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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고전 16:1-12
성경본문내용 (1)성도를 위하는 연보에 대하여는 내가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명한 것같이 너희도 그렇게 하라(2)매주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이를 얻은 대로 저축하여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3)내가 이를 때에 너희의 인정한 사람에게 편지를 주어 너희의 은혜를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가게 하리니(4)만일 나도 가는 것이 합당하면 저희가 나와 함께 가리라(5)내가 마게도냐를 지날 터이니 마게도냐를 지난 후에 너희에게 나아가서(6)혹 너희와 함께 머물며 과동할 듯도 하니 이는 너희가 나를 나의 갈 곳으로 보내어 주게 하려 함이라(7)이제는 지나는 길에 너희 보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주께서 만일 허락하시면 얼마 동안 너희와 함께 유하기를 바람이라(8)내가 오순절까지 에베소에 유하려 함은(9)내게 광대하고 공효를 이루는 문이 열리고 대적하는 자가 많음이니라(10)디모데가 이르거든 너희는 조심하여 저로 두려움이 없이 너희 가운데 있게 하라 이는 저도 나와 같이 주의 일을 힘쓰는 자임이니라(11)그러므로 누구든지 저를 멸시하지 말고 평안히 보내어 내게로 오게 하라 나는 저가 형제들과 함께 오기를 기다리노라(12)형제 아볼로에 대하여는 저더러 형제들과 함께 너희에게 가라고 내가 많이 권하되 지금은 갈 뜻이 일절 없으나 기회가 있으면 가리라
강설날짜 2014-01-15

2014년 고린도전서 공부


성도를 위하는 연보에 대하여는


말씀:고린도전서 16:1-12

 

오늘부터 우리는 고린도전서의 마지막 장인 16장 말씀을 공부하겠습니다. 우리는 15장 말씀을 통해서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영생이나 부활을 꿈꾸며 삽니다. 그런데 어떤 영생이나 부활을 꿈꾸며 삽니까? 현재의 내 모습이 더 완벽하게 되어서 영원히 유지되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런 세상에서 살면서 성경을 보니 성경의 부활도 세상의 방식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부활은 죽음을 전제로 합니다. 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장사 지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죄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아담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범죄한 인간의 몸은 죽을 몸, 썩을 몸, 약한 몸입니다. 곧 혈과 육이기에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말씀을 응하게 하시려고 사망이 이김의 삼킨바가 되게 하셨습니다.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이기신 분이 있습니다. 그가 누구십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와 사망의 법에서 자기 백성들을 해방시켜 의와 생명의 법으로 옮기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죄와 사망이 다시 왕 노릇할 수 없습니다. 비록 육신은 여전히 죄를 짓고 죽어가는 몸이라고 하여도 우리의 몸을 죄와 사망이 주장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는 십자가로 승리하신 우리 주님께서 자기 소유물을 확실하게 장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으로 주어졌기에 우리는 세상에서 실패나 약함이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부활의 영광을 말한 후에 이제 16장 말씀에서 연보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영원한 부활의 영광을 이야기 하다가 그것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고 권면을 합니다. 바울 사도는 그것이 헛되지 아니하다고 합니다. 그러면 헛되지 아니하는 주의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약속을 붙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로 마치면 될 텐데 왜 갑자기 돈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까? 오늘 우리는 그 의미에 대해서 배우고자 합니다.

 

1-3절 말씀을 보면 “성도를 위하는 연보에 대하여는 내가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명한 것 같이 너희도 그렇게 하라. 매주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이를 얻은 대로 저축하여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 내가 이를 때에 너희의 인정한 사람에게 편지를 주어 너희의 은혜를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가게 하리니”라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성도를 위한 연보에 대해서 말하면서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명한 것 같이 너희도 그렇게 하라고 합니다. 그러면 바울이 연보에 대해서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명한 것이 무엇입니까? 갈라디아서를 살펴보면 갈라디아서에서는 바울이 예루살렘교회를 위해서 헌금을 하라고 하는 내용이 없습니다. 다만 갈라디아서 2:10절 말씀에 보면 “가난한 자들을 생각하라”는 원론적인 사실만 잠간 언급되어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예루살렘교회를 위해서 헌금을 하라고 한 말은 아마도 바울이 갈라디아를 방문 했을 때 직접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 내용은 오늘 본문에서 언급하고 있듯이 매 주일 첫날에 각 사람이 이익을 얻은 대로 모아두었다가 헌금을 하게 했던 것 같습니다.

