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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고후 4:1-6
성경본문내용 (1)이러하므로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2)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궤휼 가운데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천거하노라(3)만일 우리 복음이 가리웠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운 것이라(4)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5)우리가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6)어두운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
강설날짜 2014-03-19

2014년 고린도후서 공부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


말씀:고린도후서 4:1-6

 

오늘부터 우리는 고린도후서 4장 말씀을 공부하겠습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주의 영으로 주의 영광을 볼 수 있음을 배웠습니다. 수건이 가리워져 있으면 복음의 영광을 보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오면 그 수건이 벗겨져서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울 사도 자신이 수건에 가려져 있었을 때에는 예수는 이단의 괴수이며, 그를 믿고 따르는 자들을 잡아 죽이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길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영광 중에 계신 주님을 만나고 나서 자신이 핍박하던 예수님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곧 주의 영으로 수건이 벗겨진 것입니다. 바울은 새 언약의 영광을 알게 되었습니다. 정죄하고 죽이는 직분인 의문의 직분도 영광스러웠는데 살리는 직분인 영의 직분 곧 새 언약의 직분은 더욱 영광스러운 직분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 직분을 맡은 자는 세상의 눈으로 볼 때에 결코 영광스럽지 않다는 것입니다.

 

1절 말씀을 보면 바울 사도는 영광스러운 새 언약의 직분을 또다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이러하므로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1). 바울 사도는 ‘이러하므로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면 바울 사도가 왜 또다시 자신의 새 언약의 직분을 말하는 것입니까? 바울을 대적하는 자들이 그가 전한 복음조차 대적하면서 자신들이 바른 선생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추천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뛰어난 웅변술도 있었습니다. 사람을 끄는 매력도 있었습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그들의 가르침에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의 모습은 어떠하였습니까? 갈라디아서 4:13-14절 말씀을 보면 “내가 처음에 육체의 약함을 인하여 너희에게 복음을 전한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너희를 시험하는 것이 내 육체에 있으되 이것을 너희가 업신여기지도 아니하며 버리지도 아니하고 오직 나를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또는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하였도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바울은 자신의 육체가 사람들로 시험에 들만큼 약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갈라디아교회 성도들은 자신을 업신여기지도 않았고, 버리지도 아니하였고, 오직 자신을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하여 주었다고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에 기초해서 보면 바울은 병들고 연약하였습니다. 또한 그에게는 거짓 선생들이 자랑하는 추천서도 없었습니다. 뛰어난 웅변술도 없었습니다. 바울은 글에는 능하였지만 말에는 어눌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적으로 볼 때 바울에게는 자랑할 만한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런데 거짓 선생들에게는 자랑할 만한 것들이 많았습니다. 예수님을 믿어도 핍박과 고난의 모습이 아니라 고상하고 우아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고린도교회 교인들은 바울보다 이런 거짓 선생들의 모습이 더 영광스럽게 보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과 바울의 가르침을 배척하고 거짓 선생들의 가르침에 넘어간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는 이 영의 직분, 즉 살리는 직분을 받아서 증거를 하는 것은 결코 자신이 잘나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고난당하고 핍박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질 정도가 되도록 하나님께서 조치하시는 것은 자신을 믿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뢰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이미 고린도후서 1:8-9절에서 증거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가 자신이 이 영광스러운 직분을 받은 것은 하나님의 긍휼로 주어진 것이기 때문에 자기의 자랑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추천서나 세상의 자랑거리를 들고 오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교회 가운데 목회자를 청빙한다고 생각해 봅시다. 똑같이 바른 복음을 전하는 사람인데 한 사람은 외적 조건이 별로고, 한 사람은 누가 봐도 모든 조건이 좋은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러면 어떤 사람을 목회자로 청빙을 하겠습니까? 같은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라면 유학도 다녀오고, 박사학위도 있고 그런 사람이 좋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이런 사고방식이 바로 교회가 세속화되는 지름길인 것입니다. 교회 가운데 하나님의 긍휼이 사라지고 세상의 자랑거리를 앞세우게 된다면 그것은 더 이상 하나님의 교회가 아닐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를 보면 목회자를 청빙할 때 그 목회자가 말씀을 바르게 가르치는가를 보기보다 외적인 조건을 많이 따집니다. 큰 교회에서는 박사학위가 없으면 아에 청빙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많은 목회자들이 논문을 대필시키고, 남의 논문을 빼기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로인해 많은 문제가 발생합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1절 말씀을 다시 보면 바울은 우리가 새 언약의 직분을 받은 것은 하나님의 긍휼하심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낙심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우리가 잘 알듯이 바울은 많은 곳에 복음을 전하여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가 생각하는 부흥의 관점에서 볼 때 그의 목회는 별로 성공적이지 못했습니다. 처음에는 복음을 듣고 기뻐하다가도 바울이 떠난 후에 거짓 선생들이 와서 거짓 복음을 전하자 그들에게 넘어가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가 디모데후서 1:15절 말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를 버린 이 일을 네가 아나니. 그 중에 부겔로와 허모게네가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또한 디모데후서 4:10-11절 말씀에 보면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저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가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낙심하지 아니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디모데전서 1:12-17절 말씀을 보면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절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만세의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세세토록 있어지이다. 아멘!”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요, 죄인 중의 괴수였지만 하나님의 긍휼로 불러주셨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오래 참으심이 자신의 구원이 된 것처럼 후에 예수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셨다는 것입니다. 바울 같은 자도 긍휼과 오래 참으심으로 구원받았는데 하물며 여러분들이야 왜 긍휼을 입지 못하겠느냐는 것입니다. 바울은 바로 이런 모델로 자신이 부름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낙심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도리어 감사가 넘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까지 바울에 대하여 긍정적이고 성공적인 면만 많이 들어왔습니다. 그의 복음에 대한 열심과 전도에 대한 열정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바울처럼 전도하자, 바울처럼 열심을 내자 그렇게 말들을 합니다. 그러나 정작 바울 자신이 고백하는 사도된 증거가 무엇이라고 합니까? 자신을 긍휼히 여기시고 오래 참으신 주님을 증거 하기 위하여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코 자기의 의나 자기 자랑이 나올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도된 자의 모습이며, 주님의 부름을 받은 자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런데 거짓 선생들은 자신들의 부족과 연약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외적인 조건을 내세우는 것입니다.

