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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말 3:7-12
성경본문내용 (7)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 열조의 날로부터 너희가 나의 규례를 떠나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런즉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하였더니 너희가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 하도다(8)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9)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10)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11)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12)너희 땅이 아름다와지므로 열방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강설날짜 2012-02-29

2012년 말라기 공부


내게로 돌아오라!


말씀:말라기 3:7-12

 

오늘도 계속해서 말라기서 3장을 공부하겠습니다. 3:1-6절 말씀은 “공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2:17)고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답변입니다. 2:17절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께 ‘공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며 항의 합니다. 이런 그들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3:1-6절 말씀에서 언약의 사자가 임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언약의 사자가 임하여 심판하리라고 하셨습니다. 특히 5절에 보면 “내가 심판하러 너희에게 임할 것이라. 술수하는 자에게와 간음하는 자에게와 거짓 맹세하는 자에게와 품군의 삯에 대하여 억울케 하며 과부와 고아를 압제하며 나그네를 억울케 하며 나를 경외치 아니하는 자들에게 속히 증거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했습니다. 공의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며 대적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언약의 사자를 보내어 심판하시겠다고 경고하신 하나님께서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이제 “내게로 돌아오라”고 하십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고 약속하십니다(3:7).

 

7절에 보면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 열조의 날로부터 너희가 나의 규례를 떠나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런즉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하였더니. 너희가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 하는도다”라고 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 열조의 날로부터 나의 규례를 떠나 지키지 않았다”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 전체의 상태가 어떠한지를 드러내는 말씀입니다. 조상 때로부터 지금까지 계속하여 하나님의 규례를 지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전체를 보아도 이스라엘이 언제 제대로 하나님의 규례를 지켜본 적이 없습니다. 물론 잠시잠간 회개하고 돌이키기도 하지만 그런 것은 언제나 잠간이고 곧 거역하는 것이 이스라엘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런 이스라엘에게 이제 자신에게로 돌아오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는 것입니까?”라고 질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이 답변이 정말로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를 원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대답해온 것처럼 ‘너희가 나를 멸시하였다’고 하면, ‘우리가 언제 멸시하였습니까?’하는 식의 대답인 것입니다. 곧 ‘내게로 돌아오라’고 하시자 ‘우리가 언제 하나님을 떠났습니까?’하는 것입니다. 이런 답변이 나오는 것은 자기들은 돌아와 있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서 그들은 성전을 재건하였습니다. 그러자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날 것이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소망하면서 제사도 드리고 절기도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고대하던 하나님의 영광은 나타나지 아니하고 계속하여 어려움만 가중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서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사는 형식화 되어버렸고, 심지어 눈 멀고, 병들고, 저는 것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멸시하는 행위입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여호와를 멸시하는 것이 아니라고 여기고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그들은 여호와를 떠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그들을 향하여 하나님께서 돌아오라고 하자 ‘언제 우리가 당신을 떠났습니까? 돌아오라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하며 조롱조로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그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8-12절을 보면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너희 땅이 아름다와지므로 열방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했습니다. 말라기 선지자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 하고 있으면서도 ‘우리가 어떻게 도적질 하였나이까?’라고 묻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런 그들에게 구체적으로 어떻게 도적질하고 있는지 예를 들어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십일조와 헌물을 드리지 않는 것이 곧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 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일에 온 나라가 다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은 십일조와 헌물을 온전하게 드림으로 하나님의 집의 창고를 채우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을 통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주시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온전한 십일조와 헌물을 드리면 하나님께서 황충을 막아주시고 과일들이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고 그 땅이 아름다워지므로 열방이 복되다고 합니다. 