 

하여튼 바울 사도는 고린도교회가 매 주일 첫날에 각 사람이 이익을 얻은 대로 모아두었다가 연보를 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바울이 연보를 하라고 하는 것은 예루살렘교회를 위한 연보를 말합니다. 바울은 매 주일 첫날에 헌금을 하여 모아두었다가 그것을 예루살렘교회에 보내주고자 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갈라디아교회나 다른교회도 그렇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방인교회가 예루살렘교회를 위하여 연보를 하고 예루살렘교회가 그 연보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굉장한 사건입니다. 어떻게 개로 여기는 자들에게서 돈을 받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유대인들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차별이 없다는 것이 바로 이 연보를 주고 받음으로써 확인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바울은 단순히 어려움 가운데 있는 예루살렘교회를 구제하기 위해서 헌금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이런 놀라운 영적인 의미를 가지고 연보를 하게 하는 것입니다.

 

연보란 내가 하나님께 은혜를 받았기에 은혜를 갚자는 차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연보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봉사를 하는 것이 은혜를 받았으니 은혜를 갚자는 차원에서 나오면 안 됩니다. 갚을 수 있는 은혜는 은혜가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도 우리가 정말 자원하는 마음으로 연보가 된다면 그것은 우리의 잘남이 아니요, 지금도 주님께서 은혜를 베풀고 계시는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연보를 억지로나 인색함으로 하였다면 그것은 은혜가 아닌 것입니다. 그런 연보는 하나님 앞에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1-3절 말씀을 다시 보면 바울 사도는 성도를 위하는 연보를 매 주 첫날에 하라고 합니다. 오늘날 우리식으로 하면 매 주일마다 하라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때는 날마다 모였습니다. 그런데 한 주간의 이익을 얻었다면 각 사람이 매주 첫날에 연보를 하여 모아두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라고 하는 이유는 일차적으로 예루살렘교회가 어려움 가운데 있었기 때문에 그곳으로 보내고자 함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보내는 연보를 3절에서 무엇이라고 합니까? “너희의 은혜를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가게 하리니”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연보를 ‘은혜’라고 합니다. 바울은 구제헌금을 보내는 것을 가지고 은혜를 보낸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연보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요, 선물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서로 나누는 것입니다. 우리교회가 지난 해부터 이 말씀의 원리를 따라서 매달 첫주일에 구제헌금을 하여 모아두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서 어려움 가운데 있는 형제를 돕고 도움이 필요한 곳에 보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행하는 이런 일이 단순히 어려움 가운데 있는 형제나 교회를 돕는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는 일인 것입니다. 올 한해 우리교회가 더욱 이 일에 힘씀으로써 하나님의 은혜를 풍성히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4-11절 말씀을 보면 “만일 나도 가는 것이 합당하면 저희가 나와 함께 가리라. 내가 마게도냐를 지날터이니. 마게도냐를 지난 후에 너희에게 나아가서 혹 너희와 함께 머물며 과동할듯도 하니. 이는 너희가 나를 나의 갈 곳으로 보내어 주게 하려 함이라. 이제는 지나는 길에 너희 보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주께서 만일 허락하시면 얼마 동안 너희와 함께 유하기를 바람이라. 내가 오순절까지 에베소에 유하려 함은 내게 광대하고 공효를 이루는 문이 열리고 대적하는 자가 많음이니라. 디모데가 이르거든 너희는 조심하여 저로 두려움이 없이 너희 가운데 있게 하라. 이는 저도 나와 같이 주의 일을 힘쓰는 자임이니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저를 멸시하지 말고 평안히 보내어 내게로 오게 하라. 