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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왕상 22:29-40
강설날짜 2017-06-14

2017년 열왕기상 공부

이스라엘의 왕 아합의 죽음

말씀:열왕기상 22:29-40

 

오늘 말씀은 이스라엘의 왕 아합의 죽음에 관한 말씀입니다. 아합 왕이 미가야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않고 자신에게 아부하고 좋은 말만하는 400명의 선지자들의 말을 듣고 아람과의 전쟁에 나갔다가 한사람이 우연히 쏜 화살에 맞아 죽게 됩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살펴보는 가운데 이 말씀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계시가 무엇인지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난 시간에 우리는 아합이 미가야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자기에게 아부하며 좋은 말만하는 거짓 선지자 400여명의 말을 듣는 것을 살펴봤습니다. 시드기야와 함께한 400여명의 선지자들은 아합의 귀를 즐겁게 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아합에게 좋은 말만하였습니다. 곧 길르앗 라못으로 올라가라고 하였습니다. 주께서 그 성을 아합에게 붙여주셨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아합으로 하여금 죽게 하고자 거짓의 영이 그들에게 임하여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미가야 선지자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진실 되게 전하였습니다. 미가야 선지자는 아합으로 하여금 길르앗 라못으로 올라가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올라가면 반드시 죽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아합은 이런 미가야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않고 자신에게 좋은 말만해 주는 거짓 선지자들의 말을 듣습니다. 그 결과 그는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므로 멸망할 자인지 아닌지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던져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어떻게 반응을 하는지 우리는 우리 자신들을 점검해 볼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오늘 본문 말씀을 보겠습니다. 오늘 본문 29절을 보면 “이스라엘 왕과 유다 왕 여호사밧이 길르앗 라못으로 올라가니라”고 합니다. 아합과 여호사밧은 미가야 선지자를 통해서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아합은 미가야 선지자를 옥에 가두어 놓고 자신이 전쟁에서 승리하여 올 때까지 고생의 떡과 고생의 물을 주라고 하였습니다(27). 이런 아합에게 미가야 선지자는 만약 그렇게 된다면 여호와께서 자신에게 말씀하지 아니하셨을 것이라고 합니다(28). 이렇게 분명한 말씀을 들어도 아합과 여호사밧이 길르앗 라못을 되찾기 위해 아람과 전쟁을 하려고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이렇게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아합을 죽이기로 결정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하나님의 뜻을 알려줘도 아합은 자기 고집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그는 스스로 멸망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30절을 보면 “이스라엘 왕이 여호사밧에게 이르되 나는 변장하고 군중으로 들어가려 하노니 당신은 왕복을 입으소서 하고 이스라엘 왕이 변장하고 군중으로 들어가니라”고 했습니다. 아합이 자기에게 좋은 말만해 주는 선지자들의 말을 듣고 전쟁터로 나아왔지만 무언가 찜찜했던 것 같습니다. 아합은 미가야 선지자의 말을 무시하고 싶었지만 그의 말로 인해서 일말의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남 유다의 여호사밧 왕에게는 왕복을 입으라고 하고 자신은 왕복을 입지 않고 변장하여 전쟁터에 참여 하겠다고 합니다. 이에 여호사밧은 왕복을 입고 전쟁에 참여하고, 아합은 왕복을 벗고 변장하여 전쟁에 참여하였습니다.

 

그런데 아합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예상하지 못한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31-33절을 보면 “아람 왕이 그 병거의 장관 삼십 이인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작은 자나 큰 자나 더불어 싸우지 말고 오직 이스라엘 왕과 싸우라 한지라. 병거의 장관들이 여호사밧을 보고 이르되 이가 필연 이스라엘 왕이라 하고 돌이켜 저와 싸우려 한즉 여호사밧이 소리지르는지라. 병거의 장관들이 저가 이스라엘 왕이 아님을 보고 쫓기를 그치고 돌이켰더라”고 했습니다. 아람 왕이 오직 이스라엘의 왕과만 싸우라고 병거의 지휘관 32명에게 명령을 하였습니다. 병거란 고대 전쟁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였습니다. 아람 왕이 왜 이렇게 아합 왕만을 잡으라고 하였을까요? 왕 하나만 잡으면 전세는 기울어지기 때문에 그렇게 하였을 것입니다. 아람 왕의 명령을 받은 병거의 장관들이 왕복을 입고 있는 여호사밧을 보고 이스라엘의 왕이라고 생각하고 돌이켜 그를 잡고자 달려들었습니다. 이에 여호사밧이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러자 병거의 장관들이 여호사밧이 이스라엘의 왕이 아님을 알고 그를 쫓기를 그치고 돌이켰습니다.

