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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스가랴서 2:1-13

2010년 스가랴서 공부
                                                       세 번째 환상(2)
말씀:스가랴서 2:1-13

 

우리는 지난 시간에 스가랴서 2:1-5절을 중심으로 스가랴 선지자가 본 세 번째 환상에 대해서 살펴봤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의 회복을 약속하셨습니다. 특히 자신이 친히 성곽 없는 예루살렘의 불성곽이 되어 주셔서 하나님의 도성을 보호할 것이라고 단언하셨습니다. 이것은 어려움 가운데 있는 포로귀환 백성들에게는 큰 위로와 소망이 되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불성곽이 되어 주셔서 우리를 완벽하게 보호하시고 영광스럽게 하시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 봤습니다.

 

오늘은 계속해서 스가랴 선지자가 본 세 번째 환상에 대해서 공부하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2장 후반부 말씀 6-13절 말씀은 여호와와 이스라엘과의 언약적 관계가 온전히 회복될 것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곧 시온의 재건과 언약관계의 복원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현재 어려움 가운데 있는 포로귀환 백성들에게 있어서 가장 필요한 위로의 메시지입니다. 뿐만 아니라 세대를 초월한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가장 필요한 위로의 메시지인 것입니다.

 

6-7절을 보면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너를 하늘의 사방 바람 같이 흩어지게 하였거니와 이제 너희는 북방 땅에서 도망할지니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바벨론 성에 거하는 시온아 이제 너는 피할지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아직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귀환하지 못하고 바벨론에 남아 있는 백성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불순종하는 이스라엘을 사방에 바람처럼 흩으셨지만 이제 다시 돌이키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북방 땅에서 도망하라고 합니다. 여기서 북방 땅은 바벨론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북방 땅에서 도망하라’는 말은 바벨론에서 도망하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바벨론 성에 거하는 시온아 이제 너희는 피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말씀하셨으면 이제 남은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스스로 북방에서 돌아오고 피하고 도망쳐야 하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바벨론에서 돌아오는 것은 이미 예레미야 선지자로 하여금 예언된 대로 70년이 되어야 돌아오게 되는 것이며, 고레스 왕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움직이셔서 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의 은혜로 돌아오는 것이지 스스로 돌아올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살펴보아야 할 놀라운 표현은 ‘바벨론에 있는 시온’이라는 표현입니다. 여기서 시온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백성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시온이라면 일반적으로 어디를 가리킵니까? 예루살렘입니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을 시온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어떻게 바벨론에 있는 시온이라고 하는 것입니까?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있는 하나님의 백성을 시온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예레미야서에 보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합니다. 예레미야 21:1-14절을 보면 “시드기야 왕이 말기야의 아들 바스훌과 제사장 마아세야의 아들 스바냐를 보내어 예레미야에게 말하기를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우리를 치니 청컨대 너는 우리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라. 여호와께서 혹시 그 모든 기사로 우리를 도와 행하시면 그가 우리를 떠나리라 하던 그 때에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말씀이 임하니라. 예레미야가 그들에게 대답하되 너희는 시드기야에게 이같이 말하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너희가 성밖에서 바벨론 왕과 또 너희를 에운 갈대아인과 싸우는바 너희 손에 가진 병기를 내가 돌이킬 것이요 그들을 이 성중에 모아 들이리라. 내가 든 손과 강한 팔 곧 노와 분과 대노로 친히 너희를 칠 것이며 내가 또 이 성에 거주하는 자를 사람이나 짐승이나 다 치리니 그들이 큰 염병에 죽으리라 하셨다 하라. 여호와께서 또 말씀하시되 그 후에 내가 유다 왕 시드기야와 그 신하들과 백성과 및 이 성읍에서 염병과 칼과 기근에서 남은 자를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손과 그 대적의 손과 그 생명을 찾는 자들의 손에 붙이리니 그가 칼날로 그들을 치되 아끼지 아니하며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며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는 또 이 백성에게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신다 하라 보라 내가 너희 앞에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을 두었노니. 이 성에 거주하는 자는 칼과 기근과 염병에 죽으려니와 너희를 에운 갈대아인에게 나가서 항복하는 자는 살리니 그의 생명은 노략한것 같이 얻으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나의 얼굴을 이 성으로 향함은 복을 위함이 아니요 화를 위함이라. 이 성이 바벨론 왕의 손에 붙임이 될 것이요 그는 그것을 불로 사르리라. 유다 왕의 집에 대한 여호와의 말을 들으라.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다윗의 집이여 너는 아침마다 공평히 판결하여 탈취 당한 자를 압박자의 손에서 건지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너희의 악행을 인하여 내 노가 불 같이 일어나서 사르리니 능히 끌 자가 없으리라.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골짜기와 평원 반석의 거민아 보라 너희가 말하기를 누가 내려와서 우리를 치리요 누가 우리의 거처에 들어 오리요 하거니와 나는 네 대적이라. 내가 너희 행위대로 벌할 것이요 내가 또 수풀에 불을 놓아 그 사경을 사르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특히 1절에 보면 시드기야 왕이 말기야의 아들 바스훌과 제사장 마아세야의 아들 스바냐를 예레미야에게 보내어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우리를 치니 너는 우리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라고 합니다. 그때 예레미야 선지자가 뭐라고 하는 것입니까? 바벨론에 항복하라는 것입니다. 곧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벨론에 항복하지 않고 대항하거나 애굽으로 도망가는 것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순순히 포로로 잡혀간 그들이 바벨론에서 하나님의 시온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온이라고 하여서 어느 특정한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백성이 바로 시온인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에 있는 이 시온 백성들에게 바벨론에서 피하여 나오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8-9절을 보면 바벨론에서 돌아오는 이 과정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신다는 것입니다. 8-9절을 보면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를 노략한 열국으로 영광을 위하여 나를 보내셨나니. 무릇 너희를 범하는 자는 그의 눈동자를 범하는 것이라. 내가 손을 그들 위에 움직인즉 그들이 자기를 섬기던 자에게 노략거리가 되리라 하셨나니 너희가 만군의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신 줄 알리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노략한 자들을 심판하심으로 하나님이 영광스럽게 됩니다.

