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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왕하 4:8-37
강설날짜 2017-09-06

2017년 열왕기하 공부

엘리사와 수넴 여인

말씀:열왕기하 4:8-37


우리는 지난 시간에 엘리사가 여호와를 경외한 한 선지자 생도의 과부의 기름병을 축복하는 사건을 살펴봤습니다(1-7). 오늘 말씀은 엘리사가 자신을 간권하여 음식을 대접한 수넴 여인에게 “내년 이맘 때에 네가 아들을 안을 것이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살펴보는 가운데 이 말씀을 통해서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계시가 무엇인지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8-10절을 보면 “하루는 엘리사가 수넴에 이르렀더니 거기 한 귀한 여인이 저를 간권하여 음식을 먹게 한 고로 엘리사가 그곳을 지날 때마다 음식을 먹으러 그리로 들어갔더라. 여인이 그 남편에게 이르되 항상 우리에게로 지나는 이 사람은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인 줄을 내가 아노니 우리가 저를 위하여 작은 방을 담 위에 짓고 침상과 책상과 의자와 촛대를 진설하사이다. 저가 우리에게 이르면 거기 유하리이다 하였더라”고 했습니다. 하루는 엘리사가 수넴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귀한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한 귀한 여인이 엘리사를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으로 알아보고 그를 간권하여 음식을 대접할 뿐만 아니라 그를 위하여 방도 마련하여 주고 가구도 들여놓자고 남편에게 말하여 허락을 받고 그대로 하였습니다. 사실 아무리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이렇게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가끔씩 지나가는 선지자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것도 귀한 일인데 아에 편히 쉬고 묵상하며 공부도 할 수 있도록 방을 만들어 주고 가구들을 다 준비하여 준다는 것은 참으로 귀한 일입니다. 이 수넴 여인은 진심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 엘리사가 쉬며 말씀을 연구하도록 세심하게 섬긴 것입니다.

 

11-13절을 보면 “하루는 엘리사가 거기 이르러 그 방에 들어가서 누웠더니 자기 사환 게하시에게 이르되 이 수넴 여인을 불러오라. 곧 부르매 여인이 그 앞에 선지라. 엘리사가 자기 사환에게 이르되 너는 저에게 이르라. 네가 이같이 우리를 위하여 생각이 주밀하도다. 내가 너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 왕에게나 군대장관에게 무슨 구할 것이 있느냐. 여인이 가로되 나는 내 백성 중에 거하나이다 하니라”고 했습니다. 엘리사는 이 여인의 세심한 배려에 감사하여 무엇으로든지 보답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왕이나 사령관에게 무엇을 구할 것이 있느냐고 묻습니다. 열왕기하 3장에서 모압을 공격할 때 물이 없어서 군인이나 짐승들이 다 죽게 되었을 때에 엘리사가 기도하여 응답을 받았습니다. 그로 인하여 승리를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마지막 순간에 모압 왕이 자기 맏아들을 그들의 신에게 바침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놀라서 다 돌아가 버린 것입니다. 하여튼 엘리사는 왕이나 군 사령관에게도 통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나는 내 백성 중에 거주한다고 합니다. 이 말은 나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일에 부족함이 없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수넴 여인이 그 어떤 댓가를 바라고 하나님의 선지자를 섬긴 것이 아님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정말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이라는 것 그 하나로 섬긴 것입니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만으로 만족하며 사는 여인입니다. 자기 자신에게 아들이 없지만 그런 것도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 수넴 여인은 내 은혜가 내게 족하다는 삶을 산 것입니다.

