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방문자 : 
    239
  • 어제방문자 : 
    1,087
  • 전체방문자 : 
    1,418,446
조회 수 1682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Extra Form
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야고보서 1:12-18

2011년 야고보서 공부
                                                           시험을 참는 자
말씀:야고보서 1:12-18

 

오늘 본문 12절에 보면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고 합니다. 여기서 복이란 생명의 면류관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12). 그런데 12절에서 말하는 시험이란 2-4절에서 보았던 대로 믿음의 형제들이 당하는 여러 가지 시험 곧 시련을 의미하는 것이 전혀 배제하지는 않지만 13절 이하에서 문제가 되는 ‘유혹’이라는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더 바람직할 것입니다. 2-4절에서 살펴본 것처럼 성도에게는 여러 가지 시험들이 반드시 오게 되는데 그런 믿음의 시련들이 인내를 만들어내고 인내를 온전히 이룸으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부족함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 온전함의 결과가 생명의 면류관입니다. 여기서 면류관이라고 하니 머리에 쓰는 관처럼 생각하지만 그것이 아니라 생명이 상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생명의 면류관을 받는 사람은 시험에 옳다 인정함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험을 이기는 자가 주님을 사랑하는 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 가지 시험을 이기는 것이 어떻게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까? 13절을 보면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찌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보면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고 말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씀하는 시험과 야고보서 1:2-4절에서 말씀하는 시험은 단어는 같지만 내용상 좀 다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3절 이하에서는 유혹이라는 의미로 이해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알듯이 시험에는 두 가지가 있죠. 영어로 말하자면 test 와 temptation으로 구별해 볼 수 있는데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훈련시키시기 위한 시험이 있는가 하면, 자기 욕심에 이끌려 유혹을 받아 시험에 드는 경우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13절 이하의 말씀을 유혹이라는 의미에서 볼 경우 12절의 ‘참는다’는 동사의 의미도 ‘견뎌 낸다’라는 의미보다는 ‘저항한다’는 의미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12절은 다음과 같이 번역이 됩니다. ‘유혹을 저항하는 자는 복되다. 왜냐하면 그가 인정 받으면 그를(하나님) 사랑하는 자에게 약속된 생명의 면류관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유혹을 저항하여 이긴 자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와 일치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아마도 하나님께 대한 진정한 사랑은 유혹을 저항하여 이기는 것으로 증명되어야 한다는 저자의 신념을 보여 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자는 시험과 하나님의 관계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13절을 다시 보면 사람들은 유혹을 받아서 넘어 갔을 때에 그 책임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왜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만들어 놓아가지고 아담으로 죄짓게 해서 우리가 이렇게 고생하게 만드셨는가 하는 그런 생각들을 우리는 다 한두 번은 해 보셨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들지 마시든지 만들었어도 아예 접근하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하셨으면 되실 텐데 왜 그렇게 방치 해 두셔서 죄짓게 만드셨는가 하는 의문 내지는 원망들이 다 나오는 것입니다. 이런 원망과 책임 전가는 사실 범죄 한 이후에 그대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고 나서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숨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아담을 찾아오셔서 왜 그랬느냐고 물으시니 아담과 하와의 대답이 어떠하였습니까? 창세기 3:12-13절을 보면 “아담이 가로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가로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죄의 책임을 하나님께 돌리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셔서 나와 함께 하게 하신 여자가 그가 주므로 먹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여자는 뱀에게 전가시킵니다. 이때부터 인간들은 핑계 전문가가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여러 가지 시험과 어려움이 오면 왜 하필이면 나에게 이런 일이 닥치는가 하면서 원망이 나오지 않습니까? 이처럼 자기 욕심에 끌려서 죄를 짓고 나서도 탓하기는 하나님을 탓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인간의 내부에 하나님에 대한 적개심이 가득 들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않으시고 또 아무도 친히 시험하지 아니하신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광야에서 시험을 받지 않으셨습니까? 어떻게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시험을 받으신 것입니까? 그 시험을 받으신 것은 첫 사람 아담이 시험을 이기지 못한 것을 마지막 아담인 예수님께서 그 시험을 이겨내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시기 위한 시험인 것입니다. 히브리서 2:14-18절을 보면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이는 실로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저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구속하려 하심이라.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시험을 받으신 것은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여 심판 받을 자는 하나님께서 유혹을 받게 하십니다.

 

데살로니가 후서 2:9-12절을 보면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을 저의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참으로 무서운 말씀입니다.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자들을 심판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이 유혹을 역사하여 거짓 것을 믿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야고보서는 시험하지 아니하신다고 하시고, 데살로니가 후서는 시험정도가 아니라 유혹을 역사하여 거짓 것을 믿게 하신다고 합니다. 어느 것을 믿어야 합니까? 한 쪽입니까? 둘 다 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공의를 보이시기 위하여 심판 할 자를 심판하시기 위하여 유혹으로 역사합니다. 반면에 자기의 긍휼을 보이시기 위하여 심판 받아 마땅한 자에게 긍휼을 베푸시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보이시는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는 아멘 할 뿐입니다.

