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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고전 15:35-49
성경본문내용 (35)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리니(36)어리석은 자여 너의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37)또 너의 뿌리는 것은 장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갱이 뿐이로되(38)하나님이 그 뜻대로 저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니라(39)육체는 다 같은 육체가 아니니 하나는 사람의 육체요 하나는 짐승의 육체요 하나는 새의 육체요 하나는 물고기의 육체라(40)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으나 하늘에 속한 자의 영광이 따로 있고 땅에 속한 자의 영광이 따로 있으니(41)해의 영광도 다르며 달의 영광도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42)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43)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44)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45)기록된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46)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자가 아니요 육 있는 자요 그 다음에 신령한 자니라(47)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48)무릇 흙에 속한 자는 저 흙에 속한 자들과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는 저 하늘에 속한 자들과 같으니(49)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으리라
강설날짜 2013-12-18

2013년 고린도전서 공부


살려주는 영이 되었나니


말씀:고린도전서 15:35-49

 

우리는 지난 시간에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하는 사도 바울의 고백을 살펴봤습니다. 바울이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죽은 자의 부활을 믿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면 내일 죽을 터이니 오늘 먹고 마시자고 하는 인생을 살 것입니다. 우리가 지난 한 주간 얼마나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하면서 사셨습니까? 한 주간을 돌아보면 우리는 늘 자기를 살리는 방향으로 생각하고 행동해 오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무엇을 하고, 안 하고의 기준이 어디에 있었습니까? 그 기준이 주를 위한 것이었습니까? 아니면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었습니까? 제 자신을 볼 때 자기를 살리는 방향으로 모든 것을 생각하고 행동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히브리서 2:14-15절 말씀을 보면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왜 혈육에 함께 속한 자로 오셔서 죽으신 것입니까? 사망으로 사망을 없이 하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일생 동안 죽기를 무서워하며, 죽음의 종노릇하는 우리 인생을 해방시켜 생명의 종으로 삼기 위하여 오신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증거 되고 있는 이런 말씀이 우리들의 귀에 들어오고 있습니까? 눈이 초롱초롱해지면서 관심이 가져집니까? 왜 세상 사람들이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에 관심이 없는 것입니까?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이 전부이며, 진짜 현실인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이 진짜요, 전부인 줄 압니다.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기에 멸망 받을 세상임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에는 관심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것은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른 진짜 세상이 있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진짜가 아닙니다. 허상입니다. 불타 없어질 세상입니다. 베드로후서 3:7절 말씀에 보면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은 주님의 재림을 통해 이루어질 새 하늘과 새 땅이 이루어지기까지 잠시 간수될 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교회에 나오는 우리들이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에 관심이 없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부활의 세계에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곧 이 세상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주님의 살과 피를 기억하고 증거 해야 할 교회가 이방축제인 크리스마스나 추수감사절과 같은 절기를 지키기 위해 힘을 쓰고 있습니다. 크리스마스가 생일이라면 주님의 죽으심은 장례식입니다. 우리가 지난주에도 봤습니다만 전도서 7:1-2절에 보면 죽는 날이 태어나는 날보다 났다고 했습니다. “아름다운 이름이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고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으며,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결국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가 이것에 유심하리로다”(전 7:1-2). 그렇습니다. 전도서 기자는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집에 가는 것보다 났다고 했습니다. 도대체 이 세상이 어떤 곳이기에 죽는 날이 태어나는 날보다 낫고,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집에 가는 것보다 났다고 합니까? 우리가 다 죽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 실감 납니까? 그런데도 세상이 좋다고 세상에서 살려고 발버둥치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 아닙니까? 우리의 이런 모습이 바로 죽음에 매여 종노릇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이런 우리 인생들을 사망으로 사망을 잡으시고 사망의 종인 우리를 해방시키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그러면 죽은 자가 어떻게 살며, 어떤 몸으로 옵니까? 여기에 대해서 바울 사도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답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어떻게 대답합니까? 35-41절 말씀을 보면 “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리니. 어리석은 자여! 너의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또 너의 뿌리는 것은 장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갱이 뿐이로되. 하나님이 그 뜻대로 저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니라. 육체는 다 같은 육체가 아니니 하나는 사람의 육체요, 하나는 짐승의 육체요, 하나는 새의 육체요, 하나는 물고기의 육체라.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으나 하늘에 속한 자의 영광이 따로 있고 땅에 속한 자의 영광이 따로 있으니. 해의 영광도 다르며 달의 영광도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식물의 씨앗을 뿌려서 자라게 되면 완전히 다른 형체로 나오는 것을 예로 들어서 부활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수박씨를 심으면 그 씨가 죽어서 수박넝쿨이 나오게 됩니다. 참외씨를 심으면 그 씨가 죽어서 참외넝쿨이 나옵니다. 이처럼 씨를 심었을 때 전혀 다른 형체가 나오는 것을 예로 들어서 부활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식물뿐만 아니라 동물도 그 육체가 다 다르다고 합니다. 사람과 짐승과 새와 물고기가 다 육체이지만 같은 육체가 아니듯이 부활의 몸이란 세상의 육체와 다르다는 것입니다.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늘의 속한 자의 영광이 따로 있고, 땅에 속한 영광이 따로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해와 달과 별의 영광이 다 다르다고 하는 것은 우리의 부활의 몸이 얼마나 영광스러운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여기서 하늘에 속한 형체가 따로 있다고 말씀합니다. 헬라 이원론에서는 물질은 더럽고 정신은 깨끗하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런 이원론을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분명히 하늘에도 하늘에 속한 영광스러운 형체가 있는 것입니다. 무슨 유령처럼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가 보는 것은 무슨 영광밖에 보이지 않습니까? 땅에 속한 영광만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늘에 속한 영광을 보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지금 우리가 하늘의 영광을 보게 되면 죽게 됩니다. 그래서 다 보여주시지 않고 성경에서 몇몇 사람에게만 하늘의 영광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습니다(출 3장, 33장). 삼손의 부모도 보았습니다(삿 13장). 이사야 선지자도 보았습니다(사 6장).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동시에 보았습니다(마 17장, 막 9장, 눅 9장). 사도 바울도 보았습니다(행 9장).