 

14-17절을 보면 “엘리사가 가로되 그러면 저를 위하여 무엇을 하여야 할꼬. 게하시가 대답하되 참으로 이 여인은 아들이 없고 그 남편은 늙었나이다. 가로되 다시 부르라 부르매 여인이 문에 서니라. 엘리사가 가로되 돐이 되면 네가 아들을 안으리라. 여인이 가로되 아니로소이다. 내 주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의 계집종을 속이지 마옵소서 하니라. 여인이 과연 잉태하여 돐이 돌아오매 엘리사의 말한 대로 아들을 낳았더라”고 했습니다. 엘리사가 그래도 무엇을 해 주고 싶었습니다. 그러자 게하시가 이 여인은 아들이 없고 그 남편이 늙었다고 합니다. 이제 아이를 가질 희망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엘리사가 그 여인을 불러서 내년 이때쯤에 네가 아들을 안으리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하나님의 사람이여 계집종을 속이지 마옵소서”라고 합니다. 한마디로 말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엘리사가 거룩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알고 있었지만 내년 이맘 때 아들을 안으리라는 이 말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 수넴 여인에게는 아들만 없는 것이 아니라 딸도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결혼해서 지금까지 자녀가 없었고 거기다가 자신도 늙었고 남편도 늙었는데 아들을 안으리라고 하니 믿지 못한 것입니다. 그런데 엘리사 선지자의 말대로 그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았습니다. 정말로 엘리사가 말한 대로 아들은 안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18-20절을 보면 “그 아이가 저으기 자라매 하루는 곡식 베는 자에게 나가서 그 아비에게 이르렀더니 그 아비에게 이르되 내 머리야 내 머리야 하는지라. 그 아비가 사환에게 명하여 그 어미에게로 데려가라 하매 곧 어미에게로 데려갔더니 낮까지 어미의 무릎에 앉았다가 죽은지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없던 아이를 주시더니 이제는 그 아이가 죽어버린 것입니다. 아이가 자라 추수꾼들에게 나가서 아버지에게 갔다가 머리가 아프다고 하기에 사환을 통하여 어머니에게 보내었는데 그 아이가 낮까지 어머니의 무릎에 앉아 있다가 죽어버렸습니다. 아들을 안으리라고 한 대로 없는 아들을 품에 안았는데 이제 그 아들이 죽어 버린 것입니다. 참으로 원통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녀는 죽은 아들을 품에 안고 있는 것입니다.

 

21-23절을 보면 “그 어미가 올라가서 아들을 하나님의 사람의 침상 위에 두고 문을 닫고 나와서 그 남편을 불러 이르되 청컨대 한 사환과 한 나귀를 내게로 보내소서. 내가 하나님의 사람에게 달려갔다가 돌아오리이다. 그 남편이 가로되 초하루도 아니요, 안식일도 아니어늘 그대가 오늘날 어찌하여 저에게 나아가고자 하느뇨. 여인이 가로되 평안이니이다”고 했습니다. 아이가 죽자 그 아이를 선지자의 방에 있는 침상에 눕히고 방문을 닫고 남편을 불러 사환 한 명과 나귀를 달라고 하여 엘리사 선지자에게로 간다고 합니다. 남편이 초하루도 아니고 안식일도 아닌데 왜 가려고 하느냐고 하자 이 여인은 평안을 말하고 갑니다.

 

24-27절을 보면 “이에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자기 사환에게 이르되 몰아 앞으로 나아가라. 내가 말하지 아니하거든 나의 달려가기를 천천하게 하지 말라 하고 드디어 갈멜산으로 가서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나아가니라. 하나님의 사람이 멀리서 저를 보고 자기 사환 게하시에게 이르되 저기 수넴 여인이 있도다. 너는 달려가서 저를 맞아 이르기를 너는 평안하냐. 네 남편이 평안하냐. 아이가 평안하냐 하라 하였더니. 여인이 대답하되 평안하다 하고 산에 이르러 하나님의 사람에게 나아가서 그 발을 안은지라. 게하시가 가까이 와서 저를 물리치고자 하매 하나님의 사람이 가로되 가만 두라. 그 중심에 괴로움이 있다마는 여호와께서 내게 숨기시고 이르지 아니하셨도다”고 했습니다. 엘리사가 수넴 여인이 오는 것을 보고 게하시를 보내어 “너는 평안하냐, 네 남편이 평안하냐, 아아기 평안하냐 하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게하시가 안부를 묻자 수넴 여인은 평안하다고 하며 엘리사에게 나아가 그 발을 안았습니다. 도대체 아들이 죽었는데 무엇이 평안이라는 말입니까? 자신이 원하지도 않았는데 아들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이 죽었습니다. 이 여인은 평소에도 엘리사를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의 죽음을 통하여 참된 평안을 간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지자의 발을 안았습니다. 그런데 그 속마음을 엘리사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선지자도 하나님의 뜻을 다 모르고 사람의 뜻도 다 모릅니다.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의 마음을 안다고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우리는 이들에게 속지 말아야 합니다.

