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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최상범
성경본문 갈 3:15-18
성경본문내용 (15)형제들아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사람의 언약이라도 정한 후에는 아무나 폐하거나 더하거나 하지 못하느니라(16)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17)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하나님의 미리 정하신 언약을 사백 삼십년 후에 생긴 율법이 없이 하지 못하여 그 약속을 헛되게 하지 못하리라(18)만일 그 유업이 율법에서 난 것이면 약속에서 난 것이 아니리라 그러나 하나님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에게 은혜로 주신 것이라
강설날짜 2011-09-28

2011년 9월 28일 한결교회 수요강설

갈라디아서 제17강

 

율법과 약속

 

말씀 : 갈 3:15-18

 

바울은 사람이 율법의 행함이 아닌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을 1-5절까지는 그들의 경험에 비추어서, 6-14절까지는 구약성경에 기초해서 증명하였습니다. 그리고 15-19절은 약속이 율법보다 먼저 왔고, 또 약속이 변할 수 없음을 예로 들어서 아브라함이 언약의 축복을 누린 것이 오직 은혜로 된 것임을 다시 한 번 천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15절에 보십시오. “형제들아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사람의 언약이라도 정한 후에는 아무나 폐하거나 더하거나 하지 못하느니라”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라는 말은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는 것입니다. 사람의 경우에도 언약이 한번 정해지면 아무라도 더하거나 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람의 언약의 경우에도 그러한데, 하물며 하나님의 언약은 어떠하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언약은 영원불변하고 확고한 것이어서, 나중에 주어진 율법에 의해서 그 언약의 약속들이 변경되거나 취소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언약’이라는 단어가 처음으로 등장하는데, 이 ‘언약’이라는 단어는 ‘디아데케’라는 단어입니다. 사실 이 단어는 그 당시에 ‘유언’이라는 의미로 사용되던 단어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성경에서도 이 단어를 유언이라는 의미로 사용한 구절이 있습니다(히 9:16-17). 그러면 의문이 듭니다. 왜 하필 신약의 저자들은, 그 당시에 분명히 ‘계약’ 또는 ‘조약’을 의미하는 단어가 분명히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단어를 쓰지 않고, 헷갈리게 그 당시 ‘유언’의 의미로 쓰이는 단어를 사용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아주 중요한 의미가 숨겨져 있습니다. 사실 이 헬라어 ‘디아데케’의 원래 뜻은 ‘자기 자신을 위하여 스스로 처분하다, 스스로 처리하다’라는 뜻의 단어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유언하는 주목적이 무엇입니까? 재산분배와 상속을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재산분배와 상속이 상호간의 타협과 협상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계약입니까? 아니죠. 재산을 가진 사람이 자기 마음대로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본인이 그렇게 정하고 법적으로 확증이 되었으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그것에 대해서 어떻게 변경을 가하거나 폐하지 못하고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유언’의 일방적인 성격 때문에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위해 스스로 처분하다’라는 뜻을 지닌 ‘디아데케’를 이 ‘유언’을 의미하는 용어로 사용한 것입니다. 그래서 신약의 저자들이 왜 구약의 ‘언약’이라는 단어를 굳이 ‘디아데케’라고 번역했는지 그 이유가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언약의 일방적인 성격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이라고 하는 것, 하나님이 사람과 맺으시는 언약이라고 하는 것이 합의와 절충과 타협을 통해서 맺어지는 계약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하나님 당신님께서 그냥 주권적으로 맺으시고 언약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도 보면 언약을 또한 무엇이라고 하느냐 하면, ‘약속’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것이 바로 언약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실 때에, “만일 네가 이러 이렇게 하면, 내가 이러 이렇게 해주겠다.” 또는 “우리 서로 이러 이렇게 하기로 하자, 서로 계약을 맺자.”라고 말씀하지 아니하셨습니다. 그냥 “내가 너로 복의 근원이 되게 해 주겠다”, “너와 네 자손에게 이 가나안 땅을 유업으로 주겠다”, “너의 후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땅의 모래와 같이 되게 하겠다”라고 일방적으로 약속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과 아브라함이 나중에 언약식을 행할 때, 짐승을 쪼개어 놓고, 그 사이로 누구만 지나가십니까? 하나님만 지나가십니다. 사실 그 당시 풍습에 의하면 사람들이 계약을 맺을 때는 그 사이로 두 당사자가 함께 지나갔습니다. “못 지키면 너나 나나 이 짐승처럼 쪼개어질 것이다” 하고서 지나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실 때는 혼자서 지나가셨습니다. 하나님 홀로 약속하셨고, 하나님 홀로 그 약속을 이행할 의무를 지니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할 일이라곤 단지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 밖에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그 언약을 믿음으로 받아들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 믿음을 보시고 그를 의롭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만 그렇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자취를 좇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이방인 신자들에게도 은혜로 의롭다 하시는 것이 하나님이 처음부터 정하신 구원의 방법이요, 또한 이것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언약의 주된 내용인 것입니다. 여기 무슨 율법이 관계할 것이 있었습니까? 없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율법이 오더라도 이 하나님이 정하신 언약을 더하거나 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율법은 그냥 잠시 잠간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자신의 역할만 감당하고 사라지는 것이고,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하나님의 은혜언약만이 영원불변하게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나 지금이나, 아담이 타락한 이래로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사람이 구원받는 유일한 길은 오직 은혜로,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입니다.


