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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스가랴서 9:1-10

2010년 스가랴서 공부
                                                   나귀 새끼를 탄 왕
말씀:스가랴 9:1-10

 

스가랴 9-14장은 스가랴서의 세 번째 주요 단락입니다. 이 단락은 9:1절과 12:1절에 보면 “여호와의 말씀의 경고”라고 하고 있는데 예언적 선포를 뜻하는 이 두 ‘마샤’가 이끄는 두 개의 세부 단락(9-11장; 12-14장)으로 구분될 수 있습니다. 이 두 단락의 특징적 차이점은 첫째는, 9-11장은 남 유다와 요셉(북 이스라엘 지파)에 초점을 맞추지만, 12-14장은 다윗의 집 곧 예루살렘의 거민들 그리고 유다의 집에 초점을 맞출 뿐 요셉 지파에 대해 언급하지 않습니다. 둘째는, 9-11장은 ‘그 날에’라는 말을 단 한차례 사용하지만(9:16), 12-14장은 이 표현을 매우 많이 사용합니다(12:3,4,6,8,9,11; 13:1,4; 14:4,6,8,9,13,20,21). 셋째는, 12-14장에는 ‘보라’라는 뜻의 ‘힌네’라는 히브리어가 등장하여 12-14장을 12:2-13:6절과 14:1-21절로 세분화 시켜주는 반면, 9-11장은 이 표현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비록 9-11장과 12-14장이 각각의 독특한 특징을 갖고 있지만, 주요 단어들과 주제들로 서로 연결되고 있음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또한 9-14장은 ‘마샤’라는 표제로 하는 형식을 취하기 때문에 이 두 단락을 하나의 세부 독립단락으로 보는 데는 무리가 없습니다. 더욱이 9-14장은 주제와 사상의 반복에 따라 9-11장과 12-14장이 각각 교차대구를 이루는 문예적 구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9-10절 말씀에 보면 한 왕이 임하시는데 그 왕이 겸손하여 나귀새끼를 타고 오신다고 합니다. 그 왕은 에브라임의 병거와 예루살렘의 말을 끊어버리고, 전쟁하는 활도 끊어버리고, 이방 사람들에게 화평을 전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의 정권은 바다에서 바다까지 이를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 시간 우리는 스가랴 선지자에게 주어지는 이러한 평화가 무엇이며, 이러한 평화가 어떻게 주어지는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스가랴서 1-8장까지는 여러 가지 이상을 통하여 하나님의 계시를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이제 9-14장까지는 이상이 아니라 예언을 주신 것입니다. 이상을 통하여서도 하나님께서 어떻게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면 그 대적을 심판하실 것인지를 말씀하셨습니다. 자기 백성만이 아니라 다른 열방에서도 그 구원을 바라보고 우리도 은혜를 받자고 함께 나아올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이상과 마찬가지로 예언부분에서도 하나님께서 어떻게 세상을 심판하시고 자기 나라를 만들어 내실 지를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9:1절을 보면 “여호와의 말씀의 경고가 하드락 땅에 임하여 다메섹에 머물리니 세상 사람과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눈이 여호와를 우러러 봄이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보면 ‘여호와의 경고의 말씀’이라고 합니다. 경고란 중대한 일을 말합니다. 이 경고가 하드락 땅에 임하고 다메섹에 머문다는 것입니다. 하드락과 다메섹은 이스라엘의 북쪽지역입니다. 이들은 이스라엘을 늘 괴롭힌 나라들입니다. 이들에 대한 중한 경고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런 경고가 시행되면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의 눈이 여호와를 우러러 보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2-4절을 보면 “그 접경된 하맛에도 임하겠고 두로와 시돈은 넓은 지혜가 있으니 그들에게도 임하리라. 두로는 자기를 위하여 보장을 건축하며 은을 티끌 같이, 정금을 거리의 진흙 같이 쌓았은즉 주께서 그를 쫓아내시며 그의 바다 권세를 치시리니 그가 불에 삼키울찌라”고 했습니다. 1절의 하드락과 다메섹만이 아니라 그와 가까이 있는 하맛과 두로와 시돈까지 경고가 주어집니다. 여기서 두로와 시돈은 예루살렘의 북서쪽에 해당되는 지역으로 바닷가에 위치한 나라들입니다. 두로와 시돈은 넓은 지혜가 있다고 합니다. 이 지혜란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입니다. 두로와 시돈은 세상의 힘을 가지는 기술력이 뛰어난 민족입니다. 그런 지혜로 무엇을 하였겠습니까? 무역을 하고 전쟁을 하면서 자기들의 부 곧 힘을 축적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자기를 위하여 보장 곧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한 장벽과 파수대를 건축하고 은을 티끌같이 정금을 진흙같이 쌓았다고 합니다.