 

드디어 이 여인이 엘리사에게 말합니다. 28-31절을 보면 “여인이 가로되 내가 내 주께 아들을 구하더이까. 나를 속이지 말라고 내가 말하지 아니하더이까. 엘리사가 게하시에게 이르되 네 허리를 묶고 내 지팡이를 손에 들고 가라 사람을 만나거든 인사하지 말며 사람이 네게 인사할지라도 대답하지 말고 내 지팡이를 그 아이 얼굴에 놓으라. 아이의 어미가 가로되 여호와의 사심과 당신의 혼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리이다. 엘리사가 이에 일어나 여인을 좇아가니라. 게하시가 저희의 앞서 가서 지팡이를 그 아이의 얼굴에 놓았으나 소리도 없고 듣는 모양도 없는지라. 돌아와서 엘리사를 맞아 가로되 아이가 깨지 아니하였나이다”고 했습니다. 이 여인이 엘리사에게 자기가 아들을 구하더이까? 나를 속이지 말라고 하지 않았느냐는 이 말에 엘리사가 바로 알아차리고 게하시에게 자기 지팡이를 주어 아이에게 놓게 합니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 때 이 여인은 여호와의 살아 계심과 당신의 영혼의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않겠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자기에게 주었으니 하나님의 사람이 해결할 것을 믿은 것입니다. 이것은 곧 주신이가 하나님이시니 취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신 것을 믿었기에 지금까지 평안이라는 말을 한 것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믿음이 아닐 수 없습니다.

 

32-37절을 보면 “엘리사가 집에 들어가 보니 아이가 죽었는데 자기의 침상에 눕혔는지라. 들어가서는 문을 닫으니 두 사람 뿐이라 엘리사가 여호와께 기도하고 아이의 위에 올라 엎드려 자기 입을 그 입에, 자기 눈을 그 눈에, 자기 손을 그 손에 대고 그 몸에 엎드리니 아이의 살이 차차 따뜻하더라. 엘리사가 내려서 집 안에서 한번 이리 저리 다니고 다시 아이 위에 올라 엎드리니 아이가 일곱번 재채기 하고 눈을 뜨는지라. 엘리사가 게하시를 불러서 저 수넴 여인을 불러오라 하니 곧 부르매 여인이 들어가니 엘리사가 가로되 네 아들을 취하라. 여인이 들어가서 엘리사의 발 앞에서 땅에 엎드려 절하고 아들을 안고 나가니라”고 했습니다. 엘리사가 기도하고 아이 위에 엎드리니 아이가 일곱 번 재채기를 하고 살아납니다. 이에 엘리사는 게하시를 불러 수넴 여인을 불러 오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수넴 여인이 와서 살아난 아이를 안고 나갔습니다.

 

