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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신 12:15-28
강설날짜 2019-04-17

2019년 신명기 공부

오직 그 피는 먹지 말고

말씀:신명기 12:15-28

 

우리는 지난 시간에 여호와께서 택하신 장소에서 예배하라고 하시는 것을 살펴봤습니다(1-14). 그런데 그 장소가 건물이나 지명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배웠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지난 시간에 계속되는 말씀으로 성전과 일상에서 고기를 먹을 때의 규례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살펴보는 가운데 이 말씀을 통해서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계시가 무엇인지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15-19절을 보면 “그러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복을 따라 각 성에서 네 마음에 즐기는 대로 생축을 잡아 그 고기를 먹을 수 있나니 곧 정한 자나 부정한 자를 무론하고 노루나 사슴을 먹음 같이 먹으려니와 오직 그 피는 먹지 말고 물 같이 땅에 쏟을 것이며 너는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와 네 우양의 처음 낳은 것과 너의 서원을 갚는 예물과 너의 낙헌 예물과 네 손의 거제물은 너의 각 성에서 먹지 말고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실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너는 네 자녀와 노비와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함께 그것을 먹고 또 네 손으로 수고한 모든 일을 인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하되 너는 삼가서 네 땅에 거하는 동안에 레위인을 저버리지 말지니라”고 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주신 복을 따라 각 성에서 즐거운 마음으로 생축을 잡아 그 고기를 먹을 수 있다고 합니다. 곧 정한 자나 부정한 자를 무론하고 노루나 사슴을 먹음 같이 먹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피는 먹지 말고 물 같이 땅에 쏟으라고 합니다. 그리고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와 우양의 처음 낳은 것과 서원을 갚는 예물과 낙헌 예물과 거제물은 너의 각 성에서 먹지 말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택하실 곳에서 여호와 앞에서 먹으라고 합니다. 자녀와 노비와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함께 여호와 앞에서 즐겁게 먹으라고 합니다. 노예에서 해방되어 여호와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그 앞에서 먹는 것은 참으로 즐거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에 본 7절 말씀을 보면 “거기 곧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먹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손으로 수고한 일에 복 주심을 인하여 너희와 너희 가족이 즐거워할지니라”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신명기 말씀에 보면 곳곳에서 즐거워하라고 합니다(12:12, 14:26, 16:11 등). 출애굽기 35:29절에 보면 “마음에 원하는 이스라엘 자손의 남녀마다 여호와께서 모세의 손을 빙자하여 명하신 모든 것을 만들기 위하여 물품을 가져다가 여호와께 즐거이 드림이 이러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성막을 만들기 위해서 그 재료를 모으는 일에 하나님의 신에 감동을 받아서 마음에 자원하여 즐겁게 드렸다고 합니다. 역대상 29:6-9절을 보면 “이에 모든 족장과 이스라엘 모든 지파 어른과 천부장과 백부장과 왕의 사무 감독이 다 즐거이 드리되 하나님의 전 역사를 위하여 금 오천 달란트와 금 다릭 일만과 은 일만 달란트와 놋 일만 팔천 달란트와 철 십만 달란트를 드리고 무릇 보석이 있는 자는 게르손 사람 여히엘의 손에 부쳐 여호와의 전 곳간에 드렸더라. 백성이 자기의 즐거이 드림으로 기뻐하였으니 곧 저희가 성심으로 여호와께 즐거이 드림이며 다윗 왕도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도 보면 성전 건축을 위해서 예물을 드리게 하니 모든 족장으로부터 백성들까지 즐거이 드림이 그들의 기쁨이었고, 다윗 왕도 기쁨을 이기지 못했다고 합니다.

 

