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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야고보서 1:22-25

2011년 야고보서 공부
                                                      듣고 행하는 자가 되라
말씀:야고보서 1:22-25

 

우리는 지난 시간에 ‘듣기를 속히 하라’는 말씀을 공부했습니다. 오늘 말씀은 ‘듣기만 하지 말고 행할 것’을 권면하시는 말씀입니다. ‘행함’의 주제는 지난 시간에 살펴본 ‘듣기를 속히 하라’는 말씀과 연관이 있습니다. 즉 ‘듣기를 속히 하라’는 말씀을 자칫 듣는 행위만을 의미하는 것으로 오해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야고보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반드시 그 행함이 뒤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22절에 보면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기를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고 합니다. 여기서 ‘도’란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야고보는 말씀을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는 자는 자기를 속이는 자와 같다고 합니다. 야고보는 이를 통해서 단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만 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하는 것입니다. 만약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만 해도 하나님의 은총의 자리에 선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자신의 잘못된 생각에 스스로 속고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들은 사람이 그 말씀을 실행하지 않는다면 말씀을 듣지 못한 사람들보다 더 책임이 큽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들은 자는 그 말씀을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듣고 행하라’는 주제는 야고보가 본 서신에서 가르치고자 하는 모든 말씀의 중심 주제가 되는 사상입니다. 곧 행함이 없는 신앙은 참된 믿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는 자들의 문제를 거울 비유를 통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23-24절에 보면 “누구든지 도를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으니.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양이 어떠한 것을 곧 잊어버리거니와”라고 합니다. 22절에서 말씀을 듣고 그것을 실행할 것에 대해서 역설한 야고보는 사람들이 진리의 말씀을 단순히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왜 행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거울 비유를 통해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본다’라는 동사는 헬라어로 ‘카타노에오’(katanoevw)인데, 이 단어는 경솔하게 힐끗 쳐다보는 것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조심스럽게 관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곧 주의를 집중하여 어떤 사물을 세밀히 관찰한다는 그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거울에 자기 얼굴과 모습을 비춰봅니다. 우리가 얼마나 거울을 자주 봅니까. 특히 자매들은 거울 없으면 못 살 정도죠. 우리는 거울을 통해서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얼굴에 무엇이 묻었는지, 화장은 잘됐는지, 우리는 항상 거울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비춰봅니다. 그런데 그렇게 거울을 보고도 얼마 지나지 않아서 금방 자신의 모습을 잊어버리고 삽니다. 이처럼 말씀을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거울을 통해 자신을 보고도 금방 잊어버리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말씀을 듣고 일시적으로 깨달을 뿐, 그것을 행하지 않는다면 그러한 깨달음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듣기만 하는 것은 듣는 자에게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거울에 비친 자기의 모습이 전부가 아닙니다. 이처럼 진리의 말씀을 듣는 것만으로는 모든 것이 이루어졌다고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리의 말씀을 듣는 목적은 그 말씀을 실행함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듣고도 실행하지 않는 자는 어리석은 자입니다. 마태복음 7:21-27절을 보면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가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지혜로운 자요, 말씀을 듣고도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자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말씀을 듣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말씀을 실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25절에 보면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고 합니다. 여기서 야고보는 말씀을 듣고도 행하지 않는 사람과 대조하면서 듣고 행하는 자에 대해 묘사합니다.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여기서 ‘이 사람’이란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를 말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복을 받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는 하나님의 진리를 ‘들여다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라고 합니다. 그것을 행하는 자라고 합니다. 이런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는 것입니다. 여기서 ‘들여다 본다’라고 할 때 사용된 동사는 헬라어 ‘파라퀴프토’(parakuvptw)라는 단어인데, 이 단어는 ‘뚫어지게 무엇에 열중하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동사는 예수님이 부활하셨을 때 빈무덤에 달려와 요한이 허리를 꾸푸려 무덤 안을 들여다볼 때 사용된 단어입니다(요 20:5). 그러므로 야고보가 ‘자유케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 본다’라는 말은 마치 어떤 사람이 성경에 엎드리어 그 메시지를 열심히 찾는 것을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사도행전 17장에 나오는 베뢰아 성도들과 같이 날마다 성경을 간절한 마음으로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행 17:11). 이런 자의 행하는 일에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시편 1편을 보면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시편 기자는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가 복 있는 자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곧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는 의인의 길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말씀을 집중하여 묵상하는 자는 그 말씀을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닙니다. 그 말씀을 실행하는 자입니다. 그러하기에 그 행하는 모든 일에 복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야고보가 여기서 ‘자유케 하는 온전한 율법’이라고 했는데 그 의미가 무엇일까요? 우리가 그동안 율법 그러면 죄로 심히 죄 되게 하는 것이며, 그래서 율법이란 죄 아래 가두어 버리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았는데, 야고보는 오늘 말씀에서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율법을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이라고 말씀할 수가 있는 것입니까? 야고보는 행함을 강조하는데 행함을 강조하는 것이라면 율법적인 행함이 강조되어야 하는데 정작 본문에서는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이란 모세 율법의 조문 조문을 말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가 있습니다. 야고보는 율법의 문자적인 지킴이나 행함을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율법의 완성에서 나오는 행함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율법의 완성이란 무엇입니까? 