그러면 오늘 이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계시하고자 하시는 것입니까? 28절을 다시 보면 “여인이 가로되 내가 내 주께 아들을 구하더이까. 나를 속이지 말라고 내가 말하지 아니하더이까”라고 합니다. 수넴 여인의 이 말을 보면 아브라함과 사라의 사건과 연결이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창세기 17:17절을 보면 “아브라함이 엎드리어 웃으며 심중에 이르되 백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세니 어찌 생산하리요 하고”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사라 사이에 아들을 준다는 말씀에 사라가 웃었습니다. 창세기 18:9-15절을 보면 “그들이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네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 대답하되 장막에 있나이다. 그가 가라사대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정녕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 사라가 그 뒤 장막 문에서 들었더라. 아브라함과 사라가 나이 많아 늙었고 사라의 경수는 끊어졌는지라.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어찌 낙이 있으리요,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사라가 왜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 하느냐. 여호와께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사라가 두려워서 승인치 아니하여 가로되 내가 웃지 아니하였나이다 가라사대 아니라 네가 웃었느니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나그네를 대접을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인줄 모르고 지나가는 사람을 대접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곧 하나님을 대접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이와 같은 행동은 무언가 대가를 바라고 대접한 것이 아닙니다. 이와 같이 오늘 본문의 수넴 여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수넴 여인은 엘리사에게 무언가 대가를 바라고 대접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수넴 여인에게 아들을 주시겠다고 합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도 웃었지만 수넴 여인도 그 표현은 다르지만 속으로 웃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수넴 여인은 엘리사에게 종을 속이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과 사라와 수넴 여인이 다 아들을 안으리라는 말을 믿지 못하였지만 아들을 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공통점이 또 있습니다. 그 아들을 죽은 자가 가운데서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제물로 올렸다가 어린 양으로 대신하여 살아났기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받은 것입니다. 수넴 여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없는 아들을 받았지만 죽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엘리사가 살려 주었습니다. 그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받은 것입니다.

 

그러면 이 두 사건을 통하여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줍니까? 이 두 사건은 하나님의 아들을 품에 안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우리에게 원래 없던 분입니다. 그런데 이 아들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아들이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분이십니다. 이 아들을 안는 것이 영원한 생명을 얻는 일입니다. 수넴 여인은 그 아들의 죽음 속에서도 계속하여 평안을 이야기 합니다. 세상이 줄 수도 알 수도 없는 평안입니다.

 

그러면 아들은 안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평안이 어떤 것인지 보겠습니다. 누가복음 2:25-29절을 보면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이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저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마침 부모가 율법의 전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지라.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시므온이 예수님을 안고 찬송하는 이야기입니다. 시므온은 예수님을 안고 “이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신다”고 합니다. 죽는 것이 평안에 들어가는 일인데도 아들을 안았기에 곧 그리스도를 안았기에 영원한 평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무엇을 품에 안고 있습니까? 정말 십자가로 다 이루었다고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품에 안고 있습니까? 아들이 우리에게 오는 것은 우리가 믿은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과 사라와 수넴 여인을 통해서 보았듯이 그들이 아들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그들은 아들을 가질 수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아무리 소원하여도 아들을 낳을 수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완전히 포기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자들에게 아들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은 죽었다가 살아나야 하는 아들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아들을 품에 안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이렇게 말합니다. 로마서 4:17절을 보면 “기록된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의 믿은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믿은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분이십니다. 아브라함과 수넴 여인은 다 없는 아들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단지 없다고 받은 아들만이 아니라 죽었다가 살아난 자를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건들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가 믿는다는 것은 그 아들을 품에 안는 것입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예수님을 우리가 어떻게 영접하였습니까? 우리가 어떻게 믿었습니까? 우리는 전혀 원하지도 않았습니다. 우리는 단지 이 세상에 잘 먹고 잘 살기를 바랬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안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안게 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언약을 다 이루시고 그 영을 자기 백성들에게 넘겨주심으로 된 것입니다. 그래서 아들의 영이 임한 자는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게 됩니다.

 

로마서 8:14-17절을 보면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아들은 안는다는 것이 신약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아들의 영이 임함으로 예수님의 아버지를 우리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게 됩니다. 이것이 아들을 안는 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은혜입니까! 그런데 아들의 영이 임함으로 세상에서 고난을 받습니다. 그 이유는 영원한 상속이 세상의 썩어질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세상의 썩어질 것을 피하여 그 영원한 아들의 나라를 상속받기 때문에 고난이 오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5:10-12절을 보면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 하신 증거를 믿지 아니하였음이라.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아들을 우리가 품에 안았습니까? 그렇다면 생명이 있는 것입니다. 이 아들을 안은 자만이 참된 평안이 있습니다. 시므온처럼 주여 종을 평안히 놓아주시나이다고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예수 그리스도를 안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주님이 주시는 참된 평안을 누리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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