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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사무엘상 29-30장
강설날짜 2015-07-29

2015년 사무엘상 공부


아말렉 정벌에 나선 다윗

말씀:사무엘상 29-30장

 

우리는 지난 시간에 사울이 신접한 여인을 찾아가는 모습을 살펴보았습니다. 오늘 말씀은 아말렉 정벌에 나선 다윗의 모습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사무엘상 29장 말씀은 사무엘상 28:1-2절의 문맥을 바로 이어 받고 있습니다. 28:1-2절을 보면 “그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을 쳐서 싸우려고 군대를 모집한지라. 아기스가 다윗에게 이르되 너는 밝히 알라. 너와 네 사람들이 나와 한가지로 나가서 군대에 참가할 것이니라. 다윗이 아기스에게 이르되 그러면 당신이 종의 행할 바를 아시리이다. 아기스가 다윗에게 이르되 그러면 내가 너로 영영히 내 머리 지키는 자를 삼으리라 하니라”고 했습니다. 블레셋이 이스라엘과 싸우기 위하여 군대를 모집하였습니다. 다윗도 아기스 왕의 명으로 이 싸움에 참가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막간으로 우리가 지난 시간에 살펴본 사울이 신접한 여인을 찾아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곧 블레셋과 이스라엘의 전쟁을 위하여 군사를 모집하는 일을 다루다가 사울이 신접한 여인을 찾아가는 이야기가 삽입 되어 나오는 것입니다. 사무엘서 저자가 사울이 신접한 여인을 찾아가 묻는 이야기를 블레셋과 이스라엘의 전쟁 이야기 사이에 삽입하여 놓은 것입니다. 이것은 사울이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패배하고 죽임을 당하는 것이 그의 영적인 파탄의 결과임을 보여 주기 위함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 29:1-2절을 보면 사무엘서 저자는 28장에서 이야기 한 블레셋과 이스라엘의 전쟁 이야기를 이어 갑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그 모든 군대를 아벡에 모았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스르엘에 있는 샘 곁에 진 쳤더라. 블레셋 사람의 장관들은 수백씩 수천씩 영솔하여 나아가고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아기스와 함께 그 뒤에서 나아가더니”라고 했습니다(29:1-2). 블레셋 사람들이 그 모든 군대를 아벡에 모았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스르엘에 있는 샘 곁에 진을 쳤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의 수령들이 수백 수천씩 인솔하여 나아가고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아기스와 함께 그 뒤에 나아갔습니다. 이제 다윗이 동족 이스라엘과 전쟁을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곤경한 상황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놀라웁게 역사하셔서 다윗으로 하여금 동족 이스라엘을 치는 일에서 벗어나게 하셨습니다.

 

3-5절을 보면 블레셋 방백들이 다윗을 보고서 “이 히브리 사람들이 무엇을 하려느냐”라고 합니다. 이들은 다윗은 전쟁에 함께 갈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 말을 들은 아기스 왕이 다윗을 변호합니다. “이 사람은 이스라엘의 왕 사울의 신하이지만 나에게 망명하여 온 후로 오늘까지 그의 허물을 보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아기스는 다윗이 이스라엘의 변방을 공격한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어떻든 아기스 왕이 다윗을 변호하고 나섰습니다. 그러나 블레셋의 방백들은 화를 내며 다윗을 왕이 정한 그 처소로 돌려보내라고 합니다. 그와 전쟁에 함께 갈 수 없다고 합니다. 그들은 다윗이 자신들의 대적이 될 것을 두려워 한 것입니다. 그들은 다윗이 사울과 다시 화합하기 위하여 자신들의 머리를 베어가지 않겠느냐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다윗이 과거 어떤 자였는지를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5절에 보면 “그들이 춤추며 창화하여 가로되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하던 이 다윗이 아니니이까”라고 했습니다. 블레셋의 방백들은 절대로 다윗과는 함께 전쟁에 나가지 않을 태세였습니다. 블레셋 방백들의 이러한 요구는 충분히 이해 할 수 있습니다.

