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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왕상 18:1-20
강설날짜 2017-04-05

2017년 열왕기상 공부

너는 가서 아합에게 보이라

말씀:열왕기상 18:1-20

 

오늘 말씀은 기근이 시작된지 제 삼년에 엘리야가 아합 왕에게 다시 보냄을 받는 사건입니다. 여호와께서는 기근이 시작된지 삼년 만에 엘리야에게 아합에게 가서 보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아합 왕에게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고 말하라고 합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살펴보는 가운데 이 말씀을 통해서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계시가 무엇인지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엘리야가 사르밧 과부의 죽은 아들을 살리신 사건을 공부했습니다(왕상 17:17-24). 사르밧 과부는 엘리야를 통해서 기근 가운데서도 통의 가루가 그치지 아니하고 기름병의 기름이 마르지 아니하는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를 보았습니다. 그로인해 극심한 기근 가운데서도 굶어죽지 않고 잘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들이 갑자기 병들어 죽자 엘리야를 원망하였습니다. 엘리야는 이런 그녀에게 죽은 아들을 달라고 하여 다락에 올라가서 자기 몸을 죽은 아들의 몸에 세 번이나 엎드리고 여호와께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그때 죽은 아들의 혼이 그의 몸으로 돌아와 살아났습니다. 사르밧 과부는 이 사건을 통해서 엘리야가 참으로 하나님의 사람이요, 그 입에서 나오는 말씀이 여호와의 말씀임을 분명히 깨달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엘리야의 하나님이 살아계신 여호와이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를 통해서 과부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에 있게 되었습니다. 열왕기서 저자는 이를 통해서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우상숭배에 빠져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신앙과 그 죄를 드러내셨습니다.

 