그러나 지금 이스라엘이 그런 복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온전한 십일조와 헌물을 드리지 않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왜 온전한 십일조와 헌물이 드려져야 합니까? 십일조가 무엇입니까? 창세기 14:17-20절을 보면 “아브람이 그돌라오멜과 그와 함께한 왕들을 파하고 돌아올 때에 소돔왕이 사웨 골짜기 곧 왕곡에 나와 그를 영접하였고 살렘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찌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고 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의 왕이 그돌라오멜을 반역하였다가 그돌라오멜의 연합군이 쳐들와서 아브람의 조카 롯까지 사로잡아 갔습니다. 이에 아브람이 318명의 군사를 데리고 가서 그들을 물리치고 사람과 재산을 다 찾아왔습니다. 그때에 아브람이 멜기세덱의 축복을 받습니다. 멜기세덱이 아브람을 축복한 내용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서 대적을 아브람의 손에 붙여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하라는 것입니다. 그때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드립니다. 아브람의 승리는 하나님께서 붙여주심으로 일어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일조를 통하여 무엇을 보여주는 것입니까? 자신의 승리가 하나님의 복을 받아서 일어난 것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을 받기 위한 십일조가 아니라 복을 받았기에 그 복의 통로가 하나님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십일조 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나타나는 십일조는 야곱이 형을 피하여 도망가다가 들판에서 잠을 자는데 그때 하나님께서 야곱에서 나타나셔서 언약을 주십니다. 야곱은 아버지와 형을 속이고서 도망가는 신세인데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약속을 주십니다. 창세기 28:10-22절을 보면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곳의 한 돌을 취하여 베개하고 거기 누워 자더니.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위에 섰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가 그 위에서 오르락 내리락하고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서 동서 남북에 편만할찌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찌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야곱이 잠이 깨어 가로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이에 두려워하여 가로되 두렵도다 이곳이여 다른 것이 아니라 이는 하나님의 전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야곱이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베개하였던 돌을 가져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이 성의 본 이름은 루스더라. 야곱이 서원하여 가로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사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사 나로 평안히 아비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도망가는 야곱에게 하늘과 땅에 연결된 사닥다리 사이로 천사가 오르락내리락 하는 꿈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약속하신 내용을 주시면서 야곱을 보호하여 주시겠다고 약속하여 주셨습니다. 그 약속을 받고 나서 야곱이 하나님께서 서원하면서 십일조를 드리겠다고 합니다. 이 사건에서도 보면 야곱 역시 복을 주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응답으로 십일조를 드리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십일조가 모세를 통한 율법에서 어떻게 드러나는 가하면 출애굽 할 때에 유월절 어린양의 희생을 기념하는 장치로서 십일조가 제정이 됩니다. 출애굽 한 이후 모든 짐승이나 사람이나 처음 난 것의 수컷을 거룩히 구별하여 여호와 하나님께 바치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나 각 지파의 맏아들을 대신하여 레위지파를 맏이로 대신하게 하십니다. 이때부터 각 지파는 모든 소산물의 십분의 일을 레위지파를 위하여 드리게 합니다. 레위지파의 특징은 그들의 땅이 없습니다. 그래서 십일조를 받아서 살지만 땅 없는 레위지파가 땅이 있는 다른 지파를 축복함으로 복을 받는 장치가 된 것입니다. 레위지파와 함께 땅이 없는 고아나 과부나 나그네도 십일조의 혜택을 받게 합니다. 그리고 매 3년마다 십일조를 더 하여 이들을 위하여 사용하게 합니다. 그러면 레위지파는 십일조를 받아서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고 또 그들이 생활합니다. 이들의 기능이란 제사를 통하여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화목을 이루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일조가 드려짐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주신다는 것을 알고 하나님을 믿고 살도록 하시는 장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레위지파가 제대로 된 제사를 드림을 통하여 우리가 이렇게 살아가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것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레위언약을 말라기 2:5절에서는 ‘생명과 평강의 언약’이라고 하였습니다. 생명과 평강이 레위와 세운 언약을 통하여 주어지는데 이 레위언약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파기한 것입니다. 온전한 십일조와 헌물을 드리지 않음으로 인하여 생명과 평강을 누릴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느헤미야서에도 나타납니다.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고 나서 레위지파를 제대로 정비하여 세우고 십일조를 드리게 합니다. 그러고 나서 바벨론에 다녀옵니다. 그러나 그 사이에 다시 레위인들에게 십일조가 드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느헤미야 13장에 보면 레위사람들이 그 직무를 행하지 않고 각각 그 전리로 도망 가버린 것입니다(느 13:10). 그래서 느헤미야는 레위인들을 다시 불러와서 정비하고서는 레위언약을 새롭게 하였으니 복을 달라고 기도합니다. 느헤미야 13:30-31절에 보면 “내가 이와 같이 저희로 이방 사람을 떠나게 하여 깨끗하게 하고 또 제사장과 레위 사람의 반열을 세워 각각 그 일을 맡게 하고 또 정한 기한에 나무와 처음 익은 것을 드리게 하였사오니 내 하나님이여 나를 기억하사 복을 주옵소서”라고 했습니다.