 

6-7절을 보면 이에 아기스 왕은 다윗을 불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사시거니와 네가 정직하여 내게 온 날부터 오늘까지 네게 악이 있음을 보지 못 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다윗이 함께 전쟁에 나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지만 장관들이 너를 좋아하지 아니하니 전쟁에 참여 하지 말고 너는 돌이켜 평안히 돌아가라고 합니다. 다윗이 그의 말을 듣고 어떻게 합니까? 8절에 보면 “다윗이 아기스에게 이르되 내가 무엇을 하였나이까. 내가 당신의 앞에 오늘까지 있는 동안에 당신이 종에게서 무엇을 보셨기에 나로 가서 내 주 왕의 원수와 싸우지 못하게 하시나이까”라고 했습니다. 여기서도 다윗의 능처스러운 연기를 볼 수 있습니다.

 

이에 아기스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9-10절을 보면 “아기스가 다윗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네가 내 목전에 하나님의 사자같이 선한 것을 내가 아나 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은 말하기를 그가 우리와 함께 전장에 올라가지 못하리라 하니. 그런즉 너는 너와 함께 온 네 주의 신하들로 더불어 새벽에 일어나라. 너희는 새벽에 일어나서 밝거든 곧 떠나라”고 했습니다. 아기스는 다윗을 보고 하나님의 사자같이 선한 것을 안다고 합니다. 하지만 방백들이 함께 전장에 올라가지 못하겠다고 하니 전쟁에 참여하지 말고 데려온 백성들과 함께 날이 밝거든 네가 있던 곳으로 돌아가라고 합니다. 이렇게 하여 다윗은 아주 당당하게 그 전쟁에서 빠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블레셋의 방백들을 통해서 다윗이 동족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빠지게 인도 하여 주셨습니다.

 

만약 다윗이 이 전쟁에 나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사울이 이 전투에서 죽습니다. 그러면 다윗은 이스라엘 백성들 전체의 왕으로 세워질 수가 없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자기 언약에 신실하시기에 블레셋 방백들의 마음을 움직여서라도 다윗을 그 전투에서 빼내어 주십니다. 우리의 걸음이 우리에게 달린 것이 아니라 주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잠언 16:9절을 보면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고 했습니다. 잠언 19:21절을 보면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이 완전히 서리라”고 했습니다. 예레미야 10:23절을 보면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인생의 길이 자기에게 있지 아니하니 걸음을 지도함이 걷는 자에게 있지 아니하니이다”라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0:13절을 보면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21:18-23절을 보면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우리 인생을 계획 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인생을 섭리 하셔서 당신의 언약을 이루어 가십니다.

 

사무엘상 30:1-6절을 보면 다윗이 삼일 만에 시글락으로 돌아 왔습니다. 그런데 어떤 일이 일어나 있었습니까? 시글락은 아말렉 사람들에 의하여 불살라졌고 사람들은 다 사로잡혀 갔습니다. 다윗과 함께한 사람들 육백 명은 블레셋과 함께 전쟁에 나갔기 때문에 시글락에는 여자들과 노인들과 어린아이들만 있었기 때문에 아말렉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윗과 그와 함께 한 사람들은 시글락의 황폐함을 보고 울 기력이 없을 정도로 울었습니다. 다윗의 두 아내들도 사로잡혀 갔습니다. 백성들이 자녀들 때문에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고자 하였습니다. 이때 다윗이 크게 다급하였지만 그는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습니다.

