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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고전 10:14-22
성경본문내용 (14)그런즉 내 사랑하는 자들아 우상 숭배하는 일을 피하라(15)나는 지혜 있는 자들에게 말함과 같이 하노니 너희는 내 이르는 말을 스스로 판단하라(16)우리가 축복하는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예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함이 아니냐(17)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예함이라(18)육신을 따라 난 이스라엘을 보라 제물을 먹는 자들이 제단에 참예하는 자들이 아니냐(19)그런즉 내가 무엇을 말하느뇨 우상의 제물은 무엇이며 우상은 무엇이라 하느뇨(20)대저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 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21)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상과 귀신의 상에 겸하여 참예치 못하리라(22)그러면 우리가 주를 노여워하시게 하겠느냐 우리가 주보다 강한 자냐
강설날짜 2013-08-21

2013년 고린도전서 공부


우상숭배 하는 일을 피하라


말씀:고린도전서 10:14-22


우리는 지난 시간에 바울이 구약의 거울로 고린도교회 교인들의 모습을 비춰주시는 것을 배웠습니다(1-13). 출애굽 후 범죄 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이 바로 고린도교회 교인들의 모습이요, 오늘날 우리 자신들의 모습임을 살펴보았습니다. 우상숭배, 간음, 주를 시험하는 것, 원망 등 이러한 죄악들이 바로 우리들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가 구약의 거울을 보고서 우리 자신들을 고칠 수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인간이 스스로 고칠 수 없다는 것을 이미 구약 성경이 우리에게 증거 해 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의 내용들을 스스로 지킬 수가 없었습니다. 율법의 기능이 무엇입니까? 범죄 한 아담 이후의 모든 인간들이 다 죄 아래 갇혀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인간은 안된다는 것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근본 이유입니다.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께서 세상에 참 빛으로 오셨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은 어두움을 더 사랑하여 그 빛을 미워하여 죽이고 추방해 버렸습니다. 그 사건이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이 볼 때에는 이 세상은 빛이고, 예수님은 암울한 어두움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멸시와 배척을 당하시고, 온갖 고난과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실패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세상은 여전히 어두움 아래 갇혀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 5:20절을 보면 “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 하며 흑암으로 광명을 삼으며 광명으로 흑암을 삼으며 쓴 것으로 단 것을 삼으며 단 것으로 쓴 것을 삼는 그들은 화 있을찐저”라고 했습니다. 어두움을 빛이라고 하고 빛을 어두움이라고 하고 있는 이 세상이 바로 우상숭배의 현장인 것입니다. 우상이란 마리아상이나 불상이나 자연물에 절하는 것만이 아니라 자기를 위하여 신을 섬기는 것도 우상숭배인 것입니다. 탐심이 우상숭배이기에 나를 위하여 하나님을 부르고, 예수님을 부른다면 그것이 다 금송아지를 섬긴 것과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나를 위한 신을 만들어 낸 결과가 바로 금송아지였습니다. 이처럼 사람들이 어두움을 빛이라고 하고, 빛을 어두움이라고 하는 것은 다 자기 사랑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지난 시간에 이어서 계속해서 고린도전서 10장 말씀을 공부하겠습니다. 오늘 본문 14절을 보면 “그런즉 내 사랑하는 자들아! 우상숭배 하는 일을 피하라”라고 합니다. 앞에서도 말씀했습니다만 우상숭배란 어떤 형상물에 절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자기를 위하여, 곧 자기를 중심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모든 것이 다 우상숭배입니다. 요한일서 2:15-17절을 보면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이나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을 사랑하는 것이 바로 우상숭배입니다.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사랑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합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입니다. 이런 것은 다 하나님을 좇아 온 것이 아니라 세상을 좇아 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을 좇아 살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을 사랑하는 것이 우상숭배인데 이것은 무엇과 연결이 됩니까? 간음과 연결이 됩니다. 야고보서 4:4절을 보면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세상과 벗된 자들을 간음하는 여자들이라고 합니다.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가증히 여기시는 우상숭배의 죄가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고 세상의 것들을 사랑하고자 한다면 그것이 바로 우상숭배요, 간음인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 말씀 앞에서 ‘나는 우상숭배를 하고 간음하는 죄인입니다.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하는 마음이 듭니까? 아니면 ‘나를 위해서 사는 것이 당연하지! 그것이 왜 우상숭배이고, 간음인가!’하며 원망과 분노가 일어납니까? 이 말씀은 아무나 받을 수 있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오늘 본문 15절에서 “나는 지혜 있는 자들에게 대하여 말하는 것처럼 말하니. 너희는 내 이르는 말을 스스로 판단하라”라고 합니다. 왜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까? 고린도교회 교인들이 복음을 듣고, 진리를 알아서 자유 한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고린도교회 교인들은 우상도 우상의 제물도 아무 것도 아니기에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하면서 우상의 제물을 먹는 자리에 함께 참여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지식으로 인해 교만하여졌지 사랑으로 덕을 세운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들의 자유와 지식이 오히려 교만하여 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너희들이 살고 있는 모습이 바로 우상숭배 하는 모습과 다를 바가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 앞에서 우리 자신들의 모습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복음을 들었다고 하면서 과연 누구를 위하여 살고 있습니까? 고린도전서 10:31절에 보면 바울 사도는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말씀대로 살고 있습니까? 우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해서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있습니까? 만약 우리가 그렇지 않다고 한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고 있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다 우상 숭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 스스로 이미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처럼 교만을 떨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러면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16-17절을 보면 “우리가 축복하는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예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함이 아니냐.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예함이라”라고 했습니다. 주님의 살과 피를 잊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축복하는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예함이요,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함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의 성찬에 참예하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었다는 표시입니다. 주의 성령이 임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살 찢으심과 피 흘리심으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이 되었다는 사실을 믿게 하셔서 성찬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란 그리스도의 몸인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세운 새 언약의 백성들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님의 살과 피를 잊어버리면 우리는 자기 자신을 위해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늘 우리 주님의 살과 피를 기억해야 합니다.


