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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왕하 5:1-19
강설날짜 2017-09-20

2017년 열왕기하 공부

나아만이 문둥병에서 고침을 받다

말씀:열왕기하 5:1-19

 

오늘 말씀은 아람 왕의 군대장관 나아만이 문둥병에서 고침을 받는 사건입니다. 이방인인 나아만이 이스라엘에 와서 문둥병을 고침 받는 이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은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우리가 오늘 말씀을 살펴보는 가운데 이 사건을 통해서 계시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계시가 무엇인지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1절을 보면 “아람 왕의 군대장관 나아만은 그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니 이는 여호와께서 전에 저로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음이라. 저는 큰 용사나 문둥병자더라”고 했습니다. 아람 왕의 군대장관 나아만은 그 주인인 왕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라고 합니다. 나아만이 이렇게 된 것은 그가 전에 아람을 구원하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나아만 장군이 아람의 구원에 큰 공을 세움으로 백성들만이 아니라 왕에게도 큰 총애를 받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이렇게 된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이라고 합니다. 나아만은 큰 용사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나아만 장군은 문둥병자였습니다. 그러면 나아만 장군을 이렇게 문둥병자가 되게 하신 것도 누가 일까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를 통해서 무엇을 계시하고자 하시는 것입니까? 출애굽기 15:3절을 보면 “여호와는 용사시니 여호와는 그의 이름이시로다”라고 했습니다. 또한 사무엘상 17:26절을 보면 “다윗이 곁에 섰는 사람들에게 말하여 가로되 이 블레셋 사람을 죽여 이스라엘의 치욕을 제하는 사람에게는 어떠한 대우를 하겠느냐. 이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이 누구관대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겠느냐”고 했습니다. 여호와는 용사이십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군대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이스라엘이 지금 나아만처럼 문둥병이 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으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대적의 대적이 되시지만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언약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게 되면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대적이 되십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람의 군대장관 나아만을 통하여 아람을 구원하게 하시고 또 이스라엘을 공격하게 하여 포로로 잡아가는 일도 일어난 것입니다. 그런데 나아만이 문둥병이 듦을 통하여 이스라엘에서 포로로 잡아온 어린 소녀의 말을 듣게 하고 이스라엘로 고침을 받도록 보냄을 받습니다.

 

오늘 본문 2-3절을 보면 “전에 아람 사람이 떼를 지어 나가서 이스라엘 땅에서 작은 계집 아이 하나를 사로잡으매 저가 나아만의 아내에게 수종들더니. 그 주모에게 이르되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저가 그 문둥병을 고치리이다”고 했습니다. 전에 이스라엘 땅에서 잡아 온 작은 계집 아이 하나가 나아만의 아내를 수종 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계집 아이가 주모에게 문둥병이 든 나아만을 사마리아에 있는 하나님의 선지자에게 보내면 좋겠다고 제안을 합니다. 그러면 그 선지자가 문둥병을 고쳐 줄 것이라고 합니다. 포로로 잡혀온 이 계집 아이는 하나님의 선지자를 신뢰하고 있었습니다.

 