 

오늘날 저와 여러분은 어떤 유혹들에 빠져 있습니까? 14-15절을 보면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욕심’이라는 히브리어 단어는 ‘예쩨르’인데 그 자체가 나쁘지는 않지만 중립적인 열망을 의미합니다. 신약에서도 헬라어로는 ‘에피두미아’(ejpiqumiva)인데 그 의미가 모호하여 때로는 좋은 의미로 사용되지만(눅 22:15; 롬 15:23) 보다 자주 ‘악한 열망’, ‘정욕’ 등의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됩니다(갈 5:16-21; 엡 2:3; 살전 4:5). 오늘 본문에서도 그 문맥상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 분명한데 ‘에피두미아’가 여성 명사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한 가지 그림을 그려주고 있습니다. 악한 욕망은 성적인 충동과 긴밀한 관계를 갖는데 악한 욕망이 사람을 낚아채어 그를 자신의 침상으로 이끌어 들이게 되면 그 결과 욕심이 잉태하여 죄라는 아이를 낳게 되는 그림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습니다. 이러한 죄의 패턴이 아담에게서 시작이 되었습니다. 아담은 뱀의 유혹을 받아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워서 그 선악과를 따 먹었습니다. 그 유혹은 선악과를 따 먹으면 너도 하나님처럼 된다는 유혹이었습니다. 지금도 세상은 이 유혹으로 넘실대고 있는 것입니다. 너도 하나님처럼 된다는 것입니다. 이미 현대의 철학과 과학은 하나님을 죽여 버렸습니다. 남는 것은 인간의 가능성과 전능성입니다. 이제는 창조의 비밀을 물리학자들이 밝히려고 나섭니다. 뿐만 아니라 이제 인간도 얼마든지 복제하여 낼 수 있는 기술이 확보되었습니다. 그러니 창조니 생명의 잉태니 하는 것들을 사람의 손으로 좌우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믿고 살고 있습니까? 미련하고 어리석어 보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고 사시겠습니까? 아니면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지혜롭게 할만한 것들을 따라 사시겠습니까? 그래서 야고보는 속지 말라고 합니다. 16절을 보면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고 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속고 있는지 아닌지는 무엇으로 점검해야 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으로 점검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이나 세상으로부터 온 것으로 점검을 하면 안 됩니다. 세상의 지혜로는 하나님의 지혜를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금 유혹을 받고 있는지 하나님의 은사를 받고 있는지를 말씀으로 점검하는 것입니다. 유혹이란 자기 마음의 욕심에서 시작이 됩니다. 그 욕심이 잉태하여 죄를 낳습니다. 죄가 장성하여 사망을 낳습니다. 이것이 이 세상의 모든 인간들이 자기도 모르게 끌려가고 있는 힘의 세계입니다. 속는 줄도 모르고 속아 가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욕심을 정당화하면서 그 욕심을 이루어 놓고서 신의 축복이라고 이야기 하고 있는 세상의 헛된 영광에 속지 말라는 것입니다.

 

반면에 각양 좋은 은사와 선물은 누구로부터 오는 것입니까? 17절을 보면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고 했습니다. 각양 좋은 은사가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로부터 옵니다. 하나님은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다고 합니다. 세상의 모든 피조물들이 다 변화합니다. 그러나 빛들의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께서는 영원하신 분이십니다. 변함이 없습니다. 그분으로 인하여 모든 좋은 것들이 다 은사로 주어지는데 그 은사로 주어진 결과가 우리로 첫 열매가 되게 하기위하여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저와 여러분이 죄를 알고, 그 죄의 결과를 알고,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달리 소망이 없는 자임을 믿게 된 이 모든 것이 나의 뜻대로 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을 따라 된 것입니다. 우리는 다 본질상 진노의 자식으로 태어나서 자기의 욕심을 따라 죄를 짓고 살다가 사망에 이르는 것이 마땅한 자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말씀으로 창조하셨습니다. 그 창조의 능력으로 말씀이 육신이 되셔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다는 그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신 것입니다. 욕심이 잉태하여 죄를 낳는 것과 대비를 시키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심판을 받아야 하는 자들은 다 자기의 욕심이 잉태하여 죄를 낳고 사망에 이르지만 하나님의 은사를 받은 자는 진리의 말씀으로 거듭나게 된 것입니다. 이 말씀의 능력이 우리를 살린 것입니다. 이제 유혹과 은사를 구별하시겠습니까? 유혹이란 자기 욕심이 발동해서 죄를 낳게 됩니다. 우리도 다 여기에 속한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믿는 자나 믿지 아니하는 자나 다 자기 욕심을 따라 살아가고 있습니다.

