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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살후 2:16-17

2010년 데살로니가후서 공부
                                                              영원한 위로
말씀:데살로니가후서 2:16-17

 

오늘 말씀은 바울 사도가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향한 기도입니다. 바울 서신들에 보면 바울의 기도가 많이 나타납니다. 이러한 바울의 기도를 통하여 성경적인 기도가 어떠한 것인지를 보게 됩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는 과연 무엇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까? 바울 사도가 기도하는 것과 비교를 한번 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기도도 성경에서 말하는 바른 기도로 교정되기를 바랍니다.

 

16절을 보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를 사랑하시고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은혜로 주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먼저 언급이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를 알게 되는 것을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순서로 말하게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3:13절에서도 보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찌어다”라고 축복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은 소위 사도적 축도라 불리우는 기도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오는 모든 선물이 주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처럼 성경의 많은 곳에서 하나님 아버지보다 주 예수 그리스도가 먼저 언급이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순서가 바뀌어 나오는 것은 아버지와 아들의 사역을 함께 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 사도의 기독론인데 이방세계에서는 감히 상상할 수가 없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유대인들도 이러한 생각을 참람하다고 한 것입니다. 복음의 핵심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께서 주와 그리스도가 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버지께로부터’라고 하거나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라고 하거나 같이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것이 무엇이며, 구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먼저 받은 것에 대해서 보겠습니다. 바울은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받은 것이 무엇이라고 합니까? 16절에 보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를 사랑하시고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은혜로 주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보면 우리를 사랑하심과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은혜로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놀라운 은혜를 우리가 주님과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받은 것이라고 해도 우리는 별반 반응이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런 것들은 사실 이 세상을 살아갈 때 별반 도움이 안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곧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은혜로 주셨다는 것은 세상을 살아가는데 당장 힘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믿음, 소망, 사랑 그러한 가치는 믿지 않는 사람도 어느 정도 알고 있지만 그러한 것이야 내가 일단 힘이 있고나서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든 절에서든 기도하는 내용의 대부분이 무엇입니까? 힘과 능력을 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참으로 하나님으로부터 거듭난 자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주신 이러한 내용에 감사를 하게 되어 있고 기뻐하고 위로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받는 것들을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는, 사랑하심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본질상 어떤 자였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범죄함으로 본질상 진노의 자식이었습니다. 곧 우리는 사랑 받을 만한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이처럼 사랑받을 만한 사람들이 아니라 오히려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음을 안다면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감사한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은 하나님의 진노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대신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용서를 받는 것이 사랑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랑을 유대인들도 시시하게 여겼다는 것입니다. 말라기1:2-3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하니. 너희는 이르기를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하는도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냐. 그러나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에서는 미워하였으며 그의 산들을 황무케 하였고 그의 산업을 광야의 시랑에게 붙였느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보면 여호와께서 너희를 사랑하였다고 합니다. 그러자 백성들이 어떻게 말합니까? 우리를 어떻게 사랑한 것이냐고 따지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다고 말씀하시면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듭니까? 지금 병이 들어있고, 집안에 어려움이 있고, 실패를 하고, 고생을 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내가 너를 사랑하노라고 하시면 무어라고 하시겠습니까? ‘아니 어떻게 사랑하시는데 이러시는 겁니까?’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에서는 미워하고 야곱은 사랑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누가 더 고생을 합니까? 창세기 공부할 때 봤듯이 야곱이 훨씬 더 고생을 합니다. 왜 그렇게 고생을 하고 험악한 세월을 보내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야곱을 선택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선택으로 인하여 고생을 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기업을 버리고 영원한 하늘의 기업을 받도록 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약속만을 붙들게 하기 위하여 고생을 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2:5-13절을 보면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또 우리 육체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여 살려 하지 않겠느냐. 저희는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예케 하시느니라.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고 했습니다. 징계가 사랑입니다.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연달한 후에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습니다. 오늘날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는 범사에 원망을 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에 살펴봤듯이 창세전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여 주신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1:3-6절에 보면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선택은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도록 하는 선택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의지하고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들이 무너지고 부수어져야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된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랑을 단지 내가 이 세상의 욕망을 채우는 일로 적용을 한다면 감사할 일이 하나도 없이 오히려 고생한다고 원망만 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에 눈뜨게 되면 세상은 정말 시시하게 여겨질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사랑만으로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둘째는, 영원한 위로하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사 창세전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여 주셨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사랑을 받았고, 그 사랑을 알게 되면 세상에서 어떠한 환난과 근심과 염려가 있다고 하여도 위로를 얻는 것입니다. 