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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왕하 6:1-7
강설날짜 2017-10-11

2017년 열왕기하 공부

물에 빠진 쇠도끼를 떠오르게 한 엘리사

말씀:열왕기하 6:1-7

 

오늘 말씀은 엘리사가 물에 빠진 쇠도끼를 나뭇가지를 베어 물에 던져서 떠오르게 한 사건입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살펴보는 가운데 이 사건을 통해서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계시가 무엇인지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1-7절을 보면 선지자의 생도 중에 한 사람이 엘리사에게 말하기를 “보소서. 우리가 당신과 함께 거한 곳이 우리에게는 좁으니 우리가 요단으로 가서 거기서 각각 한 재목을 취하여 그곳에 우리의 거할 처소를 세웁시다”고 하였습니다. 이에 엘리사가 허락하며 말하기를 “가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선지자의 생도 중에 한 사람이 엘리사에게 말하기를 “청컨대 당신도 종들과 함께 갑시다”고 하였니다. 이에 엘리사는 저희와 함께 갔습니다. 이에 선지자의 생도의 무리가 요단에 이르러 처소를 짓기 위해 나무를 베었는데 한 사람이 나무를 벨 때에 도끼가 자루에서 빠져 그만 물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이에 그 선지자 생도가 엘리사에게 외쳐 말하기를 “내 주여! 이는 빌어온 것입니다”고 하였습니다. 이에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말하기를 “어디 빠졌느냐”고 묻고 그 빠진 곳을 가리키자 나뭇가지를 베어 물에 던졌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물에 빠진 도끼로 떠오르는 것입니다. 이에 엘리사는 생도에게 “너는 취하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생도는 손을 내밀어 취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런 성경 말씀을 보면 어떻게 생각하고 적용을 하게 됩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주신다고 합니다. 특히 하나님의 선지자 학교를 짓는데 빌려온 쇠도끼를 잃어버렸으니 하나님께서 엘리사 선지자를 통하여 기적을 베풀어 쇠도끼가 물에서 떠올랐다고 보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이렇게 본다면 하나님의 선지자 학교를 짓는데 재정의 축복을 주셔서 쇠도끼 정도는 빌려오지도 않고도 얼마든지 잘 지을 수 있게 하실 수 있는 것이 아닙니까? 병원이나 학교나 어떤 기념관을 가보면 지을 때 기부한 사람들의 이름을 적어놓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기부하게 해서 선지자 학교를 짓게 하실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나아만 장군이 드리려고 한 예물만 받아도 얼마든지 학교를 짓고 남았을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전래동화인「금도끼 은도끼」이야기가 있습니다. 가난한 나무꾼이 늙은 어머니를 봉양하려고 나무하러 가서 나무를 찍다가 그만 도끼를 연못에 빠뜨린 것입니다. 그래서 울고 있는데 산신령이 나타나서 왜 우느냐고 하자 도끼를 빠뜨려서 울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자 산신령이 금도끼를 들고 와서 이것이 네 것이냐고 하자 아니라고 합니다. 그 다음에는 은도끼를 들고 나와서 이것이 네 것이냐고 하자 역시 아니라고 합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쇠도끼를 들고 와서 이것이 네 것이냐고 하자 예 그것이 제 것입니다고 하였습니다. 이에 산신령이 금도끼와 은도끼까지 다 주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가난한 나무꾼은 그것으로 자기 어머니를 잘 봉양하였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본 놀부 같은 사람이 일부러 쇠도끼를 빠뜨려놓고 울고 있다가 쇠도끼마저 잃어버렸다는 이야기를 통하여 사람이 착하고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는 교훈을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런 교훈을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그 계시의 궁극적인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면 이런 성경의 본문으로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것입니까? 나뭇가지를 베어 물에 던지니 쇠도끼가 떠올랐다고 하는 이것을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나뭇가지를 길게 잘라서 쇠도끼를 걸어서 끌어 올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분명히 나뭇가지를 베어서 던져 넣자 쇠도끼가 물에서 떠올랐다고 합니다. 그러면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그런 것은 신화의 세계에서 말하는 것이며, 이성의 시대에는 통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신화적인 표현을 비신화하 하여서 이성으로 수납하여야 한다는 불트만과 같은 신학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런 본문의 말씀을 어떻게 봐야 합니까? 지금까지 우리는 엘리사의 기적들을 몇 가지 보았습니다. 열왕기하 2장에서는 여리고의 물이 좋지 않아서 열매를 맺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엘리사가 소금을 던져 넣어서 물을 고쳤습니다. 일반적으로 물에다 소금을 던져 넣으면 소금은 물에 녹아서 그냥 흘러갈 뿐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소금을 던져 넣었는데 물의 근원이 고쳐진 것입니까? 우리는 이 사건을 소금언약과 연결하여서 보았습니다. 소금은 심판과 저주를 말하기도 하지만 소금언약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선지자의 두 기능이란 선지자의 말을 들으면 구원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심판임을 보여준 것입니다. 똑같은 소금이 심판의 의미로도, 불변하는 언약으로도 설명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줍니다. 동일한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자들에게는 심판의 소식이 되고, 어떤 자들에게는 구원의 소식이 되는 것입니다.