 

시편 73편에 보면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실족할 뻔 하였다고 합니다. 시편 73편을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이스라엘 중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나 나는 거의 실족할뻔 하였고 내 걸음이 미끄러질뻔 하였으니.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시하였음이로다. 저희는 죽는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건강하며 타인과 같은 고난이 없고 타인과 같은 재앙도 없나니. 그러므로 교만이 저희 목걸이요 강포가 저희의 입는 옷이며 살찜으로 저희 눈이 솟아나며 저희 소득은 마음의 소원보다 지나며 저희는 능욕하며 악하게 압제하여 말하며 거만히 말하며 저희 입은 하늘에 두고 저희 혀는 땅에 두루 다니도다. 그러므로 그 백성이 이리로 돌아와서 잔에 가득한 물을 다 마시며 말하기를 하나님이 어찌 알랴 지극히 높은 자에게 지식이 있으랴 하도다. 볼지어다. 이들은 악인이라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더 하도다. 내가 내 마음을 정히 하며 내 손을 씻어 무죄하다 한 것이 실로 헛되도다. 나는 종일 재앙을 당하며 아침마다 징책을 보았도다. 내가 만일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이렇게 말하리라 하였더면 주의 아들들의 시대를 대하여 궤휼을 행하였으리이다. 내가 어찌면 이를 알까 하여 생각한즉 내게 심히 곤란하더니.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저희 결국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주께서 참으로 저희를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에 던지시니. 저희가 어찌 그리 졸지에 황폐되었는가 놀람으로 전멸하였나이다. 주여 사람이 깬 후에는 꿈을 무시함 같이 주께서 깨신 후에 저희 형상을 멸시하시리이다. 내 마음이 산란하며 내 심장이 찔렸나이다. 내가 이같이 우매 무지하니 주의 앞에 짐승이오나 내가 항상 주와 함께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나의 사모할 자 없나이다. 내 육체와 마음은 쇠잔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 대저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음녀같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다 멸하셨나이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사를 전파하리이다”고 했습니다. 악인은 다른 사람과 같은 고난과 재앙도 없고 죽을 때도 고통도 없고 저희의 소득은 마음의 소원보다 더 하다고 항상 편하고 재물은 더하여 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내가 경건하게 손을 씻으며 사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한 것입니다. 이것이 시험입니다. 그러나 나중에 성전에 나아가서 그 결말을 알았는데 악인은 졸지에 망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사를 입은 자들은 날마다 진리의 말씀으로 공박을 받는 것입니다. 자기 욕심을 따라서 살려고 하는 것이 죄를 잉태하여 사망에 이른다는 말씀으로 늘 공격을 받는 것입니다. 그럴 때 마다 회개하고 위로부터 오는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로부터 옴을 믿게 만드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은사와 선물을 세상 사람들이 알 수도 없고, 알아도 원하지 아니하는 내용들입니다. 먹음직하거나 보암직하거나 이 세상의 자랑거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6:23절을 보고 마치겠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그렇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생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영생임을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믿음으로 살고자 할 때 오는 여러 가지 시험을 저항하여 이기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TAG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성경본문 설교자 강설날짜 조회 수
311 [데살로니가후서 1장] 환난과 안식 file 살후 1:5-12 손재호 1287
310 [데살로니가후서 1장] 영원한 형벌과 영광 file 살후 1:8-12 손재호 899
309 [데살로니가후서 2장] 불법 자! file 살후 2:1-8 손재호 1069
308 [데살로니가후서 2장] 사단의 역사 file 살후 2:9-12 손재호 1096
307 [데살로니가후서 2장] 감사할 것! file 살후 2:13-15 손재호 1095
306 [데살로니가후서 2장] 영원한 위로 file 살후 2:16-17 손재호 1360
305 [데살로니가후서 3장] 바울의 기도 요청 file 살후 3:1-5 손재호 1381
304 [데살로니가후서 3장] 미쁘신 주님 file 살후 3:1-5 손재호 1625
303 [데살로니가후서 3장] 마지막 당부와 인사 file 살후 3:6-18 손재호 1726
302 [야고보서 1장] 야고보의 문안 인사 file 야고보서 1:1 손재호 1452
301 [야고보서 1장] 시험을 만나거든 file 야고보서 1:2-4 손재호 1412
300 [야고보서 1장] 지혜를 구하라 file 야고보서 1:5-8 손재호 2753
299 [야고보서 1장] 풀의 꽃과 같은 인생 file 야고보서 1:9-11 손재호 1764
» [야고보서 1장] 시험을 참는 자 file 야고보서 1:12-18 손재호 1682
297 [야고보서 1장] 듣기를 속히 하라 file 야고보서 1:19-21 손재호 1660
296 [야고보서 1장] 듣고 행하는 자가 되라 file 야고보서 1:22-25 손재호 1537
295 [야고보서 1장] 참된 경건이란? file 야고보서 1:26-27 손재호 2180
294 [야고보서 2장]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 file 야고보서 2:1-9 손재호 1947
293 [야고보서 2장] 긍휼이 심판을 이긴다. file 야고보서 2:10-13 손재호 1498
292 [야고보서 2장] 행함이 없는 믿음 file 야고보서 2:14-19 손재호 1959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 25 Next
/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