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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고전 1:1-9
성경본문내용 (1)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입은 바울과 및 형제 소스데네는(2)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저희와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3)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4)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인하여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5)이는 너희가 그의 안에서 모든 일 곧 모든 구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하므로(6)그리스도의 증거가 너희 중에 견고케 되어(7)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8)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케 하시리라(9)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더불어 교제케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강설날짜 2013-02-20

2013년 고린도전서 공부

 

문안과 인사!

 

말씀:고린도전서 1:1-9

 

오늘부터 고린도전서를 공부하고자 합니다. 고린도전서는 바울 사도가 고린도 교회에 보낸 서신입니다. 고린도는 오늘날 그리스지역입니다. 이 서신이 기술될 당시 그리스는 무역의 중심지로 부와 향락이 넘치던 곳입니다. 노예들도 있었지만 자유민들은 매일 하는 일이 먹고 마시고 즐기며 무언가 새로운 사상들을 말하고 듣기를 좋아하였습니다. 온갖 신전들이 즐비하였고, 수천 명의 신전창기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인 하면 음탕한 자들의 대명사로 불리웠습니다.

 

사도행전 18장에 보면 바울은 이런 곳에 일년 반 동안 복음을 전함으로써 고린도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떠난 뒤 고린도 교회에는 많은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교회 안에 어떤 문제들이 있었는가 하면 성도들끼리 파벌이 생긴 것입니다. 나는 바울 파다, 아볼로 파다, 베드로 파다, 심지어 그리스도 파까지 생긴 것입니다. 또한 친교를 할 때도 부자는 부자들끼리, 가난한 자는 가난한 자들끼리 하였습니다. 그래서 부자들은 배불리 먹고 취하고, 가난한 자들은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교회 내에 이방인들 가운데도 없던 음행이 있었습니다. 교인들 간의 문제를 세상의 법정에 소송하기도 하였습니다. 어떤 자들은 자유라고 하면서 쾌락을 추구하고, 어떤 자들은 금욕주의로 나갔습니다. 은사를 받은 자들은 자기들의 은사가 최고라고 교만하여졌습니다. 심지어 바울을 사도가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당시 고린도 교회의 모습이었습니다. 바울은 이런 고린도 교회의 문제를 에베소에 있을 때 보고를 받고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고린도 교회의 모습을 인해 바울은 안타까운 심정을 가지고 이 서신을 기술하였습니다.

 

우리는 이런 고린도 교회의 모습들을 보면서 아니 교회가 이럴 수가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의 모습이 바로 오늘날 우리 교회들의 모습입니다. 약 이천년 전의 고린도 교회 모습이나 오늘 우리들의 교회의 모습이나 별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런 엄청난 교회안의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하고자 하는 것입니까? 구체적인 법과 규칙을 세워서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고 명령했습니까? 아니면 서로 양보하고, 겸손하게 마음을 비우라고 했습니까? 바울 사도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여러 가지 구체적인 사례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증거 하고 있습니다. 물론 부분적으로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는 말씀도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증거 함으로써 고린도 교회 내에 산적해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교회 내의 모든 문제의 해결책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입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회를 향해 누가 십자가에 못 박혔는가를 증거 함으로써 그들의 모든 입을 닫게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파당을 만드는 자들에게나, 자기를 자랑하는 자들에게 씨 뿌리는 자나 물주는 자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뿐이심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고전 3:7).

 

우리가 고린도전서를 공부하는 가운데 우리들의 모습을 돌아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고린도 교회에 주시는 말씀을 오늘날 우리 교회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받아 회개하며, 우리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 위에 굳게 세워져 갈 수 있기를 원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 교회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참된 교회로, 온전한 교회로 세워져 갈 수 있기를 원합니다.

 

1-3절을 보면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입은 바울과 및 형제 소스데네는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저희와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소스데네와 함께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문안 인사를 합니다. 소스데네는 사도행전 18장에 보면 그리스보의 후임으로 회당장이 된 사람입니다. 그리스보가 온 가족으로 더불어 예수님을 믿고 개종을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그가 사임을 하고 그 후임으로 소스데네가 회당장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바울은 형제 소스데네라고 하며 그와 함께 문안 인사를 하는 것을 볼 때 그도 예수님을 믿고 바울의 동역자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문안 인사를 하기 전에 먼저 자신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입은 자라고 합니다. 바울이 왜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까? 고린도 교회 가운데서 바울의 사도권을 부정하는 자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에 복음을 전하여 고린도 교회를 세우는데 산파 역할을 한 자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떠난 후 교만해진 고린도 교회 성도들 가운데는 바울의 사도권을 부정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인간적으로 보면 말이 어눌하고 외모도 볼품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외모를 보고 그의 사도권을 부정한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바울의 권면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그들에게 바울은 먼저 자신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자신의 이 권면의 말씀을 하나님 앞에서 받아들이기를 바랬던 것입니다.

 

바울은 먼저 자신이 사도가 된 것은 자기가 되고 싶어서 된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입은 바울”이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1). 바울은 과거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그의 본명은 사울로 난지 팔일 만에 할례를 받은 유대인 중의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는 베냐민 지파 사람이었습니다(빌 3:5). 또한 그는 당시 교법사로 모든 백성에게 존경을 받던 가말리엘(행 5:34)의 문하생이었습니다(행 22:3). 뿐만 아니라 그는 예수는 여호와를 거역하는 이단의 괴수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자들을 다 잡아 죽이고 잔멸하는 것이 하나님을 위한 충성인줄 알았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런 그가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가 된 것입니까? 사도행전 9장에 보면 그는 다메섹에 있는 예수 믿는 자들을 잡아 오기 위해서 대제사장에게 공문을 받아들고 가던 중이었습니다.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홀연히 빛이 하늘로서 바울을 둘러 비추었습니다. 바울이 놀라 땅에 엎드렸습니다. 그때 하늘로부터 소리가 들렸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행 9:4). 바울이 “주여 뉘시오니이까?”하고 물었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네가 일어나 성으로 들어가라.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행 9:5-6). 이처럼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핍박하던 바울에게 빛으로 나타나셔서 그를 자신의 종으로 사로잡으셨습니다. 그로인하여 핍박자 바울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심을 믿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그를 이방인의 사도로 세우신 것입니다.

