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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스가랴서 5:1-4

2010년 스가랴서 공부
                                                      여섯 번째 환상
말씀:스가랴 5:1-4

 

오늘 말씀은 스가랴 선지자가 본 여섯 번째 환상입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에 공부한 다섯 번째 환상이 무엇이었습니까? 순금등대와 감람나무 환상이었습니다. 순금등대와 감람나무 환상이 지나간 후 스가랴는 계속해서 날아가는 두루마리의 환상을 보게 됩니다. 이 두루마리 환상은 율법에 기록된 언약의 저주를 연상시키며, 그 언약의 계명을 깨뜨린 죄인들의 심판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스가랴의 환상이 성전 건축과 아울러 성전 건축을 수행할 이스라엘 공동체의 순결에 그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스가랴가 본 두루마리는 일반적인 두루마리보다 매우 크게 묘사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 만연된 죄악의 심각성과 그들에게 임할 심판의 거대한 파괴력을 시사해 주고 있습니다. 또한 이와 같은 장면은 바벨론 유수의 혹독한 경험에도 불구하고 포로 귀환 이후 언약을 버리고 여전히 죄악에 물든 이스라엘 사회의 한 단면을 암시합니다. 그러므로 이 두루마리 환상은 성전 건축을 감당하는 이스라엘 공동체의 언약 준수 의무와 함께 언약 백성으로서의 순결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1-2절을 보면 “내가 다시 눈을 든즉 날아가는 두루마리가 보이더라. 그가 내게 묻되 네가 무엇을 보느냐 하기로 내가 대답하되 날아가는 두루마리를 보나이다. 그 장이 이십 규빗이요, 광이 십규빗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스가랴 선지자가 다섯 번째 환상 곧 순금등대와 감람나무 환상을 본 후 다시 환상을 보게 됩니다. 그가 본 여섯 번째 환상은 커다란 두루마리가 날아가는 것입니다. 두루마리란 둥글게 말 수 있는 책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스가랴가 본 두루마리는 일반 두루마리와는 달랐습니다. 곧 그 크기가 엄청나게 큰 것입니다.

 

그러면 스가랴 선지자가 본 두루마리의 크기가 어떠합니까? 길이가 20규빗이고, 넓이가 10규빗이라고 했습니다. 한 규빗이 대략 45cm 정도이니까 스가랴 선지자가 본 두루마리의 크기는 대략 그 길이가 약 9m요, 넓이가 약 4.5m에 달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스가랴 선지자가 본 두루마리의 크기는 일반적인 두루마리와는 그 크기에 있어서 다른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그 당시에 이렇게 큰 두루마리가 있었을까요?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스가랴 선지자가 본 두루마리의 크기는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크기가 지닌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학자들 간에도 의견이 다양합니다. 어떤 학자는 두루마리의 크기가 솔로몬 성전의 현관의 크기와 같다고 합니다. 솔로몬 성전의 현관은 주로 율법이 낭독되는 곳입니다. 그래서 스가랴가 본 두루마리 환상을 구약의 율법과 연관시키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떤 학자들은 예루살렘의 성전의 문과 연결시키는 것은 너무 비약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여튼 일반적으로 두루마리의 크기가 비정상적으로 크게 나타나는 것은 엄청난 저주의 파괴력을 보여주기 위함이라고 봅니다. 포로 귀환 공동체 안에 여전히 만연되어 있는 죄악의 심각성을 부각시키며, 그 죄에 대한 심판을 강조하고 있다고 봅니다.

 

