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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왕상 19:19-21
강설날짜 2017-05-10

2017년 열왕기상 공부

엘리야가 엘리사를 부르다

말씀:열왕기상 19:19-21

 

오늘 말씀은 엘리야가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여 엘리사 선지자를 부르는 사건입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살펴보는 가운데 이 말씀을 통해서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계시가 무엇인지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난 시간에 우리는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칠천 명을 남기신 사건에 대해서 공부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가 자기만 남았다고 하자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칠천 명의 남은 자를 두셨다고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이방 나라인 다메섹의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의 왕이 되게 하고, 또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고, 아벨므홀라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엘리야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왕상 19:15-17). 이것은 엘리야가 없어도 하나님은 이방 나라의 왕을 통해서라도 하나님의 일을 다 하실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하사엘의 칼을 피한 자는 예후가 죽일 것이며, 예후의 칼을 피하는 자는 엘리사가 죽일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엘리야는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여 자기를 대신할 선지자로 엘리사를 부릅니다. 19-21절을 보면 “엘리야가 거기서 떠나 사밧의 아들 엘리사를 만나니 저가 열 두 겨리 소를 앞세우고 밭을 가는데 자기는 열둘째 겨리와 함께 있더라. 엘리야가 그리로 건너가서 겉옷을 그의 위에 던졌더니. 저가 소를 버리고 엘리야에게로 달려가서 이르되 청컨대 나로 내 부모와 입 맞추게 하소서. 그리한 후에 내가 당신을 따르리이다. 엘리야가 저에게 이르되 돌아가라. 내가 네게 어떻게 행하였느냐 하니라. 엘리사가 저를 떠나 돌아가서 소 한 겨리를 취하여 잡고 소의 기구를 불살라 그 고기를 삶아 백성에게 주어 먹게 하고 일어나 가서 엘리야를 좇으며 수종들었더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에 살펴본 열왕기상 19:15-17절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세 사람 곧 하사엘과 예후와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엘리야는 열 두 겨리 소를 앞세우고 밭을 가는 엘리사를 만나 그에게 기름을 붓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겉옷을 그의 위에 던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에 엘리사가 소를 버리고 엘리야에게 달려가서 청하기를 “나로 내 부모와 입 맞추게 하소서. 그런 후에 내가 당신을 따르리이다”라고 합니다. 이에 엘리야가 저에게 이르기를 “돌아가라. 내가 네게 어떻게 행하였느냐?”라고 합니다. 그러자 엘리사가 엘리야를 떠나 돌아가서 소 한 겨리를 취하여 잡고 소의 기구를 불살라 그 고기를 삶아 백성에게 주어 먹게 하고 일어나 엘리야를 좇으며 그를 수종들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엘리야는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은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겉옷을 그에게 던짐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열왕기하 8장에 보면 하사엘에게는 엘리사가 그의 할 일을 대언합니다. 열왕기하 8:7-15절을 보면 “엘리사가 다메섹에 갔을 때에 아람 왕 벤하닷이 병 들었더니 혹 이 왕에게 고하여 가로되 하나님의 사람이 여기 이르렀나이다. 왕이 하사엘에게 이르되 너는 손에 예물을 가지고 가서 하나님의 사람을 맞고 저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나의 이 병이 낫겠나 물으라. 하사엘이 드디어 맞으러 갈새 다메섹 모든 아름다운 물품으로 예물을 삼아가지고 약대 사십에 싣고 나아가서 저의 앞에 서서 가로되 당신의 아들 아람 왕 벤하닷이 나를 당신에게 보내어 가로되 나의 이 병이 낫겠나이까 하더이다. 엘리사가 가로되 너는 가서 저에게 고하기를 왕이 정녕 나으리라 하라. 그러나 여호와께서 저가 정녕 죽으리라고 내게 알게 하셨느니라 하고 하나님의 사람이 저가 부끄러워하기까지 쏘아보다가 우니. 하사엘이 가로되 내 주여 어찌하여 우시나이까. 대답하되 네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행할 모든 악을 내가 앎이라. 네가 저희 성에 불을 놓으며 장정을 칼로 죽이며 어린 아이를 메어치며 아이 밴 부녀를 가르리라. 하사엘이 가로되 당신의 개 같은 종이 무엇이관대 이런 큰 일을 행하오리이까. 엘리사가 대답하되 여호와께서 네가 아람 왕이 될 것을 내게 알게 하셨느니라. 저가 엘리사를 떠나가서 그 주인에게 나아가니 왕이 묻되 엘리사가 네게 무슨 말을 하더냐. 대답하되 저가 내게 이르기를 왕이 정녕 나으시리라 하더이다. 그 이튿날에 하사엘이 이불을 물에 적시어 왕의 얼굴에 덮으매 왕이 죽은지라. 저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고 했습니다.

