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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스가랴서 7:1-14

2010년 스가랴서 공부
                                              조상들의 불순종과 심판
말씀:스가랴서 7:1-14

 

우리는 이제까지 1-6장 말씀을 통해서 스가랴 선지자가 본 여덟 가지 환상에 대해서 공부했습니다. 오늘부터는 7-8장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스가랴 선지자가 여덟 가지 환상을 체험한지 거의 2년이 지난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다시 스가랴 선지자에게 임하게 되었습니다. 이 새로운 메시지는 벧엘에서 온 사람들의 금식에 관한 질문에서 비롯됩니다. 벧엘에서 온 이들은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에게 예루살렘 성전의 멸망과 그 슬픔을 토로하기 위해 줄곧 지켜왔던 금식의 절기를 계속 지켜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이때는 바벨론 포로민들이 귀환했으며, 성전 건축도 완공되었던 시기였기 때문에 그들은 이제 통곡과 금식의 기간이 사실상 종료된 것이 아닌가 궁금했던 것입니다. 여호와는 이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서 먼저 금식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 회복할 것을 촉구합니다. 그리고 나아가 여호와는 예루살렘의 온전한 회복을 약속한 뒤 그 약속의 성취 조건으로 여호와의 말씀에 대한 순종을 강조합니다. 그러므로 7-8장의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여호와는 무너진 예루살렘을 다시 일으켜 세워 축복의 터전으로 회복시켜주실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이제 슬픔과 금식의 절기는 기쁨과 희락의 절기로 변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회복의 약속들은 불순종의 옛 조상들과 달리 오직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그 계명들을 그들의 삶의 현장 속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해 나갈 때 성취될 것입니다.

 

7장과 8장은 동일 단어와 유사 주제들이 반복되는 교차대구를 이루고 있습니다.

A. 벧엘 사람들의 예루살렘 방문(7:1-2)
   B. 금식에 관한 질문들(7:3-7)
      C. 공의 실현에 실패한 옛 조상들(7:8-10)
         D. 옛 조상들의 불순종과 하나님의 진노(7:11-14)
            E. 남은 백성들을 위한 회복(8:1-8)
            E'. 남은 백성들을 위한 축복(8:9-13)
         D'. 두려워할 필요 없는 하나님의 진노(8:14-15)
      C'. 공의 실현을 촉구 받는 현 세대들(8:16-17)
   B'. 금식에 관한 응답(8:18-19)
A'. 열방의 예루살렘 방문(8:20-23)

 
그러므로 7장과 8장은 통일된 단락임이 분명합니다. 특히 7장의 서두(7:2)와 8장의 말미에 ‘은혜를 구하다’라는 히브리어 ‘레할로트’가 동일하게 등장하여 인클루지오 구조를 이루고 있음은 7장과 8장의 통일성을 더욱 강화시켜줍니다. 그러므로 7장과 8장은 하나의 통일된 단락으로 취급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주제적으로 볼 때 7장은 조상들의 불순종과 심판을, 8장은 현 세대를 향한 회복의 약속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편의상 7장과 8장을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7장을 살펴보겠습니다. 1-3절에 보면 다리오 왕 사년 구월 곧 기슬레월 사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스가랴에게 임하였습니다. 그 때에 벧엘에서 온 사람들이 먼저 여호와의 은혜를 구하고 만군의 여호와의 전에 있는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에게 여러 해 동안 행해 오던 오월간에 행하던 금식에 관하여 질문을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후 70년 동안 5월과 7월에 금식을 하였습니다. 5월의 금식은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와 연관이 있습니다. 바벨론의 침략으로 예루살렘의 성이 무너지고 성전이 파괴되고 왕궁이 불타고 귀인들의 집들조차 파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날을 기억하면서 금식을 한 것입니다. 7월의 금식은 이스라엘의 완전한 멸망과 연관이 있습니다. 바벨론에 의하여 파괴된 예루살렘에 그달랴를 세워서 그 남은 사람들을 다스리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다시 반역이 일어나 그달랴를 죽이고 유다의 백성들이 애굽으로 도망갑니다. 그로인해 이스라엘은 완전히 망하게 된 것입니다. 바로 7월의 금식은 이 날을 기억하며 금식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70년이 되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그런 금식을 계속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을 벧엘에서 온 몇 사람이 제사장과 선지자들에게 한 것입니다. 벧엘은 북 이스라엘 지역이지만 바벨론에서 돌아온 사람들 중에 이곳에 정착한 사람들도 있기에 그들이 묻기 위하여 온 것입니다.

