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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왕하 14:1-7
강설날짜 2018-02-21

2018년 열왕기하 공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한 아마샤

말씀:열왕기하 14:1-7

 

지난 시간에 우리는 엘리사 선지자의 죽음에 대해서 살펴봤습니다. 오늘 말씀은 유다 왕 아마샤에 관한 말씀입니다. 아마샤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했지만 그 조상 다윗과 같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살펴보는 가운데 이 말씀을 통해서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계시가 무엇인지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1절을 보면 북 이스라엘 왕 요아스 2년에 유다 왕 요아스의 아들 아마샤가 왕이 됩니다. 그런데 아마샤의 아버지 요아스가 어떻게 죽임을 당했습니까? 열왕기하 12장에서 본 것처럼 요아스는 성전을 수리했습니다. 그로인해 상당히 바른 왕으로 봅니다만 제사장 여호야다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그렇게 살았지만 여호야다가 죽자 곧바로 여호와의 전을 버리고 아세라 목상과 우상을 섬겼습니다(참조. 대하 24:18). 여호야다가 가르쳐준 이스라엘 왕은 여호와의 율법으로 백성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곧 백성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섬기는 것입니다(참조. 신 17:16-20).

 

그런데 이방의 신을 섬기는 왕은 백성들 위에 군림합니다. 백성들 위에 군림 하려면 백성들이 좋아하는 것을 제공해 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고대나 현대나 인본적인 정치 형태입니다. 그러므로 백성들 위에 군림하고자 하는 이스라엘의 왕들이 우상숭배를 솔선수범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이를 좋아합니다. 그러므로 요아스는 산당을 제거하지 못합니다. 이때 여호와께서 선지자를 보냈지만 요아스가 그 말을 듣지 아니합니다.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책망하자 여호와의 전 뜰에서 돌로 쳐 죽여 버렸습니다(대하 24:20). 이런 요아스가 신하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그 아들 아마샤가 왕이 되는 것입니다(왕하 12:19-21). 신하들이 왕을 죽였다면 그것은 반역입니다. 그러므로 아들을 왕으로 세우면 나중에 보복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요아스의 아들 아마샤를 왕으로 세웁니다. 이것은 세상의 상식으로 보면 말이 안 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반역한 신하들이 그 아들 아마샤를 왕으로 세운 것은 하나님께서 유다 왕국에 다윗의 등불을 끄지 않겠다고 하신 언약을 통해서만 설명이 됩니다.

 