 

2절 말씀을 보면 “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궤휼 가운데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천거하노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직분은 긍휼로 된 것이기에 자랑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포장하고 자신을 알아주라고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력서나 추천서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궤휼 가운데 행하지 아니한다고 합니다. 외모를 꾸미는 자들은 자기들의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숨깁니다. 자신의 연약과 부족함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자신의 약함을 자랑한다고 합니다. 그러니 궤휼을 쓸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또한 바울은 말씀을 혼잡케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는 것은 자기가 아니면 아무도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는 양 복잡하게 만드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날 한국교회에 보면 자신들만이 말씀을 바르게 읽고 해석한다고 하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 신천지가 있습니다. 이들은 기존의 교회의 목사들은 벙어리 개요, 거짓 선지자이기에 참선지자인 자기들의 지도자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성경을 비유로 다 풀어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셨다고 하면서 그렇게 풀어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풀어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혼잡케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진리를 증거 합니다. 그러면 그 진리가 무엇입니까? 아주 간단합니다.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입니다. 인간의 어떤 행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경을 다 외운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율법을 따라 산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율법 외에 나타난 하나님의 한 의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되고 죄 사함을 받고 구원함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믿음이란 인간의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인 것입니다(엡 2:8).

 

디모데후서 1:9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에베소서 2:8-9절 말씀을 보면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된 것은 우리의 행함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함을 받은 것은 우리의 행위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 진리를 믿지 못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3-4절 말씀을 보면 “만일 우리 복음이 가리웠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운 것이라.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고 했습니다. 복음이 가려졌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려진 것입니다. 이 세상의 신이 사람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이 세상의 신은 세상의 영광을 약속하는 사단이기에 세상의 영광에 취하여 있는 자는 십자가에 감추어져있는 하늘의 영광을 보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은 우리의 실력이 결코 아닌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우리도 다 세상의 영광에 취하여 살던 자들이 아니었습니까?

 

에베소서 2:1-10절 말씀을 보면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우리는 그의 만드신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를 살리신 것입니다.

 

그러면 허물과 죄로 죽은 상태가 어떤 상태입니까? 이 세상의 풍속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곧 육체의 욕심을 따라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것을 행하는 것입니다. 공중 권세 잡은 자 곧 마귀의 종이 되어서 세상의 영광만을 목표로 살고 있는 자들이 본질상 진노의 자식들입니다. 우리도 다 그 가운데 행하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의 은혜로, 그 큰 사랑으로 우리를 구속하여 내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살고, 함께 하늘에 앉히셨다고 합니다. 이것이 긍휼로, 은혜로 된 것이기에 누구도 자랑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직 그 은혜의 영광을 증거 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가 복음의 광채이며, 하나님의 형상임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다시 살아나신 그분이 복음의 광채이며, 하나님의 형상임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영광은 아직도 십자가 속에 감추어두신 것입니다. 그렇게 하심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만 구원하여 내시기 위함입니다. 동시에 세상의 영광을 좇아가는 자들을 심판하시기 위함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는 오늘 본문 5절 말씀에서 자신을 증거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종 됨과 너희의 종 됨을 증거 한다고 합니다. “우리가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5).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의 종으로 고린도교회를 섬기기 위해 보냄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낙심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일이기에 주님이 오래 참으시고 긍휼을 베푸시기에 자신이 낙심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도의 직분이며, 의의 직분인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저와 여러분이 복음을 듣고 그 복음의 광채를 보았습니까? 데살로니가후서 1:3-12절 말씀을 보면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찌니. 이것이 당연함은 너희 믿음이 더욱 자라고 너희가 다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함이며, 그리고 너희의 참는 모든 핍박과 환난 중에서 너희 인내와 믿음을 인하여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우리가 친히 자랑함이라. 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요, 너희로 하여금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함이니. 그 나라를 위하여 너희가 또한 고난을 받느니라. 너희로 환난 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환난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주 예수께서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중에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니. 이런 자들이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그 날에 강림하사 그의 성도들에게서 영광을 얻으시고 모든 믿는 자에게서 기이히 여김을 얻으시리라(우리의 증거가 너희에게 믿어졌음이라). 이러므로 우리도 항상 너희를 위하여 기도함은 우리 하나님이 너희를 그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여기시고 모든 선을 기뻐함과 믿음의 역사를 능력으로 이루게 하시고 우리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대로 우리 주 예수의 이름이 너희 가운데서 영광을 얻으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복음을 복종치 아니하는 자들에게 형벌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복음의 광채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광 중에 재림하실 것입니다. 성도는 바로 그 영광에 참예할 것입니다.

 

그러면 이 일이 어떻게 일어납니까?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는 그 능력으로 이루어집니다. 오늘 본문 6절 말씀을 보면 “어두운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둠에 빛이 있으라 하신 그 능력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어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은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입니다. 처음 창조는 말씀으로 창조하셨지만 범죄 한 인간을 구속하시기 위하여 말씀이 육신이 되셔서 친히 자신의 피를 십자가에서 흘리심으로 우리가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예수 그리스도가 복음의 광채임을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로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을 증거하며, 그 영광에 참예하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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