 

4-5절을 보면 여호와의 응답이 스가랴 선지자에 임합니다. 온 땅의 백성과 제사장들에게 이르라고 하십니다. “너희가 칠십년 동안 오월과 칠월에 금식하였지만 그 금식이 나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한 것이냐”고 합니다. 여기서 ‘나를 위하여’라는 말을 반복 사용하고 있는데 그것은 아주 강조하는 말입니다. 정말 나를 위한 것이냐고 두 번씩이나 말씀 하심으로 그들의 금식이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순전히 자기들을 위한 것이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유대 백성들도 예루살렘이 파괴되고 포로로 잡혀가서 나라가 망한 날을 기억하면서 그들이 울며 금식하며 기도한 것도 자기들을 위한 것이라는 말입니까? 표면적으로 보면 그들이 회개하고 시온으로 돌아가고자 금식하며 기도한 것처럼 보이는데 속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6절을 보면 금식만이 아니라 먹고 마시는 것도 자기들을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먹고 마시는 것은 즐거운 절기 때에 기뻐하며 잔치하면서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물론 일상에서도 먹고 마십니다. 이렇게 먹고 마시는 것이 다 자기를 위하여 한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도 밥을 먹고 물을 마시고 과일도 먹고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먹고 마시는 것이 누구를 위한 것입니까? 나를 위한 것입니다. 나를 위한 것이 당연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당연한 것으로 문제를 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입술로는 하나님 아버지 음식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게 하옵소서!’ 바울 사도의 권면처럼 이렇게 기도하면서 먹어도 사실은 말로만 그렇지 순전히 나를 위하여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평소에 나를 위하여 먹고 마시면서 살아가다가 어려움이 닥쳐 특별히 금식한다고 해도 나를 위하여 하는 것에서 크게 달라질 바가 없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5:33-35절에 보면 “저희가 예수께 말하되 요한의 제자는 자주 금식하며 기도하고 바리새인의 제자들도 또한 그리하되 당신의 제자들은 먹고 마시나이다.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너희가 그 손님으로 금식하게 할 수 있느뇨. 그러나 그 날에 이르러 저희가 신랑을 빼앗기리니 그 날에는 금식할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향하여 먹기를 탐하고 술을 즐긴다는 비난에 대하여 예수님은 잔치집의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어떻게 금식할 수 있느냐고 반문하셨습니다.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때가 오나니 그러면 금식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언제 금식하며 기도합니까? 세상의 염려와 근심이 있을 때입니다. 예기치 못한 문제에 봉착했을 때입니다. 일반적으로 세상 근심이 예수님보다 커 보일 때 금식할 것이며, 세상의 재미와 욕망이 예수님보다 커 보일 때 금식할 때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언제 금식하라고 합니까? 신랑을 빼앗길 때 금식하라고 합니다. 곧 누구를 위하여 금식하라는 것입니까? 예수님을 위하여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금식하며 기도할 때 그것이 누구를 위하여 하는 것인지 잘 살펴봐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예배를 드리고 헌금을 하고 기도를 하고 찬송을 하고 때로 금식기도 하는 것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근본적으로 물어보자는 것입니다. 과연 하나님을 위하여 한 것입니까? 우리가 주님이라고 부르는 예수님을 위하여 한 것입니까? 아니면 내가 예수님을 부르고 섬김으로 내가 잘 되고 천국도 가고, 나의 현실 문제가 해결되고 복 받기 위하여 그렇게 한 것입니까?

 

오늘은 금식에 초점을 맞추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율법에서는 금식하라는 규례가 없습니다. 최초로 금식이라는 단어가 나타나는 곳은 사사기부터입니다. 대부분의 금식은 전쟁에서 패배하였거나 자신들의 소원을 아뢰기 위하여 금식을 한 것입니다. 또는 존경하는 지도자가 죽었을 때도 금식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의 선고를 받고 회개하기 위하여 금식하기도 합니다. 이방 땅 니느웨도 왕으로부터 모든 신하와 짐승까지 금식하였던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향하여 돌이키신 것도 봅니다. 이러한 금식을 통하여 사람들은 자기들에게 임한 심판을 거두어 주시고 하나님께서 다시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금식마저 외형적인 형식으로 치우치게 되면서 자기들의 소원을 이루어내기 위해 벌이는 종교적인 행사로 전락하고 만 것입니다. 자기들의 행위는 고치지 않으면서 금식기도로 해결하려는 주술적인 종교가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것은 자기들의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 삭발 단식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정치인들이 삭발단식하며 자기들의 정치적인 뜻을 관철시키려고 하는 것이나 교계 지도자라는 사람들이 사학법 개정과 같은 문제를 놓고 삭발 기도하는 것이 무엇이 다릅니까?

