사람들은 섬기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많은 희생과 손해를 각오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섬기는 삶이 이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를 증시하는 것이 됩니다. 섬기는 삶을 사는 자들이야 말로 이 세상의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삶을 사는 자들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볼 때 이상한 삶을 사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이런 이상한 삶을 사는 자들을 통해 이 세상에 빛을 비추고, 하나님의 나라가 증시되는 것입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이 시간에 우리 마음 가운데 이 원리를 마음 가운데 새겨야 하겠습니다. 교회 공동체는 하나님 나라의 원리가 지배하는 그런 곳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원리가 세워져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원리에 따라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모든 영역에서 이 원리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렇지 아니하고 세상 적인 원리가 들어와서 판을 치게 되면 하나님의 나라를 증시할 수 없습니다. 도리어 사람들로부터 “여기도 세상과 똑같다”는 소리를 듣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교회로의 사명을 다 하지 못하고 도리어 비난과 손가락질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비난을 받지 않도록 하나님의 원리에 따라 살고자, 곧 섬김의 원리에 따라 살고자 최선을 다 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살고자 노력하지만 또 세월이 지나다보면 잘 안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실망하고 교회를 떠나고자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 때 우리는 마음을 하나님께로 향하도록 회개해야 합니다. 문제들을 정말 성경이 가르쳐 주는 대로 고치고자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그렇게 계속해서 실천하는 삶을 살 때 우리의 공동체가 교회 동동체로서 하나님의 나라를 증시하는 공동체로 성장해 갈 것입니다.

II. 교제를 통한 하나님 나라의 증시.
   행2:42-47절에 보면 초대 교회 성도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썼다고 했습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했다고 했습니다. 그랬을 때 온 백성에게서 칭송을 듣고 날마다 구원받는 사람이 더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볼 때 교회는 교제를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증시할 수 있음을 배울 수 있습니다. 교제는 “코이노니아”라는 말인데 신약성경에서는 특히 성령의 친교라는 개념입니다. 이 친교는 하나님 나라의 증시를 위해서 필수요건입니다. 그러면 친교(성령의 친교)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친교란 쉽게 말하면 교제 곧 신자들의 사귐입니다. 사귐에는 하나님과의 사귐인 수직적인 사귐과 성령을 통한 신자간의 사귐이라는 수평적인 사귐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두 가지 개념이 하나가 되고 모두 이해되어져야 합니다. 수직적인 사귐과 수평적인 사귐 이 두 가지가 다 이해 되어야 진정한 친교의 의미를 이해 할 수 있습니다. 수직적인 사귐은 성령의 교통하심이다. 곧 그리스도의 몸인 성도들 속에 성령이 내주할 때에 하나님께서 성도들과 갖는 사귐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 안에서의 사귐 또 그리스도와 성령과의 사귐은 신자들 상호간의 사귐, 곧 수평적 사귐의 창조적 바탕이며 기둥이다. 교회 안에서의 진정한 친교(코이노니아)는 성령에 의해서 수여된 것인데, 우리 인간성의 기능을 뛰어 넘는 것이다. 때때로 우리들의 교회에서 피상적이고도 사회적인 사귐을 갖는 교제(fellowship)라는 말은 성령의 친교가 아니다. 우리는 교제를 단순히 주말 산악회나 친목회와 같은 수준에 머물러 버리기 쉽다. 마음에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 식사하고 대화하고 운동하는 것은 성령의 교제가 아니다. 이것은 세상의 친목회와 다를 바가 없다. 이런 교제는 본 훼퍼가 말한 “값싼 은총”과 평행을 이루는 “값싼 교제”에 불과하다. 진정한 친교는 사도행전의 초대교회의 사귐과 같이 특별한 일체감, 목적의 단일성, 넓은 사랑과 상호간의 관심 곧 수직적인 사귐과 수평적인 사귐이 조화를 이룬 사귐이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코이노니아를 알고 있었다. 이것은 회심의 즉각적인 기쁨이나 함께 경험한 믿음의 지식 이상이었다.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가정에서 함께 떡을 떼며 기도하고 서로 배웠습니다. 서로 받은바 은혜를 나누며 기도하기에 힘썼습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에 힘썼습니다. 그들은 마음을 같이 하고자 힘썼고, 성전에 모이고자 힘썼습니다.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온 마음과 힘을 다해 예배를 드렸습니다. 성도들의 집에 모여 떡을 떼며, 곧 예찬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였습니다. 이처럼 교회 공동체에서의 교제는 세상의 친목회와는 다른 것입니다. 사도행전의 교제와 같이 이런 성령의 교제가 충만히 이루어 질 때 하나님의 나라가 증시 됩니다. 이런 신령한 교제를 보고 사람들은 은혜를 받습니다. 사도행전의 고백처럼 날마다 구원받는 사람들이 더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신령한 교제가 이루어질 때 사람은 은혜를 받고 감동을 받고 마음 문을 열게 됩니다. 그 모임을 사모하여 모이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고 하나님께로 나아오게 됩니다. 우리 교회가 초대교회와 같이 아름다운 친교가 충만히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이를 위해 힘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런 친교는 그냥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지 않고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또한 우리가 서로 힘써야 합니다. 힘쓰지 않고는 안 됩니다. 저는 이를 위해서 금요일 하루를 드리고자 합니다. 저희 가정이 먼저 아름다운 친교를 위해 힘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 공동체 가운데 다시 아름다운 교제가 회복되고 하나님의 나라가 증시되는 은혜가 충만히 임하길 원합니다.

   교회의 사명은 하나님 나라의 증시에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증시는 예배와 함께 섬김과 교제를 통해서도 이루어집니다. 우리교회가 서로 섬기는 하나님의 원리에 따라 살므로 하나님의 나라를 증시하길 기도합니다. 또한 신령한 친교가 우리 공동체 가운데 충만하여 우리 공동체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증시되는 놀라운 역사가 이루어지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