 

열왕기하 4장에서는 야생 들 외를 국으로 끓였는데 독이 가득하여 먹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엘리사는 곡식가루를 넣음으로 독이 제거된 것입니다. 이 곡식가루를 처음 익은 곡식가루로 보았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이 처음 익은 곡식으로 보리떡 20개와 채소 한 부대를 들고 온 것과 연결하여 그렇게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이 땅의 음식이라는 것은 결국 영원한 생명을 주지 못하는 썩는 양식입니다. 그러므로 처음 익은 곡식이 구별되어 하나님께 드려짐으로 나머지가 거룩하게 되는 희생의 의미로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소금이나 곡식가루가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이 됩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의 엘리사가 나뭇가지를 던지니 쇠도끼가 떠 오른 것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연결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너무 알레고리 한 것입니까? 모세가 광야에서 마라의 쓴 물에 나뭇가지를 던지니 그 물이 마실 물이 되었습니다(출 15:25). 그러므로 나뭇가지를 던져 넣었는데 쇠도끼가 떠올랐다는 것보다 더한 기적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저주 받아 죽은 그 죽음이 죄인을 의롭게 하는 죽음이라는 것이 쇠도끼가 떠오르는 것보다 더한 기적이라는 말씀입니다. 물론 이 나뭇가지를 직접 십자가와 대비할 수 있느냐는 여러 가지 반대설이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였겠습니까? 이런 기적 사건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보지 않으면 오늘날도 이상한 기적을 요구할 것입니다. 이것이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2:32-36절을 보면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 이렇게 말씀하심은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보이심이러라. 이에 무리가 대답하되 우리는 율법에서 그리스도가 영원히 계신다 함을 들었거늘 너는 어찌하여 인자가 들려야 하리라 하느냐. 이 인자는 누구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직 잠시 동안 빛이 너희 중에 있으니 빛이 있을 동안에 다녀 어두움에 붙잡히지 않게 하라. 어두움에 다니는 자는 그 가는 바를 알지 못하느니라. 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떠나가서 숨으시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땅에서 들려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땅에서 들린다’는 것은 그의 죽음 곧 예수님께서 나무에 달려 죽으시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말을 유대인들은 이해를 하지 못합니다. 그리스도가 오시면 영원히 계신다고 율법에 있는데(사 9:5-6, 겔 37:25, 시 89:36) 어떻게 인자가 들려야 한다고 말하느냐고 합니다. 그러면서 인자가 누구냐고 묻습니다. 바로 그들의 눈앞에 인자가 있지만 보지 못합니다. 이렇게 되는 것도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대로 되는 것입니다. 이사야 6:10절을 보면 “이 백성의 마음으로 둔하게 하며 그 귀가 막히고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컨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서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들리시는 것이 하늘에 오르시는 자리입니다. 이로 인하여 자기 백성들도 자신에게로 이끌겠다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자기 백성을 자신에게로 이끈다고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디로 이끄시는 것입니까? 십자가로 이끄십니다. 그런데 십자가의 길은 세상이 볼 때는 죽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이 길만이 영원한 생명의 나라로 이끌려 들어가는 길입니다. 세상이 도무지 알 수가 없는 새롭고 산 길이 십자가로 열린 것입니다.