이 점과 관련하여 바울이 주목하는 것은 약속이 율법보다 430년 앞선다는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의롭다 함을 받고, 하나님의 약속을 유업으로 받은 것이 율법이 주어지기 430년 전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아브라함이 무슨 조건을 만들 수 있는 그 기회가 주어지기 전에, 아무런 조건도 만들 수 없는 때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셨고, 의롭다 하시고, 약속된 유업을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그러니깐 이것이 다 은혜이고 약속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16절을 보십시오.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이 ‘약속’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여러 가지를 약속하셨지만, 그것의 성취적인 의미를 갈라디아서 관점에서 요약하여 말하면, 그것은 성령을 받는 것이며,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는 것입니다. 이 유업들이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에게만 허락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 유업을 이어받을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자손이 여럿이 아니라, 한 사람 그리스도라고 말합니다. 이와 반대로 거짓교사들은 어떻게 생각했습니까? 아브라함의 혈통에서 태어나고, 할례를 받고, 모세 율법을 지키면서 살아온 본인들이야말로 진정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바울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자손’은 혈통적인 자손인 유대인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한분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 근거로 바울은 이 ‘자손’이라는 단어가 단수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과연 그러한지 구약성경을 찾아보겠습니다.

(17)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18)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창 22:17-18)

여기서 분명히 ‘씨(=자손)’라는 단어는 단수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문맥에서 볼 때, 이 씨는 한 사람이 아닙니다. 비록 단수로 되어 있지만, 그것은 집합명사로서 단수 형태를 취할 뿐인 것입니다. 우리가 영어로 family를 말할 때, family는 한 사람 이상을 의미하는 단어이지만, 그러나 이 단어는 집합명사로서 단수로 취급한다고 영어 문법시간에 배웠습니다. 마찬가지로, 이 ‘씨’라는 명사가 집합명사입니다. 그래서 단수이지만, 그 의미는 본문에 나오는 것처럼 하늘의 별과같이 바다의 모래와 같이 많은 사람들을 포함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바울이 이 ‘씨’가 단수이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것이다” 라고 말한 것은 실수에 의한 것입니까? 바울은 이 ‘씨’가 하늘의 별과 같이 많은 사람들을 포함한다는 사실을 모르고서 이 말을 하는 것일까요? 그럴 리는 없을 것입니다. 바울은 이미 이 갈라디아서에서조차 이 ‘자손’을 복수개념으로 이해하고 적용합니다.

(29)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갈 3:29)

여기서는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자손’이 누구라고 말합니까? 바로 “너희가 아브라함의 약속된 자손들이다” 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무엇입니까? 앞에서는 그 ‘자손’이 단수이기 때문에 ‘그리스도다’라고 해놓고서는, 조금 있다가 그 자손은 바로 ‘너희들이다’ 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헷갈릴 수가 있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29절의 ‘그리스도께 속한 자’라는 것입니다. 즉 바울은 아브라함의 ‘자손’의 약속이 결국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이고,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다의 모래와 같이 많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리스도께 속한 자로서, 즉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루고 있는 단일체를 이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를 그리스도의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각각 그리스도의 몸 된 지체로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 하나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수많은 자손들을 약속하시만, 그러나 사실 그 수많은 자손들은 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단일체이기 때문에, 결국 모든 약속은 그리스도 한분 인격 안에 집약되고 집중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많은 자손을 약속하셨지만, 사실상 약속하신 것은 바로 한분 그리스도를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도 이 약속을 받았을 때 이 사실을 알았을 것입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대로 자신의 씨인 이삭을 낳았을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이삭을 통해서 천하만민이 복을 받는다고 생각했을까요? 이삭이 대적의 문을 얻는다고 생각했을까요? 아브라함은 분명 이삭이 인류의 소망되시는 궁극적인 여자의 후손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다만 그분이 이삭을 통해서 오실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아브라함에 대해서 말씀하실 때에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요 8:5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예수님의 때 볼 것을 기다리며 살았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아브라함의 소망은 사실 아브라함에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라, 아담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타락한 직후 ‘여인의 후손’을 약속해주셨습니다.

