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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최상범
성경본문 레 25:8-55
성경본문내용 (8)너는 일곱 안식년을 계수할지니 이는 칠년이 일곱번인즉 안식년 일곱번 동안 곧 사십 구년이라(9)칠월 십일은 속죄일이니 너는 나팔 소리를 내되 전국에서 나팔을 크게 불지며(10)제 오십년을 거룩하게 하여 전국 거민에게 자유를 공포하라 이해는 너희에게 희년이니 너희는 각각 그 기업으로 돌아가며 각각 그 가족에게로 돌아갈지며(11)그 오십년은 너희의 희년이니 너희는 파종하지 말며 스스로 난 것을 거두지 말며 다스리지 아니한 포도를 거두지 말라(12)이는 희년이니 너희에게 거룩함이니라 너희가 밭의 소산을 먹으리라(13)이 희년에는 너희가 각기 기업으로 돌아갈지라(14)네 이웃에게 팔든지 네 이웃의 손에서 사거든 너희는 서로 속이지 말라(15)희년 후의 연수를 따라서 너는 이웃에게 살 것이요 그도 그 열매를 얻을 연수를 따라서 네게 팔 것인즉(16)연수가 많으면 너는 그 값을 많게 하고 연수가 적으면 너는 그 값을 적게 할지니 곧 그가 그 열매의 다소를 따라서 네게 팔 것이라(17)너희는 서로 속이지 말고 너희의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18)너희는 내 법도를 행하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그 땅에 안전히 거할 것이라(19)땅은 그 산물을 내리니 너희가 배불리 먹고 거기 안전히 거하리라(20)혹 너희 말이 우리가 만일 제 칠년에 심지도 못하고 그 산물을 거두지도 못하면 무엇을 먹으리요 하겠으나(21)내가 명하여 제 육년에 내 복을 너희에게 내려 그 소출이 삼년 쓰기에 족하게 할지라(22)너희가 제 팔년에는 파종하려니와 묵은 곡식을 먹을 것이며 제 구년 곧 추수하기까지 묵은 곡식을 먹으리라(23)토지를 영영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라 너희는 나그네요 우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24)너희 기업의 온 땅에서 그 토지 무르기를 허락할지니(25)만일 너희 형제가 가난하여 그 기업 얼마를 팔았으면 그 근족이 와서 동족의 판 것을 무를 것이요(26)만일 그것을 무를 사람이 없고 자기가 부요하게 되어 무를 힘이 있거든(27)그 판 해를 계수하여 그 남은 값을 산 자에게 주고 그 기업으로 돌아갈 것이니라(28)그러나 자기가 무를 힘이 없으면 그 판 것이 희년이 이르기까지 산 자의 손에 있다가 희년에 미쳐 돌아올지니 그가 곧 그 기업으로 돌아갈 것이니라(29)성벽 있는 성내의 가옥을 팔았으면 판지 만 일년 안에는 무를 수 있나니 곧 그 기한 안에 무르려니와(30)주년 내에 무르지 못하면 그 성내 가옥은 산 자의 소유로 확정되어 대대로 영영히 그에게 속하고 희년에라도 돌려 보내지 아니할 것이니라(31)그러나 성벽이 둘리지 아니한 촌락의 가옥은 나라의 전토 일례로 물러주기도 할 것이요 희년에 돌려 보내기도 할 것이니라(32)레위 족속의 성읍 곧 그 기업의 성읍의 가옥은 레위 사람이 언제든지 무를 수 있으나(33)레위 사람이 만일 무르지 아니하면 그 기업된 성읍의 판 가옥은 희년에 돌려 보낼지니 대저 레위 사람의 성읍의 가옥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얻은 기업이 됨이니라(34)그러나 그 성읍의 들의 사면 밭은 그의 영원한 기업이니 팔지 못 할지니라(35)네 동족이 빈한하게 되어 빈손으로 네 곁에 있거든 너는 그를 도와 객이나 우거하는 자처럼 너와 함께 생활하게 하되(36)너는 그에게 이식을 취하지 말고 네 하나님을 경외하여 네 형제로 너와 함께 생활하게 할 것인즉(37)너는 그에게 이식을 위하여 돈을 꾸이지 말고 이익을 위하여 식물을 꾸이지 말라(38)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려고 또는 가나안 땅으로 너희에게 주려고 애굽 땅에서 너희를 인도하여 낸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39)네 동족이 빈한하게 되어 네게 몸이 팔리거든 너는 그를 종으로 부리지 말고(40)품군이나 우거하는 자 같이 너와 함께 있게 하여 희년까지 너를 섬기게 하라(41)그 때에는 그와 그 자녀가 함께 네게서 떠나 그 본족에게로 돌아가서 조상의 기업을 회복하리라(42)그들은 내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바 나의 품군인즉 종으로 팔리지 말 것이라(43)너는 그를 엄하게 부리지 말고 너의 하나님을 경외하라(44)너의 종은 남녀를 무론하고 너의 사면 이방인 중에서 취할지니 남녀 종은 이런 자 중에서 살 것이며(45)또 너희 중에 우거한 이방인의 자녀 중에서도 너희가 살 수 있고 또 그들이 너희 중에서 살아서 너희 땅에서 가정을 이룬 그 중에서도 그리 할 수 있은즉 그들이 너희 소유가 될지니(46)너희는 그들을 너희 후손에게 기업으로 주어 소유가 되게 할 것이라 이방인 중에서는 너희가 영원한 종을 삼으려니와 너희 동족 이스라엘 자손은 너희 피차 엄하게 부리지 말지니라(47)너희 중에 우거하는 이방인은 부요하게 되고 그 곁에 사는 너희 동족은 빈한하게 됨으로 너희 중에 우거하는 그 이방인에게나 그 족속에게 몸이 팔렸으면(48)팔린 후에 그를 속량할 수 있나니 그 형제 중 하나가 속하거나(49)삼촌이나 사촌이 속하거나 그 근족 중 누구든지 속할 것이요 그가 부요하게 되면 스스로 속하되(50)자기 몸이 팔린 해로부터 희년까지를 그 산 자와 계산하여 그 연수를 따라서 그 몸의 값을 정할 때에 그 사람을 섬긴 날을 그 사람에게 고용된 날로 여길 것이라(51)만일 남은 해가 많으면 그 연수대로 팔린 값에서 속하는 값을 그 사람에게 도로 주고(52)만일 희년까지 남은 해가 적으면 그 사람과 계산하여 그 연수대로 속하는 그 값을 그에게 도로 줄지며(53)주인은 그를 매년의 삯군과 같이 여기고 너의 목전에서 엄하게 부리지 못하리라(54)그가 이같이 속하지 못하면 희년에 이르러 그와 그 자녀가 자유 하리니(55)이스라엘 자손은 나의 품군이 됨이라 그들은 내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나의 품군이요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강설날짜 2016-01-13

