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3994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Extra Form
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고전 4:1-5
성경본문내용 (1)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군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2)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3)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치 아니하노니(4)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그러나 이를 인하여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판단하실 이는 주시니라(5)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치 말라 그가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강설날짜 2013-04-24

2013년 고린도전서 공부


판단하실 이는 주시니라


말씀:고린도전서 4:1-5


오늘부터 우리는 고린도전서 4장을 공부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이제까지 1-3장 말씀을 통해서 바울이 글로에의 집 편으로 전해 온 고린도 교회 내의 파당 문제에 대해서 권면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고린도 교회 내에 파당 문제가 생긴 것은 다 자기 자랑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고린도 교회 교인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자신들이 무엇이나 된 것인냥 자기를 자랑하였습니다. 그로 인해 교회 내에 시기와 질투가 생기고 분쟁이 생겨났습니다. 결국 파당을 이루어 서로 다투었습니다. 바울은 이런 그들을 책망하였습니다. 아볼로가 무엇이며, 바울이 무엇이냐고 했습니다(3:5). 그들이 육신에 속한 자들이라고 했습니다(3:1,3). 그리고 자신은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을 뿐이라고 했습니다(3:6-7). 오직 자라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심을 증거했습니다(3:6-7). 그러므로 누구든지 자기를 자랑하지 말라고 했습니다(3:21).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라고 했습니다(3:23).


그런데 이런 교회로 모이면서도 사람들은 서로 자기 자랑을 하기 위해 모인다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를 하는데 그것이 자기가 인정받고 싶어서 그렇게 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래서 교회는 경쟁을 시키고 이기는 사람이나 구역에는 상을 줍니다. 이것을 통해 교인들로 하여금 더 열심을 끌어내는 것입니다. 신앙의 싸움은 사람 앞에서 할 것인가? 아니면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할 것인가의 싸움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알아주고 칭찬해주면 잘하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으면 평소에 잘 하던 것도 하지 않게 되는 것은 결국 하나님을 위하여 한 것이 아니고 자기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곧 자기 자랑을 위해서 한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가 그렇고 또한 오늘날 우리 교회가 그렇습니다. 그래서 고린도 교회에서 파당이 생기고 서로 다른 파를 비난하고 헐뜯고 깎아내리는 것입니다. 심지어 그들 가운데서는 바울 사도의 사도권을 인정하지 않는 자들까지 생겨났습니다.


오늘 본문 1절을 보면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군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찌어다”라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자기들을 그리스도의 일군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겨달라고 합니다. 바울 사도가 고린도 교회 교인들이 알아주든지 알아주지 않든지 그리스도의 일군으로써 충성만 하면 될텐데 왜 자신들을 알아 달라고 하는 것입니까? 여기서 바울 사도가 자신들을 그리스도의 일군으로 알아달라고 하는 것은 자기들이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가 고린도 교회 교인들에게 자신들을 그리스도의 일군으로 알아달라고 한 것은 자기 자신들을 좀 알아달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회 교인들이 자기들을 어떻게 평가하고 판단하는 것은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다만 자기들이 전하는 하나님의 비밀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증거 하고자 한다는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바로 이 사실을 알아 달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오직 고린도 교회 교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하고자 한 것입니다.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을 보고 유대인들이 믿지 아니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출신이나 배경이나 학력을 보건데 너무나 보잘 것 없는 사람이었기에 그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지 못한 것입니다. 심지어 제자들도 예수님을 믿지 못했습니다. 요한복음 14:1-12절에 보면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내가 가는 곳에 그 길을 너희가 알리라. 도마가 가로되 주여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삽나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너희가 나를 알았더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빌립이 가로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고 했습니다. 지금 바울 사도의 심정이 바로 이와 같지 않았겠습니까? 사람들이 자기들을 여러 가지 외모로 판단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으로 판단하지 말고 자신들이 전하는 복음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1:6-9절에도 보면 바울 사도는 갈라디아 교회 교인들에게도 자신이 전한 복음에 대해서 강력하고도 분명하게 입장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 교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좇는 것을 이상히 여긴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들에게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자신들이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가 임한다고 선포했습니다. 바울은 자신들이 전한 복음을 수호하는데 한치의 틈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이와 같이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회 교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분명히 알게 하고자 했습니다.


