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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고전 1:10-17
성경본문내용 (10)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다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11)내 형제들아 글로에의 집 편으로서 너희에게 대한 말이 내게 들리니 곧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이라(12)이는 다름아니라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는 것이니(13)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뇨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뇨(14)그리스보와 가이오 외에는 너희 중 아무에게도 내가 세례를 주지 아니한 것을 감사하노니(15)이는 아무도 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말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16)내가 또한 스데바나 집 사람에게 세례를 주었고 그 외에는 다른 아무에게 세례를 주었는지 알지 못하노라(17)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주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케 하려 하심이니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강설날짜 2013-02-27

2013년 고린도전서 공부

 

누가 십자가에 못 박혔는가?

 

말씀:고린도전서 1:10-17

 

우리는 지난 시간에 바울이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향한 문안과 인사에 대해서 살펴봤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 내에 여러 가지 문제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1:4). 그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후회함이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문제 많은 그런 자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히 세우실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1:5-9). 바울은 자기자랑, 교만, 자존심들을 다 부수어내시고 예수 그리스도로만 옷 입도록 하시는 미쁘신 하나님을 믿기에 그들의 형편과 상관없이 감사한 것입니다.

 

바울은 문안인사를 마친 후에 오늘 본문 말씀부터 본격적으로 고린도 교회 내의 문제들에 대해서 권면을 합니다. 1:10-6장까지 말씀은 글로에의 집 사람들의 보고를 통해서 제기된 고린도 교회 내의 여러 가지 문제들 곧 분열 문제(1장), 바울의 사역에 대한 오해(1-4장), 근친상간과 같은 간음죄를 비롯한 성적으로 부도덕한 문제(5장), 세상 법정에 성도를 송사하는 문제(6장) 등에 대해서 권면하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 첫 번째 문제로 분쟁에 대한 권면입니다.

 

먼저 11절 말씀을 보면 “내 형제들아! 글로에의 집편으로 너희에게 대한 말이 내게 들리니. 곧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이라”라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회의 소식을 글로에의 집편으로 들었습니다. 글로에가 사람을 바울에게 보내어 고린도 교회 내에 있는 여러 가지 문제들에 대해서 보고했던 것 같습니다. 글로에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습니다. 아마 바울의 전도로 복음을 영접한 자매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글로에의 집편으로 들려온 소식은 바로 고린도 교회 내에 분쟁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분쟁의 구체적인 내용은 12절에 나옵니다. 12절을 보면 “이는 다름이 아니라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는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고린도 교회 내에 있었던 분쟁의 구체적인 문제는 파당 문제였습니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나는 바울 파다, 나는 아볼로 파다, 나는 베드로 파다, 나는 그리스도 파다’하며 파당을 지어 서로 비방하고 헐뜯고 분쟁을 일삼았습니다. 이로 인해 고린도 교회가 사단의 까불림을 당하고 교회다움을 나타내지 못했습니다.

 

바울은 이런 그들을 어떻게 권면합니까? 10절을 보면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다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고 합니다. 바울은 먼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권면 합니다. 그 권면의 내용은 “다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바울 사도가 사도의 권위로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권면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4:15절에 보면 바울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비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써 내가 너희를 낳았음이라.”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자신이 다만 그들에게 스승이 아니라 복음으로 그들을 낳았다고 합니다. 곧 바울 사도는 그들에게 아비의 심정으로 그들 가운데 있는 분쟁을 안타까워하며, 서로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 내에 있던 파당문제는 자기들이 도움을 받고 섬김을 받은 사람들을 존경하는 데서부터 비롯된 것 같습니다. 먼저 바울 파입니다. 바울 사도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복음으로 너희를 낳았다”고 하는 것을 볼 때 고린도 교회 성도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바울로부터 양육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아마 초기 성도들은 대부분 바울로부터 양육을 받았을 것입니다. 이들이 자신들의 목자인 바울을 존경하며, 추종하였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이들의 마음을 능히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이들은 바울에게 많은 사랑과 섬김의 빚을 진 자들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씨 뿌리는 자나 물 주는 자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증거 합니다. 세례 요한과 같이 광야에 외치는 자라고 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복음을 전하여준 사람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자기 목자라고 특별히 존경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이런 점은 좋은 일이고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지나쳐서 그리스도보다 앞서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바울에게 양육을 받은 자들이 처음부터 우리는 바울 파다 하고 그렇게 파당을 짓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고린도 교회 성도들 간에 자신들을 양육한 목자를 중심으로 유대관계가 깊어지고 서로 경쟁하다보니 바울에게서 섬김을 받은 자들은 바울에 대한 자부심이 지나쳐서 자신들은 바울 파다 하고 나왔을 것입니다. 또한 이들에게는 자신들은 개척 조상이다고 하는 자부심과 기득권을 주장하는 마음도 있었을 것입니다. 사도행전이나 바울의 사역을 볼 때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 자기 자신을 증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였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고린도 교회 성도들 가운데에는 바울을 따르는 파당이 생긴 것입니다. 우리도 과거 선교단체 시절 일대일 목자에게 양육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자기 목자를 중심으로 더 견고한 유대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때로는 공동체 가운데 문제를 야기하기도 하였습니다.