레위기 28강


희년 규례


말씀 : 레위기 25:8-55


희년은 어떤 규례입니까? 7년마다 있는 안식년이 7번째 되었을 때, 곧 7*7=49년이 된 후, 그 다음해인 50년이 희년입니다. 숫자를 제곱하는 것은 강조의 의미가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1장에서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 성의 한 면의 길이가 144규빗인데, 이것은 12*12입니다. 12는 교회를 상징하는데, 특별히 구약의 12지파와 신약의 12사도를 의미합니다. 이렇게 제곱은 강조의 의미가 있는데, 마찬가지로 7년을 7번 반복한 희년 역시 결국 안식년이 의미하는 안식과 자비의 정신을 절정으로 강조하는 해인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7년이 7번째가 되는 해인 49년이 희년이 아니라 그 다음해인 50년이 희년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해석을 매우 어렵게 합니다. 왜냐하면 49년 안식년에 빚을 다 탕감해주고, 종을 다 해방시켰는데, 그 다음해인 희년에 다시금 빚을 탕감해주고(구체적 명시는 없지만, 종의 해방에 포함됨) 종들을 해방시켜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49년에도 땅을 묵힐 뿐만 아니라 50년 희년에도 땅을 묵혀야 하기 때문에 사실상 48년째 추수한 것을 가지고서 48,49,50년 먹고 51년 추수 때까지 먹어야하는데, 이것이 과연 가능한가에 대해 학자들이 의문을 제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학자들은 “49년째 안식년이 희년일 것이다”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오순절이라는 절기를 생각하고, 또 본문에 충실해서 읽는다면, 49년이 아니라 50년을 희년으로 보는 것이 가장 타당한 해석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면 안식년에 모든 빚을 탕감하고 모든 종을 해방시켜주었는데, 왜 희년에도 빚을 탕감하고 종을 해방시켜주라고 명하시는 것일까요? 그것은 아마도 두 가지 때문일 것으로 추측됩니다. 첫 번째는 안식년에 종이 해방될 때 처자식은 놔두고 혼자 나와야 하기 때문입니다(출 21:1-5). 그래서 대부분의 종들이 안식년이 되어도 나가지 못하고 희년까지 주인을 섬겼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둘째로 안식년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을 가능성 때문에 그러신 것 같습니다. 즉 7번의 안식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빚에 시달리는 사람들, 노예로 안식이 없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최후의 보루로서 희년을 선포하도록 하신 것이죠.


