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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골 3:1-4

2008년 골로새서 공부
                                                     위엣 것을 찾으라
말씀:골로새서 3:1-4

 

우리는 이제까지 십자가로 승리하였음을 배웠습니다. 또한 의문의 묵은 것, 곧 율법은 육신을 좇는 것을 금하는 일에 조금도 유익이 없음을 배웠습니다. 이제 3장부터는 십자가로 승리한 성도들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를 말씀해 줍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위엣 것을 찾으라’고 합니다. 오늘날 이 시대는 땅의 것을 추구하는 시대입니다. 돈을 추구하고, 명예를 추구하고, 쾌락을 추구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부동산 투기를 하고, 학벌을 위조하고, 원조 교제를 합니다. 이런 시대 가운데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생명의 말씀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말씀이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평생의 좌우명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렇게 말하면 왜 땅의 것이 중요하지 않는 것처럼 자꾸만 그렇게 말하느냐고 하시겠지만 그러나 우리의 본성이 땅의 것을 추구하고 살기에 그것은 말하지 않아도 너무나도 다들 잘 알아서 땅의 것을 찾고 사는 것입니다. 이것은 너무나 강력한 본능입니다. 그래서 위엣 것을 찾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위엣 것을 찾으라’고 할 때 이 말씀을 오해하면 안 됩니다. 가끔 보면 너무 영적인 사람들이 위엣 것을 찾으라고 하셨기 때문에 이 세상의 모든 일을 터부시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신령하고 영적인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잘 못된 생각입니다. 여기서 위엣 것을 찾으라고 할 때 가정생활도 하지 말고, 직장생활도 하지 말라고, 공부도 하지 말라는 그런 말이 아닙니다. 그래서 위엣 것을 찾으라는 말씀 뒤에 연이어 위에 것을 찾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가정생활을 해야 하는지, 직장생활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는 말씀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3:18절 이하에 보면 남편과 아내와 자녀와 아비와 종들과 상전에 대하여, 곧 이들이 어떻게 생활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위엣 것을 찾으라는 말씀은 몽상가처럼 뜬 구름 찾듯이 위를 보라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가정생활을 하든지, 직장생활을 하든지, 학교생활을 하든지 간에 우리의 영원한 생명이 어디에 속하여 있는지를 늘 생각하면서 살라는 것입니다.

 

1절을 보면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고 합니다. 여기서 ‘그러므로’라는 접속사는 앞부분 전체를 받고 있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1-2장에서 배운 말씀 중에 중요한 몇 구절만 보겠습니다. 2:6절에 보면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다’고 합니다. 이것은 내가 살아서 주체적으로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모셔 들였다는 것이 아닙니다. 2:13절에 보면 ‘너희의 범죄와 육체의 무 할례로 죽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죽어 있는 자가 어떻게 스스로 예수님을 믿을 수가 있겠습니까? 따라서 여기서 ‘예수님을 주로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에 우리를 넣어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은 혼자만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과 함께 죽고, 함께 부활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늘 바르게 생각하고 이해해야 합니다.

 