2절을 보면 아마샤가 왕이 될 때에 그의 나이가 25세였습니다. 그의 통치기간은 29년간 입니다.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여호앗단이며, 예루살렘 출신이었습니다. ‘여호앗단’이라는 이름의 뜻은 ‘여호와는 기쁨이다’라는 뜻입니다. 그 부모가 이름을 지을 때에 이렇게 지었을 것입니다. 그 이름에 그들의 신앙이 담긴 모습을 봅니다. 물론 성경에 보면 이름만 그렇지 전혀 그렇게 살지 못한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만 여호앗단은 아마샤에게 영향을 끼친 예루살렘 출신의 왕후였습니다. 아마샤 왕의 공적에 특별히 그 어머니의 이름이 등장하고 그 출신이 예루살렘이었다고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것은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아마샤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한 일에 그의 어머니 여호앗단의 영향력이 컸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3-4절을 보면 “아마샤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그 조상 다윗과는 같지 아니하였으며 그 부친 요아스의 행한 대로 다 행하였어도 산당을 제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오히려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아마샤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조상 다윗과 같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그 부친 요아스의 행한 대로 다 행하였어도 산당을 제하지 아니하였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의 바른 왕의 기준은 항상 다윗입니다. 그리고 나쁜 왕의 기준은 항상 여로보암입니다. 우리가 이미 여로보암의 죄에 대해서 살펴봤습니다만 여로보암은 사람을 기쁘게 한 왕입니다(참조. 왕상 12:25-33). 사람을 기쁘게 함으로 자신에게로 사람을 모으려고 한 왕입니다. 그런데 다윗도 간음을 하고 살인을 한 왕이지만 그는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제공함으로 자신의 왕권을 강화하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다윗이 이렇게 되는 것은 여호와의 기름 부으심을 통하여 여호와의 뜻을 이루고자 하셨기 때문에 이렇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마샤는 그의 아버지 요아스가 행한 대로 다 행했다고 합니다. 요아스가 행한 일이란 앞에서 본 우상숭배입니다. 4절을 다시 보면 아마샤는 산당들을 제거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여전히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했다고 했습니다. 솔로몬의 성전이 세워지기 전에는 산당에서도 여호와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사무엘상 9장에 보면 사무엘도 산당에서 제사를 드렸습니다(12). 열왕기상 1장에 보면 솔로몬도 산당에서 제사를 지냈고, 여호와께서 그 산당에서 응답 하셨습니다(2-5). 그러므로 산당에서 제사를 드려도 누가 어떻게 제사를 드리느냐에 따라서 여호와께 드려지는 제사가 되기도 하고, 우상에게 드려지는 제사가 되기도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산당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제사를 드린다고 하여도 그 내용이 이미 이방의 사상으로 오염 되어 있었기 때문에 산당은 혼합종교의 산실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백성들이 좋아하는 종교행위를 하는 곳이 산당이기에 왕이 산당을 제거하면 왕을 지지하지 않기에 이를 두려워 산당을 다 제거하지 못한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를 보면 기독교는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종교행사에 정치인들이 인사하려고 옵니다. 특히 선거철이 되면 많은 정치인들이 인사하러 옵니다. 대통령은 기독교인이 아니면서도 목사들을 초청하여 조찬 기도회를 합니다. 이런 모습을 보고 한국교회가 힘이 있다고 좋아한다면 이것이 바로 교회가 산당이 된 증거입니다. 교회가 정말로 성경의 말씀을 믿는다면 이 세상이 불태워져 사라질 것이라는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참조. 벧후 3:7; 계 6:14). 대한민국만이 아니라 이 지구 자체가 멸망할 것이라는 말씀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문제가 경제 문제도, 정치 문제도 아니고 회개하고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믿지 아니함이 문제임을 증거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진노가 쏟아질 것을 말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가 세상의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세상의 자랑이 될 것들을 추구하고 있다면 이것이 혼합된 산당이 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가 된 곳이 바로 교회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산당입니다.

 

북 이스라엘 왕이나 남 유다의 왕이나 산당을 없애지 못하는 이유는 결국 백성들의 마음을 얻어서 자신의 왕권을 굳건히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나라가 망하는 길입니다. 나중에 예루살렘의 성전에까지 온갖 우상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이러한 우상놀음이 오늘날 우리교회에는 없습니까? 왜 교회당으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고 수많은 시간과 돈을 바치는 것입니까? 무엇을 얻기 위한 것입니까?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이 간 자기부인, 자기십자가의 길을 가기 위한 것입니까? 아니면 십자가조차 이용하여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교회당으로 몰려드는 것입니까? 물론 지금도 한국교회는 급격하게 교인 수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러니 더욱 교회들이 산당이 되어갑니다. 흩어지는 교인들을 붙들기 위하여 여로보암의 죄와 사울의 죄를 짓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교회가 점점더 산당이 되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교회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개혁교회를 하면 망한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까? 말씀만 바르게 증거 하면 딱딱하다고 하고 있지 않습니까? 먼저 사람들이 몰려오는 목회를 해야 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우리교회도 산당이 되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속에 있는 산당을 제거 해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고 말씀의 본의를 증거 해야 합니다. 십자가 복음을 구해야 합니다. 이런 은혜가 우리교회 가운데 있게 하시길 원합니다.

 

오늘 본문 5절을 보면 “나라가 그 손에 굳게 서매 그 부왕을 죽인 신복들을 죽였으나”라고 합니다. 나라가 굳게 세워졌습니다. 그런데 나라가 굳게 세워진 것이 좋은 것입니까? 겉으로 보기에는 좋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나라가 굳게 세워진 것이라는 말씀이 무엇과 연결이 되어 있습니까? 4절에서 산당들을 제거하지 않고 백성들이 여전히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고 있다는 것과 연결이 됩니다. 그렇다면 나라가 든든히 세워졌다는 것은 아마샤가 백성들에게 인기 있는 정책을 펼쳤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로인해 백성들이 왕을 지지한 것입니다. 이때 아마샤가 한 일이 무엇입니까? 자기 부친을 죽인 신복들을 죽였습니다. 결국 왕이 힘을 가지기 위하여 산당을 제거하지 못한 것입니다. 산당을 제거함으로 백성들이 이탈할 것을 염려한 것입니다. 그래서 산당을 제거하지 않음으로 백성들이 왕을 추종하게 됩니다. 그로인해 이제 왕에게 힘이 생겼습니다. 그 힘으로 자기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것이 산당을 제거하지 못한 이유입니다. 목사가 바른 복음을 전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안에 산당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을 많이 모우고 목회적인 성공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말씀의 본의를 그대로 전하지 못하고 사람들에게 좋은 말, 사람들이 듣기를 좋아 하는 말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런 목사는 거짓 선지자요,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우상숭배에 빠지게 하는 것입니다.

