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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왕하 2:19-25
강설날짜 2017-07-26

2017년 열왕기하 공부

엘리사가 행한 두 가지 일

말씀:열왕기하 2:19-25


우리는 지난 시간에 엘리사가 엘리야의 직분을 승계하여 요단강을 건너 여리고로 들어오는 것을 살펴봤습니다(2:12-18).

 

오늘 본문에는 엘리사가 행한 두 가지 사역이 나옵니다. 하나는 여리고 성에서 행한 일인데 물이 안 좋아서 결실하지 못하자 물 근원에 소금을 던져 고치는 사건이고, 다른 하나는 벧엘에서 있었던 사건인데 엘리사가 벧엘에 올라가자 젊은 아이들이 ‘대머리여 올라가라, 대머리여 올라가라’고 조롱하자 엘리사가 이들을 저주하자 수풀에서 암콤 두 마리가 나와서 사십 이명의 아이들을 찢어 죽이는 사건입니다. 이 두 사건은 하나는 구원이고, 하나는 심판입니다. 여리고 성의 사람들은 구원을 받는 반면 벧엘의 사람들은 심판을 받습니다. 이것은 선지자의 두 가지 기능을 말해 줍니다. 하나님의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변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선지자 개인의 어떤 자질이 아니라 그 선지자가 전하는 그 말씀에 따라서 사람들의 운명이 드러나게 됩니다. 그 말씀에 순종하는 자는 구원에 이르지만, 그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자는 심판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선지자를 하나님 편에서 바라보고 그의 말씀을 경외함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19-22절을 보면 “그 성 사람들이 엘리사에게 고하되 우리 주께서 보시는 바와 같이 이 성읍의 터는 아름다우나 물이 좋지 못하므로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지나이다. 엘리사가 가로되 새 그릇에 소금을 담아 내게로 가져오라 하매 곧 가져온지라. 엘리사가 물 근원으로 나아가서 소금을 그 가운데 던지며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 물을 고쳤으니 이로 좇아 다시는 죽음이나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짐이 없을지니라 하셨느니라 하니. 그 물이 엘리사의 말과 같이 고쳐져서 오늘날에 이르렀더라”고 했습니다. 여리고 성 사람들은 엘리야와 엘리사가 요단강을 건너가는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엘리야가 회리바람을 타고 하늘로 승천하고 엘리사가 엘리야의 뒤를 이어서 하나님의 선지자가 되어 요단강을 건너오는 것도 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리고 성 사람들은 엘리사를 하나님의 선지자로 보고 그에게 말합니다. “우리 주께서 보시는 바와 같이…”(19a). 여리고 성 사람들은 엘리사를 자신들의 주인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엘리사의 개인적인 자질과 능력을 보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하나님의 선지자로 보고 말하는 것입니다.

 

19절을 다시 보면 그들이 엘리사에게 말하기를 “…이 성읍의 터는 아름다우나 물이 좋지 못하므로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지나이다”고 합니다(19b). 여기서 ‘토산이 잊지 않고 떨어진다’는 말은 농산물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짐승의 낙태나 사람의 유산도 포함하는 말입니다. ‘떨어진다’는 말은 히브리 원어로 보면 그 기본형이 ‘lkov;,’(솨콜)인데 본래 ‘유산하다’, ‘낙태하다’라는 그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리고 성 사람들은 식물이 결실하지 못하고, 짐승이나 사람이 유산하는 이유를 물이 좋지 않아서 그렇다고 본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 엘리사가 하는 말이 무엇입니까? 20절을 보면 “새 그릇에 소금을 담아 자기에게로 가져오라”고 합니다. 그리고 21절에 보면 엘리사가 그 소금을 가지고 물 근원으로 나아가서 소금을 가운데 던지며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 물을 고쳤으니 이로부터 다시는 죽음이나 열매 맺지 못함이 없을 것이라”고 하신 여호와의 말씀을 전합니다. 엘리사가 소금을 던진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엘리사는 거저 심부름만 하는 사람입니다. 여리고 성 사람들은 엘리사를 하나님의 선지자로 보고 그에게 나아와 물이 좋지 않다고 한 것입니다. 이에 엘리사는 소금을 물 근원에 던져 고쳐 준 것입니다. 그러므로 22절에 보면 이 땅의 물이 고쳐져서 오늘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오늘에 이르렀다’라는 이런 표현은 이 일이 실제 일어난 시점보다 기록한 시점이 한참 뒤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도 팔레스타인의 땅인 여리고 지역의 샘물을 엘리사의 샘물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왜 엘리사로 하여금 소금을 물 근원에 던지게 하셨을까요? 성경에서 보면 소금은 저주와 심판(창 19:26, 겔 47:11, 습 2:9, 막 9:45)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언약(민 18:19, 대하 13:5)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창세기 19:26절에 보면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 본 고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고 했고, 에스겔 47:11절에 보면 “그 진펄과 개펄은 소성되지 못하고 소금 땅이 될 것이며”라고 했습니다. 민수기 18:19절에 보면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는 모든 성물은 내가 영영한 응식으로 너와 네 자녀에게 주노니 이는 여호와 앞에 너와 네 후손에게 변하지 않는 소금 언약이니라”고 했고, 역대하 13:5절에 보면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소금 언약으로 이스라엘 나라를 영원히 다윗과 그 자손에게 주신 것을 너희가 알 것이 아니냐”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여리고 성이 한 때 저주의 성읍이었지만 엘리사를 통하여 회복이 되는 것을 보여줍니다.