18-19절을 보면 “육신을 따라 난 이스라엘을 보라. 제물을 먹는 자들이 제단에 참예하는 자들이 아니냐. 그런즉 내가 무엇을 말하느뇨. 우상의 제물은 무엇이며, 우상은 무엇이라 하느뇨”라고 합니다. 바울은 육신을 따라 난 이스라엘을 비유로 들고 있습니다. 구약의 이스라엘을 육신으로 비유합니다. 그들이 제사를 드리고 제물을 먹는 것은 제단에 참예하였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이것은 그림자로서 장차 예수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하게 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을 육신으로 난 자로 말하고 있습니다. 구약의 제사에서 제물을 드리면 제물이 불태워지는 제물이 있고, 제사장에게 돌아가는 제물이 있고, 제사를 드린 자가 함께 먹는 제물이 있습니다. 화목제물을 함께 먹게 되는데 그 제물을 먹는다는 것은 그 제단에 참예된 것이기에 이방 제사에 참예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하여 그리스도의 몸이 되었다는 것인데 어떻게 우상의 제단에 드릴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고린도교회 교인들은 하나님과 우상에 대한 지식이 있었습니다. 우상은 아무 것도 아니기에 우상의 신전에서 우상의 제물을 먹어도 상관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방인의 제사란 결국 귀신에게 제사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20-21절을 보면 “대저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 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 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상과 귀신의 상에 겸하여 참예치 못하리라”라고 합니다. 이방인의 제사는 귀신에게 하는 것이며, 하나님께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그런 제사에 참예하는 것은 귀신과 교제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주님과 교제하면서 귀신과 교제할 수가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22-24절을 보면 “그러면 우리가 주를 노여워하시게 하겠느냐. 우리가 주보다 강한 자냐.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니.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치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고 합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 우리가 주를 노여워하시게 하겠느냐며 책망합니다. 그러면서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또한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고 합니다. 이것이 사도 바울의 답변입니다. 남의 유익을 구하는 것 이것이 사랑입니다.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것 이것은 우상숭배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우리가 자기를 위해서 살고 있다면 우리는 우상숭배자입니다. 왜 우상숭배자가 된 것입니까? 예수님과의 사귐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잊어버릴 때 예수님을 믿고 죄 용서 받아서 천국 가는 것은 좋은데 세상에서는 자기 마음대로 살고 싶은 것입니다. 적당하게 예수를 믿어 주겠다는 것입니다. 십일조를 내고, 주일날을 지켜주겠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도 하지 않으니 교회에서도 십일조를 내고, 주일예배만 참석해도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인냥 인정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거래이지 하나님과의 사귐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섬기는 우상숭배입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참예’, ‘교제’라는 말이 나옵니다. 주님의 몸에 참예하고 주님과의 사귐이 있어야 성도인 것입니다. 그 주님과의 사귐이란 반드시 한 몸이 된 성도와의 사귐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성도들 간의 사귐이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는 사귐입니다. 그런데 우리 자신들의 모습을 보십시오. 어떠합니까? 우리는 늘 우리 자신들의 유익을 구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런 우리 자신들의 모습을 볼 때 우리가 도대체 주님과의 사귐이 있는가 하는 의심이 생기지 않습니까?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입니다. 잠언 1:7절에 보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호와를 경외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우리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의 보내신 자를 믿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떠합니까? 우리가 살아가는 방향과 목표가 과연 주님을 위한 것입니까? 아니면 자기 자신과 이 세상을 향한 것입니까? 우리는 우리 자신들에게 물어 봐야 합니다. 예수님보다 세상 것을 더 사랑하는 것! 이것이 바로 우상숭배입니다. 목사가 예수님보다 자기가 담임하는 교회운영에 더 관심을 가지면 그것이 우상숭배입니다. 헌금이 얼마나 나오는지 개인 보고를 받지 않는다고 우상숭배를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과의 사귐이 없다면 그것이 우상숭배인 것입니다.


