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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야고보서 2:14-19

2011년 야고보서 공부
                                                        행함이 없는 믿음
말씀:야고보서 2:14-19

 

우리는 지금 야고보서 2장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 2장은 야고보서의 중심 주제인 ‘참된 믿음’에 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2:1-13절까지 말씀이 ‘---이 없는 믿음’ 곧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않는 믿음’이 참된 믿음임을 증거하고 있고, 2:14-26절까지 말씀은 ‘---이 있는 믿음’ 곧 ‘행함이 있는 믿음’이 참된 믿음임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 두 주간에 걸쳐서 1-13절 말씀을 살펴봤습니다. 오늘부터는 14-26절 말씀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14-26절 말씀은 1-13절에서 다룬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말라’는 말씀을 배경으로 주어지고 있습니다.

 

14절에 보면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라고 합니다.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참된 믿음이 아니라고 합니다. 곧 행함이 없는 믿음은 아무 유익이 없고, 자신을 구원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을 17절에 보면 죽은 믿음이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그러면 여기서 야고보가 말하는 믿음은 무엇입니까? 믿음이 있는데 행함이 없는 것을 말합니까? 아니면 믿음 자체가 없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까? 믿음 자체가 없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루터는 믿음이 있는데 행함이 없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오해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야고보서가 ‘이신칭의’에 역행한다고 해서 지푸라기 서신이라고 비하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루터가 야고보가 야고보서에서 말하는 믿음을 잘못 이해한데서 오는 오해였습니다. 야고보가 야고보서에서 말하는 믿음은 믿음이 있는데 행함이 없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 있다고 말하고 행함이 없는 믿음은 믿음 자체가 없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은 우리를 구원하지 못하는 죽은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만약 본문에서 야고보가 말하는 믿음이 믿음은 있는데 행함이 없는 것을 말한다면 이것은 분명히 ‘이신칭의’의 진리를 부정하는 것이 됩니다.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말한 다른 복음입니다. 갈라디아서를 보면 당시 갈라디아 교회 가운데 예수님을 믿어야 하지만 율법도 행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갈라디아서 3:1-7절에 보면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내가 너희에게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너희가 이같이 많은 괴로움을 헛되이 받았느냐. 과연 헛되냐.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듣고 믿음에서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인줄 알찌어다”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이런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에게 저주를 선포하였습니다. 갈라디아서 1:6-9절에 보면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라고 했습니다. 야고보가 여기서 말하는 믿음은 바로 갈라디아서에 말하는 행함이 없는 믿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곧 믿음이 있는데 행함이 없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믿음 자체가 없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만약 루터가 오해한 것처럼 여기서 야고보가 말하는 믿음이 믿음은 있는데 행함이 없는 것을 말한다면 우리는 아무도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도리어 저주를 받습니다.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말한 것 같이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행함으로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율법을 다 행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마태복음 5장 산상수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보다 더 낫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했습니다(마 5:20). 그러면서 마태복음 5:21-48절에 보면 우리가 어떻게 행해야 하는가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형제를 미워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마음에 음욕을 품지 않을 수 있습니까? 오른 빰을 치면 왼편도 돌려 댈 수 있습니까? 속옷을 달라는 자에게 겉옷도 줄 수 있습니까? 원수를 사랑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성취된 율법 곧 예수님이 원하는 뜻을 다 행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행함으로 결코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오직 우리는 주님의 긍휼로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함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있는 자는 반드시 믿는 자로서의 합당한 삶이 나타나게 됩니다. 믿는 자는 시간이 있으면 반드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삶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물론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와 같이 시간이 없는 경우는 예외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있노라 말만하고 믿는 자로서의 합당한 삶이 나타나지 않으면 그것은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이런 믿음을 죽은 믿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약 2:17, 26). 우리는 여기서 믿음과 행함의 관계를 바르게 정립해야 합니다. 우리가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은 오직 믿음으로 얻습니다. 바울이 말한 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곧 ‘이신칭의’로 구원을 얻습니다. 한 사람도 행함으로 의롭다함을 얻을 수 없습니다. 갈라디아서 3:10-13절에 보면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나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이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니라.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라 이를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하였느니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고 했습니다. 율법은 죄를 죄되게 하기 위해 주신 것입니다(갈 3:19). 그러므로 율법은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의 역할을 합니다. 갈라디아서 3:24절에 보면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행함으로 구원 얻을 자가 하나도 없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함을 얻습니다. ‘오직 믿음으로!’(이신칭의) 이것이 없으면 교회가 아닙니다.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은 자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신 은혜에 감사하여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삶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주님의 십자가로 구원해 주신 은혜에 감사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구원함을 받기 위해 율법적으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에 기초해서 마땅함으로 나타나는 삶인 것입니다. 믿음은 ‘지정의’로 이루어집니다. 주님께서 나의 죄를 위해 죽으신 것을 알고, 그 은혜에 감사하여 감격하며 기뻐하고, 나의 의지를 다하여 그 은혜에 합당한 삶을 사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곧 온 몸으로, 온 삶으로 우리의 믿음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과 행함의 관계를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믿음과 행함의 관계를 바로 알 때 야고보가 말하는 참된 믿음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믿는 자로의 합당한 삶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는 것입니까? 첫째로, 긍휼을 행하는 삶으로 나타납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우리가 지난 시간에 살펴봤습니다(약 2:10-13). 왜 참된 믿음을 가진 자는 그 삶이 긍휼로 나타는 것입니까? 자신이 긍휼을 입은 자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형제에 대한 사랑으로 나타납니다. 오늘 본문 15-17절을 보면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야고보는 ‘믿음이 있노라고 하면서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느냐,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고 하면서 그 행함의 내용으로 예를 든 것이 형제 사랑입니다.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굶주리는데 그에게 이르기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고 하면서 아무 쓸 것을 주지 않는다면 무슨 이익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믿음이라고 합니다. 이런 믿음은 우리에게 아무 유익이 없으며, 능히 우리를 구원하지 못합니다.