이제 오늘 본문 말씀을 보겠습니다. 오늘 본문 1-2절을 보면 “많은 날을 지내고 제 삼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너는 가서 아합에게 보이라.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 엘리야가 아합에게 보이려고 가니 그 때에 사마리아에 기근이 심하였더라”고 했습니다. 많은 날을 지내고 제 삼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다시 엘리야에게 임하였습니다. 여기서 ‘많은 날을 지내고’라고 했는데 이것은 기근이 시작된지 꾀 오랜 날이 지났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엘리야 시대 때 기근이 얼마 동안 계속되었습니까? 열왕기서에서는 그 날 수가 정확히 언급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누가복음과 야고보서에 보면 그 기근의 기간이 3년 6개월이라고 합니다. 누가복음 4:25-26절에 보면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 시대에 하늘이 세 해 여섯 달을 닫히어 온 땅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으되 엘리야가 그 중 한 사람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않고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뿐이었으며”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엘리야 시대 때 하늘이 세 해 여섯 달을 닫히어 온 땅에 흉년이 들었다고 하고 있습니다. 또 야고보서 5:17-18절을 보면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저가 비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 오고 다시 기도한즉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내었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도 보면 엘리야가 비가 오지 않기를 기도 했을 때 삼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않다가 다시 기도함으로 비가 왔다고 합니다. 이처럼 누가복음과 야고보서에서는 엘리야 시대 때의 기근은 3년 6개월 동안 계속 되었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서 “많은 날을 지내고 제 삼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했다”라는 것은 아직 기근이 끝 날려면 많은 시간이 남아 있음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기근이 시작된지 제 삼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엘리야에게 아합에게 보이라고 합니다. 아합에게 가서 여호와께서 비를 내리시겠다고 하라고 합니다. 이에 엘리야가 아합에게 보이려고 갑니다. 엘리야가 아합에게 보이려고 갈 때 사마리아에 기근이 심하였습니다. 그러면 여호와께서 기근이 시작되지 삼년 만에 엘리야를 아합에게 보내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알과 아세라가 비를 주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비를 주시는 것을 알게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바알과 아세라가 비를 주는 것이 아닙니다.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이 세상 역사를 주관하시는 상천하지의 하나님께서 비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알과 아세라와 같은 우상들은 헛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헛된 우상을 버리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그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3-4절을 보면 “아합이 궁내대신 오바댜를 불렀으니. 이 오바댜는 크게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라. 이세벨이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멸할 때에 오바댜가 선지자 일백인을 가져 오십인씩 굴에 숨기고 떡과 물을 먹였었더라”고 했습니다. 아합이 궁내대신 오바댜를 부릅니다. ‘오바댜’라는 이름의 뜻은 ‘여호와의 종’이라는 뜻입니다. 궁내대신 오바댜는 여호와를 지극히 경외하는 사람입니다. 여호와를 지극히 경외하는 그의 모습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납니까? 이세벨이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멸할 때에 자신의 목숨을 걸고 여호와의 선지자 백 명을 오십 명씩 굴에 숨겨 떡과 물을 주어 살렸습니다. 오바댜의 이런 행위는 아합 왕과 이세벨에게 발각이 되면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아주 위험한 행위입니다. 그러나 오바댜는 여호와를 지극히 경외함으로 목숨을 걸고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구해 준 것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아합이 가장 신임하는 사람이 오바댜입니다. 이런 사람이 하나님께서 남겨두신 7천명에 해당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이름도 없이 동굴에 숨어 오바댜의 섬김으로 떡과 물을 먹는 여호와의 선지자들도 역시 하나님의 남겨두신 자들에 해당이 됩니다. 이들에게 오바댜가 떡과 물을 먹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먹였다’(lWK 쿨)는 이 단어와 같은 단어가 바로 17:4절의 까마귀를 통하여 엘리야를 먹였다고 했을 때 그 ‘먹였다’는 단어와 같습니다. 그리고 17:9절의 사르밧 과부를 통하여 먹였다고 했을 때 그 ‘먹였다’는 단어와도 같은 단어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기근의 시절에도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돌보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세상의 환난의 날을 두려워 말고 여호와 하나님의 돌보심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믿음으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5-6절을 보면 “아합이 오바댜에게 이르되 이 땅의 모든 물 근원과 모든 내로 가자 혹시 꼴을 얻으리라. 그러면 말과 노새를 살리리니 짐승을 다 잃지 않게 되리라 하고 두 사람이 두루 다닐 땅을 나누어 아합은 홀로 이 길로 가고 오바댜는 홀로 저 길로 가니라”고 했습니다. 아합이 오바댜를 불러서 이 땅의 모든 물 근원과 모든 시냇가로 가자고 합니다. 아합 왕이 비와 바람을 주고 풍요와 다산을 준다는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지만 기근을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바댜를 불러서 물 근원과 시내를 찾아 가자고 합니다. 그러면 혹 꼴을 얻을까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꼴’이란 짐승이 먹을 풀을 말합니다. 그런데 풀이 없어서 말과 노새가 다 죽게 될 정도로 기근이 심한 것입니다. 그래서 아합이 궁내대신 오바댜를 데리고 물을 찾아 나서는 것입니다. 두 사람은 다닐 땅을 나누어 아합은 홀로 이 길로 가고 오바댜는 홀로 저 길로 갑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의 언약을 버리고 풍요와 다산을 준다는 바알과 아세라를 섬긴 결과가 이러합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돌보고 계십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이런 기근보다 더욱 심한 영적인 기근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곧 먹을 양식이나 마실 물이 없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입니다. 오늘날 이 땅의 3년 6개월의 환난이 다른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듣지 못한 환난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정말로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듣지 못해 목말라 하십니까?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경제가 어렵다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과연 먹을 것이 없습니까? 마실 물이 없습니까? 우리의 삶을 볼 때 먹고 마실 것이 차고 넘칩니다. 먹을 것이 없어 배고픈 고통보다 너무 많이 먹어서 고통 할 때가 더 많습니다. 오늘날 우리 인생들에게 있어서의 기갈은 육신의 양식으로 인한 기갈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기갈입니다. 참된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해 심한 영적 기갈에 고통 당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 바른 말씀이 선포되는 교회를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자들이 진정으로 은혜가 임한 자들입니다.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을 아는 사람은 소망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은 참으로 영원한 생명의 말씀만으로 기뻐할 것입니다.