 

이런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우리나라가 지향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지금 이정도의 경제성장에 만족하고 더 나은 복지정책을 쓰고, 약한 나라들을 돕고자 합니까? 아닙니다. 다들 먹고 살기 힘들다고 난리들입니다. 그런데 한국 역사상 지금만큼 부요한 적이 없었습니다. 해외 여행객은 갈수록 많아지고 고급식당은 차고 넘칩니다. 세계의 유명한 명품이 한국에서 잘 팔리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하여 무엇을 요구하고 있습니까? 3절에 나타난 두로의 모습을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를 위하여 든든한 요새를 만들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어떤 적이 쳐들어와도 무너뜨릴 수 없는 든든한 성벽을 갖추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하여 세상의 지혜로 수많은 은과 금을 벌어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어느 나라나 어느 개인이거나 간에 이것을 목표로 달려갑니다.

 

그러면 이 두로가 행복하였을까요? 4절을 보면 “주께서 그를 쫓아내시며 그의 바다 권세를 치시리니 그가 불에 삼키울찌라”고 했습니다. 주께서 그를 쫓아내시고 그의 바다 권세를 치시리니 그가 불에 삼키 울 것이라고 합니다. 곧 이들이 멸망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들이 멸망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든든한 요새가 없어서 입니까? 아닙니다. 은과 금이 부족하였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3절을 다시 보면 “자기를 위하여 보장을 건축하며 은을 티끌같이, 정금을 거리의 진흙같이 쌓았은즉”이라고 했습니다. 보장을 세우고 은과 금을 쌓아놓으면 든든히 설 줄 알았는데 오히려 그것을 쌓아놓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멸망시키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쫓아내시며 바다 권세를 치셨습니다. 두로와 시돈은 무역으로 많은 부를 축적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바다 권세를 치신 것입니다. 결국 그들은 불에 삼키울 것이라고 합니다.

 

