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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왕하 3:1-27
강설날짜 2017-08-02

2017년 열왕기하 공부

이스라엘과 모압의 전쟁

말씀:열왕기하 3:1-27

 

오늘 말씀은 이스라엘과 모압의 전쟁에 관한 말씀입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통해서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계시가 무엇인지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1-3절을 보면 “유다 왕 여호사밧의 십팔년에 아합의 아들 여호람이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십 이년을 치리하니라. 저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나 그 부모와 같이 하지는 아니하였으니 이는 저가 그 아비의 만든 바알의 주상을 제하였음이라. 그러나 저가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이스라엘로 범하게 한 그 죄를 따라 행하고 떠나지 아니하였더라”고 합니다. 여호람은 아합의 아들이요, 아하시야 왕의 동생입니다. 열왕기하 1장에서 본 것처럼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가 왕이 되어 사마리아에서 2년을 다스리고 죽는데 다락 난간에서 떨어져 중한 병이 들어 죽게 됩니다. 그리고 그 동생 여호람이 이스라엘의 왕이 됩니다. 여호람이 이스라엘의 왕이 될 때는 남 유다의 여호사밧 왕 18년째입니다. 여호람은 이스라엘을 12년 동안 다스리는데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나 그 부모 곧 아합과 이세벨 같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여호람은 아버지가 만든 바알의 주상을 제거하였습니다. 그러나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이스라엘로 범하게 한 그 죄를 따라 행하고 떠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면 여로보암이 이스라엘로 행하게 한 죄가 무엇입니까? 열왕기상 12장에서 본 것처럼 단과 벧엘에 금송아지 신전을 세우고 거기서 제사를 지내게 한 것입니다. 이것이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겉으로 볼 때는 예루살렘 성전과 비슷하게 지었습니다. 제사장도 세우고 제사도 드립니다. 절기도 남 유다와 비슷하게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여호와 보시기에 죄가 됨에도 불구하고 본인들은 여호와를 섬긴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여호람은 이스라엘 왕이 되어 아버지 아합이 세운 바알의 주상을 없앴습니다. 여호사밧이 이런 여호람을 좋게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보시기에는 악을 행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악에서 떠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여호람이 바알의 주상을 없앰으로 사람들은 좋게 볼지 모르지만 여호와 보시기에 악한 것입니다.

 

4-7절을 보면 모압 왕 메사는 양을 치는 자였는데 새끼 양 십만의 털과 수양 십만의 털을 이스라엘 왕에게 조공으로 바쳤습니다. 그런데 메사가 아합이 죽은 후에 이스라엘 왕을 배반하였습니다. 여호람이 모압의 배반을 묵과할 수 없어서 온 이스라엘을 둘러보았습니다. 여기서 ‘온 이스라엘을 둘러보았다’라는 말은 군대를 모집한 것으로 봅니다. 그리고 유다의 여호사밧 왕에게도 사신을 보내어 모압 왕이 나를 배반하였으니 나와 함께 가서 모압을 치자고 합니다. 그러자 여호사밧이 내가 올라간다고 하면서 내 백성은 당신의 백성과 같고 내 말들도 당신의 말들과 같다고 합니다. 열왕기상 22장에서 본 것처럼 이런 말을 여호사밧이 여호람의 아버지 아합에게도 그대로 한 것입니다. 열왕기상 22:4절을 보면 “여호사밧에게 이르되 당신은 나와 함께 길르앗 라못으로 가서 싸우시겠느뇨. 여호사밧이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나는 당신과 일반이요, 내 백성은 당신의 백성과 일반이요, 내 말들도 당신의 말들과 일반이니이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전쟁에서 아합은 죽고 여호사밧도 죽을 뻔하였습니다. 그런데도 그 아들이 모압을 치러 가자고 하자 또 똑같은 말을 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아합의 딸과 여호사밧의 아들이 결혼을 함으로 사돈지간이라 거절하지 못한 것도 있겠지만 북 이스라엘이 남 유다보다 군사적인 우위에 있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왕하 8장). 하여튼 여호람과 여호사밧이 모압을 치는데 의기투합하였습니다.

