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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왕상 19:1-18
강설날짜 2017-04-26

2017년 열왕기상 공부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칠천 명

말씀:열왕기상 19:1-18

 

오늘 말씀은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칠천 명에 관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살펴보는 가운데 이 말씀을 통해서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계시가 무엇인지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열왕기상 18장 말씀을 통해서 엘리야가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과 기도대결을 하는 것을 봤습니다. 엘리야는 850대 1의 싸움에서 승리했습니다. 그리하여 여호와가 참 신이심을 드러냈습니다. 엘리야가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을 죽이고 기도하자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아합은 마차를 타고 이스르엘로 갔습니다. 그런데 엘리야는 허리를 동이고 이스르엘까지 아합 앞에서 달려갔습니다. 열왕기상 18:45-46절을 보면 “조금 후에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서 하늘이 캄캄하여지며 큰 비가 내리는지라. 아합이 마차를 타고 이스르엘로 가니. 여호와의 능력이 엘리야에게 임하매 저가 허리를 동이고 이스르엘로 들어가는 곳까지 아합 앞에서 달려 갔더라”고 했습니다. 갈멜에서 이스르엘 까지는 약 22.4km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거리를 마차를 타고 가는 아합보다 엘리야가 먼저 달려 간 것입니다. 이것은 여호와의 능력이 엘리야에게 임하였기 때문입니다. 엘리야는 갈멜에서 이스르엘까지 하나님의 능력으로 달리면서 이스라엘도, 아합과 이세벨도 회개하고 여호와께로 돌이킬 것을 기대하는 심정으로 달려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에게 들려오는 소식은 어떤 소식입니까? 오늘 본분 1-2절을 보면 “아합이 엘리야의 무릇 행한 일과 그가 어떻게 모든 선지자를 칼로 죽인 것을 이세벨에게 고하니. 이세벨이 사자를 엘리야에게 보내어 이르되 내가 내일 이맘때에는 정녕 네 생명으로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 같게 하리라. 아니하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 한지라”고 했습니다. 아합이 이세벨에서 갈멜 산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다 해줍니다. 그러자 이세벨이 두려워 떠는 것이 아니라 내일 이맘때에는 반드시 네 생명을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과 같게 할 것이라고 합니다. 곧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의 죽음처럼 엘리야도 반드시 죽이겠다고 합니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신들이 자신에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다고 합니다. 어떤 간절한 의지를 가질 때에 최고의 표시가 바로 자기 저주입니다. 이세벨은 자기 저주를 하면서 엘리야를 반드시 죽이겠다고 다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세벨은 어디서 이런 자신감이 나오는 것입니까? 그리고 엘리야를 당장 잡아 죽이지 않고 왜 내일까지 말미를 주는 것입니까? 당장에 엘리야를 잡아 죽이면 갈멜 산의 사건을 본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마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잡아 죽이려고 하였지만 백성들이 예수님을 따르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한 것처럼 엘리야를 당장에 잡아 죽이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세벨이 내일 이맘때에 죽이겠다고 하는 것은 그녀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아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무리 엘리야를 통한 하나님의 기적을 보았을지라도 하루만 지나면 그것은 물거품처럼 사라질 것을 안 것입니다.

 

3-5절을 보면 “저가 이 형편을 보고 일어나 그 생명을 위하여 도망하여 유다에 속한 브엘세바에 이르러 자기의 사환을 그곳에 머물게 하고 스스로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행하고 한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죽기를 구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옵소서. 나는 내 열조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로뎀나무 아래 누워 자더니. 천사가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고 했습니다. 놀라운 기적이 나타나도 아합과 이세벨은 건재합니다. 이세벨이 죽이려고 하는 소식을 사신을 통하여 들었는데도 백성들이 엘리야 편에 서지도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엘리야는 자기의 생명을 보전하기 위해 도망을 갑니다. 이스르엘에서 브엘세바까지 도망을 갑니다. 브엘세바는 예루살렘 남쪽지역입니다. 브엘세바를 지나면 사막지역입니다. 이곳에서 사환도 멀리 떼어놓고 혼자 사막으로 가서 로뎀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를 죽여 달라고 합니다.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옵소서. 나는 내 열조보다 낫지 못하니이다”(4b).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과 기도 대결을 벌이며 그들을 다 잡아 죽이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습니다.