우리가 과연 예수님을 사랑하십니까? 예수님과 사귐이 있습니까? 지금 우리가 누구와 사귐이 깊어지고 있습니까? 예수님을 사랑하기에 그분을 더 알고 싶고, 그분과 더 깊이 사귀고 싶고, 그분에게 무엇이든지 더하지 못하여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까? 이런 마음이 드는 자가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며, 주님과 사귐이 있는 자입니다. 그리고 이런 주님을 사랑하고 사귐이 있는 자는 함께 형제 된 자를 사랑하고 사귐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죄악 된 본성은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과의 사귐을 원하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기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과 사귐을 가져나가기 위해서는 이 세상과 이별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기를 사랑하기 때문에 이 세상과 이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세상과 멀어지는 것이 싫은 것입니다. 그래서 더욱 세상과 사귀고 싶어서 우리 주님과 멀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상숭배요, 귀신과 사귀는 것입니다.


우리가 단지 이방인의 제사에 참예하지 않는 것이 이 세상이나 이 세상에 속한 것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을 사랑하지 않고 주님과 사귐을 갖지 않으면 그것이 다 이 세상이나 이 세상에 속한 것을 사랑하는 것이며, 귀신과 사귀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공중 권세 잡은 자가 아직도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역사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우리를 속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영원히 붙들겠습니까? 이 세상입니까? 아니면 주님입니까? 우리가 주님을 붙들 수 있기를 원합니다. 주님과의 사귐 안에 생명이 있습니다.


주님과 사귐이 있는 사람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시편 84편을 보면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생존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 주의 집에 거하는 자가 복이 있나이다. 저희가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셀라).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저희는 눈물 골짜기로 통행할 때에 그곳으로 많은 샘의 곳이 되게 하며 이른 비도 은택을 입히나이다. 저희는 힘을 얻고 더 얻어 나아가 시온에서 하나님 앞에 각기 나타나리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소서. 야곱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이소서(셀라). 우리 방패이신 하나님이여 주의 기름 부으신 자의 얼굴을 살펴보옵소서.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만군의 여호와여 주께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라고 시편 기자는 고백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시편 기자의 이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로 모든 우상숭배를 피하게 하시고, 우리 주님을 사랑하고, 우리 주님과 사귐을 갖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이 주님과의 사귐으로 말미암아 함께 형제 된 자들과도 사귐이 있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이런 은혜가 우리교회 가운데 충만케 하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교회가 교회다움을 잘 나타내 갈 수 있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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