 

8-12절을 보면 여호람이 여호사밧에게 어디로 올가 가는 것이 좋으냐고 묻자 여호사밧은 에돔의 길로 가자고 합니다. 당시 에돔이 유다의 지배아래 있었습니다. 그래서 함께 동맹하여 가려고 한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여호사밧과 여호람과 에돔 왕 세 사람이 연합하여 모압과의 전쟁에 나갔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연합군이 모압을 향하여 에돔 광야 길로 들어섰는데 7일이 지나자 군사와 가축이 마실 물이 없는 것입니다. 이에 이스라엘 왕 여호람이 슬프다고 하면서 여호와께서 세 왕을 불러 모압 왕의 손에 붙이려고 한다고 합니다. 여호람은 바알의 주상을 제거했지만 그의 마음까지 주께로 돌아온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그 마음은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않고 있었습니다. 이때 여호사밧이 여호와께 물을 만한 선지자가 없느냐고 묻습니다. 열왕기상 22장에서 여호사밧이 아합 왕과 연합할 때에는 미리 여호와께 물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여호람과 연합하여 모압을 치고자 할 때는 여호사밧도 여호와께 묻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아마 여호람이 미리 결정하고 통보한 식이 되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제 위기에 닥치자 여호사밧이 선지자를 찾는 것입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왕의 신하가 엘리사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엘리야의 손에 물을 붓던 사밧의 아들 엘리사가 여기에 있다고 합니다. 그러자 여호사밧과 여호람은 에돔 왕과 함께 엘리사에게 내려갑니다.

 

13-14절을 보면 엘리사가 자신을 찾아온 이스라엘 왕에게 “내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합니다. 당신의 부친의 선지자들과 당신의 모친의 선지자들에게 가라고 합니다. 엘리사는 이미 여호람이 어떤 신앙을 가졌는지 알기에 이렇게 거절을 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만군의 여호와께서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기를 유다의 왕 여호사밧의 얼굴을 봄이 아니면 그 앞에서 당신을 향하지도 아니하고 보지도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정말 여호사밧이 그럴 만한 경건하고 믿음의 사람이었습니까? 아니었습니다. 아합과의 관계 속에서 그리고 그 아들 여호람과의 관계 속에서 우리가 이미 보았습니다. 남 유다의 백성과 군대와 말들이 여호와의 것이지 어떻게 온갖 우상숭배를 하는 북 이스라엘 왕의 것과 같다고 할 수가 있습니까?

 

그러면 도대체 여호사밧의 얼굴을 보고 기도 하고 주께서 승리를 주신다고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엘리사가 여호사밧의 얼굴을 보고 기도한다는 것은 결국 남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언약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시겠다는 그 언약으로 인해서 지금 여호사밧의 얼굴을 보고 기도한다고 한 것이지 여호사밧 그 개인의 경건과 신앙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다윗 자신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받고서도 한 짓이 간음과 살인을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을 볼 때에 사람의 입장에서 보려고 하지 말고 여호와의 뜻이 무엇인지를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의 어떤 행위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어떻게 보시는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 것입니다.

 

15-20절을 보면 엘리사가 거문고 탈자를 불러오라고 합니다. 거문고 타는 자가 거문고를 탈 때 여호와께서 엘리사를 감동케 하셨습니다. 엘리사는 저들에게 골짜기에 개천을 많이 파라고 합니다. 바람도 보지 못하고 비도 보지 못하지만 물이 가득하여 너희와 너희 육축과 짐승이 다 마실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여호와 보시기에 오히려 작은 일이라고 합니다. 모압 사람을 붙여주신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모압의 모든 견고한 성과 아름다운 성을 치고 모든 좋은 나무를 베고 모든 샘을 메우고 돌로 모든 좋은 밭을 황무하게 할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엘리사가 왜 거문고 타는 자를 불러오라고 했는지에 대해서 유념해 봐야 합니다. 엘리사가 거문고 타는 자를 불러 오라고 한 것은 음악으로 분위를 고조하여 예언하고자 한 것이 아닙니다. 엘리사가 거문고 타는 자를 불러오게 한 까닭은 자신이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예루살렘 성전과 연관되어 있음을 드러내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즉 자신의 행동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사를 지내기에 앞서 행하던 의례와 연관이 된다는 것입니다. 구약시대 하나님에 대한 모든 경배와 제사는 예루살렘 성전과 연관되어 있어야만 합니다. 시편에 보면 그에 대해 분명히 증거합니다. 시편 150편을 보면 “할렐루야! 그 성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 권능의 궁창에서 그를 찬양할찌어다. 그의 능하신 행동을 인하여 찬양하며 그의 지극히 광대하심을 좇아 찬양할찌어다. 나팔 소리로 찬양하며 비파와 수금으로 찬양할찌어다. 소고 치며 춤추어 찬양하며 현악과 퉁소로 찬양할찌어다. 큰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하며 높은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할찌어다.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찌어다. 할렐루야!”라고 합니다. 시편의 마지막 찬송에 보면 그 성소에서 곧 예루살렘 성소에서 여호와를 찬송하라고 합니다(참조. 시 134편 등).