에스겔 선지자도 두로에 대하여 예언했습니다. 에스겔 28:1-9절을 보면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너는 두로 왕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네 마음이 교만하여 말하기를 나는 신이라 내가 하나님의 자리 곧 바다 중심에 앉았다 하도다. 네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 같은체 할찌라도 너는 사람이요, 신이 아니어늘 네가 다니엘보다 지혜로 와서 은밀한 것을 깨닫지 못할 것이 없다 하고 네 지혜와 총명으로 재물을 얻었으며 금, 은을 곳간에 저축하였으며 네 큰 지혜와 장사함으로 재물을 더하고 그 재물로 인하여 네 마음이 교만하였도다.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네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 같은체 하였으니. 그런즉 내가 외인 곧 열국의 강포한 자를 거느리고 와서 너를 치리니 그들이 칼을 빼어 네 지혜의 아름다운 것을 치며 네 영화를 더럽히며 또 너를 구덩이에 빠뜨려서 너로 바다 가운데서 살륙을 당한 자의 죽음 같이 바다 중심에서 죽게 할찌라. 너를 살륙하는 자 앞에서 네가 그래도 말하기를 내가 하나님이라 하겠느냐 너를 치는 자의 수중에서 사람뿐이요 신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두로가 그들의 지혜와 총명으로 재물을 얻고 금과 은으로 곳간에 저축하며 그 큰 지혜로 장사하여 재물을 더하여 교만하여 진 것입니다. 그 결과 어떻게 나오는 것입니까? 자신을 신이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선악과를 따 먹을 때 ‘하나님처럼 되리라’는 그 유혹을 스스로 떨쳐 낼 인간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아담의 범죄가 오늘 온 세상에 그대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인생들이 달려가는 모습이 이런 두로와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교만한 나라를 어떻게 하실 까요? 에스겔 28:8-9절을 다시 보면 “또 너를 구덩이에 빠뜨려서 너로 바다 가운데서 살육을 당한 자의 죽음 같이 바다 중심에서 죽게 할찌라. 너를 살륙하는 자 앞에서 네가 그래도 말하기를 내가 하나님이라 하겠느냐 너를 치는 자의 수중에서 사람뿐이요 신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구덩이에 빠뜨려서 바다  가운데서 살육을 당한 자의 죽음 같이 바다 중심에서 죽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들을 치는 자들이 너희는 신이 아니라 사람일 뿐이라는 소리를 듣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멸망 받은 나라가 바로 두로 입니다. 역사적으로 바벨론이 공격하였고 그 이후에 알렉산더 대왕 때에 완전히 멸망되었습니다. 이때의 공격으로 6-8천명이 학살당하고 종으로 팔린 사람이 수 만 명에 이르고 마지막으로 도망간 장소가 그들의 성전 안인데 이 성전을 불사름으로 그 안에서 전멸 당하였다는 것입니다. 스가랴 9:4절처럼 불에 삼켜진 것입니다.

 

5-7절을 보면 “아스글론이 보고 무서워하며 가사도 심히 아파할 것이며 에그론은 그 소망이 수치가 되므로 역시 그러하리라. 가사에는 임금이 끊칠 것이며 아스글론에는 거민이 없을 것이며 아스돗에는 잡족이 거하리라 내가 블레셋 사람의 교만을 끊고 그 입에서 그 피를, 그 잇사이에서 그 가증한 것을 제하리니 그도 남아서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유다의 한 두목 같이 되겠고 에그론은 여부스 사람 같이 되리라”고 했습니다. 예루살렘의 서쪽에 위치한 블레셋에 대한 경고입니다. 블레셋은 이스라엘의 옆구리의 가시처럼 괴롭힌 나라입니다. 물론 이스라엘이 범죄 함으로 하나님의 몽둥이로 사용된 블레셋이지만 이들에 대한 경고도 이어지는 것입니다. 아스글론은 두로의 멸망을 보면서 두려워할 것이라고 합니다. 에그론은 그 소망이 수치로 여겨진 것입니다. 에그론은 두로와 가까운 지역이라서 의지하였는데 두로가 망함으로 그 소망으로 여긴 것이 수치가 된 것입니다. 가사는 임금이 끊어질 것이며 아스글론은 거민이 없어지고 아스돗은 잡족이 거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심판하시는 이유도 블레셋의 교만을 끊기 위함입니다. 그렇게 교만을 끊고서는 그 블레셋의 입의 피와 그 잇 사이의 가증한 것을 제거하여 남은 자가 되게 하여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돌아온 자들이 유다의 한 두목과 같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하여 에그론은 여부스와 같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여부스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쫒아내지 못하고 함께 살게 된 가나안 부족입니다. 그들처럼 이제 한 가족으로 편입이 될 것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8절을 보면 “내가 내 집을 둘러 진을 쳐서 적군을 막아 거기 왕래하지 못하게 할 것이라 포학한 자가 다시는 그 지경으로 지나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눈으로 친히 봄이니라”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의 집을 둘러 진을 쳐서 적군을 막아 거기 왕래하지 못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포학한 자가 다시는 그 지경으로 지나지 못하도록 여호와께서 친히 눈으로 볼 것이라고 합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이사야 35장에서 예언한 대로는 사막이 변하여 낙원이 될 것이며 거기에 사나운 짐승이 없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 곳에는 여호와의 구속을 받은 자들이 모이는 곳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집을 여호와께서 친히 만드시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9절을 보면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찌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찌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고 했습니다. 스가랴 선지자는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찌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라고 외칩니다. 선지자는 왜 이들이 기뻐하고 즐거이 노래를 부르는 것입니까? 여호와께서 새로운 집을 만드실 뿐만 아니라 그들을 다스리실 왕을 보내어 주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왕이 임하시는데 그 왕은 공의로우신 분이시며, 구원을 베푸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는데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를 타신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보면 나귀를 탄 사람은 있었지만 왕이 탄 적은 없습니다. 그런데 공의를 베풀며 구원을 베풀 왕이 임하는데 겸손하여 나귀새끼를 타고 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온의 딸은 크게 기뻐하고, 예루살렘의 딸은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9:1-6절에 나오는 나라들은 다 힘 있는 나라들입니다. 그들은 말과 병거를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든든한 요새와 은과 금이 많은 나라들입니다. 그런 나라들을 물리치고 평화의 왕국을 세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더 강한 힘으로 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늘날은 UN평화 유지군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평화유지군을 세계 곳곳에 파견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세계의 평화를 지키기 위하여 평화 유지군이 필요하다는 것이 세상의 논리입니다. 그러므로 강한 나라들로부터 구원을 받고 평화를 누리려면 더 큰 힘을 가진 왕으로 오셔서 구원을 베푸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실 왕은 나귀새끼를 타고 오신다고 하십니다. 왜 나귀새끼를 타고 오시는 것입니까? 평화의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10절을 보면 “내가 에브라임의 병거와 예루살렘의 말을 끊겠고 전쟁하는 활도 끊으리니. 그가 이방 사람에게 화평을 전할 것이요, 그의 정권은 바다에서 바다까지 이르고 유브라데 강에서 땅 끝까지 이르리라”고 했습니다. 에브라임의 병거와 예루살렘의 말을 끊겠다는 것입니다. 전쟁하는 활도 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서 화평을 이방에 전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정권은 바다에서 바다에 이르고 유브라데 강에서 땅 끝가지 이를 것이라고 합니다.