이러한 위로는 잠시 술과 약물에 의존한 위로가 아닙니다. 영원한 위로가 되는 것입니다. 이는 영원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위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참된 위로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는 것이 위로입니다. 그 약속하신 바를 바라보고 믿음으로 걸어가는 것입니다. 이사야 51:12-16절을 보면 “가라사대 너희를 위로하는 자는 나여늘 나여늘. 너는 어떠한 자이기에 죽을 사람을 두려워하며 풀같이 될 인자를 두려워하느냐. 하늘을 펴고 땅의 기초를 정하고 너를 지은 자 여호와를 어찌하여 잊어버렸느냐. 너를 멸하려고 예비하는 저 학대자의 분노를 어찌하여 항상 종일 두려워하느냐. 학대자의 분노가 어디 있느냐. 결박된 포로가 속히 놓일 것이니 죽지도 아니할 것이요, 구덩이로 내려가지도 아니할 것이며, 그 양식이 핍절하지도 아니하리라.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라 바다를 저어서 그 물결로 흉용케 하는 자니 내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니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고 내 손 그늘로 너를 덮었나니. 이는 내가 하늘을 펴며 땅의 기초를 정하며 시온에게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하려 하였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위로 자가 누구라고 합니까? 우리의 위로하는 자는 하나님이시라고 합니다.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를 창세전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여 주신 하나님만이 우리 인생의 진정한 위로가 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떠합니까? 하나님이 우리의 진정한 위로 자가 되십니까? 아니면 이 세상에 눈에 보이는 물질과 명예와 성공과 사람이 위로 자가 됩니까?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우리 인생의 위로 자가 될 수 없습니다. 오직 창세전에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여 주신 하나님만이 우리 인생의 진정한 위로 자가 되십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왜 죽을 사람을 두려워하고 풀같이 될 인자를 두려워하느냐는 것입니다. 천지를 지으시고 지금도 운행하시는 하나님을 잊어 버렸기에 두려워한다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1-7절을 보면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과 및 형제 디모데는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와 또 온 아가야에 있는 모든 성도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의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우리가 환난 받는 것도 너희의 위로와 구원을 위함이요, 혹 위로 받는 것도 너희의 위로를 위함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누가 위로 자 입니까? 이사야서의 말씀과 같이 하나님께서 위로 자가 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환난 중에 위로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환난을 없애버리시는 것이 아니라 환난 중에 위로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넘치는 것만큼 위로도 넘치는 것입니다. 이러한 위로를 통하여 무엇을 견디게 하는 것입니까? 고난을 견디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환난을 통하여 계속하여 영원한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요, 영원한 위로인 것입니다. 이렇게 하심으로 자기 자신을 의뢰하지 않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기 위하여 그렇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세번째는, 좋은 소망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것이 좋은 소망인 것입니다. 이러한 소망은 땅의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전서 1:3-4절을 보면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좋은 소망인 것입니다. 이 소망을 이루기 위하여 믿음의 시련들이 닥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1:7절에 보면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존귀를 얻게 하려함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소망이 아닌 것은 한낮 꿈에 불과한 것입니다. 성도란 썩어질 기업이 아니라 영원한 기업을 받은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과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전부 하나님의 약속 안에 있는 것이기에 이 땅의 가치로는 설명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참으로 하나님의 자녀라면 위로부터 난 사람이라면 그 무엇보다 이러한 약속의 말씀으로 위로를 받고 기뻐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여 주시기를 바울 사도가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까?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여러 가지 어려운 믿음의 시련 중에 있음을 알고 너희 마음을 위로하시고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17절에 보면 “너희 마음을 위로하시고 모든 선한 일과 말에 굳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마음을 위로하여 주시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위로가 무엇입니까? 방금 앞에서 말씀드린 그러한 내용들이 성도들의 위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의 기도도 어떤 기도여야 하겠습니까? 성경이 약속하고 있는 하나님 아버지의 선택적인 사랑과 영원한 위로와 썩지 아니하고 쇠하지 아니하고 더럽지 아니한 영원한 기업을 있게 하시는 그 은혜의 선물로 인하여 위로를 받고 감사가 넘치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이 믿음의 사람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기도하는 내용은 모든 선한일과 말에 굳게 하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모든 선한일과 말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과 말이 선하게 되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말과 행실이 얼마나 악한지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면 알 것입니다. 모두가 자기 잘난 맛에 사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떤 행위를 하거나 말을 할 때에 선한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도가 무슨 일을 하거나 무슨 말을 할 때에 어떻게 하여야 선한 것이 됩니까? 베드로전서 4:7-12절을 보면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하고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느니라. 아멘”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모든 선한일과 말인 것입니다.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혜가 무엇이었습니까? 사랑과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입니다. 이러한 은혜를 따라서 말을 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모든 말과 행실에서 결단코 자기 자랑이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주님께로부터 받은 은혜와 은사를 따라 행한 것이기에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모든 선한 일과 말에 굳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세상의 것에 미련을 두지 말게 하시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좇아 살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주님 주시는 영원한 위로를 더욱 풍성히 덧입고 형제, 자매들이 하나님의 사랑과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덧입고 영원한 위로를 누리는 자들이 되게 기도하는 자들이 되게 하시길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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