(15)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창 3:15)

여기서의 후손도 단수로 되어 있는데, 바로 하나의 인격체인 사단과 싸워서 이길 한 사람 여자의 후손을 하나님께서는 약속해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은 이 약속을 따라서 여자의 후손을 기다리며 살았습니다. 그리고 기다림 끝에 가인이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사는 것을 보니깐 이 가인이 아니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또 기다렸습니다. 아벨이 태어났는데, 이 아벨도 그 여자의 후손이 아니었습니다. 셋도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그 셋의 후손들도 아니었습니다. 아담은 이 약속된 여자의 후손을 기다렸지만, 자신의 생애에서 그는 이것의 성취를 보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아담은 아마도 죽기 전에 자기 자손들에게 여러 번 그 약속에 대해서 가르치고 알려주었을 것입니다. “나는 보지 못하고 죽지만, 하나님이 여자의 후손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으니 언젠가는 너희들 가운데서 그 여자의 후손이 태어날 것이다. 그 여자의 후손이 대적과 싸워 이겨서 우리를 구원하실 것이다. 그 여자의 후손을 기다리는 삶을 살아라.” 그리고 이러한 약속의 말씀은 자손 대대로 이어지면서 결국 노아에게까지 이어지고, 결국 아브라함에게까지 이른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이러한 아담의 언약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저의 추측). 그래서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약속하신 것이 비록 가나안 땅과 하늘의 별과 같이 많은 혈통적인 후손이지만, 그러나 아브라함은 이러한 약속들 안에 물질적이고 혈통적인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것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즉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만 바라보고 산 것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 더 나은 본향을 바라보며 살았고(히 11:8이하), 이삭과 그 후손들만 바라보고 산 것이 아니라, 그 후손들을 통해서 태어나실 한분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기다리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러한 전체 그림 속에서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자손이 바로 한분 그리스도시라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유업을 이을 유일무이한 아브라함의 자손이 누구이십니까? 성령을 받고 하나님 나라를 유업을 이을 자가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입니까? 아니면 야곱의 자손 이스라엘 백성들입니까? 할례를 받고 모세 율법을 지키는 혈통적인 유대인입니까? 아닙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유업의 진정하고 유일무이한 상속자는 바로 오직 예수님이십니다. 그분은 그리스도로서 성령이 그에게 한량없이 내려졌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써 대적과 싸워 이기셨으며, 사흘 만에 부활하심으로써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시어,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으셔서 하늘 보좌 우편에 좌정하셨습니다. 이제 하나님 나라의 왕은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하나님 나라는 곧 그의 나라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약속된 유업을 이을 자는 오직 예수님 한분뿐이십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이 아니라, 이제는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믿어 그에게 접붙인바 된 자는 누구나 다 그리스도 안에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고 여자의 후손이 되어서 그리스도와 함께 이 약속된 유업을 상속받는 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29)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갈 3:29)
(17)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롬 8:17)

즉 그리스도와 함께 공동상속자가 된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께 성령이 한량없이 내려졌던 것처럼 우리가 예수님 믿어 의롭다 함을 얻었을 때에 성령이 우리 안에 오셔서 우리로 성령충만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약속해주심으로써, 장차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그 나라에서 주님과 함께 영원토록 왕노릇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놀라운 은총이 바로 그리스도 안에 있음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구약의 백성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약의 모든 참 하나님의 백성들은 다 이 한분 오심을 기다리며 살았고, 바로 이 기다림이 그들에게 믿음인 것입니다. 이 믿음으로 구약의 백성들은 그리스도께 속한 자가 되어서 아브라함의 자손으로서 약속된 유업을 상속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단순히 혈통적인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해서, 할례와 모세 율법을 지키는 유대인이라고 해서 다 구원받는 것이 아니고, 다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닌 것이고, 약속된 유업을 상속받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이스라엘이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다의 모래와 같을지라도 오직 택함을 따라 남은 자만이 구원받는다고 했습니다(롬 9:27).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고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다”라는 말씀을 오늘 본문에서 다시 확인하게 되는 것입니다(롬 2:28-29).


