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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왕하 2:12-18
강설날짜 2017-07-19

2017년 열왕기하 공부

엘리사가 엘리야의 직분을 승계하다

말씀:열왕기하 2:12-18

 

오늘도 우리는 지난 시간에 이어서 열왕기하 2장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엘리사가 엘리야의 직분을 승계 받는 사건입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살펴보는 가운데 이 말씀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계시가 무엇인지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회리바람으로 하늘로 데리고 가시는 것을 봤습니다(1-11). 여호와께서는 엘리야로 하여금 죽음을 맛보지 않고 회리바람을 타고 곧바로 승천하도록 하셨습니다. 이 사건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사건은 예수님의 일을 예표하고 있습니다. 엘리야의 승천으로 인하여 엘리사에게 성령이 임하여 하나님의 일을 하듯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심으로 말미암아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한 것입니다.

 

그런데 엘리야가 회리바람을 타고 하늘로 승천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엘리사가 엘리야의 직분을 승계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엘리야의 직분이 엘리사에게 어떻게 승계 되는지 그 승계되는 과정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지난 시간에 우리는 엘리사가 엘리야의 영감이 자신에게 갑절이나 더 있기를 원한다고 하는 것을 봤습니다. 열왕기하 2:9절을 보면 “건너매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나를 네게서 취하시기 전에 내가 네게 어떻게 할 것을 구하라. 엘리사가 가로되 당신의 영감이 갑절이나 내게 있기를 구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 말을 오해합니다. 엘리야의 능력보다 두 배나 많은 능력을 구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이 말씀에 기초해서 엘리야보다 두 배나 더 많은 영력을 자신에게 주시도록 기도합니다. 그러나 이 말은 단지 능력이 배나 있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엘리야가 간 그 고난의 길을 가는 것임을 우리는 지난 시간에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엘리사가 엘리야의 영감을 갑절이나 구한 의미를 곡해해서는 안 됩니다. 오늘날 우리도 엘리야가 간 그 고난의 길을 가고자 한 엘리사와 같이 주님이 가신 고난의 길을 가고자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오늘 본문 말씀을 보겠습니다. 오늘 본문 12-14절 말씀을 보면 “엘리사가 보고 소리지르되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그 마병이여 하더니 다시 보이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엘리사가 자기의 옷을 잡아 둘에 찢고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겉옷을 주워가지고 돌아와서 요단 언덕에 서서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그 겉옷을 가지고 물을 치며 가로되 엘리야의 하나님 여호와는 어디 계시니이까 하고 저도 물을 치매 물이 이리 저리 갈라지고 엘리사가 건너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회리바람으로 데리고 가시자 엘리사가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그 마병이여!”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엘리사가 왜 엘리야를 내 아버지로,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으로 부르는 것입니까? 사실 엘리야가 이스라엘의 아버지와 병거와 마병이 아닙니다. 엘리야의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아버지와 병거와 마병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여기서 엘리사가 엘리야를 이스라엘의 아버지와 병거와 마병으로 부르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것은 엘리야를 그의 영적인 아버지로 고백한 것입니다. 종들이 자신의 주인을 ‘아버지’라고 부르거나(왕하 5:13), 젊은 선지자 생도들이 존경심에서 나이든 선배 선지자들을 ‘아버지’로 부르는 것은 흔히 있었던 일입니다(왕하 6:21, 13:14). 하지만 엘리사의 이 말은 단지 존경심의 차원을 떠나서 자신을 엘리야의 특별한 양자 삼은 아들로 간주하고 장자로서 갑절의 영력 곧 엘리야가 간 고난을 길을 가겠다고 요청하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즉 엘리사는 엘리야의 승천 장면을 목도함으로써 자신의 요청이 하나님으로부터 응락된 사실을 알고 감사의 외침을 부른 것입니다.