 

예루살렘 성전에는 제사장들과 성전 관리하는 레위인들이 거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노래하는 자들이 부속된 골방에 상주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거기에 성전 제사 의례에 참여하는 악기 연주자들도 함께 거하였습니다. 느헤미야 10:39절을 보면 “곧 이스라엘 자손과 레위 자손이 거제로 드린바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을 가져다가 성소의 기명을 두는 골방 곧 섬기는 제사장들과 및 문지기들과 노래하는 자들이 있는 골방에 둘 것이라 그리하여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전을 버리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기록된 노래하는 자란 단순히 시편을 낭송하는 자들뿐 아니라 수금을 비롯한 다양한 악기를 다루는 자들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처럼 예루살렘 성전에는 제사장들과 관리자들 그리고 노래하는 자와 악기를 다루는 자들이 항상 상주하고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모든 사역자들은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직무를 감당하고 있었습니다. 즉 이스라엘의 모든 선지자들과 장로들 역시 성전을 중심으로 사역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경배하는 이스라엘 민족의 모든 참된 사역자들은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활동했습니다.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분열된 상태에서도 각각 하나님의 선지자들은 이와 같은 의식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남 유다 출신 선지자들은 자유롭게 예루살렘 성전을 출입하였지만 북 이스라엘 선지자들은 정치적인 제약으로 인해 자유롭게 출입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 이스라엘 왕국에서 활동하던 하나님의 선지자들은 단과 벧엘에서의 제사를 완강히 거부하였습니다. 이것은 자신들이 예루살렘 성전에 속해 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그러므로 엘리사가 거문고 타는 사람을 불러오라고 한 것은 자신이 예루살렘 성전에 속한 선지자로서 자신의 사역을 보여주며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을 전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남북의 왕들이 엘리사의 예언에 대해 순종함으로써 생명을 구하고 모압 왕국에 승리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엘리사의 말에 순종하여 골짜기에 개천을 많이 팠습니다. 아침에 미쳐 소제를 드릴 때 물이 에돔 편에서부터 흘러와서 그 땅에 가득하였습니다(20).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와 에돔이 연합해 모압을 치러갔지만 물이 없어 다 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엘리사가 기도하여 하나님의 뜻을 구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물도 주시고 전쟁에서 승리 하게 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여호람 때문이 아니라 여호사밧의 얼굴을 보고 했다고 합니다. 여호사밧의 얼굴을 보고 기도했다는 것은 결국 남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언약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누구 때문에 이런 응답이 주어진 것입니까? 이들의 죄로 인해 대신 버림받은 예수 그리스도 때문입니다. 엘리사는 그리스도의 영이 임하여 그리스도의 일을 미리 보여주는 것입니다.

 