 

그러면 엘리야가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이 모습을 통해 말씀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여호와께서 일하시는 모습이 엘리야의 방식으로만 일하시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엘리야는 우상숭배가 가득한 이스라엘을 심판하시기를 불로 태워 응답하실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큰 기적을 보고서도 백성들은 별일 없었던 것처럼 살아갑니다. 이세벨은 도리어 자기를 죽이려고 합니다. 그래서 엘리야는 낙심하여 로뎀나무 아래서 하나님께 차라리 자기를 죽여 달라고 하면서 누워잤습니다. 그런데 자고 있는 엘리야에게 천사가 어루만지며 일어나 먹으라고 합니다. 6-8절을 보면 “본즉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이 있더라. 이에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웠더니. 여호와의 사자가 또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네가 길을 이기지 못할까 하노라 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주 사십야를 행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고 했습니다. 엘리야는 숯불에 구운 떡과 물을 먹고 마시고 다시 잡니다. 여호와의 천사가 다시 와서 처음처럼 어루만지며 일어나 먹으라고 합니다. 그래서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음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 주야를 가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릅니다.

 

그러면 왜 엘리야가 사십 주야를 행하여 호렙으로 가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법을 다시 배우는 것입니다. 9-10절을 보면 “엘리야가 그곳 굴에 들어가 거기서 유하더니. 여호와의 말씀이 저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저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이 특심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여호와의 음성에 엘리야의 응답을 보시기 바랍니다. 자신은 여호와께 열심히 유별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자손은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고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기 생명도 찾아 빼앗으려고 한다고 합니다. 여기서 아합이나 이세벨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렸다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전체가 아합과 이세벨과 한 통속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불로 응답하신 그 능력으로 이스라엘을 심판하시지 않으시고 여호와의 선지자를 죽이려고 하니 이제 저는 더 이상 선지자 노릇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죽여 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엘리야의 이 모습이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이 아닙니까? 엘리야의 모습이 오늘날 저의 모습임을 고백합니다. 저는 지난 치리 사건을 섬기면서 엘리야의 심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원망하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인해 하나님께 자신의 멍에를 벗겨 주시도록 기도하는 모세와 같이 저의 멍에를 벗겨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을 묵상하면서 이와 같은 나의 행동은 나의 열심이 앞섰기 때문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엘리야가 원하는 대로 일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물론 엘리야를 통하여 불로 응답하시지만 그런 일을 통하여 단 한 사람도 주께로 돌이키는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6장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자들은 죽은 자가 살아나서 말해도 믿지 않는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눅 16:22). 하나님께서 일하심을 모르니 나의 열심으로 인해 낙심하는 것입니다.

 

11-12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가서 여호와의 앞에서 산에 섰으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의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고 했습니다. 여호와께서 크고 강한 바람으로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바람 가운데에 여호와께서 계시지 않습니다. 바람 후에 지진 가운데도 계시지 않습니다.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도 계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크고 강한 바람으로, 지진으로, 불로 일하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방식으로 하시지 않습니다. 만약 그런 방식으로 하시면 살아남을 자가 한명도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앞에서도 말씀드린 대로 그런 표적이나 기적과 이적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세미한 소리를 통하여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곧 말씀으로 일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잠잠히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여야 하는 것입니다.

 

13-14절을 보면 “엘리야가 듣고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우고 나가 굴 어귀에 서매 소리가 있어 저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저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이 특심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고 했습니다. 여호와의 세미한 음성을 듣고 엘리야가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고 굴 어귀에 섭니다.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여기에 섰느냐고 하시자 로뎀나무 아래서 대답한 것과 같은 대답을 합니다.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이 특심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14). 이 대답을 보면 아직 엘리야에게는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하여 불만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이 생각한 방식대로 하나님께서 일하시지 않는 것 때문에 자신은 여호와께 열심을 내고 있지만 이스라엘 자손은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선지자들을 죽이고 자신도 죽이려고 한다고 합니다. 이런 엘리야에게 하나님은 조용히 말씀만 하십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자신의 열심을 가지고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을 보고 믿는 것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것입니다.

 

이사야 9:6-7절을 보면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고 했습니다. 여호와의 전쟁을 한 아기가 와서 이루시는 것이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입니다. 이사야 37:31-32절을 보면 “유다 족속 중에 피하여 남는 자는 다시 아래로 뿌리를 박고 위로 열매를 맺히리니. 이는 남는 자가 예루살렘에서 나오며 피하는 자가 시온에서 나올 것임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이다”라고 했습니다. 남은 자가 구원 얻는 것도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입니다.

