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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고후 9:6-15
성경본문내용 (6)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7)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8)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9)기록한바 저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느니라 함과 같으니라(10)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11)너희가 모든 일에 부요하여 너그럽게 연보를 함은 저희로 우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는 것이라(12)이 봉사의 직무가 성도들의 부족한 것만 보충할 뿐 아니라 사람들의 하나님께 드리는 많은 감사를 인하여 넘쳤느니라(13)이 직무로 증거를 삼아 너희의 그리스도의 복음을 진실히 믿고 복종하는 것과 저희와 모든 사람을 섬기는 너희의 후한 연보를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14)또 저희가 너희를 위하여 간구하며 하나님의 너희에게 주신 지극한 은혜를 인하여 너희를 사모하느니라(15)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를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강설날짜 2014-08-20

2014년 고린도후서 공부


감사함으로 넘치도록 하라


말씀:고린도후서 9:6-15

 

오늘 말씀은 연보에 대한 바울 사도의 마지막 권면의 말씀입니다. 6절 말씀을 보면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농부가 씨를 뿌리고 거두는 것을 연보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농부가 씨를 뿌리지 않으면 거두지 못합니다. 적게 뿌리면 적게 거두고, 많이 뿌리면 많이 거두게 됩니다. 곧 심은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연의 법칙입니다. 이와 같은 은혜는 하나님께서 노아와 맺으신 언약 덕분입니다. 창세기 8:22절을 보면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심고 거두는 것이 계속되는 것은 땅이 있을 동안에만 그러합니다. 그러나 이 땅이 사라지면 심고 거두는 것도 사라집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다고 말씀 하신 후 노아 언약보다 더 놀라운 언약이 시행이 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단지 농사에만 국한 되는 것이 아닙니다. 10절 말씀을 보면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보면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라고 했는데 여기까지는 농사의 일반적인 법칙입니다. 그런데 그 다음 구절에서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신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가 농사의 일반적인 법칙을 이야기 하다가 갑짜기 의의 열매를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는 연보를 심고 거두는 농사에 비유해서 말씀하면서 그 결론으로 의의 열매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에 기초해서 볼 때 연보가 의의 열매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6절을 다시 보면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많이’라는 단어 앞에 4)이라는 각주가 표시 되어 있습니다. 성경 밑에 있는 각주를 보면 헬라어로 ‘복’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6절의 이 말씀은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복으로 심는 자는 복으로 거둔다”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연보를 하는 것이 십일조를 하였더니 두 배 세배로 축복해 주셨다는 것이 아니라 연보 자체가 은혜이며, 복이기 때문에 그 연보를 하는 것이 복으로 심고 복으로 거두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6:7-10절을 보면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찌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찌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심고 거두는 것에 두 종류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육체로 심고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으로 심고 영생을 거두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하는 모든 일들이 다 심고 거두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영생에 이를 수가 없습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기 때문에 영으로 바꿀 능력이나 자질이 사람에게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에게서 나온 것으로 아무리 심고 거둔다고 하여도 그것은 이미 썩어진 것입니다. 지금 썩어지지 않아 보여도 주님이 재림하시면 다 불살라질 것들 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위하여 심는 것은 하나님께서 일하심의 결과로 나오는 것입니다. 그 성령으로 심는 것이 선을 행하는 것이며, 고린도후서 9장에서는 은혜와 은사로 나타난 연보인 것입니다.

 

7절을 보면 “각각 그 마음에 정한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찌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보면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연보가 은혜와 은사로 나타나기 때문에 이렇게 말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은혜 그러면 내 쪽에서 무언가 이익이 되고 받는 것을 은혜로 여깁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만 은혜가 아니라 그와 함께 고난도 받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고난도 은혜인 것입니다. 따라서 인색하지 않고 즐거움으로 연보를 하는 것도 은혜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즐겨내는 자를 사랑하신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그의 은혜가 나타나기에 사랑하는 것입니다.

 

8-9절을 보면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기록한바 저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느니라 함과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넘치게 하십니다.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연보도 은혜이기에 넘치게 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연보가 부족함이 나타난다면 그것은 은혜로 되는 일이 아니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능히 모든 은혜를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주님의 은혜의 일에 부족함이 없이 모든 일에 항상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실상은 어떻습니까? 모든 일에 부족함이 없이 항상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이 넘칩니까? 아니면 항상 부족함을 느낍니까? 사실 항상 부족함을 느끼죠. 그런데 우리가 왜 늘 부족하게 느끼는 것입니까?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 속에 자족함이 없는 것입니다. 늘 남과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부족하다고 여기고 있기에 넉넉함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족할 줄 아는 것이 경건에 큰 유익이 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주님께로부터 왔고, 지금도 계속하여 주님께로부터 주어지는 것을 믿는 사람은 연보를 넉넉하게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것 자체가 이미 은혜를 받은 증거입니다.

