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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고후 11:1-6
성경본문내용 (1)원컨대 너희는 나의 좀 어리석은 것을 용납하라 청컨대 나를 용납하라(2)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3)뱀이 그 간계로 이와를 미혹케 한 것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4)만일 누가 가서 우리의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5)내가 지극히 큰 사도들보다 부족한 것이 조금도 없는 줄 생각하노라(6)내가 비록 말에는 졸하나 지식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이것을 우리가 모든 사람 가운데서 모든 일로 너희에게 나타내었노라
강설날짜 2014-09-17

2014년 고린도후서 공부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말씀:고린도후서 11:1-6

 

오늘부터 우리는 고린도후서 11장 말씀을 공부 하고자 합니다. 고린도후서 11장은 소위 ‘어리석은 자의 연설’로 불리워집니다. 바울은 자기를 자랑하며 대적하는 자들에게 맞서 자기 자신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1절에 보면 “원하건대 너희는 나의 어리석은 것을 용납하라. 청하건대 나를 용납하라”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를 통해서 자신을 대적하는 자들의 자랑을 조롱하거나 우화함으로써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로서의 정당성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2절에 보면 바울은 자신을 중매쟁이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고 했습니다. 바울 서신들에 보면 바울은 자신을 소개할 때 여러 가지로 소개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을 그리스도의 사도로, 그리스도의 종으로, 그리스도의 향기로, 그리스도의 편지로 소개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서는 자신을 중매쟁이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자신을 중매장이로 소개하는 것은 복음 전도자로써 참으로 적절한 표현입니다. 왜냐하면 바울은 복음을 통해서 사람들을 신랑 되신 그리스도께 소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중매장이로 소개하는 신랑이 얼마나 멋지고 좋은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낸다고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열심이 어떠합니까? 하나님의 열심이 얼마나 대단한지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질투하시는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출애굽기 34:14절을 보면 “너는 다른 신에게 절하지 말라. 여호와는 질투라 이름 하는 질투의 하나님임이니라”고 했습니다. 또 신명기 4:24절을 보면 “네 하나님 여호와는 소멸하는 불이시요, 질투하는 하나님이시니라”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신명기 6:15절에서는 “너희 중에 계신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신즉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진노하사 너를 지면에서 멸절시키실까 두려워하노라”고 했습니다. 사랑에 질투가 없다면 참다운 사랑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바람을 피우는데도 아무런 질투가 없다면 그것이 사랑이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신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고 사랑하며 살아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늘 다른 곳에 마음을 두었습니다. 바알과 아세라를 좇아갔습니다. 이것을 성경은 우상숭배라고 하고, 음란이라고도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 이스라엘이 이렇게 다른데 마음을 둘 때에 부지런히 선지자를 보내셨습니다.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면 심판을 행하여서라도 곧 다른 나라에 포로가 되게 하셔서라도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섬기게 하셨습니다. 이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향한 당신의 열심을 나타내셨습니다. 이스라엘을 심판하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이 의지할 만한 다른 나라까지 심판을 하셔서라도 이스라엘이 다른 곳에 눈을 돌리지 못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열심을 우리는 자기 언약에 신실하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자기 언약에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자기 언약을 자기 열심으로 이루시는 것입니다(사 9:1-7).

 