그러면 그 날아가는 두루마리가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3절을 보면 “그가 내게 이르되 이는 온 지면에 두루 행하는 저주라. 무릇 도적질하는 자는 이편 글대로 끊쳐지고 무릇 맹세하는 자는 그 저편 글대로 끊쳐지리라”고 했습니다. 여호와의 천사는 이 두루마리에 대한 설명을 제시하면서 ‘온 지면에 두루 행하는 저주’라고 설명합니다. 곧 두루마리가 날아다니면서 하는 일이 있는데 그 일이 온 지면에 두루 행하는 저주라는 것입니다. 두루마리가 날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엔진이 붙은 것도 아닌데 스스로 막 날아다니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온 땅에 저주를 퍼붓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저주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두 가지로 나타나는데 무릇 도적질 하는 자는 이편의 글대로 끊어질 것이고, 무릇 맹세하는 자는 저편의 글대로 끊어질 것이라고 하십니다. 3b절을 보면 “무릇 도적질하는 자는 그 이편 글대로 끊쳐지고 무릇 맹세하는 자는 그 저편 글에서 끊쳐지리라”고 했습니다. 4절에서도 보면 도적질과 맹세에 대하여 다시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이것을 발하였나니 도적의 집에도 들어가며 내 이름을 가리켜 망령되이 맹세하는 자의 집에도 들어가서 그 집에 머무르며 그 집을 그 나무와 그 돌을 아울러 사르리라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여호와의 저주의 말씀이 도적질 하는 집에도 들어가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망령되이 맹세하는 자의 집에도 들어가 그 집에 머무르며 그 집을 그 나무와 그 돌을 아울러 태워 버릴 것이라고 합니다. 나무만이 아니라 돌까지 불살라 버릴 무서운 저주의 말씀이 지금 막 날아다니고 있는 것입니다. 한번만 날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하여 날아다닌다는 것입니다.

 

4절에서 이렇게 계속하여 날아다니는 것은 만군의 여호와께서 발하셨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발하다’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야차’(יצא)인데 ‘선포하다’, ‘이끌어내다’, ‘나타내다’라는 말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은 그 자체가 살아서 운동력이 있는 말씀이시기에 그 입에서 발하신 말씀은 반드시 성취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저주가 들어가는 집은 몽땅 다 불살라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저주의 선포를 들으면서 우리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 저주가 임하지 아니할 길이 없는가 하면서 묻게 됩니다. 물론 그 당시의 사람들도 그렇게 물었을 것입니다. 그 당시의 사람들은 포로생활에서 돌아와서 성전을 재건하여야 하는데 어려움에 부딪치자 성전 재건 역사를 버려두고 자기 집짓는 일에 바빴던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기보다 자기 살길을 먼저 찾은 것입니다. 이것이 도적질이요, 하나님의 이름으로 약속하고서도 15년이나 지체가 되었으니 거짓 맹세한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그러한 죄에 대한 책망을 하면서 성전재건에 힘쓰라고 하는 말씀도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전에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것보다 더 심한 저주와 심판을 받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에게 이 저주와 심판의 말씀은 어떻게 받아야 하는 것입니까? 나는 도적질 하지 않았고 망령되게 맹세하지 않았기에 상관없다고 여기시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그 어떤 말씀이라도 헛되이 돌아가지 아니합니다. 복을 명하시면 반드시 복을 받도록 되어 있습니다. 저주를 명하시면 반드시 저주를 받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야곱은 사랑하시고 에서는 미워하시는 것입니다. 그 어떤 행위를 하기 전에 이미 결정된 문제입니다. 오늘 읽은 말씀에서 저주가 선포되는 것은 단지 두 가지의 잘못만으로 저주가 온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 이 땅이 저주를 받아야 하는가를 지금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자들을 모델로 사용하셔서 오늘날 우리에게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나는 정말 저주를 받아야 마땅하구나! 이것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보다 먼저 자기 먹고 살기 위해 자신의 삶을 추구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이 있음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와 같은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을 알게 될 때 하나님의 용서와 은혜와 긍휼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늘 어떻게 생각합니까? 내가 무슨 도적질을 하였으며, 내가 무슨 망령된 맹세를 하였는가 하면서 자기는 늘 괜찮은 사람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십일조를 하지 않느냐, 가끔 빠지기는 하지만 예배에도 참석하고 있지 않느냐. 자신은 주님을 믿고 사랑한다며 자신을 합리화 합니다. 실제로는 자신이 주인이 되어 자신의 안위와 만족을 위해 달려가면서 말입니다. 바로 이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도적질하지 않았습니까? 어떤 사람은 도적질 그러니 십일조만 가지고 도적질이라고 하는데 십일조만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피조물이라면 피조물답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고 약하게도 하시고 강하게도 하시는 것입니다.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시기도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늘 높아져야 하고 강하여야 한다고 여기고 그와 반대되는 일이 일어나면 원망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현실문제 해결이 우선입니다. 직장이 우선이고, 결혼이 우선이고, 자식이 우선인 것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피조물의 자세입니까?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과연 우리가 그렇게 사셨습니까? 나를 위하여 먹고 나를 위하여 마시고 나를 위하여 무엇이든지 하였지 언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오직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하여 먹고 마시고 입고 사셨습니까? 