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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사무엘상 25장
강설날짜 2015-07-01

2015년 사무엘상 공부


다윗과 아비가일

말씀:사무엘상 25장

 

사무엘상 25-27장 말씀은 다윗이 현실정치가로서의 면모를 갖추어 가는 과정에서 겪는 굴욕과 성장 과정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사무엘상 24장 말씀을 통해서 심판은 주께 있다고 하면서 자신이 칼을 들지 않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긴 다윗의 모습을 살펴보았습니다. 이것은 다윗의 도량과 도덕성에 기인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25장의 말씀은 24장의 다윗의 모습과는 대조를 이루는 말씀으로 다윗과 나발의 대결 사건입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살펴보는 가운데 이 사건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1절을 보면 사사시대를 종식하고 왕정시대를 연 전환기의 지도자요, 다윗의 영적인 스승인 사무엘이 죽었습니다. 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여 그의 죽음을 슬퍼하며 그의 고향 라마에서 장사하였습니다. 사무엘의 죽음은 그의 역할이 끝났음을 보여줍니다. 사무엘은 사울과 다윗에게 기름을 부은 사람입니다. 24장에서 사울이 다윗을 향하여 “네가 반드시 이스라엘의 왕이 될 것을 안다”고 말하였습니다(삼상 24:20). 이로써 사무엘의 역할이 마무리가 된 것입니다. 이제 다윗은 홀로 서기를 해야 합니다. 다윗은 영적인 스승 사무엘이 죽었지만 그의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하고 바란 광야로 내려갔습니다. 이는 아직도 사울의 추격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바란은 유다의 남쪽 광야지역입니다.

 

2절 이하의 말씀은 다윗과 나발의 대결 사건을 기술 하고 있습니다. 2-3절을 보면 마온에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나발이었습니다. 그의 생업이 갈멜에 있었는데 그는 심히 부자였습니다. 갈멜과 마온은 헤브론 바로 밑에 있는 지역이며, 유대 광야와 접하고 있는 곳입니다. 나발이 얼마나 부자였느냐 하면 양이 삼천 마리나 되었으며, 염소는 일천 마리나 되었습니다. 그 아내의 이름은 아비가일이었는데 총명하고 용모가 아름다운 여인이었습니다. 그에 반해 나발은 완고하고 행실이 악하며 갈렙 족속의 사람이었습니다. 사무엘서 저자는 나발과 그의 아내 아비가일을 비교하여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나발이 갈렙 족속이라고 했는데 우리가 잘 알듯이 갈렙은 헤브론 산을 차지한 믿음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런 가문에 나발과 같은 자가 나왔습니다.

 

4-8절을 보면 나발이 양 털을 깎는다는 말을 다윗이 광야에서 듣고 소년 열 명을 나발에게 보냅니다. 그러면 다윗이 나발에게 소년 열 명을 보내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5-8절을 보면 “다윗이 이에 열 소년을 보내며 그 소년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갈멜로 올라가 나발에게 이르러 내 이름으로 그에게 문안하고 이같이 그 부하게 사는 자에게 이르기를 너는 평강하라. 네 집도 평강하라. 네 소유의 모든 것도 평강하라. 네게 양털 깎는 자들이 있다 함을 이제 내가 들었노라. 네 목자들이 우리와 함께 있었으나 우리가 그들을 상치 아니하였고 그들이 갈멜에 있는 동안에 그들의 것을 하나도 잃지 아니하였나니. 네 소년들에게 물으면 그들이 네게 고하리라. 그런즉 내 소년들로 네게 은혜를 얻게 하라. 우리가 좋은 날에 왔은즉 네 손에 있는 대로 네 종들과 네 아들 다윗에게 주기를 원하노라 하더라 하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나발에게 소년 열 명을 보내면서 먼저 자신의 이름으로 문안하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나발에게 소년 열 명을 보낸 이유를 말합니다. 다윗은 나발에게 “네 목자들이 갈멜에 있는 동안 우리가 그들을 해하지 않았다고 하면서 좋은 날에 왔으니 내 손에 있는 대로 네 종들과 네 아들 다윗에게 주기를 원한다”고 하였습니다. 다윗은 자신을 나발의 아들이라고 하면서 예를 갖추어서 음식을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이 이렇게 요구한 것은 그 당시 풍습으로써 결례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양털 깎는 날은 목축업자의 세계에서는 축제일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이 날에는 양을 잡고 음식을 준비하여 이웃과 함께 나누었습니다. 다윗은 바로 이런 풍습에 따라 자신이 한때 도움을 주었던 부자 나발에게 관대한 지원을 요청하기 위해서 열 명의 소년들을 자신의 사신으로 보낸 것입니다.