4-6절을 보면 나아만 장군은 계집 아이의 말을 듣고 아람 왕에게 나아가서 계집 아이의 말을 고하였습니다. 그러자 아람 왕은 나아만에게 이스라엘에 가서 문둥병을 고침 받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직접 이스라엘 왕에게 친서를 써 줍니다. 이에 나아만은 은 십 달란트와 금 육천 개와 의복 열 벌을 예물로 준비하고 왕의 친서를 가지고 이스라엘 왕에게로 갔습니다. 그런데 나아만 장군이 계집 아이가 말한 하나님의 선지자에게로 바로 가지 않고 이스라엘 왕에게로 갔습니다. 여기에는 큰 의미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왕의 믿음 없음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7절을 보면 이스라엘 왕은 아람 왕이 보낸 친서를 읽고 옷을 찢으며 “내가 어찌 하나님이관대 능히 사람을 죽이며 살릴 수 있으랴. 저가 어찌하여 사람을 내게 보내어 그 문둥병을 고치라 하느냐”고 합니다. 그러면서 이 일을 계기로 시비하려고 온 것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이스라엘 왕의 모습을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믿음 없음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스라엘 왕의 모습이 바로 하나님의 군대로 부름을 받은 이스라엘이 문둥병에 든 것과 마찬가지의 모습입니다. 그 어떤 것을 할지라도 부정하게 되는 문둥병이 든 하나님의 군대인 이스라엘의 모습을 대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또한 오늘날 이 땅의 교회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8절을 보면 엘리사는 이스라엘 왕이 옷을 찢었다는 말을 듣고 수종 드는 자를 보내어 나아만을 자기에게로 보내라고 합니다. 그가 이스라엘 중에 선지자가 있는 줄을 알 것이라고 합니다. 나아만은 병 고침을 받기 위하여 이방 나라에서 하나님의 선지자를 찾아 왔습니다. 나아만은 자신이 왕에게로 가면 하나님의 선지자가 왕에게로 와서 자신을 고쳐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선지자가 직접 오지도 않고 도리어 사람을 보내어 자기를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람의 군대장관으로서 자존심이 상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나아만 장군은 병을 고침 받기 위해서 자존심을 버리고 선지자 엘리사에게로 갑니다.

 

9절에 보면 나아만이 말들과 병거들을 거느리고 엘리사의 집 문에 이르러 섰습니다. 그런데 이때 엘리사는 어떻게 합니까? 10절을 보면 엘리사는 나와 보지도 않고 사자를 보내어 “너는 가서 요단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여전하여 깨끗하리라”고 합니다. 이에 나아만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11-12절에 보면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가로되 내 생각에는 저가 내게로 나아와 서서 그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당처 위에 손을 흔들어 문둥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다메섹강 아마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 하고 몸을 돌이켜 분한 모양으로 떠나니”라고 합니다. 당시 아람은 이스라엘보다 훨씬 강한 나라였습니다. 나아만은 이스라엘의 왕도 쩔쩔매는 아람의 군대장관이었습니다. 그런데 엘리사는 나와 보지도 않고 그의 사자를 보내어 요단강에 가서 몸을 일곱 씻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나아만은 선지자가 직접 나와서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그의 손을 자신의 문둥병 위에 올려 만지며 고쳐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나와 보지도 않고 자기 나라의 강물보다 못한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씻으라고 하니 화가 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 나라의 더 좋은 강에 가서 씻겠다고 하면서 분노하며 떠나가는 것입니다.

 

13-14절을 보면 나아만이 분노하여 돌아가고자 하자 그의 종들이 나아와서 나아만을 강권하며 말립니다.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을 명하여 큰 일을 행하라 하였더면 행치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라고 합니다(13). 이 말은 이보다 더 큰일을 하라고 해도 하여야 할 터인데 강물에 씻으라고 한 것을 해보지도 않고 돌아가고자 하십니까? 자존심을 버리고 선지자의 말 대로 요단강에 가서 한번 씻어봅시다고 하며 설득한 것입니다. 그래서 나아만 장군은 선지자의 말에 순종하여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잠그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선지자가 말한 대로 그의 살이 어린 아이의 살 같이 회복이 되어 깨끗하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 놀라운 일은 금방 온 이스라엘 전역에 퍼져 나갔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무엇을 말씀하시고자 하시는 것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엘리사가 나아만 장군에게 왜 요단강에 가서 씻으라고 했는지, 그것도 왜 일곱 번이나 요단강에 몸을 담그라고 했는지 알아 차려야 했습니다. 출애굽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어린 양의 피의 능력으로 건너게 됩니다.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하나님의 언약을 받습니다. 그 언약의 돌 판을 넣은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요단강에 들어서자 그 강물이 끊어져서 마른 땅 같이 건너 약속의 땅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런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지금 하나님의 언약을 배반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방인 나아만을 통하여 언약을 상기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너희가 홍해를 건너고 요단강을 무엇으로 건너왔는지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이방인 나아만 장군도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씻으니 그 문둥병이 깨끗해 졌다는 것을 통하여 이스라엘의 죄를 고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보면 나아만이 율법의 규례대로 행하지는 않습니다만 요단강에 몸을 일곱 번 담갔다가 나오는 것은 문둥병자가 정결하게 될 때에 일곱 번 피를 뿌리는 것과 연상이 되는 내용입니다. 레위기 14:5-7절을 보면 “제사장은 또 명하여 그 새 하나는 흐르는 물 위 질그릇 안에서 잡게 하고 다른 새는 산대로 취하여 백향목과 홍색실과 우슬초와 함께 가져다가 흐르는 물 위에서 잡은 새 피를 찍어 문둥병에서 정결함을 받을 자에게 일곱 번 뿌려 정하다 하고 그 산 새는 들에 놓을지며”라고 했습니다. 문둥병자가 정결하게 되었을 때에 새 두 마리를 잡아서 한 마리는 흐르는 물위 질그릇에서 잡고 그 새의 피를 찍어 정결함을 받은 자에게 일곱 번 뿌리라고 합니다. 그리고 다른 새 한 마리는 들에 놓아주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문둥병자가 나음을 입은 것은 정결한 짐승의 피 뿌림의 희생을 통하여 된 것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일 년에 한번 대제사장이 대속죄일에 짐승의 피를 일곱 번 언약궤 위에 뿌립니다. 이와 같이 문둥병에서 정결함을 받은 자는 새의 피를 일곱 번 뿌림을 받습니다.