 

스가랴 선지자의 이 예언이 그대로 성취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왕으로 오셔서 나귀새끼를 타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21:1-9절을 보면 “저희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와서 감람산 벳바게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두 제자를 보내시며 이르시되 너희 맞은편 마을로 가라 곧 매인 나귀와 나귀 새끼가 함께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내게로 끌고 오너라. 만일 누가 무슨 말을 하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보내리라 하시니.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 하였느니라. 제자들이 가서 예수의 명하신대로 하여 나귀와 나귀 새끼를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으매 예수께서 그 위에 타시니. 무리의 대부분은 그 겉옷을 길에 펴며 다른 이는 나무 가지를 베어 길에 펴고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질러 가로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귀새끼를 타신 것은 선지자의 말씀을 이루려고 하셨다고 합니다. 바로 스가랴 선지자가 예언하고 있는 오늘 분문의 말씀을 이루신 것입니다. 그렇게 나귀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셔서 무엇을 하셨습니까? 성전을 청결이 하시고, 잡히시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이 분이 바로 우리의 왕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런데 나귀새끼를 타시고 십자가를 지신 우리의 왕을 우리는 지금도 어떻게 믿고 구하고 있습니까? 지금도 우리는 말과 병거를 달라고 합니다. 금과 은을 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8:36절에 보면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기우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세상에 속한 나라라면 예수님께서는 무력으로 정복하셨을 것입니다. 그런 나라는 화평의 나라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로 만들어진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 안에서는 세상에서 통하는 힘이 필요 없는 나라입니다. 나귀새끼를 타시고 가는 그 초라한 왕의 뒤를 따라가는 자들이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갈 자들입니다. 이 소식이 땅 끝까지 증거 되면 그때 이 나라의 완성을 보게 될 것입니다. 또한 세상의 힘을 원하였던 나라들은 불살라 질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나귀새끼 타고 오시는 예수님을 나의 왕으로 영접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이 주님이 주시는 진정한 평화를 누리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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