 

그런데 이 때 나발의 반응이 어떠하였습니까? 나발의 반응은 예상을 뒤엎는 냉대와 적의였습니다. 9-11절을 보면 “다윗의 소년들이 가서 다윗의 이름으로 이 모든 말을 나발에게 고하기를 마치매. 나발이 다윗의 사환들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다윗은 누구며 이새의 아들은 누구뇨. 근일에 각기 주인에게서 억지로 떠나는 종이 많도다. 내가 어찌 내 떡과 물과 내 양털 깎는 자를 위하여 잡은 고기를 가져 어디로서인지 알지도 못하는 자들에게 주겠느냐 한지라”고 했습니다. 다윗의 소년들이 다윗의 이름으로 나발에게 말을 하니 나발의 반응은 다윗은 누구며, 이새의 아들이 누구냐고 하면서 요즈음 각기 주인에게서 억지로 떠나는 종이 많다고 합니다. 나발이 다윗을 모를 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나발이 이렇게 말한 것은 다윗을 주인의 집에서 도망간 반역자로 모독하는 것이며, 다윗의 부하들도 그렇게 모여든 불량한 집단으로 본 것입니다. 그래서 나발은 “내가 어찌 내 떡과 물과 내 양 털 깎는 자를 위하여 잡은 고기를 가져다가 어디서 왔는지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주겠느냐”고 하면서 냉정히 거절하였습니다. 이것은 다윗의 입장에서 보면 굉장한 모독입니다.

 

12-13절을 보면 다윗의 소년들이 돌아와서 그대로 다윗에게 보고를 하였습니다. 그때 다윗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다윗은 화가 나서 자기 사람들에게 명하기를 “너희는 각기 칼을 차라”고 했습니다. 다윗도 자기 칼을 차고 이백 명은 소유물 곁에 두어 지키게 하고 사백 명 가량을 데리고 나발에게로 올라갔습니다. 다윗은 나발을 죽이고자 출정한 것입니다. 이 다윗의 모습은 우리가 24장에서 본 다윗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니다. 24장에서는 자기를 죽이려는 사울을 단칼에 죽일 수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호와께 그 심판을 맡겼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나발을 죽이려고 자신이 직접 군사들을 이끌고 달려가는 것입니다.

 

14-17절을 보면 나발의 하인 중 한 사람이 이 모든 일들을 여주인 아비가일에게 보고를 하였습니다. 다윗이 자기들을 보호하여 밤낮 울타리가 되어주었는데도 나발은 그런 다윗을 모욕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윗이 우리 주인과 주인의 온 집을 해하려고 결정하였다고 합니다. 이 소식을 들은 아비가일은 어떻게 합니까? 18-20절을 보면 아비가일이 급히 음식을 마련합니다. 그 음식의 양이 어떠합니까? 떡 이백덩이와 포도주 두 가죽부대와 잡아 준비한 양 다섯 마리와 볶은 곡식 다섯 세아와 건포도 백송이와 무화과뭉치 이백이었습니다(18). 아비가일은 남편 나발이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받은 다윗을 모욕한 일로 인해 닥칠 환난을 직감한 것입니다. 아비가일은 이 엄청난 음식을 준비하여 나귀에게 싣고 남편에게도 알리지 않고 소년들을 앞세워 다윗에게로 갔습니다(19). 아비가일이 산 호적한 곳을 따라 내려가다가 자기들을 향해 오는 다윗과 그의 일행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20). 다윗이 나발을 죽이려고 달려오고 있는 것입니다.

 

21-22절을 보면 다윗이 왜 나발에게 격노하여 죽이려고 하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윗이 이미 말하기를 내가 이 자의 소유물을 광야에서 지켜 그 모든 것을 하나도 손실이 없게 한 것이 진실로 허사라. 그가 악으로 나의 선을 갚는도다. 내가 그에게 속한 모든 것 중 한 남자라도 아침까지 남겨두면 하나님은 다윗에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다윗이 칼을 차고 내려오면서 한 말입니다. 다윗은 내가 그의 소유물을 지켜주어 하나도 손실이 없게 한 것이 허사라고 하면서 그가 악으로 나의 선을 갚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에게 속한 남자는 한 사람이라도 남겨두면 하나님은 다윗에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시기를 원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자기 저주의 맹세입니다.

