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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고후 5:16-17
성경본문내용 (16)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아무 사람도 육체대로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체대로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이같이 알지 아니하노라(17)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강설날짜 2014-05-14

2014년 고린도후서 공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


말씀:고린도후서 5:16-17

 

우리는 지난 시간에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 것에 대해서 공부했습니다. 14-15절 말씀을 보면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고후 5:14-15).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휘어잡아 이끄시기에 십자가에서 힘없이 돌아가신 예수님께 우리의 마음이 끌리는 것입니다. 이런 은혜가 임한 사람은 이제 자기를 위해서 살 수 없고, 오직 주를 위하여 살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지난 시간에 이어서 고린도후서 5장 말씀을 공부하겠습니다. 바울 사도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사랑에 강권된 자가 어떤 삶을 살 수밖에 없는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사랑에 강권된 자는 어떤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까? 16절 말씀을 보면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아무 사람도 육체대로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체대로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이같이 알지 아니하노라”고 합니다. 여기서 ‘육체대로 안다’고 하는 것은 육신의 잣대로 보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육신의 잣대로 본다는 것은 범죄 한 이후부터 우리 인간의 본능입니다. 죄악된 우리 인간은 모든 것을 외모로 보는 것입니다. 아담이 범죄 한 후의 모습을 보면 그는 하나님이 두렵고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워 나무 그늘 아래 숨었습니다. 나무 잎으로 자기를 가렸습니다. 이것이 범죄 한 이후 우리 인간의 모습입니다. 무엇이든지 자신을 치장하고 가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악하다는 것은 멀리하고 선하다는 것으로 채워서 자신을 가리고 싶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에 불순종하고 범죄한 우리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죄인임을 알게 하시기 위하여 율법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그 율법으로 자기 자신을 치장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가장 율법을 잘 지킨 사람들이 누구였습니까?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보다 더 잘 지키려고 아예 도시를 떠나서 광야의 동굴로 들어간 에세네파도 있었습니다만 실제 생활 속에서 율법을 실천하면서 살았던 사람들이 바로 바리새인들입니다.

 

율법에 보면 율법을 잘 지키면 세상의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는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신명기 28:13-14절 말씀을 보면 “여호와께서 너로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시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시리니. 오직 너는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고 지켜 행하며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그 말씀을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다른 신을 따라 섬기지 아니하면 이와 같으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생각하기를 우리가 이렇게 남의 지배를 받는 것은 율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아서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이 반성에서 출발하였기 때문에 그들이 율법을 열심히 지켜서 새로운 이스라엘을 만들고 싶어했습니다. 율법을 잘 지키는 자신들이 남은 자들로서 메시아가 오시면 자기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나라, 곧 다윗과 솔로몬시대와 같은 그런 왕국을 만들어 온 세계가 그들에게 굴복하는 그런 나라를 기대한 것입니다. 선지자들이 그런 말씀을 예언해 놓았기 때문에 그들은 그것을 사모하며 메시아를 기다린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라는 메시아가 나타났지만 율법을 잘 지킨다고 스스로 자부했던 바리새인들과 제사장들의 눈에는 예수가 가시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왜냐하면 예수가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어기고 성전을 무너뜨리는 자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를 이단의 괴수라고 정죄하고 민중을 선동하여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 버린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그리스도를 육체대로 보았다는 말입니다. 바울 사도 자신이 바리새인 중에 바리새인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육신의 잣대로 보았기 때문에 그를 믿는 자들을 잡아 죽이는 일에 앞장을 선 것입니다. 그는 스데반을 죽이는 일에 가한 자요, 다메섹에 있는 예수 믿는 자는 자들을 잡아 오기 위해 제사장들로부터 체포명령장을 발부받아 원정을 떠나기도 하였습니다(행 9장). 바울 사도는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기 전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육신의 잣대로 보는 일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로운 피조물이 되기 전까지 바울 사도는 육신을 자랑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빌립보서 3:4-9절 말씀에 보면 자신도 육체를 신뢰할 만한 자라고 합니다.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만하니.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내가 팔일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빌 3:4-9). 바울 사도가 왜 이렇게 말하는가 하면 하도 외모를 자랑하는 자들이 많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자신은 난지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인 베냐민 지파 사람이며,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고, 열심히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알고 나서는 그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다고 합니다. 예수님만이 가장 고상한 지식임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로운 피조물 된 자의 모습인 것입니다. 사람을 보아도, 예수님을 보아도 육신의 잣대로 보면 그는 아직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이 아닙니다. 지금 고린도교회에서도 외모를 자랑하는 자들이 왔기 때문에 바울 사도가 새로운 피조물을 이야기 하면서 육신의 잣대로 보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12절 말씀을 보면 “우리가 다시 너희에게 자천하는 것이 아니요. 오직 우리를 인하여 자랑할 기회를 너희에게 주어 마음으로 하지 않고 외모로 자랑하는 자들을 대하게 하려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고후 5:12). 고린도교회에 외모를 자랑하는 자들이 왔습니다. 그들은 전문적인 수사학적 솜씨와 예루살렘 교회로부터의 추천서와 사역의 댓가로 받는 봉급 명세서와 윤리적, 영적 혈통과 황홀한 영적 경험을 가지고 왔습니다. 이들은 이와 같은 자신들의 외모를 자랑하며 바울의 사도권을 부정했습니다. 바울을 대적하고 바울이 전한 복음을 부정하였습니다. 이들의 악영향으로 인해 고린도교회 성도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바울의 사도권을 인정하지 않으며, 바울이 전한 복음에서 떠나 거짓 선생들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입니다. 이런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바울 사도는 자신을 자천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자신의 사도의 직분을 자랑스럽게 생각해 주기를 바란 것입니다.