 

소금의 기능이 두 가지 이듯이 선지자의 사역도 두 가지입니다. 여리고 성은 여호수아 때 정복하고 저주를 한 성읍입니다. 물론 지금 오늘 본문의 이 성읍이 여호수아 때 무너진 성읍으로는 볼 수는 없지만 여리고 지역의 성읍으로 보입니다. 여호수아서 26장에 보면 여호수아가 여리고 성을 무너뜨린 후에 이 성을 다시 쌓으면 그 자식을 잃을 것이라고 저주를 하였습니다. 여호수아 6:26절을 보면 “여호수아가 그 때에 맹세로 무리를 경계하여 가로되 이 여리고 성을 누구든지 일어나서 건축하는 자는 여호와 앞에서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 기초를 쌓을 때에 장자를 잃을 것이요, 문을 세울 때에 계자를 잃으리라 하였더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예언의 말씀이 열왕기상 16장에 보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성읍을 건축한 사람이 여리고 사람이 아니라 벧엘 사람입니다. 열왕기상 16:34절을 보면 “그 시대에 벧엘 사람 히엘이 여리고를 건축하였는데 저가 그 터를 쌓을 때에 맏아들 아비람을 잃었고 그 문을 세울 때에 말째 아들 스굽을 잃었으니 여호와께서 눈의 아들 여호수아로 하신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고 했습니다. 벧엘 사람 히엘이 여리고를 건축하다가 그 터를 쌓을 때 맏아들을 잃고 성문을 세울 때에 막내 아들을 잃었습니다. 여호와께서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하신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히엘이 첫 아들이 죽었을 때에 여호수아의 말씀을 기억하고 중단 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맏아들이 죽었는데도 계속해서 성을 건축하고 성문을 세우다가 막내 아들까지 잃게 된 것입니다. 벧엘 사람 히엘이 여리고 성을 건축한 때는 아합 시대입니다. 온 나라가 바알과 아세라 숭배로 가득한 때였습니다. 사람들은 이로 인해 성경 말씀을 읽을 틈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벧엘은 북 이스라엘의 처음 왕 여로보암이 단과 벧엘에 금송아지 신전을 만든 곳입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않고 거기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여호와를 섬긴다고 스스로 생각습니다. 그러므로 종교의 중심지인 벧엘에서 여호와의 선지자를 조롱합니다. 오늘 본문 23-25절을 보면 “엘리사가 거기서 벧엘로 올라가더니 길에 행할 때에 젊은 아이들이 성에서 나와서 저를 조롱하여 가로되 대머리여 올라가라 대머리여 올라가라 하는지라. 엘리사가 돌이켜 저희를 보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하매 곧 수풀에서 암콤 둘이 나와서 아이들 중에 사십 이명을 찢었더라. 엘리사가 거기서부터 갈멜산으로 가고 거기서 사마리아로 돌아왔더라”고 했습니다. 엘리사가 여리고에서 벧엘로 올라갑니다. 여리고는 해발고도로 비교하면 세계에서 가장 낮은 위치에 속합니다. 해발고도 –265미터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벧엘로 가도 올라가는 것이고, 예루살렘으로 가도 올라갑니다. 반면에 여리고로 가는 방향은 항상 내려간다고 표현합니다(눅 10:30). 엘리사가 벧엘로 올라갈 때에 길에서 젊은 아이들이 성읍에서 나와서 엘리사를 조롱합니다. “대머리여 올라가라. 대머리여 올라가라”(23). 이미 엘리사가 엘리야의 사역을 승계 받은 소문이 온 이스라엘에 났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벧엘의 아이들은 엘리사를 보고 대머리라고 놀리면서 올라가라고 합니다. 여기서 ‘올라가라’는 말은 벧엘로 올라가는 길이기에 올라가라는 말도 되지만 엘리야처럼 하늘로 올라가 버리라는 말도 됩니다.