 

9절 말씀을 다시 보면 “기록한바 저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느니라 함과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시편 112:9절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이 시간 시편 112편 전체를 한번 보겠습니다. “할렐루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그 후손이 땅에서 강성함이여 정직자의 후대가 복이 있으리로다. 부요와 재물이 그 집에 있음이여 그 의가 영원히 있으리로다. 정직한 자에게는 흑암 중에 빛이 일어나나니 그는 어질고 자비하고 의로운 자로다. 은혜를 베풀며 꾸이는 자는 잘 되나니 그 일을 공의로 하리로다. 저가 영영히 요동치 아니함이여 의인은 영원히 기념하게 되리로다. 그는 흉한 소식을 두려워 아니함이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그 마음을 굳게 정하였도다. 그 마음이 견고하여 두려워 아니할 것이라. 그 대적의 받는 보응을 필경 보리로다. 저가 재물을 흩어 빈궁한 자에게 주었으니 그 의가 영원히 있고 그 뿔이 영화로이 들리리로다. 악인은 이를 보고 한하여 이를 갈면서 소멸하리니 악인의 소욕은 멸망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시편 기자는 누가 복이 있다고 합니까? “할렐루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고 했습니다(시 112:1). 그렇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계명을 크게 즐거워합니까? 우리는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합니까? 시편 1편에 보면 여호와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시 1:2). 우리가 주야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합니까?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복이 있는 자가 아닌 것입니다. 그런데 이 복이 어떻게 나타나는 것입니까? 시편 기자는 은혜를 베풀고 꾸이는 자라고 했습니다(시 112:9). 곧 은혜를 베풀고 꾸어주는 자라고 합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은혜를 베풀며 꾸이는 자는 잘 되나니”라고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시 112:5).

 

그런데 이런 자는 무엇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합니까? 흉한 소식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는 흉한 소식을 두려워 아니함이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그 마음을 굳게 정하였도다. 그 마음이 견고하여 두려워 아니할 것이라”(시 112:7-8). 은혜를 베풀며 꾸어주는 자는 흉한 소식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여호와를 의뢰하기 때문입니다. 곧 여호와께 맡겼기 때문입니다. 여호와를 의뢰함으로 그 마음이 굳게 정하였기 때문에 어떤 흉한 소식에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꾸어주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내일의 염려와 두려움 때문입니다. 내일의 염려와 두려움 때문에 베풀지 못하는 것은 결국 여호와를 의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자기의 소유를 늘리는 것을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시편의 말씀은 저가 재물을 흩어 빈궁한 자에게 주었으니 그 의가 영원히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 말씀의 궁극적인 성취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요하신 분으로서 가난해 지심으로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신 것으로 봅니다. 그리고 그 동일한 은혜를 입은 자들 안에서 이런 복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런 복이란 꾸어주는 일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요하게 하신 우리 주님의 은혜를 덧입은 자들은 꾸어주는 복을 나누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미 하늘나라의 부요함을 맛본 사람은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연보란 결국 무엇으로 결론지어지는 것입니까? 오늘 본문 11-12절 말씀을 보면 “너희가 모든 일에 부요하여 너그럽게 연보를 함은 저희로 우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는 것이라. 이 봉사의 직무가 성도들의 부족한 것만 보충할 뿐 아니라 사람들의 하나님께 드리는 많은 감사를 인하여 넘쳤느니라”고 했습니다. 고린도 교회가 넉넉하게 연보를 함으로 그 연보를 받은 자들이 고린도 교회에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감사를 돌리는 것입니다. 만약에 고린도 교회 교인들이 자기들의 의지와 노력으로 돈을 모아서 구제를 하였다면 고린도 교회 교인들이 감사패를 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연보가 하나님의 은혜로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를 돌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연보하는 봉사의 직무로 인하여 성도의 부족함을 보충하는 것만이 아니라 받는 자들이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인하여 넘쳤다는 것입니다.