 

7절을 보면 “여호와가 이전 선지자로 외친 말을 너희가 청종할 것이 아니냐. 그 때에는 예루살렘과 사면 읍에 백성이 거하여 형통하였고 남방과 평원에도 사람이 거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미 이전의 선지자로 말씀하셨다고 했습니다. 이사야 58:1-8절을 보면 “크게 외치라. 아끼지 말라. 네 목소리를 나팔 같이 날려 내 백성에게 그 허물을, 야곱 집에 그 죄를 고하라. 그들이 날마다 나를 찾아 나의 길 알기를 즐거워함이 마치 의를 행하여 그 하나님의 규례를 폐하지 아니하는 나라 같아서 의로운 판단을 내게 구하며 하나님과 가까이 하기를 즐겨하며 이르기를 우리가 금식하되 주께서 보지 아니하심은 어찜이오며 우리가 마음을 괴롭게 하되 주께서 알아주지 아니하심은 어찜이니이까 하느니라. 보라. 너희가 금식하는 날에 오락을 찾아 얻으며 온갖 일을 시키는도다. 보라. 너희가 금식하면서 다투며 싸우며 악한 주먹으로 치는도다. 너희의 오늘 금식하는 것은 너희 목소리로 상달케 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어찌 나의 기뻐하는 금식이 되겠으며 이것이 어찌 사람이 그 마음을 괴롭게 하는 날이 되겠느냐. 그 머리를 갈대 같이 숙이고 굵은 베와 재를 펴는 것을 어찌 금식이라 하겠으며 여호와께 열납될 날이라 하겠느냐.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리하면 네 빛이 아침 같이 비췰 것이며 네 치료가 급속할 것이며 네 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라고 했습니다. 종교적인 행위 중에 금식이 가장 대단해 보이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 금식마저 자기를 위한, 자기 소원 성취를 위해 사용되고 있는 일에 대해 고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렇게 금식과 고행을 하면서도 평소에 하는 짓은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로 대표되는 약자들을 학대한 것입니다. 그러니 참된 금식이란 밥을 굶고 머리를 풀어 헤치고 고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참된 금식이란 무엇입니까? 8-10절을 보면 “여호와의 말씀이 스가랴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만군의 여호와가 이미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진실한 재판을 행하며 피차에 인애와 긍휼을 베풀며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와 궁핍한 자를 압제하지 말며 남을 해하려하여 심중에 도모하지 말라 하였으나”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만군의 여호와가 말씀하시기를 진실한 재판을 하라고 합니다. 피차 인애와 긍휼을 베풀라고 합니다.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와 궁핍한 자를 압제하지 말라고 합니다. 남을 해하려고 심중에 도모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외침이나 별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약속의 땅에서 공의를 행하며 가난한 자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형식적인 금식을 행했지만 도리어 불의를 행하고 가난한 자를 압제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그들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렇게 행하지 아니한 죄로 인해 인하여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갔다가 하나님의 인애와 긍휼로 돌아왔다면 좀 고쳐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도 별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여전히 형식적인 금식은 하지만 참된 금식은 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11-14절에 보면 “그들이 청종하기를 싫어하여 등으로 향하며 듣지 아니하려고 귀를 막으며 그 마음을 금강석 같게 하여 율법과 만군의 여호와가 신으로 이전 선지자를 빙자하여 전한 말을 듣지 아니하므로 큰 노가 나 만군의 여호와께로서 나왔도다.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였었노라. 내가 불러도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은즉 그들이 불러도 내가 듣지 아니하고 회리바람으로 그들을 그 알지 못하던 모든 열국에 헤치리라 한 후로 이 땅이 황무하여 왕래하는 사람이 없었나니 이는 그들이 아름다운 땅으로 황무하게 하였음이니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기를 싫어하여 등을 돌리고 그들의 마음을 금강석같이 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의 마음 판에 새겨지지가 않는 것입니다. 유리위에 먹으로 글을 쓰면 어떻게 됩니까? 물로 씻으면 바로 지워지듯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음이 금강석처럼 되어 있어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불러도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기에 여호와께서 그들을 진노하셔서 열국에 흩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의 땅은 인애와 긍휼이 흘러야 합니다. 하나님의 언약적인 사랑을 긍휼로 베풀어 주셨기에 그들이 노력하지 아니한 약속의 땅을 받아 살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인애와 긍휼을 베풀어야 할 자들이 오히려 약자를 학대하고 착취한 것입니다. 이런 그들은 그 언약의 땅에서 추방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면 이제 돌아와서는 달라졌습니까? 아닙니다. 이런 그들에게 공정한 재판과 인애와 긍휼을 베풀며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돌보라고 하십니다. 이런 참된 금식의 구체적인 모습은 스가랴서 8장에서 계속됩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8장을 공부할 때 살펴보기로 하고 우선 결론적으로 참된 금식이란 예수님께서 이루어내시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바리새인들의 눈에는 예수님이 먹기를 탐하고 술을 즐기는 자로 보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참된 금식을 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어떤 금식입니까? 우리가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해방되어 의와 생명의 세계에 들어오게 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얽매인 줄을 끊어버리시고 주의 사랑의 줄로 묶으신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죄인을 불러 구원하신 참된 금식입니다. 우리의 일상적인 삶만이 아니라 금식이나 기도나 예배라는 모든 것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입니까? 나를 위한 것입니까? 아니면 주님을 위한 것입니까?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의 일상의 모든 삶이 주님을 위한 삶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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