오늘 본문 2절을 보면 바울 사도는 계속해서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서는 충성할 뿐입니다. 여기서 바울 사도가 충성한다고 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전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사람들이 싫어하고 꺼려하고 미련하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회 교인들에게 사람들의 판단에 휘둘리지 말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에 충성하라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도가 모든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이 되지 못합니다. 오히려 십자가의 도가 많은 사람들에게 걸림돌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을 좋게 하려면 사람들의 판단을 듣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사람을 기쁘게 하면 하나님의 종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갈라디아서 1:10절에 보면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고 했습니다. 또한 빌립보서 1:18절에도 보면 “그러면 무엇이뇨. 외모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내가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고 합니다. 바울 사도는 사람들이 자신을 괴롭게 하려고 다툼으로 곧 경쟁적으로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을 보고서도 그렇게 전하여도 그리스도가 전하여 지니 자신은 기쁘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종의 자세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증거되는 것! 그것으로 기뻐하는 것!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종들의 마땅한 자세인 것입니다.


3절을 보면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치 아니하노니”라고 합니다. 바울 사도는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을 일이라고 합니다. 바울 사도가 고린도 교회 많은 교인들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한 것입니다. 물론 바울 파에게서는 인정을 받았지만 아볼로 파나 베드로 파에서는 인정을 받지 못한 것입니다. 얼굴이 못 생겼다고, 말을 더듬는다고, 육신의 질병이 있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종으로 인정을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는 그러한 사람들의 평가와 판단에 대하여 자신은 자유 하다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남이 자신에게 조금만 나쁘게 말해도 그것으로 죽이느니 살리느니 하지 않습니까? 남이 나를 어떻게 판단하는가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얼마나 자유하게 된 사람입니까? 남의 판단에서 자유로운 사람,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까? 시편 3편을 보면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소이다. 많은 사람이 있어 나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하나님께 도움을 얻지 못한다 하나이다(셀라).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니이다.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셀라).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천만인이 나를 둘러치려 하여도 나는 두려워 아니하리이다.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주께서 나의 모든 원수의 뺨을 치시며 악인의 이를 꺾으셨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셀라)”라고 시편 기자는 노래했습니다. 성경에 보면 이 시편에 대한 설명이 붙어 있습니다. “다윗이 그 아들 압살롬을 피할 때에 지은 시”라고 되어 있습니다. 다윗의 대적이 얼마나 많은지 천만인이 자기를 둘러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얼마나 조롱하였겠습니까? 네 하나님이 어디에 있느냐고? 아들이 반역을 해서 맨발로 도망갔으니 다윗이 얼마나 수치스러운 일입니까? 그런데도 자기는 두려워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누워 자고 깨었다는 것입니다. 곧 평안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붙들어 주셨기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구원이 여호와께 있기에 그렇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우리에게 다윗과 같은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부끄러워서 자살하지 않았겠습니까? 자살은 무서우니 교회를 옮긴다든지,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모르도록 숨기지 않았겠습니까? 우리는 주변에서 단 한 사람이라도 나를 모함하고 욕하면 견디지를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다윗과 바울 같은 경우에 보면 그러한 것들은 매우 작은 일로 여긴 것입니다. 이들이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진리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구원의 주님을 알았기에 천만인이 나를 대적하여도 매우 작은 일로 여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하셨습니다(요 8:32). 그러므로 사람의 판단은 중요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3b-4절을 보면 “나도 나를 판단치 아니하노니.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그러나 이를 인하여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판단하실 이는 주시니라”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사람들의 판단을 매우 작은 일로 여길 뿐만 아니라 자기도 자기 자신을 판단하지 아니한다고 합니다. 대개의 경우 다른 사람들의 평가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고 하면서도 자기 스스로 자신을 판단할 때가 많습니다. ‘아! 나는 왜 이럴까!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하면서 자기를 스스로 판단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바울 사도는 자기를 판단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기를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면 바울 사도가 어떻게 이런 자세를 가지게 된 것입니까? 