그리고 안식년과 희년이 중복되는 것 같아도 분명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안식년은 자신들이 과거에 애굽의 종이었는데, 하나님의 자비로 종에서 해방되어 안식을 누리게 되었기 때문에 그 자비의 정신을 본받아서 사회적 약자들에게 자비를 베푸는데 포인트가 있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는 정신으로 베풀어야 하는 것입니다. 반면 희년은 무르기 규례에 의해서 자비를 베풉니다. 곧 모든 땅이 하나님의 것이며, 이스라엘 백성들도 하나님의 종이요 품꾼이기 때문에, 바로 이러한 사실에 의거하여... 하나님께서 모든 사회적 약자들의 고엘(기업무를자)이 되셔서 무르시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거기에 마땅함으로 순종해서 모든 사회적 약자들에게 자비를 베풀어야 하는 것입니다. 똑같이 자비를 베풀지만, 그 자비 베풂의 동기가 조금 다른 것입니다(물론 궁극적으로는 동일합니다).


뿐만 아니라 안식년 바로 다음 해에 희년규례를 명하셔도 이상하지 않은 이유는 이 희년의 핵심이 기업을 돌려주는데 있기 때문입니다. 안식년은 빚을 탕감하고, 노예 됨에서 해방시켜주어 자유함을 주는 것이지만, 그러나 그 해방된 사람은 여전히 자신의 기업이 없기 때문에 생계를 유지해가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안식년은 고통가운데 있는 가난한 자들에게 고통을 경감해주는 차원의 도움은 되지만 근원적인 해결은 안 됩니다. 그러나 희년은 자기 기업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가난에 대한 근원적인 해결책이 됩니다.


희년이 매 50년마다 돌아오는데, 어떤 사람이 만일 희년 다음해에 종으로 팔리면 최대 49년 동안 종살이를 해야 하고, 어떤 사람이 희년 바로 전해에 종으로 팔리면 1년 만에 해방됩니다. 그러나 어찌되었든 노예로 팔린 사람들은 그의 생애 동안 대체로 한 번은 모든 전과가 말소되며 해방될 기회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50년마다 이스라엘 가운데서 재현되는 출애굽입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왔지만, 그러나 서로가 서로에게 종이 되고 빈익빈 부익부 현상으로 안식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 있게 되면 몸은 가나안 땅에 있으나 사실상 여전히 애굽 땅에 있는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희년을 통해서 이스라엘 가운데 내부적인 출애굽이 재현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희년이 되어 모든 것이 원위치가 되면 그때의 상황은 마치 이제 막 출애굽하여 처음으로 가나안 땅에 들어와 땅을 분배받게 될 때와 같이 되어서 온 백성이 안식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론적으로 희년은 안식일, 안식년이 목표로 하는 자비와 안식을 절정으로 성취하는 규례입니다.


그러면 본격적으로 이 희년 규례가 어떠한지 본문을 통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8)너는 일곱 안식년을 계수할지니 이는 칠년이 일곱번인즉 안식년 일곱번 동안 곧 사십 구년이라(9)칠월 십일은 속죄일이니 너는 나팔 소리를 내되 전국에서 나팔을 크게 불지며(10)제 오십년을 거룩하게 하여 전국 거민에게 자유를 공포하라 이해는 너희에게 희년이니 너희는 각각 그 기업으로 돌아가며 각각 그 가족에게로 돌아갈지며(11)그 오십년은 너희의 희년이니 너희는 파종하지 말며 스스로 난 것을 거두지 말며 다스리지 아니한 포도를 거두지 말라(12)이는 희년이니 너희에게 거룩함이니라 너희가 밭의 소산을 먹으리라(13)이 희년에는 너희가 각기 기업으로 돌아갈지라


먼저 희년은 9절에 보는 것처럼 50년째 되는 해에 대속죄일날 나팔을 불면서 시작됩니다. 희년이라는 단어가 ‘요벨’이라는 단어인데, ‘양각나팔’이라는 뜻입니다. 희년이 대속죄일날 시작되는 것은 아주 의미심장한 것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구속의 결과로 죄에 종노릇하던 데서 해방되어 자유와 안식을 얻게 될 것을 예표하는 것입니다.


희년이 되면 두 가지 명령을 지켜야 하는데, 첫 번째는 안식년 때와 마찬가지로 땅을 쉬게 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모든 빚을 탕감해주고, 모든 종을 해방시켜주며, 모든 땅을 원주인에게 돌려주어야 합니다. 세상에 이런 나라가 없습니다. 세상 나라는 돈과 힘의 논리를 따라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고 억압하며 착취하는 구조로 고착화되어 있습니다. 약육강식의 동물의 세계와 동일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나라는 다른 것입니다. 아니 달라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의 모형으로서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 하나님의 공평과 정의가 균형있게 다스리는 나라가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공평과 공의와 경제적 정의를 무시하시고 일향 자비와 긍휼로 다스리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히려 49년 동안 철저하게 공평과 공의와 경제적 정의가 실현되게끔 하셨습니다. 그래서 가난해져서 빚을 지게 되면 무조건 탕감해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 몸을 팔아서라도 빚을 갚도록 하신 것입니다(39절).