 

7-10절을 보면 다윗이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어 아히멜렉의 아들 아비아달 제사장에게 에봇을 가져오게 합니다. 다윗이 여호와께 이 군대를 추격하면 따라 잡을 수 있고 이길 수 있는지를 묻습니다. 여호와의 대답이 반드시 따라잡고 도로 찾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다윗이 따라잡고 도로 찾을 수 있는 것을 왜 하나님은 아말렉 군대에 의하여 이들의 가족과 소유가 다 빼앗기도록 하신 것입니까? 다윗과 함께한 자들의 실상을 드러내시기 위함입니다. 동시에 다윗에게 약속하신 왕으로 세우실 것을 이루시기 위한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이 일을 행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사는 우리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로 통일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에베소서 1:10절을 보면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육백 명을 데리고 추격하다가 피곤하여 뒤처진 이백 명을 브솔 시내에 머무르게 한 후에 사백 명을 데리고 계속하여 추격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11-15절을 보면 다윗이 아말렉을 추격하는 중에 애굽 사람 하나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아말렉 사람의 종이었는데 병이 들자 사흘 전에 주인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자였습니다. 그는 사흘 동안 아무 것도 먹지 못해 죽기 직전이었습니다. 다윗은 그에게 떡과 물을 주어 먹게 하고 무화과 한 덩이와 건포도 두 송이를 주어 먹게 하였습니다. 그가 먹고 장신을 차렸습니다. 이에 다윗은 그에게 뉘게 속하였으며 어디로서 왔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애굽 출신인데 아말렉 사람의 종이었다고 자신의 신분을 밝혔습니다. 그리고 그는 다윗에게 아말렉이 그렉 사람의 남방과 유다에 속한 지방과 갈멜 남방을 침로하고 시글락을 불살랐다고 하였습니다. 다윗은 그에게 자신들을 그 군대로 인도해 줄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사람은 자신을 죽이지도 않고 그 주인에게 돌리지 않겠다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면 인도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이 사람의 인도로 인하여 다윗은 아멜렉을 물리치고 잃었던 모든 것을 되찾아 왔습니다. 이 사람이 병이 들고 주인에게 버림을 당한 것이 우연입니까?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인도하기 위하여 미리 그렇게 일하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이 우연한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의하여 일어나는 필연입니다.

 

16-20절을 보면 그 사람이 다윗을 인도하여 아말렉 사람들을 추격하여 갔습니다. 아말렉 사람들은 블레셋 땅과 유다 땅에서 크게 약탈하였습니다. 지금 블레셋과 이스라엘은 전쟁에 돌입하였기에 지방의 약탈에 대하여는 손쓸 틈이 없습니다. 그러니 이들이 탈취하여 가도 아무도 추격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말렉 사람들이 온 땅에 편만하여 블레셋 사람의 땅과 유다 사람들의 땅에서 크게 약탈하여 먹고 마시며 춤추었습니다. 온 땅에 편만하였다는 말은 경비도 세우지 않고 자신들의 승리를 마음껏 즐기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때 다윗이 새벽부터 기습하여 그 다음날 저녁 까지 공격하니 낙타를 타고 도망간 소년 사백 명 외에는 피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다윗은 아말렉 사람들이 빼앗아 간 모든 것을 도로 찾고 그의 두 아내도 찾고 한 사람도 잃어버리지 않고 다 찾게 되었습니다. 그 뿐 아니라 그들이 노략한 모든 전리품들도 다 다윗의 것이 되었습니다.

 

21-25절을 보면 다윗이 대승을 하고 돌아올 때 피곤하여 능히 따르지 못하고 브솔 시내에 머물러 있게 한 자들이 다윗 일행을 맞이하였습니다. 이때 다윗과 함께 간 사백 명 중에 악한 자와 불량배들이 우리와 함께 가지 않은 자들은 전리품을 줄 필요가 없다고 하면서 그들의 가족만 돌려주어 떠나게 하라고 합니다. 이때 다윗이 어떻게 합니까? 다윗은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23-25절을 보면 “다윗이 가로되 나의 형제들아 여호와께서 우리를 보호하시고 우리를 치러 온 그 군대를 우리 손에 붙이셨은즉 그가 우리에게 주신 것을 너희가 이같이 못하리라. 이 일에 누가 너희를 듣겠느냐. 전장에 내려갔던 자의 분깃이나 소유물 곁에 머물렀던 자의 분깃이 일반일지니 같이 분배할 것이니라 하고 그 날부터 다윗이 이것으로 이스라엘의 율례와 규례를 삼았더니 오늘까지 이르니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여호와께서 붙여주신 전쟁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전쟁이 나간 자나 소유물 곁에 머물렀던 자나 똑같이 전리품을 분배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것을 이스라엘의 율례와 규례로 삼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의 방식입니다.