호세아서 1:1-2:1절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호세아 선지자에게 고멜이라는 여인과 결혼을 하라고 합니다. 고멜은 처음부터 음란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께서는 호세아에게 이 여인과 결혼하여 음란한 자식을 낳으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이 여호와를 떠나 크게 음란하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여호와께서는 호세아 선지자의 이 결혼을 통하여 하나님의 심판과 사랑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호세아와 고멜 사이에서 자식을 낳게 되자 하나님께서는 이름을 짓게 하시는데, 그 이름들이 다 심판의 이름입니다. 호세아는 첫 아들을 낳아 ‘이스르엘’이라고 합니다. 곧 이스르엘 골짜기에서 이스라엘의 활을 꺾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딸을 낳게 되자 그 이름을 ‘로루하마’라고 합니다. ‘로’라는 말은 부정 접두어입니다. 그리고 ‘루하마’는 긍휼입니다. 그러므로 ‘로루하마’라는 이름은 긍휼을 입지 못한다는 이름입니다. 또 호세아는 아들을 낳았는데 그 이름을 ‘로암미’라고 합니다. 이는 ‘내 백성이 아니다’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심판을 행하신 후에 하나님께서는 다시 ‘암미’라 하고, ‘루하마’라 부르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심판을 행하신 후에 다시 회복시켜 주시는 것입니까? 호세아 2:19-20절을 보면 “내가 네게 장가들어 영원히 살되 의와 공변됨과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들며,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고 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 장가들어 영원히 살되 의와 공변됨과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장가든다는 것입니다. 온갖 음란한 죄를 다 지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런 사랑을 베푸심으로 여호와를 알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고 율법을 지키는 사람이라며 음란한데서 나지 않았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8:40-41절에 보면 “지금 하나님께 들은 진리를 너희에게 말한 사람인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아브라함은 이렇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너희는 너희 아비의 행사를 하는도다. 대답하되 우리가 음란한데서 나지 아니하였고 아버지는 한분 뿐이시니. 곧 하나님이시로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자신을 믿지 않는 유대인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너희가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하지만 아브라함은 이렇게 하지 않았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도 않고 믿지도 않는 것은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라서 그렇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이 자신들은 음란한 데서 나지 않았고, 자기들의 아버지는 하나님 한 분 뿐이라고 합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믿지 아니하는 그들을 보고서 마귀에게서 났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마귀에게서 난 증거이며, 그것이 음란한데서 난 자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아무리 정결한 처녀 총각이라고 하여도 예수님을 알지도 믿지도 못한 단군의 후손들이기에 더욱더 음란한 데서 난 자들입니다. 이런 이방인들을 한 남편인 그리스도의 정결한 신부로 드리려고 바울 사도가 하나님의 열심을 가지고 중매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의 이런 열심도 사실상 하나님의 열심인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미 아담의 모든 후손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다 죄인이고 다 더럽혀지고 다 음란한 자들인데 어떻게 정결한 처녀가 된다는 것입니까? 고린도후서 5:17절을 보면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 했습니다. 바로 앞의 말씀 고린도후서 5:16절에 보면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아무 사람도 육체대로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체대로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이같이 알지 아니하노라”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성도란 아무도 육체대로 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과거를 따라 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우리가 어떤 사람을 보고 평가할 때에 과거의 이력과 경력을 보고 평가합니다. 그러나 성도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새로운 피조물인 것입니다.

 

그러면 음란한데서 태어난 우리가 어떻게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입니까? 고린도 후서 5:14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고후 5:14). 호세아서에서 보았던 그 하나님의 은총과 긍휼이 예수 그리스도의 대신 죽으심 속에 나타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과거가 어떠하든 그 사람은 새 사람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정결한 신부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고 따랐던 사람들은 자신이 죄인임을 아는 자들이었습니다. 물론 병 고침을 받기 위하여 떡을 먹고 배불러서 기적을 보고서 따라온 자들이 대부분 이었지만 그러나 예수님께서 친히 만나주신 병자들과 세리와 창기들은 자신들이 죄인임을 아는 자들이었습니다. 유대 사회에서 병자들은 죄인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니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자신들이 죄인이라고 여기며 살았던 것입니다. 세리도 창기도 자타가 공인하는 죄인들로 취급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보다 먼저 천국에 들어간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천국은 자기 의로 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가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인간들이 스스로 만든 의란 누더기와 같은 것입니다. 이사야 64:6절을 보면 “대저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쇠패함이 잎사귀 같으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 가나이다”라고 했습니다. 또한 인간의 의란 독사의 독과 거미줄로 짠 옷을 입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사야 59:5-8절을 보면 “독사의 알을 품으며 거미줄을 짜나니. 그 알을 먹는 자는 죽을 것이요, 그 알이 밟힌즉 터져서 독사가 나올 것이니라. 그 짠 것으로는 옷을 이룰 수 없을 것이요, 그 행위로는 자기를 가리울 수 없을 것이며, 그 행위는 죄악의 행위라. 그 손에는 강포한 행습이 있으며, 그 발은 행악하기에 빠르고 무죄한 피를 흘리기에 신속하며, 그 사상은 죄악의 사상이라. 황폐와 파멸이 그 길에 끼쳐졌으며, 그들은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며 그들의 행하는 곳에는 공의가 없으며, 굽은 길을 스스로 만드나니 무릇 이 길을 밟는 자는 평강을 알지 못하느니라”고 했습니다. 독사의 독이나 거미줄로 옷을 만들지도 못하지만 만들어서 입는다고 해도 그것이 결코 의가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결한 처녀가 되어 한 남편인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안에서만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은혜에서 끊어지게 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마치 에덴동산에서 뱀이 하와를 유혹한 것처럼 오늘날 성도를 유혹하는 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3절을 보면 “뱀이 그 간계로 이와를 미혹케 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고 했습니다. 뱀의 미혹으로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그 남편에게도 주었습니다(창 2장). 그때부터 인간은 스스로 선악을 챙기며 살게 된 것입니다. 선과 악이 동시에 들어왔기에 갈등이 생기는 것입니다. 선을 행하기 원하지만 또한 하나의 악이 자기를 잡아당기는 것입니다.