나는 저가 형제들과 함께 오기를 기다리노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그 연보를 고린도교회에서 인정한 사람이 예루살렘교회로 가져갈 때에 자신의 편지를 주겠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가는 것이 합당하면 자신도 함께 가겠다고 합니다. 이렇게 편지를 보내는 것은 지금 바울 사도가 에베소에서 사역을 하고 있었는데 그곳에 전도의 문이 활짝 열려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전도의 문이 열려 있다는 것은 대적이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대적이 있지만 주님께서 아직도 그 성에 자기 백성들이 있기에 문을 닫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곳에서 전도를 하고 마케도니아를 거쳐서 고린도로 갈 것인데 거기서 겨울을 함께 지내고 또 다른 곳에 전도하려 갈 여비를 마련하여 달라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9장에 보면 바울 사도는 자신이 죽을지언정 자기에게 무엇을 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고린도전서 9:1-15절을 보면 “내가 자유자가 아니냐. 사도가 아니냐. 예수 우리 주를 보지 못하였느냐. 주 안에서 행한 나의 일이 너희가 아니냐.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사도가 아닐찌라도 너희에게는 사도니 나의 사도됨을 주 안에서 인친 것이 너희라. 나를 힐문하는 자들에게 발명할 것이 이것이니. 우리가 먹고 마시는 권이 없겠느냐. 우리가 다른 사도들과 주의 형제들과 게바와 같이 자매 된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이 없겠느냐. 어찌 나와 바나바만 일하지 아니할 권이 없겠느냐. 누가 자비량하고 병정을 다니겠느냐. 누가 포도를 심고 그 실과를 먹지 않겠느냐. 누가 양떼를 기르고 그 양떼의 젖을 먹지 않겠느냐. 내가 사람의 예대로 이것을 말하느냐. 율법도 이것을 말하지 아니하느냐. 모세 율법에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 기록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어찌 소들을 위하여 염려하심이냐. 전혀 우리를 위하여 말씀하심이 아니냐. 과연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밭 가는 자는 소망을 가지고 갈며 곡식 떠는 자는 함께 얻을 소망을 가지고 떠는 것이라. 우리가 너희에게 신령한 것을 뿌렸은즉 너희 육신의 것을 거두기로 과하다 하겠느냐. 다른 이들도 너희에게 이런 권을 가졌거든 하물며 우리일까보냐. 그러나 우리가 이 권을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라. 성전의 일을 하는 이들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 제단을 모시는 이들은 제단과 함께 나누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 그러나 내가 이것을 하나도 쓰지 아니하였고 또 이 말을 쓰는 것은 내게 이같이 하여 달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차라리 죽을찌언정... 누구든지 내 자랑하는 것을 헛된 데로 돌리지 못하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예루살렘교회를 위하여 연보를 하고 또 자기가 가는 것에 대하여도 연보로 도우라고 하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까? 그것이 바울 자신의 사사로운 일이 아니라 주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동역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디모데가 이르면 그도 자신과 함께 주의 일에 힘쓰는 자이기 때문에 조심하여 두려움 없이 지내게 하라고 합니다. 이 말씀도 연보가 필요한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가 말하는 연보란 하나님의 은혜이기에 은혜로 연보를 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향기로운 제물이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4:14-20절 말씀을 보면 “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예하였으니 잘하였도다.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받는 내 일에 참예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번 두번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과실이 번성하기를 구함이라.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의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께 세세 무궁토록 영광을 돌릴찌어다. 아멘!”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빌립보교회가 에바브로디도 편으로 바울을 위해 보낸 연보가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고 합니다.

 