다윗 왕이 성전 건축을 위한 예물을 준비하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하는 내용이 역대상 29:10-22절에 나오는데 그 중에 14-16절 말씀을 보면 “나와 나의 백성이 무엇이관대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주 앞에서는 우리가 우리 열조와 다름이 없이 나그네와 우거한 자라.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 같아서 머무름이 없나이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가 주의 거룩한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려고 미리 저축한 이 모든 물건이 다 주의 손에서 왔사오니 다 주의 것이니이다”고 했습니다. 다윗은 나와 나의 백성이 무엇이관대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느냐고 합니다.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라고 합니다. 나그네와 우거한 자와 그림자와 같은 인생이 하나님의 약속에 참여되었다는 것이 기쁘고 즐거움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그 약속이란 바로 성전에 참여되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이런 즐거움이 있습니까? 다윗 왕의 즐거움과는 족히 비교할 수도 없는 즐거움이 신약의 성도들에게 주어졌습니다. 모든 것을 주셔서 기쁘고 즐거운 정도가 아니라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고난을 당하고 심지어 죽임을 당하여도 기뻐하는 예배가 신약의 예배입니다. 그것은 건물이 아닌 참 성전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얻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건물로 된 성전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성전이 되었기에 구약의 제사를 통해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기쁨인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우리 가운데 이런 기쁨이 없다면 그것은 우리가 어디에서 나왔는지를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곧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로 말미암아 구원함을 받은 것을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또한 자신의 의가 쌓여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예배의 기쁨과 감격이 없다면 우리는 다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예배의 감사와 감격을 회복해야 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배하는 감사와 감격으로 충만케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자신만 즐거워하지 말고 네 자녀와 노비와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함께 즐거워하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 18절을 다시 보면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실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너는 네 자녀와 노비와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함께 그것을 먹고 또 네 손으로 수고한 모든 일을 인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하되”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예배드리는 자신뿐만 아니라 함께 즐거워할 자를 말씀합니다. 네 자녀와 노비와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함께 즐거워하라고 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왜 자녀를 포함 시키지 의아해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요즈음에는 자녀가 집집마다 우상이 되어 있으니 이런 말씀이 이해가 잘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고대로 갈수록 아이들은 사람의 수에 치지도 않았습니다. 그럴 뿐만 아니라 자녀는 노동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자녀는 부모가 거저 주는 것을 기억시키는 장치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자녀에게 주는 것으로 여기지 말고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주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하는 장치이기에 자녀를 언급한 것이라고 봅니다. 하여튼 함께 즐거워해야 하는 자들은 12절과 18절에 보면 자녀와 노비와 레위인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자녀뿐만 아니라 노비는 왜 하나님께 예배하는 즐거움에 함께 참여시키는 것입니까?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노예였음을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노비니까 불쌍해서 나는 가진 자로서 너를 동정한다는 차원이 아니라 노비와 함께 즐거워함으로 너의 근본을 알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너도 애굽에서 종 되었다는 것입니다. 신명기 16:11-12절을 보면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및 너희 중에 있는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 할지니라. 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이 규례를 지켜 행할지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자녀와 노비와 레위인만이 아니라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즐거워하는 것이 제사요, 예배인 것입니다. 이를 통하여 보여주시고자 하시는 뜻은 분명해집니다. 그것은 너희가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이 규례를 지키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사나 예배를 잘 드려서 복을 받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너희가 무슨 복을 받았는지를 기억하는 것이 예배요, 제사인 것입니다.

 

특히 오늘 본문에 보면 레위인과 함께 즐거워하고 그들을 저버리지 말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 19절을 다시 보면 “너는 삼가서 네 땅에 거하는 동안에 레위인을 저버리지 말라”고 합니다. 레위인은 기업이 없는 사람입니다. 기업이 없기에 그들은 제사를 드리는 제물 중에서 자기들의 식물로 삼아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땅이 없는 자들이 제사를 드림으로 백성들이 복을 받는 방식입니다. 땅이 없는 자가 땅이 있는 자를 위하여 속죄의 제사를 지내고 화목제의 제사를 지내는 것입니다. 그 일의 중심에는 피 흘림의 제사가 있습니다. 그래서 제사를 드리고 제물을 먹을 때에 피는 결코 먹지 못하게 하십니다. 오늘 본문 16절을 다시 보면 “오직 그 피는 먹지 말고 물 같이 땅에 쏟을 것이며”라고 했습니다. 식용으로 잡아먹는 짐승의 피조차도 먹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습니까? 피는 곧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23-24절을 보면 “오직 크게 삼가서 그 피는 먹지 말라. 피는 그 생명인즉 네가 그 생명을 고기와 아울러 먹지 못하리니 너는 그것을 먹지 말고 물 같이 땅에 쏟으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피에 대하여 레위기 17:10-11절을 보면 “무릇 이스라엘 집 사람이나 그들 중에 우거하는 타국인 중에 어떤 피든지 먹는 자가 있으면 내가 그 피 먹는 사람에게 진노하여 그를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고 했습니다. 또한 히브리서 9:11-22절을 보면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 가셨느니라.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로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케 하여 거룩케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 이를 인하여 그는 새 언약의 중보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를 속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유언은 유언한 자가 죽어야 되나니 유언은 그 사람이 죽은 후에야 견고한즉 유언한 자가 살았을 때에는 언제든지 효력이 없느니라. 이러므로 첫 언약도 피 없이 세운 것이 아니니 모세가 율법대로 모든 계명을 온 백성에게 말한 후에 송아지와 염소의 피와 및 물과 붉은 양털과 우슬초를 취하여 그 책과 온 백성에게 뿌려 이르되 이는 하나님이 너희에게 명하신 언약의 피라 하고 또한 이와 같이 피로써 장막과 섬기는 일에 쓰는 모든 그릇에 뿌렸느니라.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피 흘림이 없이는 사함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피를 먹지 못하게 하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 흘림의 뜻을 증거 하기 위함입니다. 예배란 거꾸로 소급해 올라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원수 되어 마귀의 종이었던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로 용서받아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언약을 따라 긍휼과 자비가 나타난 것입니다. 그래서 자녀와 노비와 고아와 객과 나그네와 레위인이 함께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이 즐거움의 제사가 되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자기 피를 뿌리신 것입니다. 우리의 즐거움을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뿌리신 것을 감사하고 찬양합니다. 우리가 이 주님의 은혜 안에서 하나님께 감사와 즐거움의 제사를 드리며,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즐거움의 교제를 이루어 갈 수 있기를 원합니다.

