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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살후 2:1-8

2010년 데살로니가후서 공부
                                                                불법 자!
말씀:데살로니가후서 2:1-8

 
성도의 최대의 소망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16-18절을 보면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 여러 말로 서로 위로하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약속의 말씀이 성도에게 진정한 위로가 되는 것입니다. 만약 이러한 말씀이 우리에게 위로가 되지 않는다면 아직도 세상에 대한 미련이 많아서 위로가 되지 않는 것일 것입니다. 그런데 성도에게는 세상에서 아무리 좋고, 좋은 소식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우리의 진정한 위로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우리의 위로는 주님의 재림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약속이 위로가 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겠습니까? 믿음으로 인한 시련과 환난과 핍박이 있는 사람들에게 위로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재림에 대하여 잘못 생각하여 흔들리고 있는 자들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가 주님의 재림이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말하면서 쉬 동심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1절을 보면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심과 우리가 그 앞에 모임에 관하여”라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가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구하는 것이 주 예수의 강림과 그 앞에 모임에 관하여 알게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 말씀은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시면 모든 믿는 자들이 그 앞에 모이게 될 것입니다. 물론 믿지 않는 자도 그 앞에 모일 것입니다. 그들은 심판을 받아서 그 앞에서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을 것입니다. 지난주에 살펴본 대로 형벌이란 주님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에서 영원히 떠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의 성도들은 그 앞에 모이는 것입니다. 곧 영광의 주님 앞에 모이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4:29-31절을 보면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저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고 했습니다. 주님의 재림 시에 땅의 모든 족속이 통곡하며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때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은 형벌이지만 주의 택하신 자들은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강림과 그 앞에 모임에 대하여 바울 사도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의 성도들은 주님 앞에 모여서 무엇을 하는 것입니까? 그와 함께 영원히 거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모임은 바로 이러한 모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모임이라는 단어를 주님의 재림 시에 주님 앞에 모일 것을 말씀하고 있지만 그러나 히브리서에서는 모이기를 힘쓰라고 하는 말에도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10:25절을 보면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라고 했습니다. 이 모임은 성도들의 모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이 모여서 예배하고 교제하는 것을 더욱 힘쓰라는 것입니다. 왜 그런 것입니까? 앞으로 영원히 그분 앞에서 모일 것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재림하실 날이 가까이 올수록 사람들은 모이기를 폐할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한마디로 바쁘다는 것입니다. 불을 켜서 일해도 부족한 것입니다. 왜 이렇게 된 것입니까? 주님을 위하여 그렇게 바쁜 것입니까? 결코 아닙니다. 세상에서 좀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한 바쁨인 것입니다. 결코 자족함이 없는 삶의 경쟁 속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모이기를 힘쓸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란 모이기를 힘쓰는 것입니다. 세상의 어떠한 모임보다 우리가 기다리는 영원한 모임을 생각하면서 모이는 것입니다.

 

 2절을 보면 “혹 영으로나 혹 말로나 혹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쉬 동심하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아니할 그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주님의 재림과 모임에 대하여 혼동을 주는 자들이 어떻게 나오는 것입니까? 영으로나 말로나 사도의 편지를 가지고 이미 재림이 지나갔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주장을 하면서 성령을 받아서 말하고, 사도들에게서 들었다고 말하고, 사도들의 편지를 받았다고 하면서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혼동이 왔겠습니까? 우리나라에서도 자신이 재림 예수라는 사람이 한 두 사람이 아닙니다. 박태선, 문선명, 안상홍, 이만희 등 이러한 자들이 재림 예수라는 것을 성경을 가지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에 흔들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누가 뭐라고 하여도 너희가 미혹을 받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3절을 보면 “누가 아무렇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하지 말라.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하리니”라고 했습니다. 누가 아무렇게 말하여도 미혹을 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먼저 배도하는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합니다. 저 불법의 사람,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주의 날이 임하지 아니할 것입니다. 주님의 재림 전에 커다란 배교적인 일이 나타나고 그 일을 주동하는 멸망의 아들이 나타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것에 대하여 많은 종말론 자들이 로마의 네로다, 교황이다, 유럽공동체다, 그러한 말들을 합니다. 안식교에서는 교황청이나 미국을 적 그리스도로 봅니다. 그러나 이러한 말들은 부분적으로 배도하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재림직전에는 전 세계적으로 배도하는 일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불법 자가 누구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 특징이 4절에 나타납니다. 4절을 보면 “저는 대적하는 자라.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 위에 뛰어나 자존하여 하나님 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대적하는 자입니다.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 숭배함을 받는 자 위에 뛰어나 자존하여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고 합니다. 불법자요, 대적자요, 멸망의 아들이요, 적 그리스도의 모습이 이러한 특징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나라에 나타난 재림 예수니, 자신이 하나님이니 하는 자들의 특징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전도관에 박태선씨가 살아 있을 때 그 곳의 신도들이 박태선씨가 지나가면 하나님이 가신다고 하였답니다. 그런데 지금은 죽어서 땅에 묻혀 있습니다. 또한 로마황제 갈리귤라가 예루살렘의 성전에 자신의 형상을 세우려고 한 것을 가지고 이러한 적 그리스도로 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들은 다 부분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으로 대적하는 자들이 집단적으로 드러나서 대적하는 일들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아직도 일어나지 않고 있는 것은 아직도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지금 그러한 세력들을 억제하고 있는 것입니다.