 

로마서 7:18-23절을 보면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롬 7:18-23). 바울은 선을 행하기 원하는 자신에게 악이 함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인생의 딜레마입니다. 이 딜레마 속에서 모든 인간은 자신의 선으로 악을 이겨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사망의 몸인 것입니다. 아무리 선을 쌓아서 악을 상쇄시켜 보려고 해도 이미 노력 하는 그 자체가 범죄한 후의 노력인 것입니다. 그러니 아무리 죽도록 선행을 하여도 그 속에서 악이 더 강하게 따라 붙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된 상태에서 인간들이 스스로 정리하여 내린 진리관은 어떤 것이겠습니까? 비록 죄를 안 지을 수는 없지만 그러나 죄를 짓지 않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여 노력하는 나를 가상히 봐 줄 것이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선을 행하기 위해 힘쓰고 최선을 다 하는 자신을 지옥에야 보내겠는가 하는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만약 이러한 나의 갸륵한 정성을 받아 주지 않는 신이라면 그 신이 잘못된 것이라고 여기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선악과를 따 먹고 난 이후의 인간들의 실상인 것입니다. 이런 상태에서 무슨 정결함이 나오겠습니까? 다시 말씀드리지만 음란한 것이란 남녀의 성적인 관계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전적으로 사랑하지 않는 것이 음란한 것입니다. 세상이나 세상에 속한 것을 사랑하고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 다 음란인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정결한 신부가 된다고 하였습니까?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정결한 신부가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어느 정도로 정결하게 됩니까? 에베소서 5:26-27절을 보면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신다고 합니다.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신다고 합니다. 이 말씀은 남편과 아내에 대한 말씀으로 교회와 그리스도에 대한 비밀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신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란 성도가 교회인 것입니다. 교회에 이 멋진 신랑을 소개하는 것이 바로 바울의 일인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의 시각으로 보면 신랑 되시는 예수님의 소개가 어떠하겠습니까? 직업은 목수 하다가 지금은 실직자요, 학력은 무 학력에 가정형편은 가난한 집안의 장남에, 재산은 전세방도 하나 없으며, 외모는 마른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습니다. 세상의 시각으로 보면 예수님을 이런 이력으로 소개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예수님을 소개하면 중매쟁이가 받을 대접이 무엇이겠습니까? 중매 잘 서면 술이 석 잔이요, 잘못 서면 뺨이 석 대라는 말이 있습니다. 술 석 잔은 커녕 뺨만 맞을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가는 곳마다 매 맞고 쫓겨 다닌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중매한 신랑이 형편없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나를 뭐로 보고 그런 신랑을 소개하는가 하면서 죽이려고 덤벼들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창녀이고, 자신이 죄인이고, 장애인이고, 결혼은 꿈도 못 꾸는 그런 사람에게는 그래도 이 신랑이 얼마나 멋지고 좋은 신랑입니까? 그러나 오늘날 같으면 이런 신랑 소게 해 주면 어떻게 말할까요? 멋진 신랑은 무슨 멋진 신랑, 차라리 결혼 안하고 살겠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멸망 받은 사람들에게는 미련하게 보이고 구원받은 자에게는 능력으로 보이는 것입니다(고전 1:18).

 

그렇다면 오늘날 저와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세상에서 아무런 힘과 도움도 주지 못하는 예수님을 우리의 영원한 신랑으로 맞이하시겠습니까? 세상적으로 보면 아무도 이런 신랑을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마치 하와가 미혹을 받은 것처럼 지금 고린도 교회 교인들이, 아니 오늘날 우리들의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마음에서 떠나 부패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우리가 세상의 외모를 자랑하는 자들의 유혹에 넘어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4절을 보면 바울 사도는 “만일 누가 가서 우리의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라고 책망을 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을 소개합니다. 5-6절을 보면 “내가 지극히 큰 사도들보다 부족한 것이 조금도 없는 줄 생각하노라. 내가 비록 말에는 졸하나 지식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이것을 우리가 모든 사람 가운데서 모든 일로 너희에게 나타내었노라”고 합니다. 오늘날의 미혹은 바울이 전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자들을 잘 분별하여 속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영원한 신랑은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세상의 영광을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와 함께 죽으면 그와 함께 사는 것입니다. 그 안에 완벽한 죄 사함이 있습니다. 영원한 용서가 있습니다. 흠도 티도 없는 정결한 신부로 세우시는 능력이 그 십자가 보혈 안에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어린 양의 혼인 잔치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9:9-10절을 보면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 내가 그 발 앞에 엎드려 경배하려 하니. 그가 나더러 말하기를 나는 너와 및 예수의 증거를 받은 네 형제들과 같이 된 종이니. 삼가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예수의 증거는 대언의 영이라 하더라”고 했습니다.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참된 신랑임을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참된 신랑 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그의 혼인 잔치에 참예하는 복된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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