바울 사도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나서 완벽하게 주님의 뜻대로 살아서 자책할 것이 없다고 하였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바울 사도도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왜 자기를 자책할 것이 없다고 하였겠습니까? 자기의 잘못이 없다고 할지라도 그것으로 인하여 의롭다 함을 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를 자책하지 않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의롭다고 판단하실 이가 자신이 아니라 우리 주님이시라는 고백입니다. 자기의 행위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이 아니기에 자기의 행위를 가지고 자책하고 있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남의 판단도 매우 작은 일로 여기고, 자기 스스로도 자책하지 아니하는 것은 자기 마음대로 산다는 것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진짜로 판단하실 분이 주님이심을 믿고 사는 것입니다. 남의 판단이나 나의 판단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즉 주님께서 재림하시기 까지는 아무 것도 판단하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5절을 보면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치 말라. 그가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고 합니다. 주님께서 오시면 어두움에 감춰진 모든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실 것입니다. 그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즉 사람의 판단이나 칭찬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해가 되는 경우가 더 많은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스스로의 판단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직 만물을 벌거벗은 듯이 드러내시는 주님의 판단만이 진실하고 참되고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바울의 이 권면의 말씀을 통해서 고린도 교회 교인들이 왜 파당을 지어 서로 미워하고 다투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판단 앞에서 살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의 판단을 따라 살았습니다. 그로 인해서 자기 자랑이 나오고 시기와 질투가 나오고 다툼이 나온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판단 앞에 서게 될 때에 곧 그리스도의 판단 앞에서 살 때에 자기 자랑이 나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남의 판단 때문에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니면 자기 양심을 기준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내 양심에 바르게 하였다고 판단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무리 자기 양심에 옳은 대로 하였다고 해도 그것이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모든 감추어져 있던 것들이 주님께서 오시는 그 날에 밝히 드러날 것입니다.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판단하느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가 나를 판단하는 것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직 나를 판단하실 주님 앞에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오늘도 살아서 일하고 계시고, 다시 오셔서 온 세상을 판단하실,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살아가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교회 가운데 모든 시기와 분쟁, 다툼이 떠나가게 하시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교회로 세워져 가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TAG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성경본문 설교자 강설날짜 조회 수
426 [열왕기하 25장] 유다 왕 여호야긴이 석방되다 file 왕하 25:22-30 손재호 2018-08-22 435
425 [열왕기하 24장]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한 여호야긴 file 왕하 24:8-17 손재호 2018-08-01 274
424 [열왕기하 24장] 유다가 바벨론에 의해 멸망하다 file 왕하 24:18-25:7 손재호 2018-08-08 253
423 [열왕기하 24장] 느부갓네살을 배반한 여호야김 file 왕하 24:1-7 손재호 2018-07-25 321
422 [열왕기하 23장] 유다 왕 여호아하스와 여호야김 file 왕하 23:31-37 손재호 2018-07-18 362
421 [열왕기하 23장] 유월절을 회복하는 요시야 file 왕하 23:21-30 손재호 2018-07-11 425
420 [열왕기하 23장] 이방 예배를 없애는 요시야 file 왕하 23:1-20 손재호 2018-07-04 397
419 [열왕기하 22장]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한 요시야 file 왕하 22:1-20 손재호 2018-06-27 330
418 [열왕기하 21장]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한 아몬 file 왕하 21:19-26 손재호 2018-06-20 269
417 [열왕기하 21장]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한 므낫세 file 왕하 21:1-18 손재호 2018-06-13 383
416 [열왕기하 20장] 바벨론으로 옮긴바 되리라 file 왕하 20:12-21 손재호 2018-06-06 362
415 [열왕기하 20장] 히스기야 왕의 발병과 회복 file 왕하 20:1-11 손재호 2018-05-30 488
414 [열왕기하 1장]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file 왕하 1:1-18 손재호 2017-07-05 699
413 [열왕기하 19장] 여호와의 열심이 이루리라 file 왕하 19:1-37 손재호 2018-05-23 467
412 [열왕기하 18장] 무엇을 의뢰하느냐? file 왕하 18:17-37 손재호 2018-05-16 420
411 [열왕기하 18장] 유다 왕 히스기야의 개혁 file 왕하 18:1-16 손재호 2018-05-09 489
410 [열왕기하 17장] 여호와도 섬기고 이방신도 섬김 file 왕하 17:24-41 손재호 2018-05-02 347
409 [열왕기하 17장] 유다도 여로보암의 죄를 따름 file 왕하 17:19-23 손재호 2018-04-25 254
408 [열왕기하 17장] 북 이스라엘의 멸망 file 왕하 17:1-18 손재호 2018-04-18 519
407 [열왕기하 16장] 유다 왕 아하스의 행적 file 왕하 16:1-20 손재호 2018-04-11 565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 25 Next
/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