시편 22:6-19절을 보면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훼방거리요, 백성의 조롱거리니이다. 나를 보는 자는 다 비웃으며 입술을 비쭉이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되 저가 여호와께 의탁하니 구원하실 걸, 저를 기뻐하시니 건지실 걸 하나이다. 오직 주께서 나를 모태에서 나오게 하시고 내 모친의 젖을 먹을 때에 의지하게 하셨나이다. 내가 날 때부터 주께 맡긴바 되었고 모태에서 나올 때부터 주는 내 하나님이 되셨사오니. 나를 멀리하지 마옵소서. 환난이 가깝고 도울 자 없나이다. 많은 황소가 나를 에워싸며 바산의 힘센 소들이 나를 둘렀으며, 내게 그 입을 벌림이 찢고 부르짖는 사자 같으니이다. 나는 물 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촛밀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잇틀에 붙었나이다. 주께서 또 나를 사망의 진토에 두셨나이다.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내가 내 모든 뼈를 셀 수 있나이다. 저희가 나를 주목하여 보고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 여호와여 멀리하지 마옵소서. 나의 힘이시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라고 찬송합니다. 이 시편 22편의 고난이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 죄인의 조롱과 멸시를 받으시고 십자가에서 버림 받으신 그 일로 인해 죄인들이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행한 대로 주께서 갚으신다면 우리는 날마다 저주 받아도 할 말이 없는 자들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가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곧 우리의 죄가 어떠함으로 알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를 믿게 되는 이 일은 도대체 누구 때문입니까? 여호와 하나님과 그 아들의 영원 전 언약에 의해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해 성령의 부어주심으로 알고 믿게 된 것입니다. 한 마디로 예수님 때문에 우리가 이런 복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이 사실이 우리의 영원한 찬송의 내용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새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를 구원하신 그 은혜를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필요를 따라 하나님을 구하는 자가 아니라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영원히 찬송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21-25절을 보면 세 나라 연합군이 쳐들어온다는 소식을 들은 모압 왕 메사는 모압 지역의 갑옷 입을 만한 자로부터 그 이상 다 모았다고 합니다. 갑옷 입을 만한 자와 그 이상을 다 모았다는 말은 예비군과 민방위까지 다 모았다는 말입니다. 모압은 북 이스라엘의 지배를 받다가 힘이 좀 생겼다고 배반했습니다. 그러나 세 나라가 연합하여 공격하자 메사 왕은 전 국민에게 소집령을 내리고 방어하기 위해 그 경계에 섰습니다. 모압 사람들이 적의 진영을 보니 개천에 물이 가득한 것이 햇볕에 반사되어 피처럼 보였습니다. 연합군의 사람과 짐승이 그 물을 마시고 살게 되었는데 모압 사람들에게는 연합군이 서로 싸움으로 피가 그득하게 흘린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래서 모압은 약탈하러 가자고 달려들었습니다. 전쟁하기 위해 가는 것과 약탈하러 가는 것과는 전혀 다른 형세가 됩니다. 그런데 막상 적의 진영에 도착하니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이들을 공격합니다. 모압은 지리멸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연합군이 모압을 치므로 19절의 예언의 말씀 “당신들이 모든 견고한 성과 모든 아름다운 성을 치고 모든 좋은 나무를 베고 모든 샘을 메우고 돌로 모든 좋은 밭을 헐리이다”고 하신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이제 곧 적들은 다 섬멸될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이때 놀라운 반전이 일어납니다. 26-27절을 보면 모압 왕이 아무리 봐도 이길 수 없음을 보고 칼을 찬 군사 칠백 명을 거느리고 연합군을 돌파하여 도망가려고 합니다. 연합군 중에 에돔 왕이 가장 약하니 그곳으로 돌파하여 가려고 해도 이미 전세는 기울어졌기에 이것도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모압 왕 메사는 자기 왕위를 이어 왕이 될 맏아들을 데리고 와서 그를 잡아 성위에서 자신들의 신인 그모스에게 번제를 드린 것입니다. 그러자 이스라엘에게 크게 통분함이 임하매 그들이 떠나 각기 고국으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 27절에서 “이스라엘에게 크게 통분함이 임하매”라고 했는데 이스라엘에게 임한 통분함이 무엇인지, 그 분노한 주체가 누구인지가 불분명해서 다양한 해석들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모압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분노가 임했다는 주장과 모압인들이 메사가 행한 일로 인해 격렬한 분노가 일어났는데 그 분노를 보고 연합군이 겁을 먹고 돌아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압을 연합군에게 붙여주셨는데 모압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았기에 하나님의 분노가 임했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하여튼 모압 왕이 자기 뒤를 이어서 왕이 될 맏아들을 잡아 자기들의 신에게 제사 드리는 것을 보고 이스라엘에게 크게 통분함이 임하여 연합군은 각기 고국으로 돌아가버렸습니다. 모압 왕이 자기 살기 위해서 맏아들을 잡아 제사드리는 모습을 보고 질렸는지 모릅니다. 연합군은 그 모습을 보고 여호와의 약속이고 뭐고 간에 각자 고국으로 돌아가 버린 것입니다.

 

연합군의 신앙이란 바알의 주상을 없애고 어려움에 처했을 때 여호와의 선지자께 물으러 오는 것이었습니다. 여호람이 바알의 주상을 없앴지만 단과 벧엘의 금송아지 숭배는 버리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여호사밧과 여호람과 에돔 왕이 물이 떨어지자 엘리사에게 묻고자 온 것도 자신들에게 닥친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모압 왕은 자신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를 왕자를 잡아 자신의 신에게 제물로 바쳤습니다. 이로 인해 모압 왕이 살아남았습니다. 이때 메사는 자신들의 신인 그모스가 도와서 이기게 되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연합군은 이런 그의 모습에 질려 돌아가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압을 붙여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진멸하지 못하고 물러가버린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을 불순종한 것입니다.

 

그러면 이 사건을 통해서 계시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계시가 무엇입니까? 여호사밧과 여호람의 불신앙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여호와의 선지자에게 물으러 나왔지만 메사와 같은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열정이 없었습니다. 그로인해 모압을 심판하시고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수행하지 못했습니다. 그로인해서 결국 이스라엘은 멸망을 당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열정을 허락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믿음의 선한 싸움을 끝까지 싸우며 여호와 앞에서 늘 승리하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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