 

한편 엘리사가 엘리야를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라고 부른 것은 엘리야가 이스라엘을 지키는 그 당시 최고의 무기인 병거와 마병과 같은 능력의 소유자였음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열왕기하 13장에도 보면 엘리사가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에 이스라엘의 왕 요하스가 엘리사와 똑같은 말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열왕기하 13:14절을 보면 “엘리사가 죽을 병이 들매 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저에게로 내려가서 그 얼굴에 눈물을 흘리며 가로되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 하매”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엘리야가 회리바람을 타고 승천할 때 엘리사가 부르짖은 것과 같이 엘리사가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에 이스라엘의 왕 요아스가 엘리사와 똑같이 눈물을 흘리며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라고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요하스가 왜 이렇게 부르고 있는 것입니까? 물론 엘리야와 엘리사가 이스라엘에 있음으로 인하여 적들이 어떻게 쳐들어오는지를 미리 알고 방비한 것도 있고 적들이 쳐들어 왔을 때에 그들의 눈을 멀게 하여 사로잡게 한 일도 있지만 엘리야와 엘리사만 보이고 엘리야와 엘리사의 하나님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오늘 본문 12-14절 말씀을 보면 엘리사가 엘리야가 하늘로 올라감을 보고 “나의 아버지여 나의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라고 부르지만 이제 엘리사의 눈앞에서 엘리야는 사라지고 그의 겉옷만 남겨졌습니다. 그 때 엘리사는 자기의 겉옷을 찢어버리고 엘리야의 겉옷을 들고 요단강에 섰습니다. 엘리사가 자기 옷을 둘로 찢었다는 것은 그가 극도로 슬픔에 잠겼음을 의미합니다. 히브리 관습 가운데 옷을 찢거나 재를 뒤짚어 쓰거나 얼굴과 가슴을 치거나 앞 정수리 머리카락을 미는 것은 극도의 슬픔을 표시하는 행동들이었습니다. 엘리사에게 있어서 이스라엘의 아버지요, 병거와 마병과 같은 엘리야가 자기 곁을 떠났다는 것은 그로 하여금 깊은 절망과 비통에 빠지게 하였던 것입니다. 하여튼 엘리사는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겉옷을 주어 가지고 요단강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엘리사가 엘리야의 떨어진 옷을 주운 것은 마치 엘리사가 엘리야에 의해 부르심을 받았을 때를 연상시킵니다. 열왕기상 19:19절에 보면 엘리야가 엘리사를 부를 때 그의 겉옷을 벗어서 엘리사에게 던졌습니다. 그때 엘리사가 엘리야의 부르심에 즉각 순종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엘리사가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옷을 주어 요단으로 돌아왔다는 것은 엘리사의 요구가 성취되었음을 보증하는 것이요, 엘리야의 계승자가 되었음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엘리사는 요단강을 건너서 승천하여 버린 엘리야의 사역을 이어 받아서 이제 다시 요단강을 건너서 이스라엘로 돌아와야 합니다. 그런데 엘리사가 요단강 앞에서 어떻게 합니까? 14절을 다시 보면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그 겉옷을 가지고 물을 치며 가로되 엘리야의 하나님 여호와는 어디 계시니이까 하고 저도 물을 치매 물이 이리 저리 갈라지고 엘리사가 건너니라”고 했습니다. 엘리사는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겉옷을 가지고 물을 치며 “엘리야의 하나님 여호와는 어디에 계십니까?”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때 놀랍게도 요단강이 갈라지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엘리야가 건넌 모습 그대로 엘리사도 그 갈라진 요단강을 건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놀라운 사건은 무엇을 말해 주는 것입니까? 드디어 엘리야의 하나님이 엘리사와 함께 하시는 표가 되는 것입니다. 엘리사가 엘리야의 직분을 승계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그런데 엘리사가 엘리야의 직분을 승계하지만 이것은 엘리야의 능력도 엘리사의 능력도 아닌 엘리야와 엘리사의 하나님의 능력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 15절 말씀을 보면 “맞은편 여리고에 있는 선지자의 생도들이 저를 보며 말하기를 엘리야의 영감이 엘리사의 위에 머물렀다 하고 가서 저를 영접하여 그 앞에서 땅에 엎드리고”라고 합니다. 여리고의 선지자의 생도들이 엘리야와 같이 요단강을 가르고 건너오는 엘리사를 보고 엘리야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엘리사 위에 머물렀다고 하면서 그에게 나아가 땅에 엎드려 절을 하였습니다. 물론 이들이 엘리사에게 나아가 땅에 엎드린 것은 엘리사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엘리사 앞에 나아와 엎드린 것은 하나님의 능력 앞에 엎드린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사도행전 3장에 보면 베드로가 성전 미문에서 날 때부터 앉은뱅이 된 자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일으키자 사람들이 그를 주목하여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때 베드로가 하는 말이 무엇이었습니까? 사도행전 3:12절을 보면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기이히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라고 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자기를 주목하는 자들에게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기이히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고 하면서 적극적으로 자기를 부인하였습니다. 그리고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운 것이 자신들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였습니다.