만약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이 예수님 혼자만의 죽으심과 부활이라면 우리는 아무런 소망이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이 우리와 아무런 상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 우리와 상관이 없다는 것은 우리가 예수님과 상관이 없다는 말이며, 예수님과 상관이 없다는 말은 우리에게 구원이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이 혼자만의 죽으심과 부활이 아니라 하나님의 택하신 자기 백성들과 함께한 죽으심과 부활임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택한 자기 백성들을 그 가운데 넣어 주셨습니다. 곧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자기 백성들을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에 함께 넣어 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구속역사의 신비한 비밀이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에 하나님께서 어떻게 자기 백성을 넣어 주신 것입니까? 세례라는 방식으로 넣어주신 것입니다. 세례란 무엇입니까? 골로새서 2:12절을 보면 세례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또한 로마서 6:1-11절을 보면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그가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가 살아 계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계심이니.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바로 세례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묶여 버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례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연합되어서 함께 죽고 함께 부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으로부터 온 성령이 임하게 되면 자기 백성들은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믿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다시 살리심을 받은 것이며, 위로부터 거듭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시 살리심을 받은 사람만이 위엣 것을 찾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시 살리심, 곧 위로부터 거듭나지 못하였다면 아무리 위엣 것을 찾으라고 하여도 엉뚱한 것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위에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그 내용물들이 다 땅에 있는 것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흔히 사람들이 하는 말이 하늘에서 돈벼락이라도 맞았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위에서 무언가 복이 쏟아지기를 원하는데 그것들이 다 땅의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설교를 하고 있는 저 자신도 돈이 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수시로 일어납니다. 복권에 수십억이 당첨되었으면, 돈 가방을 주었으면 하는 생각을 가끔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실존입니다. 이러다가 불현듯 말씀이 생각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이 ‘위엣 것을 찾으라’는 말씀인데, 이런 사건을 통하여 내가 얼마나 위엣 것을 찾지 않고 땅에 것을 추구하며 사는지를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머리 둘 곳도 없었다는데, 믿음의 사람들은 이 땅에서 나그네와 외국인으로 살았다는데 하는 말씀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내가 스스로 위엣 것을 찾아 나설 능력이 없기에 주님께서 위엣 것을 생각할 수밖에 없도록 조치를 하셨구나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내가 평소에 생각하는 대로 되었다면 위엣 것을 찾을 사람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는 본성적으로 위엣 것을 추구하지 않고 땅에 것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자들입니다.

 

우리가 언제 하늘을 쳐다봅니까? 땅에서 모든 일이 잘 될 때 쳐다보지 않습니다. 땅의 소망과 기대가 끊어질 때, 농사짓는 사람들은 비가 오지 않을 때 하늘을 쳐다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은 사람이라면 하늘을 쳐다볼 때 무엇을 생각하겠습니까? 제비가 박 씨를 물고 오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공중의 새도 하나님께 먹이시고 입히시는 것을 보고 믿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시고 붙들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모든 말씀은 다시 살리심을 받은 사람만 알아들을 수 있는 말씀입니다.

 

다시 살리심을 받았다면 또 어떤 특징이 있습니까? 신령한 젖인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게 됩니다. 베드로전서 2:1-3절을 보면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고 했습니다. 버릴 것과 추구할 것을 말씀하시는데 여기서 다시 살리심을 받았다는 말과 평행이 되는 말씀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입니다.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다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관심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다면 위엣 것을 찾게 되는데, 위엣 것이란 우리의 상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에 의하여 주어진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 약속의 결정체가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시기에 위엣 것을 찾으라고 하는 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찾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찾는 다는 것은 다시 살리심을 받은 사람만이 가능한 일이며, 찾는 다는 것은 다른 말로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2절을 보면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지 말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말씀과 늘 거꾸로 살아갑니다. 내가 주와 복음을 위해 헌신하고 충성하면 하나님께서 복 주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곧 이 땅에서도 잘 되고 복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위엣 것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땅의 것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 뿐만 아니라 우리는 본성적으로 위엣 것을 생각하기보다 땅의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위엣 것을 찾고 생각하는 것도 다시 살리심을 받은 자에게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다시 살리심을 받은 자라면 주님께서 자기의 몸이기에 가만히 두시지 않으시고 우리를 흔들어서라도 위엣 것을 찾고 생각하도록 조치를 하시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보면 소위 ‘탕자 비유’의 말씀이 있습니다. 어느 큰 부자가 있었는데 그에게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작은 아들이 아버지께 와서 자신의 유산을 달라고 합니다. 살아생전에 유산을 달라고 하니 이런 불효자식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러나 아버지는 유산을 줍니다. 유산을 다 날려버릴 것을 알고도 주신 것이라고 봅니다. 그 아들은 유산을 몽땅 현찰로 바꾸어 외국으로 사업하러 갔습니다. 그런데 사업이 잘 되겠습니까? 그는 아버지도 보지 않고 간섭하지도 않는 곳에서 유흥비로 다 날려버린 것입니다. 그때 마침 그 나라에 흉년이 들었습니다. 오늘날과 같이 취직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겨우 구한 곳이 돼지를 치는 곳입니다. 유대인들은 돼지를 부정한 짐승으로 여기는데 그 돼지를 치면서 돼지가 먹는 것을 먹으려고 해도 배부르게 주는 자가 없는 것입니다.

