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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살후 1:8-12

2010년 데살로니가후서 공부
                                                     영원한 형벌과 영광
말씀:데살로니가후서 1:8-12

 
불교의 세계관과 기독교 세계관의 근본적인 차이점이 무엇입니까? 불교의 세계관은 윤회적인 세계관입니다. 결국 돌고 도는 것이라고 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인생을 자연과 하나라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세계관은 무엇입니까? 창조의 세계관입니다. 곧 직선적 세계관입니다. 처음과 끝이 있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11:36절에 보면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느 것이 진리입니까? 우리는 성경의 말씀을 진리로 받는 자들입니다. 성경에서 인생을 무어라고 합니까? 돌고 도는 자연의 일부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창조한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함으로 죄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인에 대하여 형벌이 있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9:27절을 보면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했고, 전도서 11:9절에서는 “청년이여!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네 청년의 날을 마음에 기뻐하여 마음에 원하는 길과 네 눈이 보는 대로 좇아 행하라.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을 인하여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고 했고, 전도서 12:13-14절에서는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고 했습니다. 이런 말씀을 믿습니까? 한번 죽는 것이 사람에게 정한 것이요, 그리고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심판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심판에 따라 어떤 자들은 영원한 형벌에 들어갈 것이요, 어떤 자들은 영생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심판에 대하여 우리가 믿고 있습니까?

 

그런데 이러한 말씀을 우리가 믿고 있다고 하면서도 우리의 삶의 목표와 방향과 가치관을 돌아보면 꼭 심판받을 사람들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니 말로서는 주님의 재림과 심판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실제 우리의 삶과 행위로는 그 사실을 부인하고 있는 것입니다. 디도서 1:16절을 보면 “저희가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치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자들에 대하여 히브리서 10:26-27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이러한 말씀이 성경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두렵지 않습니까? 이러한 말씀에 우리가 전율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은혜와 성령이 충만하여 그리스도의 의 안에서 자유하고 계시든지, 아니면 이러한 말씀에는 관심이 없든지 둘 중에 하나일 것입니다. 우리가 믿든지 안 믿든지 간에 주님은 자신의 말씀을 이루어 내시고야 마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으로 지혜가 있는 사람은 종말을 생각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종말을 생각하지 않고 산다면 그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주님이 오시는 그 날에 형벌의 날이 될지 영광의 날이 될지 우리의 모습을 말씀을 통하여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종말을 아는 것이 지혜로운 것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면서 노래로 만들어 외우게 합니다. 그 내용 중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신명기 32:28-29절을 보면 “그들은 모략이 없는 국민이라. 그 중에 지식이 없도다. 그들이 지혜가 있어서 이것을 깨닫고 자기의 종말을 생각하였으면”이라고 합니다. 자기의 종말을 생각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그들이 자신들의 욕심을 따라 행할 것을 내다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심판을 받기 전에 그들의 종말을 생각하는 것이 지혜로운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주님의 재림이 있기 전에 이러한 종말에 대한 말씀을 듣고서 우리가 회개한다면 참으로 지혜로운 자들입니다. 그러나 미련하고 어리석게 멸망의 길로 달려간다면 그야말로 어리석은 것입니다. 물론 세상에서 볼 때에는 반대로 보일 것입니다. 종말을 기다리며 사는 자가 어리석어 보이는 것입니다. 마치 노아가 그 당시 사람들에게 어리석어 보였듯이 말입니다.

 

세상에는 어떤 것이 지혜입니까?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별로 쓸모없는 땅을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땅이 재개발된 것입니다. 그는 이미 재개발될 것을 알고 투자한 것입니다. 세상에는 이런 것을 지혜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은 이러한 것이 지혜가 아닙니다. 종말을 기다리는 것이 지혜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결국 불타버릴 것을 아는 것이 성도의 지혜라는 것입니다(벧후 3:7).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하여 참으로 우리는 종말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어떠한 자들이 형벌을 받습니까? 8절을 보면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형벌이 임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내용은 우리가 지난주에 살펴보았습니다. 심판의 주로 재림하실 주님의 거룩하시고 영광스럽고 두려운 모습을 지난 시간에 말씀을 통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이러한 형벌의 내용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그러면 형벌의 구체적인 내용이 무엇입니까? 9절에 보면 “이런 자들이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복음을 복종치 아니하는 자들이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형벌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보면 어떤 것이 형벌입니까? 주님의 영광의 얼굴에서 떠나게 되는 것이 형벌입니다. 이것이 바로 죄로 인한 형벌의 결과입니다. 죄란 하나님과의 관계단절입니다. 영원한 생명되신 하나님과의 분리가 바로 죄입니다. 창세기에서 공부했듯이 최초의 사람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고 나서 두렵고 부끄러워서 하나님을 피하여 숨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진 것을 의미합니다. 로마서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범죄하고 하나님과 분리된 채로 내버려 두시는 것이 형벌이었습니다(롬 1:24).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다시 찾아 오셨습니다. 이것이 아담에게는 구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아담에게 가죽옷을 해 입히시고, 다시 생명에 대한 약속을 주심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복이란 하나님께서 함께하여 주심이 복인 것입니다. 곧 하나님께서 임재하여 주심이 복인 것입니다.