 

오늘날은 겉으로 볼 때는 성경 말씀이 넘쳐납니다. 인터넷을 검색하면 수많은 설교들이 쏟아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장마철의 홍수처럼 넘쳐납니다. 그러나 참된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지 못함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기갈에 시달립니다. 그래서 참된 말씀이 선포되는 교회를 찾아 갈한 영혼들이 이러 저리 헤매고 있는 것입니다. 홍수 때에 마실 물이 없다는 말처럼 넘쳐나는 말씀 속에서도 영적 기갈을 당하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 우리는 진정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썩는 양식이 아닌 썩지 않는 양식을 위하여 살아가는 성도가 되기를 소원해야 합니다. 썩지 아니할 양식은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환난의 때를 당할지라도 자기 백성을 생명의 말씀으로 돌보십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을 믿고 말씀이 없어 갈한 이 시대 오직 여호와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풍성히 공급받아 갈 수 있기를 원합니다.

 

여호와께서는 기근이 시작된지 제 삼년 만에 엘리야를 다시 아합에게 보내시면서 이스라엘에 비를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북이스라엘이 회개한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러면 북이스라엘이 회개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엘리야를 통하여 아합에게 비를 주시겠다고 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알과 아세라가 비를 주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비를 주시는 것임을 알게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이를 통하여 3년 6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는 괴로움을 당한 것이 우상숭배의 죄로 인함임을 깨닫게 하고 회개하고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이키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아합은 하나님께로 돌이키기는커녕 엘리야를 향하여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엘리야는 이런 아합에게 자신이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과 당신의 아버지집이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를 통하여 엘리야는 아합의 우상숭배의 죄를 분명히 지적하고 있습니다.

 

7-14절을 보면 “오바댜가 길에 있을 때에 엘리야가 저를 만난지라. 저가 알아보고 엎드려 말하되 내 주 엘리야여 당신이시니이까. 대답하되 그러하다 가서 네 주에게 고하기를 엘리야가 여기 있다 하라. 가로되 내가 무슨 죄를 범하였기에 당신이 당신의 종을 아합의 손에 붙여 죽이게 하려 하시나이까.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 주께서 사람을 보내어 당신을 찾지 아니한 족속이나 나라가 없었는데 저희가 말하기를 엘리야가 없다 하면 그 나라와 그 족속으로 당신을 보지 못하였다는 맹세를 하게 하였거늘. 이제 당신의 말씀이 가서 네 주에게 고하기를 엘리야가 여기 있다 하라 하시나 내가 당신을 떠나간 후에 여호와의 신이 나의 알지 못하는 곳으로 당신을 이끌어 가시리니. 내가 가서 아합에게 고하였다가 저가 당신을 찾지 못하면 내가 죽임을 당하리이다. 당신의 종은 어려서부터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라. 이세벨이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죽일 때에 내가 여호와의 선지자 중에 일백인을 오십인씩 굴에 숨기고 떡과 물로 먹인 일이 내 주께 들리지 아니하였나이까. 이제 당신의 말씀이 가서 네 주에게 고하기를 엘리야가 여기 있다 하라 하시니. 그리하면 저가 나를 죽이리이다”라고 했습니다. 엘리야가 길에서 만난 오바댜에게 내가 여기 있다는 것을 아합에게 가서 말하라고 합니다. 그러자 오바댜는 내가 무슨 죄를 범했기에 당신이 당신의 종을 아합의 손에 넘겨 죽게 하느냐고 합니다. 오바댜는 목숨을 걸고 여호와의 선지자 백 명을 숨겨주고 떡과 물을 주어 살린 사람입니다. 그런데 오바댜는 엘리야가 여기 있다고 고하면 아합이 자기를 죽일 것이라고 합니다. 왜 엘리야를 고발하는 오바댜를 아합이 죽인다고 하는 것입니까? 여호와의 영이 엘리야를 옮겨버리면 아합이 당신을 찾지 않은 곳이 없는데 당신이 사라지면 아합이 자신을 죽일 것이라는 것입니다. 오바댜가 목숨을 걸고 하나님의 선지자 백 명을 살리고 또 어려서부터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지금 오바댜에게 엘리야는 자신을 괴롭히는 선지자로 보이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어떻습니까? 무언가 조금만 나를 괴롭히는 일이 일어나면 어떤 생각이 듭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괴롭게 한다고 원망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도대체 누가 누구를 괴롭히는지 말씀을 통해서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 15-20절을 보면 “엘리야가 이르되 내가 모시는 만군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오늘날 아합에게 보이리라. 오바댜가 가서 아합을 만나 고하매 아합이 엘리야를 만나려 하여 가다가 엘리야를 볼 때에 저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여 네냐. 저가 대답하되 내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 것이 아니라 당신과 당신의 아비의 집이 괴롭게 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명령을 버렸고 당신이 바알들을 좇았음이라. 그런즉 보내어 온 이스라엘과 이세벨의 상에서 먹는 바알의 선지자 사백 오십인과 아세라의 선지자 사백인을 갈멜산으로 모아 내게로 나오게 하소서. 아합이 이에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로 보내어 선지자들을 갈멜산으로 모으니라”고 했습니다.