 

또 사도행전 10장에 보면 고넬료와 그 가족들이 베드로에게 엎드려 절할 때에 “나도 사람이다”고 하면서 적극적으로 만류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행 10:26). 사도행전 14장에서는 바울과 바나바가 루스드라에서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우자 그 동네 사람들이 신이 현현하였다고 하면서 소를 끌고 와서 제사를 드리려고 할 때에 바울은 옷을 찢고 소리를 지르며 “우리도 당신들과 성정이 같은 사람이라고 하면서 이런 일을 하지 말고 살아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하였습니다(행 14:14-15). 그렇습니다. 정말 성령이 임하여 복음을 승계하여 전하는 자들에게는 반드시 이와 같은 자기 부인이 나오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선지자의 생도들이 엘리사의 표적을 보고 그 앞에 나아와 엎드렸지만 그들 마음 속에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엘리야를 찾아 나서겠다고 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 16-18절을 보면 “가로되 당신의 종들에게 용사 오십인이 있으니 청컨대 저희로 가서 당신의 주를 찾게 하소서. 염려컨대 여호와의 신이 저를 들어 가다가 어느 산에나 어느 골짜기에 던지셨을까 하나이다. 엘리사가 가로되 보내지 말라 하나 무리가 저로 부끄러워하도록 강청하매 보내라 한지라. 저희가 오십인을 보내었더니 사흘을 찾되 발견하지 못하고 엘리사가 여리고에 머무는 중에 무리가 저에게 돌아오니 엘리사가 저희에게 이르되 내가 가지 말라고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였느냐 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선지자의 생도들이 엘리사에게 나아와 자신들에게 오십 명의 용감한 사람이 있으니 이들을 보내어 엘리야를 찾아보겠다고 합니다. 이들이 말하기를 성령께서 그를 이끌어 어느 골짜기에 던졌으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하는 것입니다. 이들의 이와 같은 행동은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데리고 승천하는 것을 목도했지만 엘리야의 온전한 승천을 믿지 못했음을 말해 줍니다. 이들은 회리바람 가운데 하나님께서 엘리야의 영혼은 취해 가셨지만 그의 육신은 공중에서 어느 정도 올라간 후 필연적으로 땅에 떨어진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땅에 떨어져서 어딘 가에 있을 엘리야의 육신을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떠난 선생에 대한 마지막 경의를 표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17절에 보면 엘리사가 보내지 말라고 하여도 그들은 엘리사가 부끄러워할 정도로 막무가내로 강청을 합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엘리사가 허락을 합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오십인을 보내어 사흘 동안 찾았지만 찾지 못하고 그냥 돌아왔습니다. 이런 그들에게 엘리사는 “내가 가지 말라고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였느냐”고 합니다. 선지자의 생도들은 엘리사 앞에 무릎을 꿇었지만 엘리사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엘리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한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선지자의 생도들의 모습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지 못하고 산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는 제자들의 모습과 마찬가지입니다. 누가복음 24:1-5절을 보면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이 여자들이 그 예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가서 돌이 무덤에서 굴려 옮기운 것을 보고 들어가니 주 예수의 시체가 뵈지 아니하더라. 이를 인하여 근심할 때에 문득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곁에 섰는지라. 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두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삼일 만에 부활하실 것을 제자들에게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아무도 예수님의 이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표적과 기적 앞에서는 사람들이 예수님 앞에 엎드려 절하며 임금을 삼으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막상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에 묻히시니 아무도 그의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 사랑하는 여인들도 이른 새벽에 예수님의 시체에 향유를 발라 드리기 위해 왔지만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였습니다. 이것은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므로 천사가 “왜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고 하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살아계신 주님을 어디에서 찾습니까? 표적과 기적에서 찾습니까? 아니면 능력을 행한다는 주의 종들에게서 찾습니까? 바울 사도가 두려워 떨었던 이유는 자신이 전하는 복음이 사람의 말과 지혜에 기초할까 두려워한 것입니다. 그의 복음이 오직 성령의 나타남으로 증거 되기를 두렵고 떨림으로 전하였다고 합니다. 고린도전서 2:1-5절을 보면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가 여기서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고 한 것은 우리의 믿음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다 이루심을 바라보게 합니다. 이 복음이 땅 끝까지 증거 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성령의 능력을 힘입게 하시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 말씀에 순종하여 살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믿는 믿음을 허락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십자가 복음을 증거 하는 삶을 살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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