 

구약의 제사장들이 백성들에게 축복기도를 할 때 그 내용이 어떤 내용이었는지를 한번 보겠습니다. 민수기 6:22-27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축복하여 이르되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구약의 축도입니다.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노라.’ 그러면 형벌은 무엇이겠습니까? 여호와께서 얼굴을 돌리시는 것입니다. 물론 얼굴을 마주보고 살 자가 누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얼굴로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벌이란 하나님의 외면입니다. 이에 반해 복이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도의 가장 큰 복인 것입니다. 이것을 복으로 알지 못하면 주님의 형벌을 별 것 아닌 것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벌이란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참된 복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알고 복음에 복종하는 것이 참된 복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 사도가 증거한 복음의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하나님의 복음의 말씀을 듣고 읽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은 주님께서 자기의 백성들에게 어떻게 임재하는 것입니까? 말씀을 통하여 임재하시는 것입니다. 물론 성령으로 임재하신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는 것이기에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의 인도를 받고 있다면 그것이 하나님의 임재를 받고 사는 것이며, 하나님의 얼굴을 대면하여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사도행전 20:32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금 내가 너희를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너희를 능히 세우사 거룩케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서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여기서 주님과 말씀을 같이 보고 있는 것입니다. 아예 말씀을 인격처럼 말씀께 부탁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이 능히 성도를 세우며,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서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있는 것이 하나님의 임재를 가장 분명하게 알 수 있는 시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이 복인 것입니다. 성도의 복이란 주님의 임재, 주님의 얼굴을 보는 것입니다. 이에 반해 형벌이란 주님의 임재가 없는 것입니다.

 

결단코 성경은 형벌과 영광을 세상의 것들, 곧 사라질 것들을 가지고 말하지 않습니다. 형벌이란 주님의 얼굴에서 멀어지는 것이요, 영광이란 그 주님의 영광 가운데 나타날 것입니다. 이것이 성도의 복이요, 소망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영광이란 주님과 함께 영원토록 거하는 것입니다. 곧 주님과 함께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주님과 영원히 살기 위해 우리는 이미 주님과 결혼하였습니다. 우리는 아무런 자격이 없지만 오직 주님의 은혜로 우리를 당신의 신부로 불러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요, 그리스도는 교회의 신랑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이 땅에서 현재의 남편과 아내에게서 이와 같은 관계를 훈련하여 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은혜를 누려 가야 합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는 법을 배워가야 합니다. 교회가 그리스도께 복종하듯이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시는 훈련을 받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남편은 그리스도가 교회를 위하여 목숨을 바친 것처럼 아내를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와 같은 훈련을 해 갈 때 한 가지 유의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상대방을 탓하지 말고 자기의 할 일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21장에 보면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나를 따르라고 하시자 베드로는 요한을 바라보며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삽나이까하고 물었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요한복음 21:22절에 보면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상대방이 나에게 이렇게 해주어야만 나도 해 주겠다는 것은 거래입니다. 사랑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았기에 이제 서로 사랑하고 복종하는 법을 배우고 훈련받아 가야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자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주님의 그 영광의 날에 성도가 그리스도의 정결한 신부로 영광중에 나타날 날을 소망하며, 사는 것이 참으로 복있는 성도입니다. 그러므로 미련한 처녀가 아니라, 신랑이 오기까지 기름을 준비하여 기다린 지혜로운 다섯 처녀처럼 주님을 기다리는 신부여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그 영광의 날을 위하여 다시 기도합니다. 그 기도가 무엇입니까? 첫째는, 그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여기시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11-12절에 보면 “이러므로 우리도 항상 너희를 위하여 기도함은 우리 하나님이 너희를 그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여기시고 모든 선을 기뻐함과 믿음의 역사를 능력으로 이루게 하시고 우리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대로 우리 주 예수의 이름이 너희 가운데서 영광을 얻으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부르심, 곧 그 거룩한 신부로 부르심을 입은 그 부르심에 함당한 자가 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곧 그리스도의 영광의 날에 영광중에 나타날 수 있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모든 선을 기뻐하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모든 선을 기뻐함과.” 우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아야 합니다. 이 세대를 따라 살면 그것은 영원한 형벌의 길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못하여 안달이 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로마서 12:2절에 보면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하나님의 기뻐하고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멸하도록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모든 선한 사업에 부요하고 나누어 주기를 즐기는 그런 사람이 되도록 기도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어찌 인간의 힘으로, 노력으로, 애씀으로 되겠습니까? 주의 말씀을 통하여 회개하고 주의 은혜를 간구하여 주님의 역사하심이 나타나도록 참으로 간절히 기도하여야 할 내용들입니다.

 

셋째는, 믿음의 역사가 능력으로 이루어지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역사란 보이지 않는 약속의 세계를 눈에 보듯이 믿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주님의 영생을 바라보면서 그 영광의 날을 소망하면서 세상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배설물처럼 여기며 사는 것이 믿음의 역사가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빌립보서 3:7-9절에 보면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고 고백했습니다. 바울 사도의 이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게 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끝으로, 이러한 모든 일들을 통하여 주의 이름이 그 은혜대로 영광을 받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일들이 참으로 주의 은혜로 되어지는 일이기에 주님께만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영광에 우리가 함께 참예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란 영원한 형벌을 받는 자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할 자임을 아시고 날마다 이 영광의 날을 소망하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이와 같은 소망이 우리의 소망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이 소망이 더욱 구체화, 현실화 되도록 바울 사도의 기도가 오늘 이 밤 우리의 기도의 제목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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