 

에베소서 4:7-10절을 보면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힌 자를 사로 잡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 올라가셨다 하였은즉 땅 아랫 곳으로 내리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내리셨던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 이는 만물을 충만케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십자가에 들리신 분이 만물 위에 오르신 분이십니다. 오르신 분이라는 말씀은 땅 아래 낮은 곳으로 내리신 것입니다. 내리셨던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진 자니 이는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들리심으로 자기 백성을 십자가로 이끌어 올리십니다. 이들은 만물 위에 오르신 그 분의 충만함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 분이 우리의 충만함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안에 계시면 우리는 충만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안에 계시지 않으면 우리는 멸망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예수님의 십자가의 들리심과 부활과 승천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자기 백성들이 예수님의 거처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이 쇠도끼가 물에서 떠오른 것보다 더 놀라운 기적이며, 하나님의 강력한 능력으로 일하신 내용입니다.

 

에베소서 1:17-23절을 보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 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하나님의 강력한 능력으로 일하시는 내용이 무엇인지 너무나 분명합니다.

 

에베소서 2:1-10절을 보면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물에 빠진 쇠도끼가 나뭇가지를 던져 넣으니 쇠도끼가 수영하듯이 물에서 떠올랐습니다. 이것이 표적입니다. 그런데 이 표적보다 더 놀라운 표적이 무엇입니까? 요나의 표적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소망이며, 이것이 우리의 기업이며, 이것이 하나님의 강력한 능력으로 일하신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 강력한 하나님의 일하심인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과 승천 안에 허물과 죄로 죽은 죄인을 함께 참여시킨 것입니다. 이보다 더 놀라운 일이 세상에 어디에 있습니까? 이보다 더 놀라운 기적이 어디에 있습니까? 이러한 하나님의 큰 능력으로 일하신 것을 제쳐두고 무엇에 마음이 빼앗기고 있습니까?

 

골로새서 3:1-11절을 보면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이것들을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너희도 전에 그 가운데 살 때에는 그 가운데서 행하였으나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 곧 분과 악의와 훼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말라 옛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 거기는 헬라인과 유대인이나 할례당과 무할례당이나 야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분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큰 일로 인하여 예수님과 함께 죽고 함께 살아나고 하늘에 앉혀진 자가 되었다면 이 역사 속에서 반드시 위엣 것을 찾게 됩니다. 여기서 ‘위에 것을 찾는다’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우리의 생명이 있다는 말입니다. 이런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사모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사모한다는 것은 말씀을 통해 예수님 알기를 기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들은 땅에 속한 것들을 추구하는 것이 탐심임을 압니다. 그러나 성도는 이러한 탐심이라는 우상숭배에서 십자가로 끌려갑니다. 이런 자들은 그리스도에게 잡히기 전에 행하던 것들이 벗겨지면서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게 됩니다. 우리의 지식이라는 것이 세상을 사는 지식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 백성의 지식으로 새롭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끌려가는 자들은 어떤 차별이 없습니다. 그 이유는 오직 그리스도가 만유, 곧 전부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보다 더 놀라운 기적은 없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성경 말씀이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계시를 밝히 깨달아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특히 성경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를 계시하고 있음을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성경 말씀을 공부해 가는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알게 하시고, 그를 믿으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좇아 살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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