 

시간적인 순서상으로 보면 말라기보다 느헤미야가 먼저입니다. 느헤미야가 성벽을 재건하고 레위지파를 정비한 후 십일조를 제대로 드리게 하였지만 다시 제대로 십일조를 드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이 복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기에 온전한 십일조와 헌물을 하나님께 드려야 복을 받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십일조를 온전하게 드림으로 복을 받았습니까? 아니면 온전하게 드리지 못하였기에 복을 받지 못하였습니까? 이 문제는 신약까지 가 봐야 됩니다. 예수님께서 십일조에 대하여 말씀하신 내용이 마태복음 23장에 나옵니다. 마태복음 23:23절을 보면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찌니라”고 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이 말라기 선지자 이후로도 고생을 많이 하였습니다. 그런 고생을 하면서 왜 우리가 복을 받지 못할까를 연구한 것입니다. 구약 성경을 통하여 살펴보니 십일조를 제대로 하지 못하여 복을 받지 못한다는 말씀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철저하게 십일조를 하자는 운동이 일어난 것입니다. 물론 십일조만이 아니라 모든 율법을 철저하게 지켜서 하나님께 복을 받자는 것입니다. 그들이 바로 바리새인들 입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로 철저하게 십일조를 하는 것입니까? 텃밭에 가꾸는 향신료조차 십일조를 계산하여 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무엇을 빼 먹은 것입니까? 의와 인과 신은 버린 것입니다. 사실 이것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십일조를 철저하게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의로움과 인자와 믿음을 버려버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느 누구도 온전한 십일조를 드릴 자가 없다는 결론이 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온전한 십일조를 드림으로 복을 받으려고 하는 자는 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저주가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사람이 노력하여도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 3:10절 말씀을 보면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율법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를 받는데 한 가지 십일조를 잘한다고 해서 복을 받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더더구나 온전한 십일조란 더 중요한 의와 인과 신까지 갖추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지 못하는 저주를 예수님 자신이 온전한 십일조가 되셔서 대신 드려지는 것입니다.

 

레위지파가 모든 이스라엘 지파의 맏아들의 희생을 대신하였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레위와 맺은 언약입니다. 제사를 통하여 생명과 평강을 주시고자 하셨습니다. 그러나 구약의 제사로는 온전한 생명과 평강을 누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을 따른 레위지파와 다른 멜기세덱과 같은 별다른 한 제사장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것은 히브리서 7장에서 잘 증거 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7:11-19절을 보면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으면 (백성이 그 아래서 율법을 받았으니)어찌하여 아론의 반차를 좇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별다른 한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느뇨. 제사 직분이 변역한즉 율법도 반드시 변역하리니. 이것은 한 사람도 제단 일을 받들지 않는 다른 지파에 속한 자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 우리 주께서 유다로 좇아 나신 것이 분명하도다. 이 지파에는 모세가 제사장들에 관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없고 멜기세덱과 같은 별다른 한 제사장이 일어난 것을 보니 더욱 분명하도다. 그는 육체에 상관된 계명의 법을 좇지 아니하고 오직 무궁한 생명의 능력을 좇아 된 것이니. 증거하기를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이라 하였도다. 전엣 계명이 연약하며 무익하므로 폐하고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케 못할찌라)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고 했습니다.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별다른 한 제사장을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레위지파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7:1-10절에 보면 레위지파가 태어나기도 전에 즉 아브라함의 허리에 있을 때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친 것입니다.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십일조란 십일조를 바침으로 복을 받은 것이 아니라 이미 복을 받았기에 십일조를 통하여 복을 주시는 분이 누구신지를 증거 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복을 주시는 분이 누구라는 것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가 십일조를 해서 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십일조를 온전하게 완성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복을 받고 사는 것입니다. 이 복이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영원한 생명과 평강을 복으로 받는 것입니다. 레위와 세운 언약의 내용이 생명과 평강의 복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7:22-25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와 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 저희 제사장 된 자의 수효가 많은 것은 죽음을 인하여 항상 있지 못함이로되.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런 말씀을 들으면 무슨 생각이 드십니까? ‘그렇구나! 이제는 십일조를 안 해도 되겠구나!’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우리는 십일조를 율법을 따라 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제는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이 다 왕 같은 제사장이기에 레위지파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율법을 따라 십일조를 드리는 자들이 아니라 아예 성도 자신이 거룩한 제물이 되는 삶인 것입니다(롬 12:1). 그러므로 형제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것도 당연하고, 극심한 어려움 가운데서도 형제를 위하여 힘에 지나치도록 헌금하는 일도 가능하고, 자원함과 감사함으로 주를 섬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 헌금한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향기와 제물이 됩니다(빌 4:18). 그러므로 무슨 말을 하거나 무슨 봉사를 하거나 간에 모든 것이 다 온전한 십일조가 되시는 예수님의 공로로 주어지는 것을 믿는 사람들은 주께로 돌아온 자들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이러한 이 은혜를 우리에게도 주셔서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온 자가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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