 

엘리야는 자신만 여호와 하나님께 열심을 내고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었지만 자신은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늘에서 불이 내려 응답을 하시고 비가 오게 하셨는데도 하나님은 엘리야의 생각대로 일하시지 않으십니다. 그러자 자신만이 남았다고 하면서 차라리 죽여 달라고 합니다. 이것을 우리는 ‘엘리야니즘’이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엘리야니즘이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열심히 하는 사람은 열심히 하는 것으로 자기주의를 주장합니다. 이러한 모습을 조금 더 확대하면 자기가 아니면 안 된다는 사상으로 발전합니다. 이런 모습만이 아니라 열심히 하지 않는 사람은 열심히 하지 않는 자기를 정당화하는 주의가 나오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날마다 우리의 모습을 돌아봐야 합니다. 내가 자꾸만 고정화 되어가고 화석화 되지는 않는지 보라는 것입니다. 열심히 많은 사람일수록 다른 사람들은 다 그래도 나는 그렇지 않다는 자기주의가 나오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칠천 명을 남기신다고 하십니다. 성경에서 7이라는 숫자는 언제나 ‘완전하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자기 백성을 완전하게 남기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남은 자들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남기신 자들의 특징은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고 바알에게 입을 맞추지 않는 자들이라고 합니다.

 

열왕기하 17:17-20절을 보면 “또 자기 자녀를 불 가운데로 지나 가게 하며 복술과 사술을 행하고 스스로 팔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그 노를 격발케 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심히 노하사 그 앞에서 제하시니 유다 지파 외에는 남은 자가 없으니라. 유다도 그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사람의 세운 율례를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온 족속을 버리사 괴롭게 하시며 노략군의 손에 붙이시고 심지어 그 앞에서 쫓아내시니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숭배로 인하여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심판하십니다. 앗수르에 의하여 북이스라엘이 망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유다 지파는 남기십니다. 그 이유는 다윗에게 언약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남 유다도 결국은 바벨론에 멸망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망하는 중에도 하나님은 자기 열심으로 이루어 내십니다. 열왕기하 19:30-31절을 보면 “유다 족속의 피하고 남은 자는 다시 아래로 뿌리가 서리고 위로 열매를 맺을지라. 남은 자는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피하는 자는 시온산에서부터 나오리니. 여호와의 열심이 이 일을 이루리라 하셨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남은 자는 여호와의 일하심으로 남아지는 것입니다.

 

15-18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저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길을 돌이켜 광야로 말미암아 다메섹에 가서 이르거든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 왕이 되게 하고 너는 또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이 되게 하고 또 아벨므홀라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 하사엘의 칼을 피하는 자를 예후가 죽일 것이요, 예후의 칼을 피 하는 자를 엘리사가 죽이리라.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칠천인을 남기리니. 다 무릎을 바알에게 꿇지 아니하고 다 그 입을 바알에게 맞추지 아니한 자니라”고 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엘리야 외에 칠천 명을 남긴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다시 이 길을 돌아가서 다메섹 하사엘에게 기름 부어 아람의 왕이 되게 하고,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 부어 이스라엘 왕이 되게 하고, 엘리사에게 기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고 합니다. 북 이스라엘의 왕만이 아니라 이방나라 아람 왕도 하나님의 도구로 세우시는 것입니다. 하사엘이 다 못한 일을 예후가 할 것이며, 예후가 다 못한 일을 엘리사가 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도 얼마든지 엘리야니즘에 빠질 수 있습니다. 이미 빠져 있는지도 모릅니다. 무슨 일이나 간에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이 자기주장을 하게 됩니다. 고집을 부리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당신의 역사를 당신의 열심으로 이루어 가십니다. 어떻게 자기의 일을 빈틈없이 이루어 가시는지 봅니다. 이사야 9:1-7절을 보면 “전에 고통하던 자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으로 멸시를 당케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편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빛이 비취도다. 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케 하시며 그 즐거움을 더하게 하셨으므로 추수하는 즐거움과 탈취물을 나누는 때의 즐거움 같이 그들이 주의 앞에서 즐거워하오니. 이는 그들의 무겁게 멘 멍에와 그 어깨의 채찍과 그 압제자의 막대기를 꺾으시되 미디안의 날과 같이 하셨음이니이다. 어지러이 싸우는 군인의 갑옷과 피묻은 복장이 불에 섶 같이 살라지리니.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호와의 열심이 이 말씀을 이루실 것입니다. 어떻게 이루어내신 것입니까? 하나님이 한 아기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분의 생애는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이루시는 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스불론과 납달리에 가셔서 복음을 전하신 것은 이 말씀을 이루시기 위한 예수님의 행보였던 것입니다(참조. 마 4:12-17).

 

그런데 우리가 이런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엘리야니즘이 나온다면 이 사람은 예수님의 ‘주’ 되심을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통하여 예수님을 바르게 믿는다면 엘리야니즘에 빠질 수 없습니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이나 나만이 이 일을 한다는 것은 착각입니다. 이단들을 보면 자기들만 온전히 성경을 해석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기들의 가르침을 따라야만 구원을 얻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정말 은혜를 받은 사람이라면 내가 있음으로 하나님의 일에 방해가 된다는 것이 아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칠천 명을 남기시는 사건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계시를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로 하나님께서 친히 자기 열심으로 당신의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가심을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며, 그 말씀을 순종하여 사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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