 

그런데 11절 말씀을 보면 “우리가 주의 두려우심을 알므로 사람을 권하노니. 우리가 하나님 앞에 알리워졌고 또 너희의 양심에도 알리워졌기를 바라노라”고 했습니다(고후 5:11). 그런데 이 말이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 바울이 또 자천하고 있다는 인상을 줄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을 자천할 의사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고린도교회 교인들이 자신의 사도의 직분을 자랑스럽게 생각해 주기를 바란 것입니다. 12절을 다시 보면 “오직 우리를 인하여 자랑할 기회를 너희에게 주어 마음으로 하지 않고 외모로 자랑하는 자들을 대하게 하려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고후 5:12). 그렇습니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자천 하는 듯한 글을 쓴 실제 목적입니다. 즉 바울은 자기를 자천하기 위해서 글을 쓴 것이 아니라 다만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 바울과 그의 복음을 대적하는 거짓 선생들에 대해 반박할 수 있는 자료를 주기 위해서 자천하는 듯한 글을 쓰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싸움도 바로 이 싸움입니다. 곧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육체대로 보느냐 영으로 보느냐의 싸움인 것입니다. 성공과 실패, 축복과 저주, 행복과 불행을 육신의 잣대, 세상의 기준으로 평가하고 있다면 그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의 관점에서 보면 망한 분입니다. 십자가에서 저주 받아 죽은 사람입니다. 그를 믿고 따르는 자들도 다 비참하게 죽어 갔습니다. 그런 예수님을 믿고 따른다고 하면서 세상의 영광을 바라고 외모를 바라본다면 지금 방향을 잘못 잡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다시 창조된 사람만이 십자가의 능력을 알고 믿게 됩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하지만 구원 얻는 자들에게는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고전 1:18).

 

오늘 본문 17절 말씀을 보면 바울은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있어야 새로운 피조물이지 그 외의 것은 모두가 다 헌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애쓰고 노력한다고 해서 새로운 피조물이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육에서 난 것은 육입니다. 영으로 나야 영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육이란 인간적인 모든 노력을 말하는 것입니다. 영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하여 다시 만들어진 것을 영이라고 합니다.