 

또 하나님의 백성을 범하는 자는 여호와의 눈동자를 건드리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손을 한번 흔들어버리시면 전에 자기들을 섬기는 자들, 즉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오히려 노략거리가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예언은 역사적으로 보면 아주 부분적으로만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므로 바벨론에서 돌아오는 것과 그들 위에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말씀의 궁극적인 성취는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으로 인하여 나타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일이 구약에서 계속하여 언약으로 주어진바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될 것이라”는 그 언약을 이루신 사건입니다. 이 언약이 이루어지는 것은 결국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함께 거하시는 것입니다.

 

이 약속의 성취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10-11절의 말씀을 보면 시온의 딸아 노래하고 기뻐하라고 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시온의 딸아 노래하고 기뻐하라. 이는 내가 임하여 네 가운데 거할 것임이니라. 그 날에 많은 나라가 여호와께 속하여 내 백성이 될 것이요 나는 네 가운데 거하리라. 네가 만군의 여호와께서 나를 네게 보내신줄 알리라”(10-11). 우리가 지난 시간에 살펴본 대로 여기서 ‘기뻐한다’는 것은 단순히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뛸듯이 크게 기뻐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시온의 딸이 기뻐하며 노래해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 날에는 많은 나라가 여호와께 속하여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보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경계가 이스라엘을 넘어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많은 나라, 많은 족속이 여호와께 속하여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 약속의 말씀으로 인하여 노래하고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2장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인하여 찬양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이 찬양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 하나님의 감동을 받은 자들이 찬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태어나기도 전에 엘리사벳이 찬양하고, 마리아가 찬양하고 사가랴가 찬양합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났을 때에는 하늘의 천군과 천사들이 찬양하고 목자들이 찬양합니다. 시므온이 찬양합니다. 안나가 증거 합니다. 이것들은 모두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에 대하여 노래하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약속대로 그들이 주의 구원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12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장차 유다를 취하여 다시 예루살렘을 택하신다고 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장차 유다를 취하여 거룩한 땅에서 자기 소유를 삼으시고 다시 예루살렘을 택하시리니”(12). 여기서 ‘다시 예루살렘을 택하신다’라는 것은 지금의 팔레스타인 땅의 예루살렘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미 지난주에서도 보았습니다만 다시 택하시는 예루살렘이니 새 예루살렘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 예루살렘은 이제 새 백성들로 채워지는 것입니다. 유다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남은 자와 이방인 중에서 택함을 입은 자들이 차별이 없이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 대하여 누가 분노하겠습니까? 혈통적인 주장을 하는 유대인들이 분노하는 것입니다. 복음서에 보면 복음이 증거 되는 일에 가장 심한 핍박을 하는 자들이 누구입니까?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사도행전이나 서신서들에도 보면 바울의 복음 전하는 것을 가장 반대하는 자들이 누구였습니까? 