오늘날 개혁교회를 추구하는 많은 사람들이 연보를 안 하는 것이 무슨 의가 되는 것인 양 여깁니다. 그런데 이것은 연보에 대한 가르침을 오해한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워낙 돈을 이야기하고, 바치면 복 받는다고 하니까 연보가 그런 것이 아니라고 한 것이지 연보 자체가 잘 못되었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연보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연보란 복 받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연보는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연보에 대한 바른 가르침을 오해하여 연보 안 해도 된다고 오해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연보를 안 하고 있는 자기를 정당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것이 누구의 것입니까? 다 주님의 것입니다. 우리가 내 것을 가지고 드린다면 아까울 것입니다. 그러나 은혜가 임하면 내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주의 것임을 알기에 감사함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들은 자원하는 마음으로 힘에 겹도록 연보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연보는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은혜가 임한 자의 모습을 보겠습니다. 고린도후서 8:1-15절 말씀을 보면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저희 넘치는 기쁨과 극한 가난이 저희로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힘대로 할 뿐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니. 우리의 바라던 것뿐 아니라 저희가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 뜻을 좇아 우리에게 주었도다. 이러므로 우리가 디도를 권하여 너희 가운데서 시작하였은즉 이 은혜를 그대로 성취케 하라 하였노라. 오직 너희는 믿음과 말과 지식과 모든 간절함과 우리를 사랑하는 이 모든 일에 풍성한 것 같이 이 은혜에도 풍성하게 할찌니라. 내가 명령으로 하는 말이 아니요, 오직 다른 이들의 간절함을 가지고 너희의 사랑의 진실함을 증명코자 함이로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 이 일에 내가 뜻만 보이노니 이것은 너희에게 유익함이라. 너희가 일년 전에 행하기를 먼저 시작할 뿐 아니라 원하기도 하였은즉 이제는 행하기를 성취할찌니. 마음에 원하던 것과 같이 성취하되 있는 대로 하라. 할 마음만 있으면 있는 대로 받으실 터이요, 없는 것을 받지 아니하시리라. 이는 다른 사람들은 평안하게 하고 너희는 곤고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요, 평균케 하려 함이니. 이제 너희의 유여한 것으로 저희 부족한 것을 보충함은 후에 저희 유여한 것으로 너희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평균하게 하려 함이라. 기록한 것 같이 많이 거둔 자도 남지 아니하였고 적게 거둔 자도 모자라지 아니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알게 하겠다고 합니다. 그 은혜가 무엇으로 나타났습니까? 환난의 많은 시련과 극한 가난 가운데서도 넘치는 기쁨으로 풍성한 연보를 넘치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런 은혜 받기를 원하십니까? 남편이나 아내나 자식이 이런 은혜를 받았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말리고 싶지 않습니까? 그런데 마게도냐 교회들은 힘대로 할 뿐만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예하였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사도들에게도 주었다고 합니다. 이런 그들에게 바울은 너희의 믿음과 말과 지식과 모든 간절함과 우리를 사랑하는 이 모든 일에 풍성한 것 같이 이 은혜, 즉 연보에도 풍성하라고 합니다. 여기서도 보면 연보가 은혜임을 보게 됩니다. 은혜가 아니면 누가 이렇게 하겠습니까?

 

그러면 이런 은혜가 어디에서 온 것입니까? 고린도후서 8:9절을 다시 보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요하신 자로서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우리로 부요하게 하려 하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부요함이란 세상에서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믿음에 부요하고 은혜에 부요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믿음과 은혜가 풍성한 사람들이 어떤 모습으로 살았습니까? 환난과 극심한 가난 가운데서 살았습니다. 이들의 환난과 극심한 가난이 어느 정도였겠습니까? 상대적인 빈곤감이 아닙니다. 절대적인 빈곤입니다. 하루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그런 가난입니다. 그런데도 형제 섬기는 연보에 대하여는 힘에 지나치도록 기쁨으로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사람으로서 가능한 일입니까? 그러므로 연보란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란 지금도 계속하여 은혜가 주어져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 은혜가 어떻게 주어졌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 보좌에서 낮고 낮은 말 구유에 오셨습니다.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기에 멸망하는 짐승과 같이 자기만 알고 자기 배만 섬기는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자기의 살과 피를 내어 주셨습니다. 이것이 주님이 부요하신 자로서 가난하게 되심으로 우리를 부요케 하시기 위한 연보의 삶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부요를 자기의 형제들에게 나누어 주심으로써 우리도 그 부요에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연보할 때마다 이 주님의 연보를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연보는 자랑이 아니라 연보하고서도 회개하며, 무익한 종의 자세가 될 것입니다. 주님의 연보는 자신의 살과 피를 주셨는데 우리는 어떤 연보를 하고 있습니까? 그러므로 제대로 된 연보는 오직 은혜로만 됩니다. 은혜로 연보하게 되면 죽도록 충성하고서도 자기는 무익한 종이며, 오직 주의 은혜라고 고백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에게도 이런 은혜가 풍성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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