사람이 가난해지게 되는 것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습니다. 본인이 악하고 게을러서 가난하게 될 수도 있고, 또는 사업을 하다 망해서 그럴 수도 있고, 자연재해나 질병이나 여러 가지 사건들로 인해서 가난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떤 연유든지 간에 가난해지면, 그 가난하게 된 것이 하나님의 섭리임을 인정하고, 그 가난으로 인한 고통들을 스스로 감내해야만 합니다. 빚더미에 앉았으면 자기 집과 기업을 다 팔아서라도 갚아야 하고, 그래도 안 되면 자기 몸을 팔아서라도 갚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가난하게 되었다고 해서 무조건 자비와 긍휼을 베풀어주어 빚을 탕감해주면, 그것은 오히려 돈을 빌려준 사람에게 큰 피해를 입히는 매우 불공평한 처사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일향 자비와 긍휼을 베풀게 되면, 영악한 인간은 그러한 자비를 악용하게 됩니다. 사람들이 빚을 무서워하지 않게 되어서 마음껏 빚져가며 더욱 방탕하고 게으르고 악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49년 동안은 공평과 공의와 경제적 정의의 원칙이 다스려지도록 하셔서 이러한 불공평한 일이 없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이 상태로 그대로 놔두게 되면, 인간의 죄악된 본성이 역으로 작용해서, 사람들이 욕심을 부리며 계속적으로 약자들을 압제하고 착취하여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각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따로 제재를 가하지 않으면 결국 이스라엘 나라 역시 세상나라와 다를 바 없이 되어버리는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매50년마다 “자... 그만! 거기까지... 리셋!”이라고 말씀하셔서 거기에 제동을 거시는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이스라엘 모든 민족이 일생에 한번은 리셋 되는 것을 경험할 텐데, (만일 이스라엘이 희년을 잘 지켰다면,) 이러한 경험이 악착같이 부를 늘리려고 하는 그들의 욕심에 찬물을 끼얹는 효과를 주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다” 하는 정신으로 살도록 하였을 것입니다. 물론 그들이 희년을 전혀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이러한 이야기들이 현실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지만 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이 희년을 명하시면서 그 근거로 무엇을 말씀하셨습니까? 두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23)토지를 영영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라 너희는 나그네요 우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


첫 번째는 모든 땅이 여호와의 것이고, 이스라엘은 그 여호와의 땅에 잠시 거하는 나그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나그네인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이 소유한 땅에 대해서, 그것이 마치 자기 것인 양 움켜쥐고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오히려 주인의 자비에 감사하면서 누리되, 주인이 언제든지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돌려주라고 명하시면 그대로 돌려주는 것이 마땅한 것입니다. 이것이 가난한 자들에게는 참으로 은혜인데, 문제는 사람이 영악해서 반드시 이런 희년을 이용하여 돈을 벌려는 사람들이 나오게 마련인 것입니다. 가난한 척 하면서 비싼 값에 땅을 팔고나서, 희년 때에 공짜로 돌려받으면 돈을 왕창 벌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사람들끼리 속이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땅 매매와 관련한 특별법을 적용하십니다. 14절부터 17절을 보시면...


(14)네 이웃에게 팔든지 네 이웃의 손에서 사거든 너희는 서로 속이지 말라(15)희년 후의 연수를 따라서 너는 이웃에게 살 것이요 그도 그 열매를 얻을 연수를 따라서 네게 팔 것인즉(16)연수가 많으면 너는 그 값을 많게 하고 연수가 적으면 너는 그 값을 적게 할지니 곧 그가 그 열매의 다소를 따라서 네게 팔 것이라(17)너희는 서로 속이지 말고 너희의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곧 땅을 절대로 매매할 수 없게 하시고, 다만 임대를 할 수 있도록 하셨는데, 임대료를 정할 때 항상 희년을 기준으로 정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즉 희년까지 기간이 많이 남았으면 임대료가 비싼 것이고, 희년까지 얼마 남지 않았으면 임대료가 싼 것입니다. 그래서 희년에 의한 기업 무르기를 통해서 그 누구도 이득 보는 사람이 없게 하시고 또 반대로 손해 보는 사람도 없게 하셨습니다. 땅을 산 주인도 원주인에게 돌려줄 때 안식년규례처럼 공짜로 자비를 베풀어서 돌려주는 것이 아니라, 워낙 희년까지 임대료를 다 받고 임대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돌려주어도 손해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실 기업 무르기 규례는 부담스러운 규례가 아닙니다.


둘째로 빚을 탕감해주고 종을 해방시켜주어야 하는 이유는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품꾼이기 때문입니다.