오직 나만 위하여 살아놓고서 도적질하지 않았다고 말하겠습니까? 그러므로 도적질하지 말라는 제8계명은 모든 계명과 다 연결이 되는 것입니다. 마땅히 부모를 공경해야 할 것을 하지 않는 것도 도적질이며, 살인도 남의 생명을 도적질 한 것이며, 간음도 도적질이며,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증거 하는 것도 도적질하기 위한 거짓 증거이며, 탐내지 말라는 말씀도 결국 도적질 하고 싶은 마음을 겨냥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감옥 갈만한 도적놈이 아니라고 자기를 정당화시킬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맹세하지 않았습니까? 어려움과 문제에 부딪칠 때마다 우리가 얼마나 맹세하기를 잘하였습니까? 이 문제만 해결 해 주시면, 이것만 해결해 주시면 주님을 위해 무엇이든지 하겠습니다며 얼마나 맹세를 많이 하였습니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망령되이 맹세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얼마나 자주 헛된 맹세를 하는지 모릅니다. 사람이 맹세를 한다는 것은 자기가 스스로 지킬만한 능력이 있다고 여기기 때문에 맹세를 하는 것입니다. 구약에서 율법이 선포될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율법에 순종하겠다고 맹세합니다. 율법을 지키면 복이 주어지고 지키지 않으면 저주가 주어진다는 말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멘하고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어떠하였습니까? 지키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당연히 언약의 저주가 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맹세에 대하여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마태복음 5:33-37절을 보면 “또 옛 사람에게 말한바 헛 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찌니 하늘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땅으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 네 머리로도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나느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왜 맹세를 못하게 하시는 것입니까? 맹세하는 자가 맹세를 이룰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늘로 맹세하지만 우리가 하늘을 좌우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보좌를 인간의 맹세로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땅도 하나님의 발등상인데 어느 누가 땅으로 맹세를 합니까? 그 사람의 호흡이 끊어지면 그날에 그 모든 도모가 다 허사로 돌아가는데 무슨 맹세를 합니까? 그러므로 두루마리에서 저주가 쏟아지는 것은 누구에게 쏟아져야 하는 것입니까? 바로 우리 자신들에게 쏟아져야 하는 것입니다. 날마다 도적질하고 날마다 하늘과 땅을 움직여보고 싶어서 맹세를 수도 없이 하는 우리들에게 임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사람들은 서원이라는 이름으로 맹세를 합니다. 이것만 이루어주시면 제가 이것을 하겠습니다. 저것을 하겠습니다. 이것은 도대체 자기가 무엇인지를 모르는 무지의 소치입니다. 저도 이런 맹세를 많이 하였습니다. 저의 인생 문제만 해결해 주시면 주의 종으로 살겠습니다. 아이가 순산하게 하시면 아이를 당신의 종으로 드리겠습니다. 특히 사람들은 새해가 되면 이 땅의 복을 생각하며 이것 저것 서원을 하기도 합니다. 또한 서로 복 많이 받으라고 야단입니다. 그런데 그런 인사는 야고보서의 5장의 말씀에 의하면 땅에서 사치하고 연락하며 땅의 재물을 쌓아놓은 자들을 향하여 도살의 날에 살 찌웠다고 합니다.

 

야고보서 5:1-5절을 보면 “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을 인하여 울고 통곡하라.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먹었으며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 보라. 너희 밭에 추수한 품군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 지르며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느니라. 너희가 땅에서 사치하고 연락하여 도살의 날에 너희 마음을 살지게 하였도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서 볼 때 이 땅에서의 복을 비는 것은 도살의 날을 위하여 돼지에게 살찌우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런 돼지를 보고서 복 받았다고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성도란 왜 이 땅이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몽땅 다 불살라지는지를 아는 자들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아들을 죽인 땅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지금도 저주의 두루마리는 날아다니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발하셨기에 이 세상 끝 날까지 그 저주를 반드시 성취시키시고야 마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저주의 세상에서 피할 곳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저주에서 피할 곳은 오직 한 곳뿐입니다. 갈라디아서 3:13-14절을 보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또한 고린도전서 16:22절에서는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않거든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정죄함이 없습니다. 그 안에서만 만물이 새롭습니다. 고린도후서 5:17절을 보면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고 했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이 여섯 번째 환상을 통해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계시를 깨달아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 앞에 세상을 향한 우리 안의 죄악을 인해 애통히 회개하는 역사가 우리 가운데 있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삶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 오직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며 사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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