 

그런데 이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을 때 공통점이 무엇이었습니까? 먼저 죽은 자와 같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땅의 형체를 가진 자가 하늘의 영광을 보았기 때문에 죽은 자처럼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죽지 아니한 것은 하나님의 긍휼을 나타내시면서 계시를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변화산에서 예수님이 영광스럽게 변모하시는 것을 보고 너무나 좋아서 세상을 다 잊어버렸습니다. ‘여기가 좋사오니!’ 하면서 그곳에서 살고 싶어 했습니다. 산 밑의 가족들과 다른 제자들이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늘의 영광보다는 이 세상의 영광이 좋사오니 하면서 퍼지고 앉아 있는 것이 아닙니까?

 

사도행전 9장에 보면 바울 사도는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서 눈이 멀어버렸습니다(행 9:8). 삼일 만에 아나니아가 기도함으로 눈이 열렸습니다(행 9:12). 그러자 지금까지 보았던 세상의 영광, 인간이 율법을 지킴으로써 이룰 수 있다고 여긴 그 모든 영광들이 다 배설물이며, 해로운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영광만이 참된 영광임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가 셋째 하늘에 끌려 올라가 그 영광을 보았을 때 무어라고 했습니까? 고린도후서 12:4절 말씀을 보면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라고 했습니다. 도저히 사람의 말로는 표현할 수가 없는 영광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 42-44절 말씀을 보면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죽은 자의 부활이 어떻게 됩니까? 바울은 죽은 자의 부활을 대비를 통해서 설명합니다. 바울이 대비하는 것을 보십시오. 썩을 것과 썩지 아니할 것을 대비합니다. 우리의 몸은 썩을 것입니다. 지금도 점점 썩어가고 있습니다. 겉으로 아무리 성형수술을 하여도 속에서 썩어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썩어가는 것을 방지할 방법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진시황이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우리나라 남해 금산까지 사람을 보냈지만 결국 죽고 말았습니다. 오늘날은 복제기술이 발달하여 난치병도 치료합니다. 그러나 결국은 죽고 썩습니다. 죽지 않고 썩지 아니할 육체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의 현재의 몸은 결국 죽고 썩을 것입니다. 현재도 계속하여 썩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욕된 것입니다. 그러나 부활의 몸은 어떻습니까?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 것입니다.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 것입니다. 육의 몸이 있기에 신령한 몸도 있습니다. 그런데 신령한 몸이라고 하여 유령 같은 것이 아닙니다. 누가복음 24:39절 말씀을 보면 “내 손과 발을 보고 나 인줄 알라. 또 나를 만져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믿지를 못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영인 줄 알았습니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유령이 나타난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자신을 만져 보라고 하시면서 음식도 드셨습니다. 이처럼 부활하신 몸은 만질 수도 있고, 음식도 드실 수 있는 형체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몸은 아직 영광의 몸이 아닙니다. 부활하셔서 영광의 몸이 되신 것을 바울 사도가 보았고, 사도 요한이 요한계시록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12-18절 말씀에 보면 “몸을 돌이켜 나더러 말한 음성을 알아보려고 하여 돌이킬 때에 일곱 금 촛대를 보았는데.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그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같고 그의 발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으며, 그 오른손에 일곱별이 있고 그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 있게 비취는 것 같더라. 내가 볼 때에 그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가라사대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찌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라고 했습니다. 사도 요한은 영광스러운 부활의 주님의 모습을 보고 그 영광 앞에서 죽은 자와 같이 되었습니다(계 1:17).