 

5-7절을 보면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이 일을 너희에게 말한 것을 기억하지 못하느냐. 저로 하여금 저의 때에 나타나게 하려 하여 막는 것을 지금도 너희가 아나니.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으나 지금 막는 자가 있어 그 중에서 옮길 때까지 하리라”고 했습니다. 지금 불법 자가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부분적이고, 제한적입니다. 그 활동을 막고 있는 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시기 직전에 불법한 자가 그 실체를 드러내면서 대적하게 될 것입니다. 마치 요한계시록 13장에 짐승이 권세를 받아서 성도들을 대적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요한계시록 13:1-10절을 보면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면류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참람된 이름들이 있더라. 내가 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 그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더니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 온 땅이 이상히 여겨 짐승을 따르고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 용에게 경배하며 짐승에게 경배하여 가로되 누가 이 짐승과 같으뇨. 누가 능히 이로 더불어 싸우리요 하더라. 또 짐승이 큰 말과 참람된 말 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 두달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 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훼방하되 그의 이름과 그의 장막 곧 하늘에 거하는 자들을 훼방하더라. 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누구든지 귀가 있거든 들을찌어다. 사로잡는 자는 사로잡힐 것이요, 칼로 죽이는 자는 자기도 마땅히 칼에 죽으리니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불법자도 주님께서 강림하셔서 그 입의 기운으로 저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폐하여 버리실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불법한 자, 멸망 받을 자가 어떻게 성도들을 미혹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그 중에서 두 가지만 보고자 합니다. 첫째는, 데살로니가후서 2:4절에 보면 “저는 대적하는 자라.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 위에 뛰어나 자존하여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여기 보면 불법자의 특징은 교만입니다. 불법자의 특징만이 아니라, 바로 오늘날 우리의 특징입니다. 선악과를 따 먹을 때에 하나님처럼 되리라고 하는 사단의 유혹을 받아서 따 먹은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과 맞먹겠다는 것이 죄의 근본뿌리입니다. 그러므로 범사에 자신이 하나님인 것입니다. 성전 안에서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고 노골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지만 모두가 자기 말 들어주면 기분좋아하고 비판하거나 책망하면 좋아하지 않는 것입니다. 목사는 자신의 말 잘 들어주는 성도가 좋은 것이고, 성도는 목사가 자기들의 마음에 들게 해주면 좋아하는 것입니다. 둘 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깨어지고 겸손하여 지기보다는 어떻게 하든지 범사에 자신이 하나님처럼 높아지고자, 대접받고자, 섬김 받고자 하는 것이 우리의 죄악된 모습이 아닙니까? 누가 자신이 죽어 마땅한 죄인임을 알고 겸손히 주님의 말씀 앞에 무릎을 꿇습니까? 사극을 보면 임금이 내린 어주를 받고서도 큰 절을 하고 받습니다. 심지어 사약이 내려도 임금님께 절을 하고 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이렇게 받고 있습니까? 이미 우리가 불법자의 속성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미혹을 하면 얼마나 잘 넘어 가겠습니까?

 

두 번째로는, 요한일서 4:1-6절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이제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저희를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심이라. 저희는 세상에 속한고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하매 세상이 저희 말을 듣느니라.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영을 다 믿지 말라고 합니다.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미 적 그리스도가 활동하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서에도 말씀하고 있지만 부분적으로 적 그리스도가 활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분별하는 것입니까? 영을 다 믿지 말라는 것입니다.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를 시험하여 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영이란 복음을 전한다는 자들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는 자들을 다 믿지 말라는 것입니다. 분별하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분별합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자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은 결국 십자가를 지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온전하고 완전한 구속의 능력이 됨을 믿고 시인하는 것을 말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으로’를 부정하는 자들은 세상에 속한 것입니다. 이들은 예수만으로 부족하다고 보는 것입니다. 예수만 믿고 어떻게 완전하게 구원이 되느냐는 것입니다. 이러한 말을 하는 것은 아직도 자신이 어떠한 죄인인지를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예수만 믿고 세상을 사느냐, 세상도 어느 정도로 사랑하고 살아야하지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언제나 세상을 주님보다 더 사랑하면서 살게 하는 것이 사단의 유혹입니다.

 

요한1서 2:15-17절을 보면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이 세상이나 세상에 속한 것을 더 사랑하게 하는 것이 우리 안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버지께로부터 좇아 온 것이 아니라, 세상으로 좇아 온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얼마나 세상의 말에 귀를 잘 귀울이면서 살고 있는 것입니까? 세상에 속한 자들이 세상의 말을 듣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께 속한 자들은 사도들의 말을 듣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말씀만으로 기뻐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을 사랑하는 것과 적그리스도가 나타나는 종말과 연결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1서 2:18절을 보면 “아이들아! 이것이 마지막 때라. 적그리스도가 이르겠다 함을 너희가 들은 것과 같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때인줄 아노라”고 했습니다. 적그리스도, 불법 자, 대적하는 자, 멸망 받을 자가 멀리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 재림직전에 더욱 불법이 성할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세상이 사실 종말인 것입니다. 드러난 이단들이야 경계가 됩니다. 그러나 드러나지 않은 이단이 더 문제입니다. 그게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는 우리 자신이 아닙니까? 성령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사 우리 속에 들어있는 불법과 대적함과 교만과 세상 사랑하는 모습을 알게 하시고 회개하는 자가 되게 하시길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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