 

그런데 34-35절을 보면 “한 사람이 우연히 활을 당기어 이스라엘 왕의 갑옷 솔기를 쏜지라. 왕이 그 병거 모는 자에게 이르되 내가 부상하였으니 네 손을 돌이켜 나로 군중에서 나가게 하라 하였으나 이 날에 전쟁이 맹렬하였으므로 왕이 병거 가운데 붙들려 서서 아람 사람을 막다가 저녁에 이르러 죽었는데 상처의 피가 흘러 병거 바닥에 고였더라”고 했습니다. 아람의 병사 중에 한 사람이 우연히 활을 당기어 쐈는데 그 화살이 아합의 갑옷 솔기를 뚫고 박혔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우연히’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활을 쏘는 사람이 아합이 이스라엘의 왕임을 알고 그를 겨냥해서 쏜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냥 적을 향해 쐈는데 아합 왕이 그 화살에 맞은 것입니다. 아합 왕을 노리고 공격한 아람 왕이 보낸 32명의 병거 지휘관들도 잡지 못한 아합을 우연히 쏜 어떤 병사의 화살에 맞아 아합이 죽은 것입니다. 전쟁에서 우연히 화살을 쏘거나 무심코 쏘는 자들은 없습니다. 그냥 적을 향하여 쏜 것입니다. 그런데 그 화살이 정확하게 아합에게로 날아가서 그의 갑옷 솔기 사이로 파고들어 부상을 입힌 것입니다. 아합은 자신의 병거를 모는 자에게 자신이 부상을 입었으니 빨리 군중에서 빠져 나가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싸움이 맹렬하였기 때문에 마음대로 후퇴 할 수도 없었습니다. 아합은 부상을 입은 채로 적을 막다가 병거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된 이 일이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아합에게 하신 심판의 말씀이 성취된 것입니다. 우연히 일어나는 일 조차도 하나님께서는 섭리하셔서 당신의 뜻을 이루신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우연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그 일에 종속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을 칼빈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이라고 합니다.

 

36절을 보면 “해가 질 즈음에 군중에서 외치는 소리 있어 가로되 각기 성읍으로, 각기 본향으로 하더라”고 했습니다. 해가 질 즈음에 진중에서 외치는 소리가 있었는데 그것은 ‘각기 성읍으로, 또는 각기 본향으로 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씀은 미가야 선지자가 예언한 말씀이 그대로 일어난 것을 말해 줍니다. 지난 시간에 본 열왕기상 22:17절을 보면 “저가 가로되 내가 보니 온 이스라엘이 목자 없는 양 같이 산에 흩어졌는데 여호와의 말씀이 이 무리가 주인이 없으니 각각 평안히 그 집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셨나이다”라고 했습니다. 미가야 선지자가 예언한 이 말씀이 그대로 성취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각기 성읍으로 곧 각기 본향으로 가라고 하는 이 말이 선포되는 것은 아합 왕이 죽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미가야의 예언만 아합에게 성취된 것이 아닙니다. 37-38절을 보면 “왕이 이미 죽으매 그 시체를 메어 사마리아에 이르러 거기 장사하니라. 그 병거를 사마리아 못에 씻으매 개들이 그 피를 핥았으니 여호와의 하신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 거기는 창기들의 목욕하는 곳이었더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아합 왕을 사마리아에 장사를 하고 그 병거를 사마리아 못에 씻었습니다. 그 때에 개들이 그 피를 핥았습니다. 이것은 엘리야 선지자가 나봇의 포도원을 취하려 가는 아합에게 한 여호와의 말씀이 그대로 성취된 것을 말해 줍니다. 열왕기상 21:19절을 보면 “너는 저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죽이고 또 빼앗았느냐 하셨다 하고 또 저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은 곳에서 개들이 네 피 곧 네 몸의 피도 핥으리라 하셨다 하라”고 했습니다. 엘리야의 이 말씀대로 그대로 일어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은 반드시 성취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두렵고 떨림으로 그의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오직 하나님의 말씀 곧 하나님의 언약을 따라 살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오늘 본문 39-40절을 보면 “아합의 남은 행적과 무릇 그 행한 일과 그 건축한 상아궁과 그 건축한 모든 성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아합이 그 열조와 함께 자매 그 아들 아하시야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고 했습니다. 아합은 온갖 우상숭배를 한 왕이었지만 이스라엘은 힘이 있는 나라였습니다. 아람과의 전쟁에서 두 번이나 대승한 것은 여호와의 이름을 알게 하시기 위한 여호와의 붙여 주심의 전쟁이었습니다. 아합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두 번이나 승리하였지만 그는 끝끝내 여호와가 어떤 분이신지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알도록 하시기 위하여 전쟁에 승리를 주셨는데 그는 오히려 그 힘으로 자신의 이름을 내고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궁들을 지었습니다. 사마리아에만 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스르엘에도 궁을 지었습니다. 이스르엘에 있는 별궁은 상아로 만든 궁이었습니다(39). 아합이 어느 정도로 부자였으면 상아로 궁을 만들었겠습니까? 그런데 이러한 일들이 다 왕의 역대 지략에 기록될 뿐이었습니다. 결국 그는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대로 죽어 개들이 그 피를 핥는 비참한 인생이었습니다. 자기 이름을 위하여 죽이고 빼앗은 자의 결국이 이러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무엇을 기준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과연 그러한가 하면서 말씀의 기준을 가지고 살아가고 계십니까? 아니면 나의 귀를 즐겁게 하고 나의 마음을 만족하게 하여 주는 식으로 말씀을 왜곡하는 방식으로 살아가고 계십니까? 우리에게 우연히 일어나는 일은 없습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우연한 일 같은 것도 다 우리 주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시는 도구들 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인생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해석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분명히 그 일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창세기 20:5-6절을 보면 “그가 나더러 이는 내 누이라고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 여인도 그는 내 오라비라 하였사오니 나는 온전한 마음과 깨끗한 손으로 이렇게 하였나이다. 하나님이 꿈에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온전한 마음으로 이렇게 한 줄을 나도 알았으므로 너를 막아 내게 범죄하지 않게 하였나니 여인에게 가까이 못하게 함이 이 까닭이니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바로 왕에게도 자기 아내를 여동생이라고 하여 팔아넘기더니 가나안 땅에서 아비멜렉 왕에게도 그런 짓을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바로 왕에게서도 사라를 건져주시고 아비멜렉에게서도 건져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비멜렉에게 그 여인 곧 사라에게 손을 대지 못하게 합니다. 그는 남편 있는 여자라고 하자 아비멜렉이 자신이 온전한 마음으로 그렇게 하였다고 합니다. 여기서 ‘온전한’이라는 단어가 오늘 본문의 ‘우연히’라는 단어와 같은 말입니다. 그러므로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예뻐서 아내로 취하고자 한 것이 우연히 그렇게 만나게 되었지만 하나님은 이 일을 통하여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아브라함에게 알게 하신 필연적인 사건이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우연’이나 ‘무심코’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온전함과 성실함이 됩니다.