 

그러면 우리는 지금 무슨 몸으로 살고 있습니까? 45-49절 말씀을 보면 “기록된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자가 아니요, 육 있는 자요, 그 다음에 신령한 자니라.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무릇 흙에 속한 자는 저 흙에 속한 자들과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는 저 하늘에 속한 자들과 같으니.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으리라”고 했습니다.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고,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영입니다. 산 영이란 스스로 살 수가 없고 누가 살려주어야만 사는 존재입니다. 이것이 첫 사람 아담입니다. 우리는 모두 아담의 후손입니다. 아담이 범죄 함으로 우리가 그 안에서 다 범죄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살릴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자신을 살리려고 해도 자신을 살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아담에게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고 명하셨습니다(창 3:19). 그러므로 모든 아담의 후손이 흙에 속한 형상을 입었습니다.

 

그러나 둘째 아담, 곧 마지막 아담인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살려주는 영입니다. 살려주는 영이 되기 위해 흙에 속한 형상으로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셔야 하셨습니다. 그러나 다시 살아나심으로 살려주는 영이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하늘에 속한 형상을 입게 된 것입니다. 그 하늘에 속한 형상이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몸을 입게 된 것입니다. 이 말씀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사셔야 합니까? 그리스도의 영광을 본 바울의 삶의 목표가 무엇이었습니까? “나는 날마다 죽노라”였습니다. 바울의 삶의 목표는 하루라도 빨리 죽는 것이었습니다. 육에 속한 몸을 떠나 속히 영광스러운 몸을 입기를 소원하였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빨리 죽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 하기 위해서 죽지 못한 것입니다. 바울 자신의 소원은 하루라도 빨리 죽어 그 영광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바울과 같은 성령을 받은 사람이라면 바울이 사모한 그 죽음을 우리도 사모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부활의 영광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에 어떻게 됩니까? 자신의 죽음에 계속하여 넘겨집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래야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빌립보서 1:21-24절을 보면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찐대 무엇을 가릴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였으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 그러나 내가 육신에 거하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부활을 믿는 바울 사도의 삶의 자세입니다. 또한 이것이 우리의 삶의 자세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한 곳만 더 보겠습니다. 빌립보서 3:18-21절을 보면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저희의 마침은 멸망이요, 저희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저희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가 눈물을 흘리며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여러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한다는 것입니다. 저희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저희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부끄러움에 있다고 합니다. 저희들이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합니까? 땅의 일을 생각하고 땅의 영광을 바라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어디에 있다고 합니까? 하늘에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하늘에 시민권이 있는 사람은 어떻게 행한다고 합니까? 십자가를 영광으로 삼고 그리스도를 기다리며 산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우리 주님께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과 같이 변케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란 하루라도 빨리 죽는 것이 소원인 사람입니다. 그것도 그냥 죽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것입니까? 주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사는 것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시키시는 일은 이 세상에서 죽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세상에서 살려면 돈이 있어야 하는데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 합니다(딤전 6:10). 우리는 돈에 대해서 죽을 수 없지만 주님께서는 우리로 돈에 대하여 죽이십니다. 주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그 죽이시는 일을 이루시는 일에 대하여 실패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스스로 살 수 없는 사람이지만 우리 주님은 살려주시는 영이시기에 우리를 죽여서라도 살려내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죽어도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우리의 낮은 몸을 그의 영광의 몸으로 변하게 하실 그 주님을 믿는 믿음을 허락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살려주는 영이 되신 우리 주님을 믿고 믿음으로 날마다 죽는 삶을 사모하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장차 우리 몸이 영광스러운 몸으로 변화를 받아 주님의 영광에 참예하는 복된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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