 

그때 아들이 어디를 보았을까요? 아마 고개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내 신세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를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다가 내 아버지 집에는 종들도 다들 배부르게 먹고 사는데 나는 이것이 무슨 신세냐!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어서 아들의 자격이 없지만 품꾼의 하나라도 여김을 받게 해달라고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아버지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이미 집 앞에서 아들이 오기를 기다리고 계신 것입니다. 물론 이 비유의 말씀은 집안에 있는 아들 곧 아버지께 잘 순종하는 것 같은 큰 아들에게 초점이 맞추어진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집에서 순종한 큰 아들과 대비하여 의인을 부르러 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즉 잃어버린 자를 찾으러 오셨다는 것입니다.

 

저는 여기서 누가 흉년이 들게 하였을까를 생각 해 보았습니다. 아버지는 하나님을 비유하기에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아들이 가서 장사하여 성공하겠다는 그 나라에 흉년이 들게 함으로 결국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오도록 조치하시는 것이 아버지의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저와 여러분이 다시 살리심을 받은 사람이라면 반드시 땅의 것을 생각지 말고 위엣 것을 생각하도록 조치를 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갈 때 믿었던 사람이 배신을 하고, 손해를 보고, 억울한 일을 당하고, 애매하게 고난을 받고, 온갖 어려움들이 닥칠 때 왜 내 인생이 이렇게 꼬이는가를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위엣 것을 찾게 하시는 사랑의 손길로 여겨야 합니다.

 

우리는 사소한 이익들로 인하여 이런 일을 당할 때에 왜 나에게 이런 어려움을 주는가 하면서 원망하지만 바울 사도는 복음을 전하는데도 우리와는 감히 비교할 수 없는 어려움을 당하였습니다. 고린도후서 1장에 보면 바울이 당한 고난은 자기의 욕심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다가 당한 고난입니다. 얼마나 심한 고난을 받았는지 살 소망 까지 끊어졌다고 합니다. 그런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무엇을 이루고자 하신 것입니까? 자기를 믿지 않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기 위하여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자기를 믿지 않는다는 것은 자기의 어떤 능력도 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2장의 말씀대로 하면 세상의 초등학문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금욕적인 행위도 믿지 않습니다. 의문에 속한 것을 지킨다고 하는 것도 믿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 모습들이 아무리 지혜롭게 보인다고 하여도 이런 것들은 육체를 좇는 것을 금하는 데에는 조금도 유익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것들을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땅의 것이라고 한다고 해서 세상이나 세상에 속한 것들만이 아니라 세상적인 방법으로 위엣 것을 추구하겠다는 것도 포함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위엣 것을 생각하고 위엣 것을 찾으라고 하시는 이 말씀의 성취는 다시 살리심을 받은 자에게 해당되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살리심을 받은 자는 우리가 영원히 거하여야 할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찾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3절을 보면 이렇게 하는 것은 “우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 사람들이 살았다고 하는 이 살아있음은 실상 죽은 것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만이 생명이 있는 사람입니다. 감추어져 있다는 것은 지금 성도들을 보면 세상에서 별 볼일 없어 보이기 때문에 감추어져 있어 보이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지상 사역과 그 결과를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얼마나 볼품이 없었으면 그 얼굴에 침을 뱉었을까요? 손바닥으로 얼굴을 때리고 온갖 모독을 다 하고 십자가에 죽였을까요? 그 분 안에 하나님의 생명이 있음을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러므로 땅의 것을 찾는 사람들의 눈에는 하늘의 생명이 보이지를 않는 것입니다. 이런 예수님의 보내심을 받은 사도들 역시 이런 대접을 받은 것입니다. 이런 말씀을 믿는 사람들도 여전히 세상에서 이런 대접을 받을 것입니다. 역시 생명이 감추어져 있기에 그렇습니다.

 

4절을 보면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중에 나타나리라”고 합니다. 이것이 성도의 소망입니다. 이것이 위엣 것을 찾고 위엣 것을 생각하는 사람의 소망인 것입니다. 비록 지금 생명이 감추어져 있어서 세상에서 여러 가지 환난을 당하지만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그날에 예수님의 영광을 함께 입을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약속들이 거의 다 이루어져 가고 있습니다. 한 가지 남은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중에 재림하실 일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이 날을 생각하면서 위엣 것을 찾는 삶을 살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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