 

두 번째는 아볼로 파입니다. 아볼로는 어떤 사람입니까? 사도행전 18:24-28절을 보면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학문이 많고 성경에 능한 자라. 그가 일찍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를 시작하거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자세히 풀어 이르더라. 아볼로가 아가야로 건너가고자 하니 형제들이 저를 장려하며 제자들에게 편지하여 영접하라 하였더니. 저가 가매 은혜로 말미암아 믿은 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니. 이는 성경으로써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거하여 공중 앞에서 유력하게 유대인의 말을 이김일러라”고 했습니다.

 

아볼로는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유대인이었습니다. 당시 알렉산드리아는 학문의 중심지였습니다. 그래서 아볼로는 세상의 학문도 많고 성경에도 능하여 주의 도를 전하는데 아주 유능한 자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가 세례 요한의 세례만 안 것입니다. 이런 그에게 바울 사도와 동역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하나님의 도를 그에게 더 자세히 풀어 설명하였습니다. 곧 세례 요한의 세례만 아는 그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의 도움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이해한 아볼로가 성경으로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거 하여 공중 앞에서 유력(eujtovnw" 유토노스, 권세 있게)하게 유대인의 말을 이겼습니다. 이 아볼로가 고린도에서 사역을 하니 사람들이 아볼로를 추종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말도 어눌하고 외모도 시험에 들 만한 사람인데 비해 아볼로는 뛰어난 외모와 학문에 다가 능통한 성경의 지식과 달변으로 유대인들을 반박하여 굴복시켰기 때문에 단연 인기 있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로인하여 그를 존경하고 따르는 많은 무리들로 인하여 또 하나의 파당이 생긴 것입니다.

 

세 번째는 베드로 파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제자 중에서도 수제자였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의 사도이니 만큼 유대인들 중심으로 베드로 파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 안에는 많은 유대인 신자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베드로를 추종하였던 것 같습니다. 고린도 지역의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지만 그들은 여전히 유대인으로서의 자부심과 율법을 존경하는 경향들을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특히 고린도 지역의 방탕한 문화 속에서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서 복음보다 외적인 규정들에 자기들의 안정감을 두려고 하는 경우가 발생하였을 것입니다. 그로 인하여 유대인 신자들은 유대인의 사도인 베드로를 존경하고 따름으로 또 하나의 파당이 생긴 것입니다.

 

네 번째로 그리스도 파입니다. 이들은 왜 자신들을 그리스도의 파다고 하였을까요? 바울 파다, 아볼로 파다, 베드로 파다라고 하는 자들이 아니꼬운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최고의 높은 분의 이름을 들이대는 것입니다. 이들 자신들은 어느 지도자의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말을 듣는다는 것입니다. 요즈음도 이런 사람들이 얼마든지 나올 수가 있습니다. 직통계시를 받는다는 사람들이 이런 자들입니다.