 

그런데 문둥병자는 이렇게 피 뿌림만 받는 것이 아니라 정결하게 되고 나서 제사장의 위임 식 때 행하는 의식을 또 행해야 합니다. 레위기 14:14-17절을 보면 “제사장은 그 속건제 희생의 피를 취하여 정결함을 받을 자의 우편 귓부리와 우편 손 엄지가락과 우편 발 엄지가락에 바를 것이요, 제사장은 또 그 한 록의 기름을 취하여 자기 좌편 손바닥에 따르고 우편 손가락으로 좌편 손의 기름을 찍어 그 손가락으로 그것을 여호와 앞에 일곱 번 뿌릴 것이요, 손에 남은 기름은 제사장이 정결함을 받는 자의 우편 귓부리와 우편 손 엄지가락과 우편 발 엄지가락 곧 속건제 희생의 피 위에 바를 것이며”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제사장은 그 속건제 희생의 피를 오른쪽 귓부리와 엄지손가락과 엄지발가락에 바르게 합니다. 이것은 제사장 위임 식 때에 하는 일입니다(레 8:22-24). 이처럼 문둥병자가 정결함을 입는 것은 정결한 짐승의 피 뿌림을 입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문둥병자가 정결함을 입는 것은 단지 짐승의 피를 바르는 것만이 아니라 제사장에게 합류됨을 보여줍니다. 제사장의 희생으로 문둥병마저 정결함을 입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규례를 아는 이스라엘 백성이라면 이방인 나아만 장군이 문둥병을 요단강에 몸을 일곱 번 씻음으로 정결하게 됨을 보면서 자신들이 회개하여야 합니다. 자신들이 어린 양의 피와 제사장의 희생으로 살아가는 자들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언약은 사라져버리고 바알과 아세라의 우상만 가득한 이스라엘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이스라엘을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나아만을 통하여 고발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4:27-30절을 보면 “또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문둥이가 있었으되 그 중에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 뿐이니라. 회당에 있는 자들이 이것을 듣고 다 분이 가득하여 일어나 동네 밖으로 쫓아내어 그 동네가 건설된 산 낭떠러지까지 끌고 가서 밀쳐 내리치고자 하되 예수께서 저희 가운데로 지나서 가시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희년을 이루시기 위하여 오셨다는 말씀을 하시는데 사람들이 그를 믿지를 않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엘리야 시대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지만 사렙다 과부에게만 보냄을 받았고 엘리사 시대 때 이스라엘에 많은 문둥병자가 있었지만 나아만 한 사람만 고침을 받았다는 말씀을 하시자 나사렛 사람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나아만 사람의 이야기를 예수님께서 하심으로 이스라엘의 믿음 없음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하여 예수님을 죽이고자 한 것입니다. 이런 이스라엘의 모습이 문둥병자가 된 모습입니다. 이런 그들이 자신들의 모습을 깨닫고 예수님 앞에 나와서 고침을 받아야 하는데 오히려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이것이 죄인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문둥병 고침을 받은 나아만은 어떻게 합니까? 오늘 본문 15-16절을 보면 “나아만이 모든 종자와 함께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도로 와서 그 앞에 서서 가로되 내가 이제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 줄을 아나이다. 청컨대 당신의 종에게서 예물을 받으소서. 가로되 나의 섬기는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받지 아니하리라. 나아만이 받으라 강권하되 저가 고사한지라”고 했습니다. 