 

6절을 보면 아마샤가 자기 아버지를 죽인 신복들을 죽였지만 그의 자녀들은 죽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렇게 한 것은 모세의 율법대로 행한 것이라고 합니다. 신명기 24:16절을 보면 “아비는 그 자식들을 인하여 죽임을 당치 않을 것이요, 자식들은 그 아비를 인하여 죽임을 당치 않을 것이라. 각 사람은 자기 죄에 죽임을 당할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아마샤가 대단히 율법을 잘 지킨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이것도 쇼가 됩니다.

 

7절을 보면 “아마샤가 염곡에서 에돔 사람 일만을 죽이고 또 셀라를 쳐서 취하고 이름을 욕드엘이라 하였더니 오늘까지 그러하니라”고 했습니다. 아마샤가 염곡 곧 소금 골짜기에서 에돔 사람 일만 명을 죽이고, 또 전쟁을 해서 셀라를 취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이름을 ‘욕드엘’ 곧 ‘하나님께서 정복하셨다’고 지었습니다. 이로 인해 백성들로부터 지지를 든든히 받게 된 것입니다. 결국 아마샤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만 백성들로 하여금 여호와 하나님에게로 마음을 두게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백성들의 지지를 얻음으로 자기의 힘을 얻고자 한 것입니다. 그래서 셀라의 이름을 욕드엘로 바꾸면서까지 자신의 행위를 은연 중에 드러내는 것입니다. 물론 단어의 뜻은 하나님께서 정복하게 하셨다는 의미를 담고 있지만 이런 승리의 이면에 무슨 짓을 했는지 역대하에 보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역대하 25:5-16절을 보면 “아마샤가 유다 사람을 모으고 그 여러 족속을 따라 천부장과 백부장을 세우되 유다와 베냐민을 함께 그리하고 이십세 이상으로 계수하여 창과 방패를 잡고 능히 전장에 나갈만한 자 삼십만을 얻고 또 은 일백 달란트로 이스라엘 나라에서 큰 용사 십만을 삯내었더니. 어떤 하나님의 사람이 아마샤에게 나아와서 이르되 왕이여 이스라엘 군대로 왕과 함께 가게 마옵소서.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곧 온 에브라임 자손과 함께 하지 아니하시나니. 왕이 만일 가시거든 힘써 싸우소서. 하나님이 왕을 대적 앞에 엎드러지게 하시리이다. 하나님은 능히 돕기도 하시고 능히 패하게도 하시나이다. 아마샤가 하나님의 사람에게 이르되 내가 일백 달란트를 이스라엘 군대에게 주었으니 어찌할꼬. 하나님의 사람이 대답하되 여호와께서 능히 이보다 많은 것으로 왕에게 주실 수 있나이다. 아마샤가 이에 에브라임에서 자기에게 나아온 군대를 구별하여 본곳으로 돌아가게 하였더니 저희 무리가 유다 사람을 심히 노하여 분연히 본곳으로 돌아갔더라. 아마샤가 담력을 내어 그 백성을 거느리고 염곡에 이르러 세일 자손 일만을 죽이고 유다 자손이 또 일만을 사로잡아 가지고 바위 꼭대기에 올라가서 거기서 밀쳐 내려뜨려서 그 몸이 부숴지게 하였더라. 아마샤가 자기와 함께 전장에 나가지 못하게 하고 돌려 보낸 군사들이 사마리아에서부터 벧호론까지 유다 성읍을 엄습하고 사람 삼천을 죽이고 물건을 많이 노략하였더라. 아마샤가 에돔 사람을 도륙하고 돌아올 때에 세일 자손의 우상들을 가져다가 자기의 신으로 세우고 그 앞에 경배하며 분향한지라.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아마샤에게 진노하사 한 선지자를 보내시니 나아가 가로되 저 백성의 신들이 자기 백성을 왕의 손에서 능히 구원하지 못하였거늘 왕은 어찌하여 그 신들에게 구하나이까 하며, 선지자가 오히려 말할 때에 왕이 이르되 우리가 너로 왕의 모사를 삼았느냐 그치라 어찌하여 맞으려 하느냐 선지자가 그치며 가로되 왕이 이 일을 행하고 나의 경고를 듣지 아니하니 하나님이 왕을 멸하시기로 결정하신 줄 아노라 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 7절을 역대하에서 이렇게 상세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아마샤가 힘을 얻었기에 부국강병책을 씁니다. 유대군사만 30만인데 여기에 북 이스라엘에서 은 백 달란트를 주고 용병 10만을 고용하여 에돔을 치려고 갑니다. 그런데 여호와의 선지자가 북 이스라엘을 돌려보내라고 합니다. 여호와께서 적들을 패하게 하실 것이라고 합니다. 여호와께서 승리도 하게 하시고 패하게도 하신다고 하면서 돌려보내라고 합니다. 그러자 이미 용병의 비용을 주었는데 돌려받을 수도 없고 어떻게 하겠느냐고 하자 여호와께서 그 보다 더 큰 것을 주실 것이라고 합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 아마샤의 속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유대 자체 군대를 양성 할 뿐 아니라 돈을 주고 용병까지 모아서 에돔을 치려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용병을 보냈는데도 선지자의 말대로 승리하고 돌아옵니다.