 

23절에서 ‘젊은 아이들’이라고 했는데 이스라엘에서 젊은 아이들 곧 작은 아이들이라고 하면 13세부터 본다고 합니다. 이들은 율법의 전통에 의하면 율법의 의무를 져야하는 나이들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왜 이들이 여호와의 선지자를 조롱하였을까요? 엘리야를 통하여 삼년 육 개월의 가뭄이 왔을 때에 왕과 백성들이 어떤 욕을 했을까요? 아합 왕이 말한 것처럼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가 엘리야라고 한 것입니다. 엘리야가 말했기 때문에 비가 오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엘리야를 다 욕한 것으로 봐야합니다. 물론 소수의 남겨진 백성들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선지자에 대하여 조롱한 것입니다. 그러한 조롱이 아이들도 그대로 이어받은 것입니다. 여호와에 대한 불신앙과 여호와의 선지자들에 대한 조롱을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들었기 때문에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들에 대해서 엘리사는 어떻게 합니까? 24절을 다시 보면 엘리사가 뒤로 돌이켜 그들을 보면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를 합니다. 그러자 그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곧 수풀에서 암곰 두 마리가 나와서 아이들 중에 사십이 명을 찢어 죽였습니다. 열왕기서 저자는 암곰 두 마리가 아이들 사십이 명을 찢어 죽였다고 했는데 사십이 명은 어떤 단어가 생각이 납니까? 마흔두 달이 생각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1:2절에 보면 “성전 밖 마당은 척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을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저희가 거룩한 성을 마흔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고 했습니다. 또 요한계시록 13:5절을 보면 “또 짐승이 큰 말과 참람된 말 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두 달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들에 보면 ‘마흔두 달’ 동안 이방인들이 거룩한 성을 짓밟으며, 짐승이 마흔두 달 동안 일할 권세를 받았다고 합니다. 여기서 ‘마흔두 달’이란 삼년 반으로 심판의 기간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하필 마흔두 명의 아이들이 죽임을 당하는 것은 지금 이스라엘이 심판을 받는 것을 보여줍니다. 열왕기하 10:14절에도 보면 예후에 의하여 유다의 왕 아하시야의 형제들 42명이 죽임을 당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가로되 사로잡으라 하매 곧 사로잡아 목자가 양털 깎는 집 웅덩이 곁에서 죽이니 사십이 인이 하나도 남지 아니하였더라”(왕하 10:14).

 

이상에서 보면 동일한 선지자인데 그 기능이 두 가지 역할을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리고 성 사람들은 엘리사를 여호와의 선지자로 알아보고 그의 말을 여호와의 말씀으로 들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저주의 땅, 저주의 물이 회복이 되어 구원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벧엘 사람들은 여호와의 선지자를 조롱하였습니다. 그들이 여호와의 선지자를 조롱한 것은 여호와를 조롱한 것이기 때문에 그들이 저주를 받습니다. 벧엘 사람들이 엘리사를 조롱하므로 엘리사는 벧엘로 올라가다가 방향을 바꾸어 갈멜산으로 갑니다. 갈멜산은 엘리야가 아합과 이세벨이 죽이려고 할 때에 피하여 간 곳입니다. 지금 엘리사도 엘리야가 간 그 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모습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로 연결이 되는 것입니까? 마태복음 11:20-24절을 보면 “예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베푸신 고을들이 회개치 아니하므로 그 때에 책망하시되 화가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가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면 저희가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네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면 그 성이 오늘날까지 있었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베푼 마을들이 회개를 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이런 예수님의 권능을 이방의 교만하고 타락한 두로와 시돈과 소돔에서 행하였다면 그들이 회개하였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모든 선지자들이 두 가지 기능을 하고 있습니다. 이 두 가지 기능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함으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사람을 기쁘게 함으로 사람들에게 배척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참된 선지자들은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함으로 사람들에게 배척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과정에서 하나님의 백성은 선지자의 말을 듣고 회개할 것입니다.

 

모든 율법과 선지자들과 시편이 증거 한 예수님도 선지자들의 사역처럼 두 가지 기능이 나타납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면 그 사람이 아무리 저주의 상태에 있을지라도 구원에 이르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지 않고 배척하면 그 사람이 현재 아무리 부귀영화의 상태에 있다고 할지라도 그 사람은 영원한 저주를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을 통하여 예수님을 알고 자신의 죄를 알고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는 이 일이 영원한 저주에서 건짐을 받는 놀라운 은혜입니다. 마라에서 쓴 물이 모세를 통하여 단 물이 되고, 여리고의 좋지 않은 물이 엘리사를 통하여 좋은 물이 되듯이 예수님은 자신의 살과 피를 주심으로 자기 백성들에게 영원한 생명수를 주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6:35-40절을 보면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내가 너희더러 이르기를 너희는 나를 보고도 믿지 아니하는도다 하였느니라.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영원한 생명의 양식이며, 생명의 음료수입니다.

 

그런데 믿는 자가 있고 믿지 않는 자가 있습니다. 믿는 자는 오직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맡기신 자들입니다. 예레미야 2:13절을 보면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지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믿지 않는 자는 생수의 근원을 버리고 스스로 웅덩이를 판자들입니다. 그러나 믿는 자는 스스로 자신을 살릴 수가 없어서 전적으로 예수님만 의지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값없이 주시는 생명수만 사모하게 됩니다. 이런 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생수의 근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허락하여 주시고, 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영생수를 주십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선지자의 두 기능을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로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로 생수의 근원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허락하여 주시고, 멸망치 않고 주님이 주시는 영생수를 받아 마시는 복된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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