그러므로 바울의 결론은 아브라함이 구원받고, 약속을 유업으로 받을 수 있었던 것이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로 된 것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이것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동일한 것입니다. 누가 구원을 받고 그리스도와 함께 약속의 유업을 상속받는 것입니까? 오직 그리스도를 믿어 그에게 접붙임바 된 자만이 이 구원의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입니까? 정말 주님과 함께 죽고 살아났습니까? 옛사람이 죽고 새 생명 가운데 새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여러분 우리는 내가 정말 예수님을 믿고 주님께 접붙임바 된 자인지 자문해보아야 합니다. 혈통적인 유대인과 할례와 모세율법을 지키는 유대인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 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교회 예배 안 빠지고 잘 나온다고 해서, 열심히 헌신하고 헌금 많이 했다고 해서, 착하게 살았다고 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예수님에 대해서 알고 바른 성경적 지식을 갖고 있다는 것으로 당연히 나는 예수님 믿는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주님에 대해서 아는 것과 주님을 믿는 것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의 신앙을 먼저 점검해야 하는 것입니다. 참된 믿음이 없는 자, 외식자와 명목상 그리스도인, 주일날만 교회 오는 것 외에는 세상 사람들과 별반 다를 바 없이 살아가는 선데이 크리스챤들은 이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을 마음으로 믿어 영접하여 성령을 받은 자만이, 새생명 가운데서 새사람으로 살아가는 자만이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신앙을 잘 돌아보시고 믿음이 없다면, 믿음을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만일 여러분에게 정말 겨자씨 한 알만한 진실한 믿음이 있다면, 정말 자신이 거듭난 신자라고 한다면, 여러분은 이미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다 함을 받았고, 약속을 이어받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었음을 믿는 마음으로 받아들이시기를 바랍니다. 물론 참된 신자라도 자신의 죄로 인해서 자책이 있고 낙심이 있고, 그래서 의심이 있고 불안하며, 많은 고민과 고뇌 가운데 살아갑니다. 어떻게 보면 이러한 고뇌와 의심과 낙심은 참된 신자라면 누구나가 겪는 것이고 당연한 것이며, 또한 정당한 것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우리 자신의 부족한 모습에 대해서 의심하고 고민해야 합니다. 자신이 죄를 범했으면 그 죄로 인해서 죄책감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누누이 강조했던 것처럼, 그것에 너무 빠지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 죄책감이 좌절과 절망으로 이어져서 그리스도를 바라보지 못하게 할 정도로 우리를 매몰시킨다면, 그것은 사단이 주는 생각이고, 그렇게 절망에 빠지는 것은 주님의 십자가가 실패한 것이라고 인정하는 것과 다를 바 없으며, 그것은 은혜를 저버리는 교만한 생각임을 우리는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의 고민과 자책, 절망과 의심과 불안을 통해서 우리는 회개로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부모의 사랑처럼 조건 없는 사랑, 변함없는 사랑입니다. 이 사랑 앞에 참회하며 자신의 죄를 솔직하게 자백하고 있는 모습 그대로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다 용서해주시고 다시 우리를 영적으로 회복시켜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을 강건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주님의 사랑 안에 나아가고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주님 안에 있는 자라고 한다면, 아무리 현재 나에게 자책과 의심이 있다 하더라도, 자격 없음으로 인해서 하나님 앞에 면목이 없다 하더라도, 우리가 주님 안에 있기 때문에 은혜로 이 유업이 나에게 반드시 주어진다는 사실을 믿는 마음으로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값없는 은혜를 인해서 기뻐하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이 유업은 내가 잘하면 주어지고, 못하면 안주어지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조건을 따라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애초에 은혜로 주어진 것입니다. 18절에 “은혜로 주신 것이라”라는 동사는 완료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완료형이라는 것은 그것이 이미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이미 유업을 이어받을 신분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 취소될 수 없고 반복될 수 없는 단회적인 사건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것과 약속된 유업을 우리가 상속받을 것이라는 사실은 영원불변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자라면 이 사실을 늘 믿음으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은혜를 인해서 기뻐하고 감사하며 그 은혜를 인해서 하나님께 찬양을 돌려드리는 삶을 사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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