 

오늘 본문 20-25절을 보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허락하신 대로 네 지경을 넓히신 후에 네 마음에 고기를 먹고자 하여 이르기를 내가 고기를 먹으리라 하면 네가 무릇 마음에 좋아하는 대로 고기를 먹을 수 있으리니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이 네게서 멀거든 내가 네게 명한 대로 너는 여호와의 주신 우양을 잡아 너의 각 성에서 네가 무릇 마음에 좋아하는 것을 먹되 정한 자나 부정한 자를 무론하고 노루나 사슴을 먹음 같이 먹을 수 있거니와 오직 크게 삼가서 그 피는 먹지 말라. 피는 그 생명인즉 네가 그 생명을 고기와 아울러 먹지 못하리니 너는 그것을 먹지 말고 물 같이 땅에 쏟으라. 너는 피를 먹지 말라. 네가 이같이 여호와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일을 행하면 너와 네 후손이 복을 누리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집에서 고기를 먹을 때 곧 일상에서 식용으로 짐승을 잡아 먹을 때 피에 대한 규례를 말씀합니다. 우리가 15-16절에서 본 것처럼 집에서 고기를 먹을 때 다만 피는 먹지 말고 땅에 쏟으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피가 원래 나빠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피를 인간의 목숨, 나아가 모든 생명에 대한 상징물로서 백성들에게 주셨습니다. 그래서 피는 생명인즉 그 생명을 고기와 함께 먹지 못하게 합니다. 23절을 다시 보면 “오직 크게 삼가서 그 피는 먹지 말라. 피는 그 생명인즉 네가 그 생명을 고기와 아울러 먹지 못하리니”라고 했습니다.

 

생축을 잡아 즐겁게 먹는 축복을 주신 하나님은 피와 고기를 함께 먹지 말라고 합니다. 피를 먹으면 자기도 모르게 식인종의 정신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생명을 함부로 대할 수가 있습니다. 나아가서 생명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영역을 침범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일을 통해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께서 정하신 법의 테두리에 남도록 가르치는 것입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따 먹으면서 한 범죄를 더 이상 반복하지 않도록 피를 금하는 계명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작은 의식을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살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참으로는 우리는 여기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의 사랑 앞에서 매사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 앞에 범죄 하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 수 있기를 원합니다.

 

오늘 본문 26-28절을 보면 “오직 네 성물과 서원물을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으로 가지고 가라. 네가 번제를 드릴 때에는 그 고기와 피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단에 드릴 것이요, 다른 제 희생을 드릴 때에는 그 피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단 위에 붓고 그 고기는 먹을지니라.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모든 말을 너는 듣고 지키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목전에 선과 의를 행하면 너와 네 후손에게 영영히 복이 있으리라”고 합니다. 16절과 24절에서 본 것처럼 집에서 고기를 먹을 때에 그 짐승의 피는 땅 위에 쏟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성전 제사의 고기의 피는 제단 위에 쏟으라고 하셨습니다(27). 24절과 27절에 보면 ‘위에’라는 단어를 두 곳에 다 사용합니다. 집에서 고기를 먹으면서 피를 땅에 쏟는 일상의 식사 의식에서, 성전의 제단 위에 피를 쏟는 거룩한 예배 의식을 경험합니다. 성전 예배의 거룩은 일상의 먹고 마시는 일에서 계속됩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0:31절에 보면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행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예배를 바르게 행하는 것입니다. 말씀과 성례, 기도로 드리는 예배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바른 예배를 회복해야 합니다. 바른 예배는 우리의 예배 중심에 하나님을 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방인의 우상숭배를 가져오지 말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우리의 복을 위함입니다. 피를 마시는 우상숭배적인 예배는 심지어 그 자녀를 불살라 그 신들에게 드렸습니다(31). 바른 예배가 없을 때 자녀에게 큰 해를 끼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의 삶이 불행해 집니다. 우리는 세상 안에서 우상숭배적인 경향을 다 없앨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는 오직 하나님만 높이는 예배를 회복해야 합니다. 또 성도는 예배를 중심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삶이 하나님께 드려지는 거룩한 산 제사가 되어야 합니다(롬 12:1). 구약의 성도는 성전에서 예배하며 고기를 먹는 즐거움 때문에, 집에서 고기를 먹는 즐거움도 있었습니다. 신약의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도 예배의 기쁨 가운데 모든 삶에서 기쁨이 넘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가 주님 안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기쁨으로 충만케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또한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하나님 앞에서 참된 친교를 이루어 감으로 즐거움이 충만케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모든 삶이 하나님께 산 제사로 드려지는 삶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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