 

그런데 악한 자와 불량배들은 피곤하여 전쟁에 참여하지 못한 자들에게 전리품을 주지 말자고 합니다. 이런 모습이 바로 자기 의라는 것입니다. 자기들은 목숨 걸로 싸웠는데 가만히 앉아 있다가 자기들과 함께 전리품을 받는다는 것은 공평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이들의 말이 틀렸습니까? 아닙니다. 합당한 말입니다. 전쟁에 나가는데 피곤하지 않는 자들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런데 자기들은 그 피곤을 무릅쓰고 죽을 각오로 전쟁에 나갔으니 자기들의 공로를 주장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자신들의 전쟁이 여호와의 전쟁이라고 합니다. 여호와께서 붙여주신 전쟁이기에 전장에 나간 자나 소유물 곁에 있었던 자나 분깃이 동일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의 능력으로 이긴 것이 아니기에 자기의 것이라고 주장할 수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우리가 사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고 내 것을 내 것이라고 주장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사람의 제도나 법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주의 성령으로만 됩니다. 정말 성령이 충만하게 되면 자기의 소유를 자기의 것이라고 하지 않는 일이 일어납니다. 사도행전 4:32절을 보면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성령 충만의 결과입니다.

 

26-31절을 보면 다윗이 전리품을 유다 장로들에게도 보냅니다. 그 지역이 열 세 곳이나 됩니다. 이런 모습을 보고 다윗이 유대인들에게 환심을 사서 장차 왕으로 등극하는 일에 도움이 되기에 이렇게 하였다고 보기도 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어떻게 기록하고 있습니까? 26절에서 “여호와의 원수에게서 탈취한 것을 너희에게 선사하노라”고 합니다. 전쟁에 나가지도 않았던 자들까지 그 전리품을 받음으로 여호와의 전쟁이 어떠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0:1-16절을 보면 “천국은 마치 품군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으니. 저가 하루 한 데나리온씩 품군들과 약속하여 포도원에 들여보내고 또 제 삼시에 나가보니 장터에 놀고 섰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저희에게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내가 너희에게 상당하게 주리라 하니 저희가 가고 제 육시와 제 구시에 또 나가 그와 같이 하고 제 십일시에도 나가 보니 섰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가로되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섰느뇨. 가로되 우리를 품군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이다. 가로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하니라. 저물매 포도원 주인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품군들을 불러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까지 삯을 주라 하니. 제 십일시에 온 자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을 받거늘. 먼저 온 자들이 와서 더 받을 줄 알았더니. 저희도 한 데나리온씩 받은지라. 받은 후 집 주인을 원망하여 가로되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만 일하였거늘 저희를 종일 수고와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 주인이 그 중의 한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천국입니다. 그런데 다윗과 함께 한 자들 중에 악한 자와 불량배들은 하나님의 선하심이 악하게 보이는 자들입니다.

 

로마서 4:1-8절을 보면 “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된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 바 되었느니라.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을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빚으로 여기거니와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행복에 대하여 다윗의 말한바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홀로 여호와의 전쟁을 하십니다. 그 전쟁의 승리가 십자가 입니다. 그 십자가로 다 이루심으로 우리에게 의롭다 함을 넘겨주십니다. 일을 안 한 정도가 아니라 악만 행한 자들인데 여호와의 전쟁을 승리하신 주님께서 값없이 은혜로 의롭다함을 주신 것이 하나님의 선하심입니다. 이 은혜를 입은 자는 결코 자기의 공로를 주장할 수 없습니다. 목숨을 바쳐 순종하였다고 할지라도 오직 주님의 은혜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이런 자들이 천국의 사람들 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이 은혜가 우리에게도 임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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