바로 유대인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다 달려들어 반대한다고 하여도 하나님은 자기의 일을 완전하게 이루어내시고야 마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언약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어 내시는 만군의 여호와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는 자기 공로가 많다는 자들이 잠잠하지 않습니다. 자기 의를 주장합니다. 자기 공로를 주장합니다. 그래서 마치 교회 일이 자기 일인냥 자기 마음대로 안 되면 딴지를 거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런 일로 인해 많은 교회가 갈등을 빚기도 하고 심지어 교회나 나누어지기도 합니다.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앞으로 우리 교회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자기 공로가 큰 자라 할지라도, 많은 일을 한 자라고 할지라도 잠잠해야 합니다. 13절을 보면 “무릇 혈기 있는 자들이 여호와 앞에서 잠잠할 것은 여호와께서 그 성소에서 일어나심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그 성소에서 일어나실 것이기 때문에 무릇 모든 혈기 있는 자들은 잠잠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도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서 성전이 재건되고 그 성전에 여호와께서 임하시고 일어나실 것이라는 것보다 더 궁극적인 성취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 백성을 구속하시는 예언인 것입니다. 이미 스가랴 선지자가 바벨론에 있는 시온이라고 하였듯이 오늘날은 세계 각처에서 주께 속한 자들이 바로 다 하나님의 백성인 것입니다. 이 일에 대하여 잠잠 하라는 것입니다. 누가 감히 송사하고 훤화할 수가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자기 피로 값을 주고 사셔서 자신의 거처를 삼으시는 일에 대하여 누가 입을 열 수가 있겠습니까? 만약 건드리는 자들이 있다면 그것은 8절의 말씀처럼 여호와의 눈을 건드리는 것이 됩니다.

 

사울이 예수 믿는 자들을 잡아 죽이고 핍박할 때에 예수님께서 사울에게 나타나셔서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사도행전 9:4절에 보면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라고 하셨습니다. 성도들을 핍박한 것을 곧 예수님 자신을 핍박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면 현재 우리가 처한 상황과 상관없이 노래하고 즐거워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고 세상의 영광을 바라본다면 결코 노래하고 기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세상에 재미있다는 것들을 다 경험해보지 않았습니까? 이것이 즐거울까? 저것이 재미있을까? 하면서 기웃거려 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재미있는 일이 있었습니까? 세상에서 재미있다는 것 치고 죄짓지 아니하는 일이 없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이생의 자랑거리를 노래하고 기뻐하는 것은 정말로 허탈한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은 이런 세상을 바벨론이라고 합니다. 구약시대의 바벨론이 세상의 경제와 힘과 세상 영광의 중심이라면 오늘날은 그 중심이 따로 없습니다. 온 세상이 다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쾌락 사랑하기를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있기에 이 세상 자체가 다 바벨론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이 악한세대에서 즉 바벨론에서 우리를 건지시기 위하여 오신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5:13절에 보면 베드로 사도가 이렇게 말합니다. “함께 택하심을 받은 바벨론에 있는 교회가 너희에게 문안하고 내 아들 마가도 그러하니라.”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아니 정확하게 말씀드리면 하나님께서 택하셔서 믿게 된 자들에게 오늘도 말씀하십니다. “내 백성아 바벨론에서 피하여 나오라.”

 

이 말씀을 하신 주님께서는 이 말씀을 이루시기 위하여 친히 자기 백성들에게 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 승천하셔서 하나님보좌 우편에 앉으신 것입니다. 이제 주의 자리에 등극하신 것입니다. 그곳에서 자기 백성을 지금도 통치하고 관리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장차 예수님을 통해 회복될 영원한 새 예루살렘을 바라보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로 불타 없어질 바벨론 곧 이 땅에 소망을 두지 않게 하시고 영원한 새 하늘과 새 땅 곧 신랑을 위해 단장한 것과 같은 새 예루살렘에 소망을 두고 살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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