나아만이 병 고침을 받고 나서 엘리사의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참된 신임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예물을 엘리사에게 드리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한사코 거절을 합니다. 그러면 엘리사가 왜 거절하는 것입니까? 참된 신은 사람에게 선물을 받지 않는 것을 보여줍니다. 모든 거래와 흥정이 통하지 않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엘리사는 나아만과 이스라엘과 오늘날 우리에게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7-19절을 보면 “나아만이 가로되 그러면 청컨대 노새 두 바리에 실을 흙을 당신의 종에게 주소서 이제부터는 종이 번제든지 다른 제든지 다른 신에게는 드리지 아니하고 다만 여호와께 드리겠나이다. 오직 한 가지 일이 있사오니 여호와께서 당신의 종을 사유하시기를 원하나이다. 곧 내 주인께서 림몬의 당에 들어가 거기서 숭배하며 내 손을 의지하시매 내가 림몬의 당에서 몸을 굽히오니 내가 림몬의 당에서 몸을 굽힐 때에 여호와께서 이 일에 대하여 당신의 종을 사유하시기를 원하나이다. 엘리사가 가로되 너는 평안히 가라. 저가 엘리사를 떠나 조금 진행하니라”고 했습니다. 나아만은 선물을 받지 않는 엘리사에게 이스라엘의 흙을 가지고 가서 자신은 오직 그 흙 위에서 여호와께만 번제와 희생제물을 드리겠다고 합니다. 나아만이 이스라엘 땅의 흙을 가지고 간 것은 이스라엘의 하나님만 섬기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스라엘은 어떠합니까? 단과 벧엘에서 금송아지를 섬기고 있습니다. 열왕기서 저자는 이러한 이스라엘을 나아만을 통하여 고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아만은 엘리사에게 한 가지 청을 합니다. 그것은 왕이 림몬의 산당에 몸을 굽힐 때에 나아만의 손을 의지하기에 그것을 용서하여 달라고 합니다. 신부 절 시키는 사람이 함께 절하듯이 그런 행위를 용서하여 달라고 합니다. 그러자 엘리사가 평안히 가라고 합니다. 이를 통하여 지금 이스라엘이 상태가 어떤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8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을 마치시고 제일 먼저 고쳐주신 자가 문둥병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사건을 통해서 자신이 그 부정함을 짊어지심으로 자기에게 나아온 자를 깨끗하게 하여 주시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방인 나아만과 같은 자가 자신의 문둥병을 알고 엘리사에게 오는 것은 포로로 잡혀간 어린 소녀의 말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포로로 잡혀와 종으로 집안일을 돌보는 어린 아이를 통하여 엘리사에게 나아오는 것은 그가 존귀하고 큰 용사이지만 문둥병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믿게 되는 것은 우리가 나아만처럼 문둥병자임을 아는 자만이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의 힘과 능력이 아님을 나아만을 통하여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나 오늘날 우리나 간에 자신이 문둥병자와 같은 자임을 나아만을 통하여 봐야 합니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그 피 뿌림 속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가 온전한 정결함을 입게 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죄를 고발하고 책망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떠난 우리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주님 앞에 나아와 그 보혈의 피로 씻음을 받게 하시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온전한 삶을 살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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