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방문자 : 
    874
  • 어제방문자 : 
    1,063
  • 전체방문자 : 
    1,420,144
조회 수 1324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Extra Form
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골 4:2-6

2008년 골로새서 공부
                                                      기도를 항상 힘쓰라
말씀:골로새서 4:2-6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 중에 어떤 것을 보면 오늘 본문에 ‘권면’이라는 작은 제목을 붙여둔 것이 있습니다. ‘권면’이라는 말은 ‘힘쓰도록 권한다’라는 말입니다. 바울 사도의 편지를 보면 많은 부분에 권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런 권면을 주고받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사도가 권면하고 이 권면을 받은 사람들이 그대로 지키면 된다는 식으로 봅니다. 그런데 그렇게만 본다면 세상의 수많은 가르침과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살인하지 말라’, ‘거짓말하지 말라’고 하면 그것을 듣고 그대로 지키면 권면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본다는 것입니다. 구약에서 율법을 받았을 때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렇게 받았습니다. 모세를 통하여 주어진 말씀을 우리가 그대로 받고 지켰다고 하는 것이 바리새인들의 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바리새인의 의로는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이런 권면들을 우리가 어떻게 받아야 하는 것입니까? 데살로니가전서 2:3-5절을 보면 “우리의 권면은 간사에서나 부정에서 난 것도 아니요, 궤계에 있는 것도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 전할 부탁을 받았으니.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 너희도 알거니와 우리가 아무 때에도 아첨의 말이나 탐심의 탈을 쓰지 아니한 것을 하나님이 증거 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의 권면이 인간에게서 나오지 않았다는 것을 하나님이 증거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증거가 어떻게 나타나는 것입니까? 데살로니가 2:13절을 보면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고 했습니다. 바울이라는 사람이 전하는 말씀을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는 것입니다. 이것은 전하는 자의 능력도 아니고 받는 자의 실력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기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권면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서 우리도 바울의 권면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2절을 보면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고 합니다. 신약교회가 기도를 강조하지 않은 때가 없었습니다. 지금도 우리 교회가 기도를 강조합니다. 오늘 이 바울의 권면의 말씀처럼 우리가 이 말씀을 하나님의 권면의 말씀으로 받아 항상 기도에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가 기도에 대해서 많은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곧 기도가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굴복시키기 위한 기도보다 자기 욕망을 구하는 기도로 전락한 것입니다. 마치 옛날 우리 조상들이 정화수를 떠놓고 정성을 빌듯이 자신의 욕망과 요구 사항을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에 대한 올바른 권면을 하면 곧 이런 자기 욕망에 기초한 기도를 해서는 안 되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굴복시키는 기도를 해야 한다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의 첫 번째 반응이 ‘그러면 기도할 필요 없겠네요!’하는 이런 반응이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대로 이루어가시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우리의 평소의 기도가 얼마나 탐심으로 무장되어 있는지를 알려주면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 것이 마땅합니까? 자신의 잘못된 기도를 반성하고 바르게 기도하기를 원한다는 것이 마땅한 반응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면 기도할 것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어떤 직장에 다니는 열심 있는 분이 있는데 앞으로 사업하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업을 해서 십일조를 천만 원 하기를 기도한다고 해 봅시다. 물론 그렇게 하고자 하는 것이 혼자 잘 먹고 잘 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이웃들을 잘 돌보기 위함이요, 하나님 역사를 위해 그렇게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모습이 탐심이라고 하면 누가 기도할 맛이 나겠습니까? 그러므로 대부분 복음을 전한다고 하는 교회들이 기도에 별로 힘을 쓰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복음이 전해져서 기도를 힘쓰지 않는다고 하는 것을 잘못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바울만큼 복음에 정통한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 바울사도가 기도에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있으라고 합니다. 기도하는데 감사가 넘치고 있다면 그것이 깨어있는 자의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에 대하여 찬송이 터져 나오는 것이 감사로 기도에 깨어있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기도는 어떻습니까? 한풀이요, 신세타령 아닙니까? 아니면 떼쓰기 아닙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아직 기도의 맛도 보지 못한 상태입니다.

 

바울사도가 기도에 얼마나 힘쓰는지 1:9절을 보면 에바브로를 통하여 골로새 교회의 소식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한다고 합니다. 에바브로 역시 골로새 교회를 위하여 기도하는데 4:12절을 보면 “저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애써 기도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그 기도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다른 성경에도 너무나 많이 나옵니다만 골로새서 1:9-12절을 보면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주께 합당히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그 영광의 힘을 좇아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고 했습니다.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워주시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주께 합당히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의 기도는 한마디로 범사에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한 기도입니다.