(42)그들은 내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바 나의 품군인즉 종으로 팔리지 말 것이라

(55)이스라엘 자손은 나의 품군이 됨이라 그들은 내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나의 품군이요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주인이 버젓이 있는데 종들끼리 서로가 서로를 노예 삼아서 주인행세하면 곤란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서로가 서로에게 무조건 종이 될 수 없게 하시느냐... 그것은 아닙니다. 49년 동안에는 누군가가 빚더미에 앉게 되면 종이 되어서라도 갚으라고 명하시는 것입니다. 다만 그 노예제도는 돈을 갚기 위한 근로제도가 되어야 하지, 애굽의 종노릇할 때처럼 엄하게 부려먹는 노예제도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종으로 삼아도 결코 엄하게 부리지 말라고 명하십니다.


(39)네 동족이 빈한하게 되어 네게 몸이 팔리거든 너는 그를 종으로 부리지 말고

(43)너는 그를 엄하게 부리지 말고 너의 하나님을 경외하라

(46)너희는 그들을 너희 후손에게 기업으로 주어 소유가 되게 할 것이라 이방인 중에서는 너희가 영원한 종을 삼으려니와 너희 동족 이스라엘 자손은 너희 피차 엄하게 부리지 말지니라

(53)주인은 그를 매년의 삯군과 같이 여기고 너의 목전에서 엄하게 부리지 못하리라


그래서 종이 된다는 것은 일종의 노동력 임대의 개념이 되는데, 언제까지 임대하느냐 하면 희년까지 임대하는 것입니다. 희년이 되면 자유롭게 해방시켜주어야 합니다. 이 경우는 땅하고는 달리 상당히 많은 양의 금전적인 자비를 베풀어야 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출애굽의 은혜를 모르면, 그리고 자신도 하나님의 품꾼이요, 자신에게 팔린 이 사람도 하나님의 품꾼이라는 것을 깊이 깨닫지 못하면 아까워서 순종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희년 규례에서 거듭거듭 강조되는 메시지가 출애굽의 은혜, 그리고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품꾼이라는 메시지입니다.


그러면 인생이 잘못되어서 가난하게 되고 빚더미에 눌러 앉아서 기업을 팔았거나 종이 되었을 때, 무조건 희년까지 기다려야 합니까? 그렇지 않고 그 전에 무르기가 가능합니다.


(24)너희 기업의 온 땅에서 그 토지 무르기를 허락할지니(25)만일 너희 형제가 가난하여 그 기업 얼마를 팔았으면 그 근족이 와서 동족의 판 것을 무를 것이요(26)만일 그것을 무를 사람이 없고 자기가 부요하게 되어 무를 힘이 있거든(27)그 판 해를 계수하여 그 남은 값을 산 자에게 주고 그 기업으로 돌아갈 것이니라(28)그러나 자기가 무를 힘이 없으면 그 판 것이 희년이 이르기까지 산 자의 손에 있다가 희년에 미쳐 돌아올지니 그가 곧 그 기업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47)너희 중에 우거하는 이방인은 부요하게 되고 그 곁에 사는 너희 동족은 빈한하게 됨으로 너희 중에 우거하는 그 이방인에게나 그 족속에게 몸이 팔렸으면(48)팔린 후에 그를 속량할 수 있나니 그 형제 중 하나가 속하거나(49)삼촌이나 사촌이 속하거나 그 근족 중 누구든지 속할 것이요 그가 부요하게 되면 스스로 속하되(50)자기 몸이 팔린 해로부터 희년까지를 그 산 자와 계산하여 그 연수를 따라서 그 몸의 값을 정할 때에 그 사람을 섬긴 날을 그 사람에게 고용된 날로 여길 것이라(51)만일 남은 해가 많으면 그 연수대로 팔린 값에서 속하는 값을 그 사람에게 도로 주고(52)만일 희년까지 남은 해가 적으면 그 사람과 계산하여 그 연수대로 속하는 그 값을 그에게 도로 줄지며(53)주인은 그를 매년의 삯군과 같이 여기고 너의 목전에서 엄하게 부리지 못하리라(54)그가 이같이 속하지 못하면 희년에 이르러 그와 그 자녀가 자유 하리니


바로 가족과 친척이 무르기 할 수 있습니다. 아니, 할 수 있다 라기보다는 가족과 친척이 능력이 된다면 의무적으로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그러나 가족이 그럴 힘이 없을 때, 그리고 본인이 나중에 돈을 많이 벌게 되면 스스로의 힘으로도 무르기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가족이나 또는 본인이 그렇게 값을 주고 무를 수 있는 것은 오직 희년의 은혜 때문입니다. 희년의 은혜 곧 하나님께서 모든 것의 주인이시며, 희년에 하나님이 친히 리셋하신다는 사실이 없으면 무르기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본인이나 가족이 무르기 할 때에는 그 값을 희년을 기준으로 해서 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즉 절대로 공짜로 무르기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자비와 긍휼의 정신 때문에 경제적 질서와 정의가 무너지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 값이라고 하는 것은 희년까지 남은 해를 계수하여 정해집니다. 예를 들어서 10억 빚을 졌습니다. 집도 기업도 다 팔았지만 도무지 갚을 수 없는 엄청난 빚이죠. 그래서 자기 몸을 팔아 그 사람의 종이 되었는데, 희년이 한 5년 정도 남았다고 칩시다. 그러면 친척이 와서 얼마를 주어서 무르기 할 수 있느냐 하면, “한해 연봉 × 희년까지 남은 해 = 무르기 값”이 됩니다. 그래서 만일 한해 연봉이 3000만원이면 1억 5천으로 무르기가 가능한 것입니다. 주인 입장에서는 8억 5천정도 손해를 보는 것이지만, 그러나 희년의 정신을 인정하고 실천하는 사람이라면, 그래서 희년이 되면 어차피 그냥 놓아주어야 할 것을 생각한다면 사실은 손해가 아닙니다. 정당한 값을 받고 돌려주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면 이쯤 되면 사람들이 영악해서 아예 돈을 빌려주지 않으려고 하겠죠. 왜냐하면 돈을 빌려주면 무조건 손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종 무르기 규례 앞서서 아래의 규례가 주어집니다.