 

그러면 바울 사도가 이 그리스도 파라고 하는 당을 지지합니까? 아닙니다. 이 당도 역시 자기들의 파벌의식에서 나온 것에 불과합니다. 이들이 그리스도를 위하는 것 같지만 사실 자기 영광을 구한 것입니다. 바울은 이런 그들에게 무엇이라고 합니까? 13절을 보면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뇨.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뇨”라고 책망합니다.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뇨’라고 반문 합니다.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느냐’고 합니다. 한마디로 ‘누가 십자가에 못 박혔는가’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이름을 들어서 그들을 책망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파당을 이루고 있는 모든 사람을 염두에 두고 ‘누가 십자가에 못 박혔는가? 누구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는가?’라고 합니다. 바울은 파당을 지어 다투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혔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음을 상기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힌 사건과 세례를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세례란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6:3-5절에 보면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함께 살아난 것입니다. 이것이 세례인데, 이 세례를 누구의 이름으로 받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누구만을 자랑해야 하는 것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만을 자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자신에게 세례를 베푼 교회나 목사를 중요시 여길 때 거기에 자기 자랑이 나오고 사람을 우상시 하는 것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로 인해서 파당이 생기는 것입니다.

 

14-17절을 보면 “그리스보와 가이오 외에는 너희 중 아무에게도 내가 세례를 주지 아니한 것을 감사하노니. 이는 아무도 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말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내가 또한 스데바나 집 사람에게 세례를 주었고 그 외에는 다른 아무에게 세례를 주었는지 알지 못하노라.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주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케 하려 하심이니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자기가 세례를 많이 주었다면 아무래도 나는 누구에게 세례를 받았다는 말이 나올까봐서 겨우 몇 사람에게만 세례를 주었다고 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그렇게 한 것을 감사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세례를 많이 베풀어서 자기를 따르도록 하지 않았습니다. 곧 바울은 자기 사람 만들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직 주님의 사도로서 자신의 신분을 분명히 인식하고 오직 복음을 전하는 일에 전념하였습니다. 그리고 복음 전파도 말의 지혜로 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이 그렇게 한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었습니다. 바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만을 증거한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세례를 주다가 예수님께서 세례를 주는 곳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 가자 무엇이라고 하였습니까? 요한복음 3:30절에 보면 “자기는 쇠하여야 하고 예수님은 흥하여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누가 세례를 얼마나 많이 주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복음을 전하는 것이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그 복음을 믿는 것이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진정한 세례인 것입니다. 그런데도 나는 누구에게 세례를 받았다고, 그것을 가지고 자랑하고, 파당을 나누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책망하면서 바울은 “누가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누구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는가”를 반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은 세례를 베푸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는 것이 자기를 보내신 주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래야 주님의 십자가가 헛되지 아니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그 초점을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모으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4:1-5절을 보면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라고 했습니다.

 

누가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까? 누가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 우리의 죄가 용서 되었습니까? 바울입니까? 아니면 베드로입니까? 아볼로입니까?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는 고린도전서 2:2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그렇습니다. 이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 무슨 파당이 생기거나 다툼이 일어나거나 자랑거리가 나오면 우리는 바울의 이 말씀 앞에 서야 합니다. 누가 십자가에 못 박혔는지, 누가 세례를 주었는지 물어야 합니다. 그리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봐야 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해야 합니다. 누가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 죄인인 우리가 의인이 되었습니까? 누가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 우리가 죄와 사망의 법에서 벗어나 의와 생명의 법안에 들어오게 되었습니까? 우리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이 질문 앞에서 입을 닫게 되어 있습니다. 자신의 전 재산을 바쳐서 예배당 건물을 지었든지, 자기의 온 몸을 헌신하여 교회를 개척하였든지, 얼마나 많은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교회로 인도하였든지 간에 입을 닫게 됩니다.

 

바울 사도가 파당을 지어 분쟁하고 있는 고린도 교회에 질문한 이 질문은 우리가 죽는 그날까지,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계속되어야 할 질문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자기 의가 죽을 때까지 나오기 때문입니다. ‘누가 십자가에 못 박혔는가?’ ‘누가 세례를 주었는가?’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파당문제와 같은 우리 가운데 하나 되지 못하게 하는 모든 문제들을 파하여 주시고, 같은 말을 하며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하나가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교회가 교회다움을 잘 나타내 가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교회를 통해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만이 증거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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