 

사도행전 9:15-16절에 보면 “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해를 얼마나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기초해서 보면 바울은 자신이 주님을 붙든 것이 아님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바울을 붙드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바울을 이방인들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당신의 이름을 전하는 그릇으로 택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바울은 자신이 스스로 사도가 된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그를 사로잡아 자신의 사도로 삼으신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요, 복음입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인간적으로 더 멋진 사람을 사도로 부르셔서 쓰시면 되실 텐데 왜 말도 어눌하고 외모도 형편이 없는 사람을 사도로 쓰신 것입니까? 그것은 전도가 사람의 말과 지혜에 있지 아니함을 보이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나타난 어떤 인물도 그 개인의 자질이나 훌륭함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모르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교만하여 기고만장한 것입니다. 이런 그들에게 바울 사도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무엇인지를 다시 증거 하고 있는 것입니다. 너희가 잘나서 은사를 받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란 어느 누구도 자기를 자랑할 수 없는 사람들의 모임인 것입니다. 얼마나 못난 사람들이면 스스로 예수님을 믿고 나올 수가 없어서 창세전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하시고 십자가의 공로로 불러 내셨겠습니까? 그러므로 교회란 어떤 인간의 솜씨로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친히 세워 가시는 것입니다.

 

2-3절을 다시 보면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문안 인사를 합니다.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저희와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그런데 바울 사도는 고린도에 있는 교회 성도들에게 문안을 하면서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라고 합니다. 교회는 사람의 교회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세울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교회란 어떤 것입니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입니다. 오직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부르심을 입어 거룩하여진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부르심을 입은 증거가 무엇입니까? 주 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로 부르십니까? 곧 예수님이 우리의 주와 그리스도가 되십니까? 베드로 사도는 마태복음 16:16절에 보면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 하였습니다. 주님께서는 그 고백 위에 당신의 교회를 세우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6:17-19절에 보면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이 고백은 혈통이나 육정이나 사람의 뜻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서 알려주셔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이며, 이런 교회를 하나님께서 자기 피로 값을 주고 사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결국 교회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의 모임이며, 이들은 오직 주님으로부터 부르심을 입어야 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바로 이런 교회들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한다”고 인사하는 것입니다(3). 우리는 고린도 교회 안에 온갖 문제가 있음을 앞에서 간략하게 살펴봤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교회를 교회라고 할 수가 있는 것입니까? 그리고 이러한 교회들을 향하여 어떻게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까? 책망을 해도 부족할 텐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 것입니까? 물론 바울이 나중에는 책망도 합니다만 지금은 무엇을 인하여 감사하는 것입니까? 이 시간에 우리가 이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러면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인해 하나님께 감사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4-7절을 보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인하여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이는 너희가 그의 안에서 모든 일 곧 모든 구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하므로 그리스도의 증거가 너희 중에 견고케 되어 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먼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인하여 감사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잘하고 못하고는 나중이고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였으니 감사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은혜를 따라 모든 구변과 모든 지식이 풍족하여 그리스도의 증거가 너희 중에 견고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에는 은사들이 풍성하였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모두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졌기에 감사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은사는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심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와 은사를 받았다’라는 것은 남에게 없는 은사들을 받은 것을 자랑하는 쪽으로 나가면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바른 은혜와 바른 은사의 결론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 즉 주님의 재림을 사모하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사람들이 말하는 어떤 은사가 없더라도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재림을 사모하는 사람이라면 가장 큰 은사를 받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는 은사를 많이 받았다고 하면서 온갖 자랑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왜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감사한다고 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주께로부터 부르심을 입었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부르심에는 후회함이 없으십니다. 비록 인간이 자기 자랑이 나오고 교만하고 온갖 더러운 모습이 나온다고 할지라도 우리 주님께서는 그 부르심을 입은 자들을 실패하게 하시고, 부수시고, 죽여서라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세우시고야 마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이 한편으로 무섭지만 한편으로 얼마나 위로가 되고 감사가 됩니까? 하나님께서는 그 부르신 자들에게서 쓸데없이 높아진 교만과 자존심과 죄악들을 부수어 내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와의 사귐만이 가장 좋은 것임을 알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전에는 세상의 즐거움이 좋았으나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나의 기쁨이요, 나의 즐거움이 되도록 만들고야 마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주님의 열심이 그 부르신 자들에게 빈틈없이 이루어질 것이기에 비록 지금은 형편이 없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8-9절을 보겠습니다.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케 하시리라.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더불어 교제케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고 했습니다. 주께서는 너희를 곧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케 하신다고 하십니다.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교제케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지금은 여러 가지로 부족하고 책망 받을 것이 많은 자들이지만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로 교제케 하실 것을 믿은 것입니다.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케 하시리라.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더불어 교제케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8-9). 이 약속의 말씀이 믿어지십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날마다 주님 앞에서 우리의 자랑거리들이 벗겨지는 것을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래야 우리 주님이 주시는 의의 옷을 덧입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부르심을 입은 자들의 복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런 복이 있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로 우리 주님으로 말미암는 은혜와 평강이 넘치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더 나아가 주님이 재림하여 하나님 나라가 극치에 이를 때에 곧 주의 날에 우리 주님 앞에 우리로 책망 할 것이 없는 자로 서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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