(35)네 동족이 빈한하게 되어 빈손으로 네 곁에 있거든 너는 그를 도와 객이나 우거하는 자처럼 너와 함께 생활하게 하되(36)너는 그에게 이식을 취하지 말고 네 하나님을 경외하여 네 형제로 너와 함께 생활하게 할 것인즉(37)너는 그에게 이식을 위하여 돈을 꾸이지 말고 이익을 위하여 식물을 꾸이지 말라(38)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려고 또는 가나안 땅으로 너희에게 주려고 애굽 땅에서 너희를 인도하여 낸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가난한 형제가 있으면, 돈을 빌려주든지, 또는 자기 집에서 함께 생활할 수 있도록 해주어서 자립할 수 있게 도와주어야 합니다. 이때 이것을 순전히 구제의 의미로 해야지, 이익을 바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거나, 집과 음식을 제공해주는 것에 대해서 비싼 비용으로 청구하거나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권유가 아니라 명령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받은 은혜를 기억하면서 마땅함으로 가난한 자들에게 자비를 베풀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규례를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도 지키지 않았습니다. 안식년은 그래도 최소한 한번은 지켰는데, 희년은 단 한 번도 지키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오히려 백성들은 자신의 욕심을 좇아서 살았고, 그로 인하여 세상 나라와 다를 바 없는 약육강식의 나라가 되었습니다.


“(14)여호와께서 그 백성의 장로들과 방백들을 국문하시되 포도원을 삼킨 자는 너희며 가난한 자에게서 탈취한 물건은 너희 집에 있도다(15)어찌하여 너희가 내 백성을 짓밟으며 가난한 자의 얼굴에 맷돌질하느뇨 주 만군의 여호와 내가 말하였느니라 하시리로다”(사 3:14-15)

“(8)가옥에 가옥을 연하며 전토에 전토를 더하여 빈 틈이 없도록 하고 이 땅 가운데서 홀로 거하려 하는 그들은 화 있을진저”(사 5:8)


이스라엘 가운데 지속적으로 부를 축적한 사람들이 자신의 힘과 권력으로 고아와 과부, 나그네들, 사회적 약자들을 억압하고 압제하며 착취하는 짓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십니까? 바벨론을 통해서 그들이 한 만행을 그들도 똑같이 당하게끔 하셨습니다. 즉 바벨론에 의해서 기업을 빼앗기고 바벨론의 압제와 억압 아래 놓이게 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남에게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는 것이 율법이요 선지자이며, 하나님은 남에게 한 대로 그 사람에게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의 원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비참하게 되었을 때, 그들의 마음이 낮아져서 회개하게 되었고, 하나님은 다시 그들의 땅을 권고하사, 언약을 기억하시고 희년의 은혜를 베풀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것이 이사야 61장 말씀입니다.


“(1)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2)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3)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 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사 61:1-3)