 

13-15절 말씀을 보면 “이 직무로 증거를 삼아 너희의 그리스도의 복음을 진실히 믿고 복종하는 것과 저희와 모든 사람을 섬기는 너희의 후한 연보를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또 저희가 너희를 위하여 간구하며 하나님의 너희에게 주신 지극한 은혜를 인하여 너희를 사모하느니라. 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를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이 직무로 증거를 삼았다는 것입니다. 무슨 증거를 삼은 것입니까? 그리스도의 복음을 진실히 믿고 복종하는 것의 증거가 성도를 섬기는 후한 연보가 증거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연보를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또 이 연보를 받은 자들이 간구하며 고린도 교회에 주신 지극한 은혜를 인하여 너희를 사모한다고 합니다. 이방인 교회가 예루살렘 교회를 위하여 연보를 하였는데 예루살렘 교회가 고린도 교회 교인들을 보고 싶어 한다는 것은 얼마나 하나님의 은혜가 흘러 차고 넘친 것입니까? 그래서 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를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연보의 결론을 맺고 있습니다. 이상에서 볼 때 연보를 통하여 무엇을 맛보고 있는 것입니까? 연보를 많이 하였더니 부자가 되게 해주었다는 말씀이 아니라 연보를 통하여 지극한 하나님의 은혜와 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를 맛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연보만이 아니라 범사에 하나님의 지극한 은혜와 은사를 맛보아 가기를 소원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4장에 보면 사마리아 우물가에 목마른 여인이 물을 길으러왔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목만 마른 것이 아니라 온통 세상의 것들에 다 목마른 여인이었습니다. 그래서 남편을 다섯 명이나 갈아 치우고 지금도 여섯 번째 남편과 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여인을 만나시기 위하여 일부러 사마리아 우물가에 가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여인에게 말씀하시기를 ‘물을 좀 달라’고 하셨습니다. 유대인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하니 그녀가 의아해 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물을 좀 달라고 하는 이가 누구인줄 알았다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이 여인은 예수님께 말하기를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생수를 주겠느냐고 합니다. 이 우물은 야곱이 우리에게 주었는데 당신이 야곱보다 크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이 물을 먹는 자 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요 4:13-14). 이에 이 여인은 동문서답을 하지만 결국 예수님이 누구신줄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물동이를 내버려 두고 마을로 달려가서 그리스도가 나타났다고 ‘와보라’고 외친 것입니다. 이 여인의 목마름과 수치심이 한꺼번에 다 날아가 버린 것입니다. 동네 사람들을 피하여 한 낮에 물 길러 온 여인이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는 물동이를 버려두고 마을로 달려가 예수님을 전한 것입니다.

 

요한복음 7:37-39절을 보면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하신 고로 성령이 아직 저희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고 했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은 무엇에 목마릅니까? 세상이나 세상에 속한 것들은 우리의 목마름을 결코 해결하지 못합니다. 마치 망망대해에서 소금물을 마시듯이 계속하여 갈증만 더할 뿐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인하여 쏟아지는 그 생명수를 마시는 자만이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할 것입니다.

 

에스겔 47:1-12절을 보면 “그가 나를 데리고 전 문에 이르시니 전의 전면이 동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서 동으로 흐르다가 전 우편 제단 남편으로 흘러 내리더라. 그가 또 나를 데리고 북문으로 나가서 바깥 길로 말미암아 꺾여 동향한 바깥 문에 이르시기로 본즉 물이 그 우편에서 스미어 나오더라. 그 사람이 손에 줄을 잡고 동으로 나아가며 일천척을 척량한 후에 나로 그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발목에 오르더니. 다시 일천척을 척량하고 나로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무릎에 오르고 다시 일천척을 척량하고 나로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허리에 오르고 다시 일천척을 척량하시니 물이 내가 건너지 못할 강이 된지라. 그 물이 창일하여 헤엄할 물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네가 이것을 보았느냐 하시고 나를 인도하여 강 가로 돌아가게 하시기로 내가 돌아간즉 강 좌우편에 나무가 심히 많더라.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 물이 동방으로 향하여 흘러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에 이르리니 이 흘러내리는 물로 그 바다의 물이 소성함을 얻을찌라.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들어 가므로 바닷물이 소성함을 얻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또 이 강 가에 어부가 설 것이니 엔게디에서부터 에네글라임까지 그물 치는 곳이 될 것이라. 그 고기가 각기 종류를 따라 큰 바다의 고기 같이 심히 많으려니와 그 진펄과 개펄은 소성되지 못하고 소금 땅이 될 것이며, 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실과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실과가 끊치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실과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로 말미암아 나옴이라. 그 실과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성전 동문에서 물이 나와서 발목과 무릎과 허리를 넘쳐흘러 능히 헤엄칠만한 물이 된다고 합니다. 사람이 감당치 못할 물이 차고 넘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물이 가는 곳마다 죽은 것이 살아났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질 일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생수의 강이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오늘도 넘쳐흐르고 있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이 말할 수 없는 은혜와 은사를 범사에 맛보아 가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모든 은혜와 은사의 일이 우리에게도 넉넉하게 넘쳐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로 감사와 영광을 주님께 돌리는 삶을 살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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