 

출애굽기 28:40-43절에 보면 제사장의 규례를 말씀하는 것을 보면 제사장들이 하나님께 나아갈 때에 하나님 앞에서 하체가 드러나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너는 아론의 아들들을 위하여 속옷을 만들며 그들을 위하여 띠를 만들며 그들을 위하여 관을 만들어서 영화롭고 아름답게 하되 너는 그것들로 네 형 아론과 그와 함께한 그 아들들에게 입히고 그들에게 기름을 부어 위임하고 거룩하게 하여 그들로 제사장 직분을 내게 행하게 할찌며 또 그들을 위하여 베로 고의를 만들어 허리에서부터 넓적다리까지 이르게 하여 하체를 가리게 하라. 아론과 그 아들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나 제단에 가까이 하여 거룩한 곳에서 섬길 때에 그것들을 입어야 죄를 지어서 죽지 아니하리니 그와 그의 후손의 영원히 지킬 규례니라”(출 28:40-43). 이 말씀은 인간의 생식의 능력으로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가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속의 피를 뿌려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만 드릴 향을 만들어 향을 피워야 한다는 말씀도 있습니다. 출애굽기 30:34-38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소합향과 나감향과 풍자향의 향품을 취하고 그 향품을 유향에 섞되 각기 동일한 중수로 하고 그것으로 향을 만들되 향 만드는 법대로 만들고 그것에 소금을 쳐서 성결하게 하고 그 향 얼마를 곱게 찧어 내가 너와 만날 회막 안 증거궤 앞에 두라. 이 향은 너희에게 지극히 거룩하니라. 네가 만들 향은 여호와를 위하여 거룩한 것이니 그 방법대로 너희를 위하여 만들지 말라. 무릇 맡으려고 이같은 것을 만드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끊쳐지리라”고 했습니다. 제사장들이 왜 분향을 하는 것입니까? 우리가 향을 뿌릴 때는 악취를 제거하기 위하여 뿌립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냄새를 싫어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향기로 인간과 하나님 사이를 가리는 것입니다. 결국 범죄 한 인간으로서는 그 어떤 것으로도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오직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야만 용납이 되는 것입니다. 그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은 모든 언약을 완성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 안에서만 용납이 되는 것입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의 피 흘리심인 새 언약 안에 있어야만 우리가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새로운 피조물이 되지 않으면 여전히 옛 하늘과 옛 땅에 속한 것입니다. 옛 하늘과 옛 땅에 속하였기 때문에 그 안에서 아무리 진실하고 선하고 아름다운 것으로 자신을 포장하여 만들어 낸다고 하여도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헌 옷이며, 헌 부대인 것입니다. 헌 옷에 새 조각을 붙일 수가 없고, 헌 부대에 새 술을 담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찢어지고 터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새로운 피조물이 되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베드로후서 3:10-13절을 보면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옵니다. 그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거기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심판의 주로 오셔서 각 사람을 그 선악간에 행한 대로 심판 하십니다. 믿지 아니하는 자들은 영원한 심판에 이르고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의를 힘입어 새 하늘과 새 땅에 거하게 됩니다. 우리가 새로운 피조물이 되지 않으면 영원한 심판에 이르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1:1-8절을 보면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 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장차 때가 되면 주님께서 재림하십니다. 그때는 새 하늘과 새 땅이 나오고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사라질 것입니다. 이 말씀을 믿으십니까? 그런데 왜 우리는 처음 하늘과 처음 땅, 곧 불에 살라 없어질 것들에만 관심을 가지고 삽니까? 그러고서도 우리가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할 수가 있는 것입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내실 것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런데도 우리의 관심사는 늘 어디에 있습니까? 불살라 없어질 이 세상 것들에 있지 않습니까? 눈에 보이는 이 세상 것들에 굴복하며 살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진정 자기 자신이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는지를 살펴봐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새로운 것을 좋아합니다. 물론 몇몇 사람들은 오래된 것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새로운 물건, 새로운 분위기, 새로운 몸과 마음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늘 새로워지기를 위하여 애를 쓰고 노력을 합니다. 무언가 새로워지지 않으면 지루해하고 권태로워 합니다. 그래서 취미생활도 이것저것으로 바꾸어보는 것입니다. 상품을 만들어도 새로운 상품을 자꾸만 만들어 내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새 것이 나오는 그 순간 이미 옛 것이 되어버립니다. 그래서 전도서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전도서 1:2-4절을 보면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거듭나 새로운 피조물이 되지 않으면 모든 것이 헛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야 합니다. 새로운 피조물이란 없는데서 있게 된 것이어야 새로운 피조물인 것입니다. 죽은데서 살아난 것이어야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사람을 육체대로 알지 않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오직 십자가의 도로 행하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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