 

범사에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까? 지난주에 부부간에, 부모 자식 간에, 직장생활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권면의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아내들은 남편에게 복종하셨습니까? 남편들은 아내들을 사랑하고 괴롭히지 않았습니까? 자녀들은 부모에게 순종합니까? 부모는 자녀들로 격노케하고, 낙심케 하지는 않습니까? 종들은 육신의 상전에게 주께 하듯 순종합니까? 상전들은 공평과 정의로 대합니까? 남편에게 복종하고,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히지 않는 것, 부모에게 순종하고 자녀들로 격노케하지 않고 낙심치 않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하는 것, 주인에게 순종하고 종에게 공평과 의로 대하는 것, 곧 이 모든 일에 주께 하듯 행하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합니까? 저는 지난 한주만 보아도 아내를 사랑하기도 하지만 괴롭히기를 많이 했음을 고백치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더욱 기도에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에 힘을 쓰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함으로 깨어있는 것입니다. 기도에 힘쓰지 않고 깨어있지 않으면 무엇이 어두움인지, 무엇이 빛인지도 구별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의 지식으로만 살아갈 뿐입니다.

 

계속하여 바울의 기도를 보겠습니다. 골로새서 1:10-12절을 다시 보면 “주께 합당히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그 영광의 힘을 좇아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고 합니다. 이 모든 기도의 내용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의 영광을 위한 기도가 하나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행하신 그 일들을 알고 맛보기를 원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물론 주님께서 일용할 양식을 위해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일용할 양식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가운데 이런 말씀을 듣고 이런 기도에 힘쓰는 자가 나온다면 우리 가운데 말씀이 역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서 행하신 그 일들을 알고 맛보아 가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골로새서 4:3-4절을 보면 “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내가 이것을 인하여 매임을 당하였노라. 그리하면 내가 마땅히 할 말로써 이 비밀을 나타내리라”고 했습니다. 바울사도는 자신과 복음 전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 달라고 합니다. 바울은 사도입니다. 사도이면서도 성도들에게 기도를 요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은 선생이 제자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실력 없는 선생이라고 하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세계에서는 선생이 될수록 더 실력 없는 자임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서면 설수록, 하나님을 기시게 하고자 하면 할수록 자신이 부족함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앞선다고 하는 사람은 자신이 부족한 자임을 더욱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은 죄인 중의 괴수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죄인에게 하나님께서 측량할 수 없는 은혜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무엇보다도 무엇을 위하여 기도해 달라고 하는 것입니까? 전도할 문을 열어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지금 바울사도가 복음 때문에 감옥에 갇혔는데 감옥에서 빠져나오기를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갇혔거나 아니 갇혔거나 간에 전도할 문 즉 하나님의 복음을 증거 할 문을 열어달라는 것입니다. 전도의 문이 열리는 것은 그리스도의 비밀을 전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비밀은 이미 골로새서 1-2장에서 살펴보았습니다. 우리를 거스르고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여 십자가에서 못 박으시고 정사와 권세를 밝히 드려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알아들을 자만 알아듣게 되어 있어서 비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자신을 위하여 기도하여 달라는 것은 이 그리스도의 비밀을 담대하게 증거 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 그리스도의 비밀을 증거 하는 일은 사람의 힘과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말미암습니다. 고린도후서 1:11절을 보면 “너희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함으로 도우라. 이는 우리가 많은 사람의 기도로 얻은 은사를 인하여 많은 사람도 우리를 위하여 감사하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의 기도로 얻은 은사라고 합니다.

 

이런 은사를 가지고 복음을 증거 하게 되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까? 사도행전 26:16-18절을 보면 “일어나 네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사환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저희에게 보내어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케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복음을 핍박하다가 오히려 복음에 사로잡혀 복음의 일군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증거 하는 것 즉 그리스도의 비밀을 증거 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까? 눈을 뜨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일에는 눈이 밝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나라 곧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서는 장님인 것입니다. 이것이 어두움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며, 사단의 권세에 붙들려 있는 것입니다. 오직 복음만이 눈을 뜨게 하고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고 죄 사함과 예수님을 믿음으로 거룩케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바로 이 일을 위해 기도 해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교회의 기도는 이런 기도에 힘을 쓰고 이런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있어야 마땅한 것입니다. 교회의 성도가 이런 자세로 살아가도록 깨어 있도록 기도하여 합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기도가 있게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교회 가운데 눈을 뜨는 역사, 어둠에서 빛으로 나오는 역사, 사단의 권세에 사로잡혀 있던 자가 주님께로 돌아오는 역사가 우리 교회 가운데 충만케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역사가 우리 교회 가운데 충만케 하시기를 원합니다.