이 말씀에 보면 메시아(기름부음 받은자)가 임하심으로 압제와 억압 가운데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해방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메시아는 일차적으로 고레스를 의미합니다(사 45:1).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질 희년의 해를 예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희년제도라고 하는 것,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국가적으로 경험한 두 번의 희년체험(출애굽, 출바벨론)이 결국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질 구속에 대한 예표요 그림자인 것입니다. 즉 희년제도는 단순히 가난한 자들에 대한 배려와 복지를 위한 규례가 아닙니다. 물론 그러한 측면에서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교훈하는 바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즉 무르기 원리는 여전히 우리에게 유효한 원리로서 오늘날 교회 형제자매들이 서로가 서로에게 무르는 자로서 자비와 긍휼을 베푸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희년규례를 단순히 그렇게만 적용하는 것은 바른 해석이 아닙니다. 오히려 희년제도는 어떤 영적인 진리를 상징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계시의 방편인 것입니다. 즉 사람들이 가난해져서 빚지는 것은 죄를 짓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고, “빚더미에 앉은 사람은 반드시 종이 되어 갚아야 한다”는 경제적 정의는 율법을 상징하는 것이고, 따라서 종이 되어 안식하지 못하는 것은 사람이 죄를 지어서 죄의 종, 사단마귀의 종, 사망의 종, 율법의 종이 되어 안식하지 못하고 비참한 삶을 살아가는 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일만달란트 빚진 자의 비유가 그것을 잘 보여주는 것입니다. 빚은 죄를 상징합니다. 임금은 그 사람에게 기업을 팔고 처자식 팔고 자신의 몸을 팔아서라도 갚아라고 명하시는데, 그것은 바로 율법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도무지 갚을 수 없자, 임금이 불쌍히 여겨주셔서 값없이 은혜로 그 빚을 탕감해주시니, 그것이 바로 은혜의 복음으로서 값없이 무르기 해주시는 하나님의 희년의 은혜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우리가 다 하나님 앞에 죽을죄를 지었고, 그 죄의 빚은 우리 힘으로는 도무지 갚을 수 없는 액수이며, 따라서 아무런 희망도 없이 형벌 받아야 하는 비참한 운명에 있는 것인데 문제는 사람들이 이러한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죄 짓고 사는 것이 비참한 것임을 모릅니다. 바리새인들이 그랬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너희가 내 말에 거하고 참 내 제자가 되면,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라고 말씀하시니깐, 바리새인들은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서 종이 된 일이 없거늘 어찌하여 자유케 되리라고 말하느냐”고 따졌던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죄를 짓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고 말씀하셔서, 그들의 실상을 일러주셨던 것이죠.


그렇습니다. 정말 사람이 죄 가운데 살고 있다면 그 사람은 죄의 종이며, 그 죄가 모든 불행의 근원이 되어 그 인생을 불행하게 하고, 결국 죽어서 영원한 지옥 형벌에 떨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깨달아야 복음이 우리에게 감격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희년은 종이나 사회적 약자들에게나 희소식이지, 부유한 자들에게는 별 감흥이 없는 소식입니다. 우리가 죄의 종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면, 희년되시는 예수님의 은혜도 알 수 없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은 죄의 종으로 신음하는 우리를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예수님을 보내주셔서 무르기 해주셨습니다. 즉 예수님은 희년의 성취가 되십니다.


“(18)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19)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20)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21)이에 예수께서 저희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눅 4:18-21)


예수님은 우리를 자유하게 하시기 위해서 자기 목숨을 대속물, 곧 무르기 값으로 지불하셨습니다. 그리하여 누구든지 이 예수님을 믿으면 죄에서 자유함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참으로 누구든지 예수님께 나아오는 자는 죄의 종에서 해방되어 안식을 누립니다.


우리가 이 은혜를 받았습니까? 지금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안식을 누리며 우리 마음에 죄에 대한 자유함이 있습니까? 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있었어도 여전히 종이 되어 안식을 누리지 못했던 것처럼, 우리도 몸은 교회 나와서 신앙생활하고 있는데, 여전히 죄의 종으로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몸은 교회에 붙어있는데, 우리 마음은 여전히 양심의 가책 속에서 죄 가운데서 안식이 없는 삶을 살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어떻게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희년이 50년마다 반복되어야 했던 것처럼, 우리 마음속에 십자가의 희년이 날마다 반복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신자라도 매일 마음과 말과 행동으로 죄를 짓기 때문입니다. 신자라도 죄를 지으면 자유함이 사라지고 죄책감으로 인해 그 마음에 안식이 없어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자기 죄를 십자가 앞에 회개하면서 주님의 십자가 은혜를 회복해야 하는 것입니다.


은혜로운 사실은 하나님의 자비는 한이 없어서 희년 되신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에 의거하여 일흔번씩 일곱 번이라도 무르기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러한 은혜를 악용하면 안 됩니다. 사도바울은 이렇게 로마서에서 이야기했습니다.


“(15)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16)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롬 6:15-16)


그렇습니다. 우리가 만일 “은혜 아래 있으니 죄지어도 천국 가는데 지장 없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죄를 짓는다면 그것은 스스로 속이는 것으로서 망하는 길로 들어서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경고합니다. 욕심에 이끌려서 죄에게 순종한다면 그 사람은 죄의 종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엄중히 경고합니다. 즉 우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경고의 말씀을 우리 마음에 새겨서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일향 지옥갈까봐 두려워서 순종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보다 우리가 의롭게 살아야 할 더 중요한 원동력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감격입니다. 사도바울이 다음 구절에서 이것을 언급합니다.