 

엘리야 선지자가 오바댜에게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고서 아합에게 보냅니다. 그런데 아합이 엘리야를 만나서 제일 먼저 하는 말이 무엇입니까?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자여 너냐?’라고 합니다. 아합은 엘리야를 가뭄 기간 내내 원망하였습니다. 엘리야 저놈 때문에 비가 오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엘리야가 여호와의 보내심을 받아 자기의 말이 없으면 수년 동안 비가 오지 않는다고 아합에게 말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합은 엘리야를 잡기 위하여 온 나라를 다 뒤졌지만 시돈의 사르밧 과부의 집에 있을 줄은 몰랐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만나자마자 하는 말이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엘리야는 “내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과 당신의 아비집이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아합이 여호와의 명령을 버리고 바알을 좇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엘리야는 아합에게 바알 선지자 450명과 아세라 선지자 400명을 모아 갈멜산으로 자신에게 나오게 하라고 합니다. 이를 통해 과연 누가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사람인지 분별하자고 합니다.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과 벌이는 기도의 대결은 다음 주에 자세히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누가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자인지에 대해서 보고자 합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에서 누가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자가 됩니까?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게 하는 아합이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가 됩니다. 그런데 아합은 이와 같은 자신을 알지 못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야를 보고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라고 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게 하는 아합과 같은 자가 아닙니까? 우리는 항상 성경을 볼 때 자기 자신을 악인에 대입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평소에 풍요와 다산을 원하면서 살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바로 아합과 같이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고 있는 자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게 하는 아합인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런 우리를 성실하게 괴롭히셔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은혜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를 깨닫게 되고 회개하며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역사가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면서 괴로움이 오면 우리는 어떻게 합니까? 남 탓을 합니다. 우리가 누구를 탓하고 삽니까? 우리는 전부 자기 탓이 아니라고 합니다. 남편 탓이고, 아내 탓이고, 목사 탓이고, 조상 탓이고, 다른 사람 탓이라고 합니다. 결국 나중에는 하나님을 탓합니다. 그러나 주께서 우리를 성실하게 괴롭히시는 것은 우리가 주님의 그 열심 앞에 항복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 자신이 주님을 괴롭게 하였고, 이웃을 괴롭게 하였고, 가족을 괴롭게 한 사람임을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우리의 죄를 회개 하며 주님 앞에 항복하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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