 

5절을 보겠습니다. 이제 바울은 외부 사람들에게 어떻게 대하여야 할지를 권면하고 있습니다. “외인을 향하여서는 지혜로 행하여 세월을 아끼라”고 합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믿지 않는 사람들을 만날 때에 지혜롭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들과 접촉을 영 끊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구를 떠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들과 동화되어도 안 됩니다. 예수님을 믿는 다는 사람이 믿지 않는 사람들과 동화되어 그들과 함께 있는 것을 재미있어 한다면 그 사람에게 무언가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혜롭게 행한다는 것은 세월을 아끼는 것인데, 때가 가까웠기 때문에 더욱더 외인에 대하여 기회를 선용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곧 기회를 잘 선용해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6절에서 외인에 대하여 말할 때에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고루게 함과 같게 하라고 합니다.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고루게 함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6). 여기서 ‘소금으로 고루게 한다’는 것은 새 번역에서 이렇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언제나, 소금으로 맛을 내는 것과 같이, 은혜가 넘치게 말을 하십시오. 여러분은 묻는 이들에게 적절한 대답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말이 은혜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은혜가 넘치는 말은 외인에게도 복음을 전할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이든지 퉁명스럽게 한다든지 아니면 교만해 보이면 누가 진리에 대하여 물어보지도 않을 것입니다.

 

은혜가 넘치면 말도 은혜로운 말이 됩니다. 은혜가 넘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입니까? 말씀과 기도 외에는 달리 길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은혜 받는 길은 말씀과 성례와 기도라고 배웠습니다. 디모데전서 4:5절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고 했습니다. 말씀을 사모하고 그리스도의 비밀을 알아갈수록 은혜가 더하여 넘치게 되면 감사가 나옵니다. 그런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은 이미 말에서 다르게 나옵니다. 그래서 공동번역에서는 언제나 친절하고 유익한 말을 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말 중에 얼마나 무익한 말이 많은지 아십니까? 남의 흉을 보는 말에서 모함하고 참소하는 말까지 마귀의 주특기를 사용하고 있다면 그런 사람에게 어떻게 진리에 대하여 물어보려고 오겠습니까? 그러므로 은혜가 충만하다는 것은 대답할 말이 준비되어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3:15-16절을 보면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베드로사도는 성도들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성도들 속에 있는 소망에 대해서 물어올 때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라고 합니다. 대답할 때도 온유함과 두려움으로 하라고 합니다. 그리하여 욕하고 비방하는 자들이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라고 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늘 기도 가운데 깨어 있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또한 진리의 말씀을 배우는 일에 힘쓰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가운데 넘치게 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전도의 문이 활짝 열리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TAG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성경본문 설교자 강설날짜 조회 수
371 [골로새서 2장] 어찌하여 의문에 순종하느냐 file 골 2:20-3:4 손재호 1101
370 [골로새서 2장] 십자가로 승리 file 골 2:8-15 손재호 1632
369 [골로새서 3장] 위엣 것을 찾으라 file 골 3:1-4 손재호 1136
368 [골로새서 3장] 주 예수의 이름으로 file 골 3:12-17 손재호 1386
367 [골로새서 3장] 주께 하듯이 하라 file 골 3:18-4:1 손재호 1648
366 [골로새서 3장] 새 사람을 입었으니 file 골 3:5-11 손재호 1166
365 [사사기] 이스라엘의 우상숭배 골 3장 최상범 2013-01-30 3405
» [골로새서 4장] 기도를 항상 힘쓰라 file 골 4:2-6 손재호 1324
363 [골로새서 4장]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file 골 4:7-18 손재호 1885
362 [나훔서 1장] 나훔의 묵시 file 나훔서 1:1-8 손재호 1537
361 [나훔서 1장] 아름다운 소식 file 나훔서 1:9-15 손재호 973
360 [나훔서 2장] 야곱의 영광 file 나훔서 2:1-13 손재호 1139
359 [나훔서 3장] 니느웨의 멸망 file 나훔서 3:1-19 손재호 1450
358 2012년 디도서 공부(전체 개요) file 디도서 손재호 2012-03-21 3299
357 [디도서 1장] 사도의 임무(1)-믿음과 지식을 위하여 file 딛 1:1-4 손재호 2012-03-28 2680
356 [디도서 1장] 사도의 임무(2)-영생의 소망을 인하여 file 딛 1:1-4 손재호 2012-04-04 2529
355 [디도서 1장] 장로와 감독이란? file 딛 1:5-16 손재호 2012-04-11 4539
354 [디도서 2장] 하나님의 말씀을 위하여 file 딛 2:1-5 손재호 2012-04-18 4112
353 [디도서 2장] 은혜로 양육하시는 하나님 file 딛 2:11-14 손재호 2012-05-02 3133
352 [디도서 2-3장] 선한 일을 힘쓰라 file 딛 2:15-3:8 손재호 2012-05-09 3069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 25 Next
/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