 

룻기 2:3절에 보면 룻이 이삭을 줍는데 우연히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간 것입니다. 이것이 우연이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리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여기서의 ‘우연히’라는 말은 오늘 본문의 히브리어와는 다른 단어입니다만 원래의 단어 의미에 비추어보면 하나님의 완전하심과 성실하심입니다. 오늘 우리가 걷는 인생의 걸음들이 어떠한지 잘 모릅니다. 그러나 추후에 돌아보면 하나님께서 왜 그렇게 인도하셨는지를 알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키신 후에 블레셋 사람들의 길로 가면 가깝지만 광야 길로 돌아가게 하신 것은 그들이 전쟁을 보면 무서워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할까봐서 일부러 광야로 인도하신 것입니다(출 13:17). 이뿐 아니라 광야를 지나가게 하시면서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것을 배우게도 하십니다(신 8:3). 그러므로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무심코 인도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섭리로 인도하십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믿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예레미야 10:23절을 보면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인생의 길이 자기에게 있지 아니하니 걸음을 지도함이 걷는 자에게 있지 아니하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모이게 된 것은 누가 걸어서 왔습니까? 우리가 걸어서 혹은 운전해서 왔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사람의 길이 자신에게 있지 않다고 합니다. 걸음을 지도함이 걷는 자에게 있지 않다고 합니다. 우리의 걸음이 걸어지려면 수많은 근육과 뼈와 관절과 신경과 핏줄들이 유기적으로 움직여져야 합니다. 어느 한부분이 고장 나도 걸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잘 걸어 다니셨다면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또한 우리의 걸음들이 말씀을 듣게 되는 자리로 걷는 것도 주님이 허락하셔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안심이 되지 않습니까? 걸음이 나에게 달려 있다면 어쩔 뻔 했습니까? 우리의 발은 악을 행하는 데만 빠른 걸음들입니다(참조. 사 59:6, 롬 3:14). 그러므로 우리의 걸음을 걷는 대로 내 버려두시면 악으로 달려가는 길 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우리의 걸음들을 인도하셔서 진리로 가게 하시는 것은 우리에게 달려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우연히 만나게 된 것처럼 보이지만 복음이 들리고, 우리가 어떠한 죄인인지를 알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밝히 보여 지는 일은 결코 우리의 걸음에 달린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성도에게는 ‘우연히’ 또는 ‘무심코’라는 것이 없습니다. 모든 만물과 상황과 사건들이 이렇게 고집 센 우리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의 도구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상황에서 주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인도하여 가시는지 그 주님의 손길을 잘 분별하며 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우리는 말씀 가운데 깨어 있어야 합니다. 기도 가운데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예민하게 느껴야 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 인생의 모든 것을 섭리하셔서 당신의 뜻을 이루어 가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우리에게 허락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오직 이 여호와 하나님만을 믿고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이켜서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을 따라 사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멸망의 자식들이 되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의 언약적 축복에 참예하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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