2:8절을 보면 “내 이웃 사랑하기를 내 몸처럼 하라”는 말씀에 다 들어있는 것입니다. 2:15-16절을 보면 역시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야고보가 말하는 행함이란 율법의 완성에서 나오는 이웃에 대한 사랑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유케 하는 온전한 율법은 무엇입니까? 1:21을 보면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어 버리고 능히 너희 영혼을 구원 할 바 마음에 심긴 도를 온유함으로 받으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마음에 심긴 도’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세의 율법은 돌 판에 새겨진 것입니다. 돌 판에 새겨진 말씀을 듣고 지킨 사람들은 온전한 자유에 이르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에 새겨진 도가 있어야 온전한 자유에 이르는 율법이 되는 것입니다. 마음에 새겨진다는 말씀을 들으면 무엇이 떠오릅니까? 예레미야 31:31-34절을 보면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세운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파하였음이니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예레미야 선지자가 새 언약을 예언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새 언약은 마음에 새겨진다고 하셨습니다. 옛 언약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새운 언약인데 돌 판에 새겨진 것입니다. 그 돌 판에 새겨진 율법을 지키지도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지킨다고 한 사람들은 자기들의 의가 나와서 자기 자랑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새 언약은 마음에 새겨지는데 그때에 이웃이나 형제에게 여호와를 알라고 하지 아니하여도 다 알게 된다고 하십니다. 율법으로 교육하고 가르치지 않아도 아는 것입니다. 또한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새 언약의 완성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새 언약 하에서 마음에 심겨진 도를 받는 사람은 누구나 율법으로 무엇을 하라, 하지 말라고 하지 않습니다.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 즉 복음을 따라 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복음을 따라 사는 사람은 주의 영의 인도를 받는 사람입니다. 누가 시켜서 하거나 하지 않는 사람이 아닙니다. 돌 판에 기록된 말씀은 그들의 남편이 되어서 손을 잡고 나와도 하나님의 언약을 파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마음에 심겨진 도는 도저히 스스로 파괴할 수가 없는 언약이 된 것입니다. 마치 문신을 새겨놓은 것처럼 부인 할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된 사람은 듣고 잊어버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마음에 새겨져 있는데 어떻게 잊어버릴 수가 있겠습니까?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따라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유케 하는 온전한 율법이란 복음입니다. 복음의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자유하게 합니다. 율법으로 인한 죄와 사망의 고통에서 해방시켜 주는 것이 복음의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이 오게 되면 두 가지를 다 알게 됩니다. 먼저 자신이 죄와 사망 아래 종노릇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자신이 열심을 내어서 율법을 지키면 지킬수록 오히려 하나님의 의에 불복종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자기 안에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 낼 그 어떤 능력과 자질이 없음을 알게 됩니다. 마음으로 원한다고 하여도 그것을 행할 능력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호라. 곤고한 자로라”고 탄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탄식으로 머무는 것이 아닙니다. 죄와 사망의 법에서 생명의 성령의 법이 자유하게 하였습니다. 이제는 죄의 종이 아니라 의의 종이 되었습니다. 의의 종이 된 사람은 죄의 종에서 자기 마음대로 빠져 나올 수가 없었던 것처럼 자기 스스로 빠져 나갈 수 없게 된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은 거울을 들여다보고서 곧 자기의 얼굴을 잊어버리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가 누구의 종임을 제대로 알게 됩니다. 자신이 죄의 종이 아니라 의의 종이 되었음을 아는 자는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본 자입니다. 이 자유케 하는 온전한 율법은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새겨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잊어버릴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하라, 하지마라’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우리를 죽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율법의 기능이 그러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죽이게 하는 법을 가지고 살겠다고 지켜낸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모습인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죽이고 다시 살리시는 것은 우리의 행함과 상관없이 주님의 언약으로 이루어내어 마음에 새겨준 새 언약인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1:19-21절을 보면 “또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데 비취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가하니라. 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고 했습니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변화산에서 예수님께서 영광스럽게 변화되고 하늘에서 음성을 들은 것 보다 더 확실한 예언이 있다고 합니다. 그것이 기록된 말씀입니다. 그러니 무엇을 보았다 들었다 하지 말고 기록된 이 말씀을 주의 깊게 보라는 것입니다. 어두운데 비취는 등불과 같이, 날이 새어 샛별이 떠오르듯이 너희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비추어질 때까지 주의하여 보라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0:8-12절을 보면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간음하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죽었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간음하지 말자.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시험하지 말자.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저희와 같이 원망하지 말라.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 그런즉 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했습니다. 구약 성경이 말세를 만난 우리에게 거울이 됩니다. 외모를 꾸미기 위해 거울을 보듯 우리 속을 단장하기 위해 말씀의 거울을 봐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죄와 비참함이 얼마나 심각한지, 그 추하고 더러움이 어떠한지 다 드러납니다. 그런데 그 추함을 우리가 해결할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우리를 정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발견하는 것이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는 자입니다. 이들은 더 이상 누구의 눈치를 보거나 시켜서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 완성된 사랑이 마음에 새겨지니 그 자유함으로 그리스도의 종임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내가 나를 책임져야 하는 율법에서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으로 자유가 주어진 것입니다. 이런 자에게서 나오는 행함이란 자기 의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것입니다. 이런 자가 복 있는 자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유케 하는 율법을 허락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 율법을 날마다 들여다보는 자가 되게 하셔서 자유함으로 말씀에 순종하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행하는 모든 일에 복이 넘치는 인생이 되게 하시길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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