“(17)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18)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롬 6:17-18)


사도바울은 이 구절에서 로마교회 성도들이 이미 받은 희년의 은혜를 다시금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참으로 우리는 과거에 죄의 종으로 어떻게 살았는지, 어떻게 어떤 값없는 은혜로 의의 종이 되었는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다음 구절의 명령이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19)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드려 불법에 이른 것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드려 거룩함에 이르라”(롬 6:19)


사도바울은 이미 의의 종이기 때문에 죄의 종으로 살면 안 된다고 말합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의 희년으로 하나님의 품꾼이 되었기 때문에 사람의 종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시는 것과 같은 이치인 것입니다. 값없는 은혜로 우리가 의의 종이 되었으니, 우리는 이 은혜에 기초하여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헌신해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날마다의 삶속에서 지켜야 할 희년 규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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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루지 못한 본문들에 대한 해석


레위기 25장은 여러 가지 경우에서 무르기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명하고 있습니다. 먼저 땅은 무르기 하면 무조건 돌려주어야 하지만, 집은 어떨까요? 상황에 따라 다릅니다.


(29)성벽 있는 성내의 가옥을 팔았으면 판지 만 일년 안에는 무를 수 있나니 곧 그 기한 안에 무르려니와(30)주년 내에 무르지 못하면 그 성내 가옥은 산 자의 소유로 확정되어 대대로 영영히 그에게 속하고 희년에라도 돌려 보내지 아니할 것이니라(31)그러나 성벽이 둘리지 아니한 촌락의 가옥은 나라의 전토 일례로 물러주기도 할 것이요 희년에 돌려 보내기도 할 것이니라


성내 가옥은 무르기 기한이 1년밖에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도시 건물은 자주 바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벽 안에 있는 건물에 거주하는 자는 농사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행정/서비스/상업 쪽의 사람들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집이라는 것은 생존에 필수적인 것도 아니고, 가문 대대로 이어받을 기업으로 여겨지지도 않습니다. 한편 성벽 외곽에 있는 가옥들은 수십 수백 년 항상 그 자리에 있는 것이고, 땅에서 농사짓는 사람들에게 가문 대대로 이어받을 생존에 필수적인 기업입니다. 그러므로 땅과 똑같이 취급합니다.


한편 레위인들의 소유물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32)레위 족속의 성읍 곧 그 기업의 성읍의 가옥은 레위 사람이 언제든지 무를 수 있으나(33)레위 사람이 만일 무르지 아니하면 그 기업된 성읍의 판 가옥은 희년에 돌려 보낼지니 대저 레위 사람의 성읍의 가옥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얻은 기업이 됨이니라(34)그러나 그 성읍의 들의 사면 밭은 그의 영원한 기업이니 팔지 못 할지니라


레위인들은 땅을 분배받지 못했습니다. 다만 그들이 거할 수 있는 48개의 성읍과 성읍 바로 옆에 위치한 목양할 수 있는 들만을 분배받았습니다. 레위인들은 각처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치며 목회활동을 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주는 십일조를 받아서 생활했습니다. 그런데 가난하게 된 레위인이 자신의 가옥을 팔게 되면, 그래서 성내 가옥이라서 희년에도 돌려받지 못한다면... 대대로 거주할 집마저 잃어버리게 되는 딱한 처지에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레위인의 가옥은 예외로서 언제든지 무르기를 할 수 있고, 무르지 못해도 희년에는 돌려받을 수 있습니다.


한편 종 무르기 규례에서 중요한 점은 희년의 규례와 무르기 규례가 동족에게만 해당되고 이방인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44)너의 종은 남녀를 무론하고 너의 사면 이방인 중에서 취할지니 남녀 종은 이런 자 중에서 살 것이며(45)또 너희 중에 우거한 이방인의 자녀 중에서도 너희가 살 수 있고 또 그들이 너희 중에서 살아서 너희 땅에서 가정을 이룬 그 중에서도 그리 할 수 있은즉 그들이 너희 소유가 될지니(46)너희는 그들을 너희 후손에게 기업으로 주어 소유가 되게 할 것이라 이방인 중에서는 너희가 영원한 종을 삼으려니와 너희 동족 이스라엘 자손은 너희 피차 엄하게 부리지 말지니라


그것은 인종차별이 아니라, 두 가지 이유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첫째는 이방인들은 출애굽의 은혜를 받은 자들이 아닙니다. 곧 하나님의 품꾼이 아닌 것이죠. 그리고 둘째로 구속사적으로 이방인들은 이스라엘의 종에 위치해 있는 것입니다. 야곱은 이삭을 축복하면서 너의 형제들은 다 너의 종이 될 것이라고 축복했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의 성취로 모든 이방나라가 이스라엘에게 굴복하며 그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 때문에 이방인들을 무조건 불쌍하게만 볼 것이 아닙니다. 입장을 바꾸어서 생각해보면 이방인으로서는 차라리 이스라엘 백성들의 종이 되어 그들의 보호와 지도아래 거하는 것이 하나님의 언약의 축복에 참여하는 길입니다. 왜냐하면 구약에서는 하나님의 언약과 말씀은 이스라엘 나라에만 있고, 이방인은 언약 밖의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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