 

지금 다윗은 은혜를 모르는 나발에 대하여 분노하여 달려가고 있습니다. 사실 나발이 다윗에게 자신의 양떼를 보호해 달라고 요청한 것도 아닙니다. 다윗 스스로 그 양떼들의 우리가 되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은혜를 모른다고 나발 집안의 남자를 다 죽여 버릴 정도의 죄가 됩니까? 만약 다윗의 분노대로 이 나발의 집안 사람들을 다 죽여 버렸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 나발도 갈렙 족속이지만 유다지파입니다. 유다지파의 상당한 세력가인 나발을 그렇게 죽여 버리면 다윗의 명성에 누가 됩니다. 그러나 다윗의 분노는 이것저것을 돌아볼 틈도 없습니다. 이런 다윗을 막아서는 일에 지혜롭고 아름다운 아비가일이 나섭니다. 이렇게 아비가일이 나선 것은 아비가일의 지혜와 총명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32절을 보면 “다윗이 아비가일에게 이르되 오늘날 너를 보내어 나를 영접케 하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라고 했습니다. 다윗의 이 고백을 통해서 볼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지혜롭고 아름다운 아비가일을 통해서 다윗으로 하여금 범죄 하지 않도록 역사하신 것입니다.

 

23-31절을 보면 아비가일이 다윗에게 엎드려 고합니다. 구약에서 여인의 말 중에 이 본문이 가장 길다고 합니다. 이러한 말이 나오는 것은 다윗을 왕으로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 왕이 지금 자기 남편과 자기 집안을 심판하기 위하여 오고 있기 때문에 그 앞을 가로막아 선 것입니다. 다윗을 주라고 하면서 불량한 사람 나발을 개의치 말아달라고 합니다. 아비가일은 자기 남편 나발이 그 이름대로 미련한 자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아비가일이 다윗에게 하는 말이 무엇입니까? 26-31절을 보면 “내 주여! 여호와께서 사시고 내 주도 살아계시거니와 내 주의 손으로 피를 흘려 친히 보수하시는 일을 여호와께서 막으셨으니. 내 주의 원수들과 내 주를 해하려 하는 자들은 나발과 같이 되기를 원하나이다. 여종이 내 주에게 가져온 이 예물로 내 주를 좇는 이 소년들에게 주게 하시고, 주의 여종의 허물을 사하여 주옵소서. 여호와께서 반드시 내 주를 위하여 든든한 집을 세우시리니. 이는 내 주께서 여호와의 싸움을 싸우심이요, 내 주의 일생에 내 주에게서 악한 일을 찾을 수 없음이니이다. 사람이 일어나서 내 주를 쫓아 내 주의 생명을 찾을지라도 내 주의 생명은 내 주의 하나님 여호와와 함께 생명싸개 속에 싸였을 것이요, 내 주의 원수들의 생명은 물매로 던지듯 여호와께서 그것을 던지시리이다. 여호와께서 내 주에 대하여 하신 말씀대로 모든 선을 내 주에게 행하사 내 주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신 때에 내 주께서 무죄한 피를 흘리셨다든지 내 주께서 친히 보수하셨다든지 함을 인하여 슬퍼하실 것도 없고 내 주의 마음에 걸리는 것도 없으시리니. 다만 여호와께서 내 주를 후대하신 때에 원컨대 내 주의 여종을 생각하소서”라고 했습니다. 아비가일은 이런 지혜로운 말로서 다윗의 복수의 길을 막아 나섰습니다. 여기서 볼 때 참으로 아비가일은 지혜로운 여인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아비가일의 이런 지혜로운 말을 들은 다윗의 말이 무엇입니까? 32-35절을 보면 “다윗이 아비가일에게 이르되 오늘날 너를 보내어 나를 영접케 하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 또 네 지혜를 칭찬할지며 또 네게 복이 있을지로다. 오늘날 내가 피를 흘릴 것과 친히 보수하는 것을 네가 막았느니라. 나를 막아 너를 해하지 않게 하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하노니. 네가 급히 와서 나를 영접지 아니하였더면 밝는 아침에는 과연 나발에게 한 남자도 남겨두지 아니하였으리라. 다윗이 그가 가져온 것을 그의 손에서 받고 그에게 이르되 네 집으로 평안히 올라가라. 내가 네 말을 듣고 네 청을 허락하노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아비가일을 보내신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찬송하고 있습니다. 곧 다윗은 아비가일을 보내어 자신이 피흘리는 복수를 행하지 않도록 섭리 하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아비가일의 지혜를 칭찬하며 “네게 복이 있을 것이라”고 하며 축복을 합니다. 여기서 ‘찬송’이라는 말과 ‘칭찬’이라는 말과 ‘복’이라는 말이 히브리어로 보면 모두 ‘바라크’(&r'B;)입니다. 바라크(&r'B;)라는 단어는 ‘찬송하다’, ‘칭찬하다’, ‘복을 받다’, ‘자랑하다’ 등으로 사용이 됩니다.