 

그런데 돌아오면서 무엇을 전리품을 챙겨옵니까? 역대하 25:14절을 보면 “아마샤가 에돔 사람을 도륙하고 돌아올 때에 세일 자손의 우상들을 가져다가 자기의 신으로 세우고 그 앞에 경배하며 분향한지라”고 했습니다. 에돔의 신 그것도 유다에 의해 패배한 세일 자손의 신들을 가져와서 자기의 신으로 세우고 그 앞에서 경배한 것입니다. 이것이 산당종교의 모습입니다. 계속해서 15-16절을 보면 이때 여호와께서 분노하셔서 한 선지자를 보내 책망합니다. “에돔 사람들 곧 세일 자손들을 왕의 손에서 구원하지도 못한 그런 신들을 섬기느냐.” 그러자 아마샤가 무엇이라고 합니까? “네가 왕의 모사나 되느냐”고 하며 그 말을 그치라고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때리겠다고 합니다. 그러자 선지자가 그치며 말하기를 “왕이 이 일을 행하고 나의 경고를 듣지 아니하니 하나님이 왕을 멸하시기로 작정하신 줄 아노라”고 합니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안에도 산당들이 다 있습니다. 우리의 몸이 성령이 거하실 성전이 되어야 하는데 오히려 우리 안에 산당들을 하나씩 다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산당이라는 것은 자기를 숭배하는 아상(我想)이라는 신전입니다. 자기 자신을 위하는 마음입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자기를 위하여 하는 것을 말합니다. 교회를 와도, 기도를 해도, 찬송을 해도 자기를 위하여 합니다. 봉사를 해도 자기를 위한 것입니다. 헌신을 해도 자기를 위하여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산당을 제거하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산당들을 주님께서 어떻게 제거하여 주실까요? 하나님의 자기 백성들이라면 이런 산당들을 무너뜨리십니다. 우선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책망을 합니다. 그런데 이 산당이 얼마나 뿌리 깊이 우리 안에 세워져 있는지 그런 책망을 우리가 싫어합니다. 아마샤의 아버지 요아스는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를 성전 뜰에서 죽여 버렸습니다. 아마샤는 선지자를 향하여 여호와의 말씀을 그치라고 했습니다. 맞으려면 계속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반응이 나오는 것은 여호와께서 멸하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를 책망하실 때에 우리는 겸손히 그 책망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겸손한 자가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말씀으로 책망할 때에 그 말씀을 겸손히 순종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자기를 세우는 아상의 산당이 우리 속에서 무너지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우리로 오직 하나님의 언약을 붙잡게 하시고, 그 언약을 따라 살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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