 

여기서 행함이 없는 믿음에 대한 비유를 가난한 형제자매를 돌보는 것을 비유로 한 그 뜻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런 말씀을 보면서 교회나 성도가 구제를 잘하면 바른 믿음이라고 보면서 구제를 힘쓰자는 식으로 나갈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구제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라도 얼마든지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예를 들면서 믿음의 행위를 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앞의 말씀과 연결이 된다고 봅니다.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행위가 긍휼을 받는 자로서 긍휼을 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의 내용들입니다. 만약에 긍휼히 여김이 담겨있지 않으면 틀림없이 자기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게 됩니다.

 

이사야 1:10-17절을 보면 “너희 소돔의 관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찌어다. 너희 고모라의 백성아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일찌어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수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찌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케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업을 버리며 악행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 공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성전에 무수한 제물을 바치고,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여서 성회라고 모여 많이 기도할 지라도 듣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그 이유는 그들의 손에 피가 가득한데 그 피가 악업과 악행들입니다. 그래서 선행을 배우고 공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신원하고 과부를 돌보라고 합니다. 그렇지 않고 열심 내는 종교적인 행위들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고아와 과부를 돌아본다는 것은 지난번에 보았습니다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긍휼을 입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긍휼을 입은 자라면 형제와 자매에 대하여서도 반드시 긍휼히 여길 것입니다. 같은 형제와 자매가 어려움에 있는데 말로만 하고 넘어가는 사람이라면 과연 주님으로부터 긍휼을 받은 사람인가를 물어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난한 형제를 우리에게 붙여주심은 우리가 긍휼을 받은 자임을 잊지 않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조치입니다. 갈라디아서 5:4-6절에 보면 “율법 안에서 의롭다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좇아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되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 뿐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이 참된 믿음입니다.

 

요한1서 3:16-19절을 보면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보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사랑을 알게 된 것은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대단한 일이 아니라 당연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이 없다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는 것입니다. 그 사랑을 받은 자는 같은 사랑을 받은 형제에 대하여 말로만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반드시 사랑의 수고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18절에 보면 “혹이 가로되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고 합니다. 야고보는 믿음과 행함의 불가불리성을 예를 들어서 설명을 합니다. 여기서 ‘나’라는 사람이 요구하는 바는 ‘네’가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데 그렇다면 ‘네’가 가지고 있는 보이지 않는 믿음을 보이는 행함을 통해 내게 보여 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행함이 있다고 주장하는 ‘나’도 나의 행함을 통해 나의 믿음을 증명해 보이겠다는 것입니다. 곧 이 구절에서 야고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믿음과 행함이 나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이것을 당연시하면서 도리어 책망조의 질문을 던집니다. 19절에 보면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둘로 나눌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이 믿음과 행함을 이원론적으로 나누어 생각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야고보는 귀신들의 믿음을 예로 들고 있습니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귀신들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압니다. 자신들을 멸하실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두려워 떱니다. 그런데 여기서 야고보가 귀신의 예를 든 이유는 단순히 지적으로 아는 것은 우리가 말하는 믿음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무 소용도 없고 효력도 없고 의미도 없기 때문입니다. 참된 믿음은 반드시 그 행함으로 나타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에게 행함이 있는 참된 믿음을 허락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삶 가운데서 믿음의 열매들이 구체적으로 나타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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