 

36-38절을 보면 아비가일이 다윗을 돌려보내고 나발에게 돌아오니 나발이 왕의 잔치와 같은 잔치를 그의 집에 배설하고 크게 취하여 마음에 기뻐하고 있습니다. 진짜 왕인 다윗을 모욕하고서는 자신은 왕처럼 잔치를 벌리고 취하여 기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날 술이 깨고 난 후에 아비가일이 어제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합니다. 그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나발이 낙담하여 몸이 돌과 같이 되었더니 한 열흘 후에 여호와께서 나발을 치시매 그가 죽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모독한 미련한 나발을 치셨습니다. 기름 부음을 받은 다윗을 모욕한 것은 그를 기름 부어 세운 하나님을 모독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이 말씀을 보면서 놀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미련한 나발처럼 살고 있지 않느냐는 말입니다. 우리가 다 나발처럼 자신이 왕이 되어 살려고 합니다. 그런데 왕이 따로 있습니다.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가 되시는 분이 마치 다윗처럼 모욕당하는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다윗보다 더 심한 저주를 받아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향하여 사람들은 고개를 흔들며 침을 뱉고 돌아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십자가의 예수를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시고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습니다. 곧 심판의 주가 되게 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 6:12-17절을 보면 “내가 보니 여섯째 인을 떼실 때에 큰 지진이 나며 해가 총담 같이 검어지고 온 달이 피 같이 되며 하늘의 별들이 무화과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선 과실이 떨어지는 것같이 땅에 떨어지며 하늘은 종이 축이 말리는 것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제 자리에서 옮기우매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각 종과 자주자가 굴과 산 바위틈에 숨어 산과 바위에게 이르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낯에서와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우라.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사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 우리 주님은 심판주가 되십니다. 이 주님을 멸시하는 자들은 나발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죽임을 당하듯이 멸망을 당하게 됩니다.

 

39절을 보면 나발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다윗이 자신의 모욕을 갚아주시고 자신이 악한 일을 하지 않게 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나발에게 당한 나의 욕을 신설하사 종으로 악한 일을 하지 않게 하신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 여호와께서 나발의 악행을 그 머리에 돌리셨도다”(39). 그런데 다윗으로 하여금 이런 일을 하게 한 도구는 누구입니까? 아비가일 입니다(32). 그래서 40절에 보면 다윗이 사환들을 아비가일에게 보내어 청혼을 합니다. 다윗의 청혼을 받은 아비가일은 어떻게 합니까? 41-42절에 보면 아비가일은 다윗이 보낸 종들에게 절하면서 “내 주의 여종은 내 주의 전령들의 발 씻길 종이니이다”라고 하면서 급히 일어나 나귀를 타고 자기를 따르는 처녀 다섯과 함께 전령들을 따라가 다윗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43-44절을 보면 다윗은 또한 이스르엘 아히노암을 아내로 맞이합니다. 사울은 미갈을 갈림에 사는 라이스의 아들 발디에게 주었습니다. 미련한 나발과 지혜롭고 아름다운 아비가일의 모습이 어떻게 갈라지는지를 보여줍니다. 기름 부음 받은 다윗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그들의 인생이 갈라집니다. 나발은 다윗을 모욕했습니다. 그 결과 그는 하나님의 치심을 받아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아비가일은 다윗을 완전한 왕으로 영접하고 선대했습니다. 그 결과 그녀는 다윗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대하고 있습니까? 나발과 같은 모습입니까? 아니면 아비가일과 같은 모습입니까? 나발의 집안에서 아비가일을 보면 어떤 여자입니까? 남편이 죽자말자 기다렸다는 듯이 다윗에게 시집간 지조 없는 여자라고 손가락질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비가일은 사람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런 자들은 세상의 평가에 마음을 두지 않습니다. 급히 그리스도에게로 시집가는 것이 은혜 입은 자의 모습입니다.

 

다윗과 요나단의 마음이 서로 연락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여호와의 붙여주시는 전쟁의 의미를 알았기에 서로 마음이 연락이 되었습니다. 아비가일도 다윗이 여호와의 싸움을 싸우는 자임을 알았습니다. 그런 다윗을 왕으로 영접한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이 바로 주의 영이 한 마음을 주신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아비가일이 다윗을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으로 영접하였듯이 우리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께서 세우신 주요, 왕으로 영접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아비가일이 은혜를 입은 것같이 우리도 하나님께 은혜 입은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오직 우리로 하여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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