 

또한 열왕기하 9장에 보면 예후에게는 엘리사의 제자가 기름을 붓습니다. 열왕기하 9:1-7절을 보면 “선지자 엘리사가 선지자의 생도 중 하나를 불러 이르되 너는 허리를 동이고 이 기름병을 손에 가지고 길르앗 라못으로 가라. 거기 이르거든 님시의 손자 여호사밧의 아들 예후를 찾아 들어가서 그 형제 중에서 일어나게 하고 데리고 골방으로 들어가서 기름병을 가지고 그 머리에 부으며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을 삼노라 하셨느니라 하고 곧 문을 열고 도망하되 지체치 말지니라. 그 소년 곧 소년 선지자가 드디어 길르앗 라못으로 가니라. 저가 이르러 보니 군대 장관들이 앉았는지라. 소년이 가로되 장관이여 내가 당신에게 할 말씀이 있나이다. 예후가 가로되 우리 모든 사람 중에 뉘게 하려느냐. 가로되 장관이여 당신에게니이다. 예후가 일어나 집으로 들어가니 소년이 그 머리에 기름을 부으며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게 기름을 부어 여호와의 백성 곧 이스라엘의 왕을 삼노니. 너는 네 주 아합의 집을 치라. 내가 나의 종 곧 선지자들의 피와 여호와의 종들의 피를 이세벨에게 갚아주리라”고 했습니다. 이상의 말씀들에 보면 ‘기름을 부으라’는 말씀은 꼭 기름을 부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이루시겠다는 하나님의 뜻의 전달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도 ‘기름 부음을 받은 종’이라는 말을 많이 씁니다. 특히 목사를 지칭할 때 이런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사실 목사도 노회에서 임직을 할 때 안수를 하지 기름을 붓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왜 기름 부음을 받았다고 하는 것입니까? 주님께서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목사만 부르심을 받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모든 성도가 다 부르심을 받아야 합니다. 주님으로부터 부르심이 없이 예배당을 다니는 교인은 될 수 있지만 구별된 성도는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부름을 받은 증거가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의 엘리사의 경우를 보면 그는 열두 겨리 소를 앞세우고 밭을 갈고 있었습니다. ‘겨리’라는 말은 두 마리의 소가 끄는 쟁기를 말합니다. 그러면 열두 겨리라고 했으니 소가 무려 스물네 마리입니다. 소 두 마리에 쟁기 하나씩을 걸고 밭을 갈기에 엘리사와 함께 밭을 가는 사람은 모두 열두 명입니다. 이것이 다 엘리사 집안의 소유라면 그는 상당한 부자였던 것 같습니다. 엘리사가 다른 일꾼들을 앞장세우고 밭을 갈고 있는데 엘리야가 와서 자기 겉옷을 벗어 엘리사에게 던졌습니다. 밭을 갈다가 난데없이 엘리야의 겉옷이 덮쳐진 것입니다. 그러자 엘리사는 바로 소를 버려두고 엘리야에게 달려옵니다. 그리고서는 자신이 부모와 작별을 하고 오겠다고 합니다. 엘리야의 겉옷이 자신에게 덮쳐졌는데 엘리사는 소를 버려두고 엘리야를 따르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불가항력적인 부르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엘리야의 말이 좀 이상합니다. “돌아가라. 내게 네게 어떻게 행하였느냐”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말은 ‘그런 태도로는 나를 따를 수 없다는 말인지, 아니면 돌아가서 부모에게 작별하고 오라고 하는 것인지’ 그 표현이 모호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학자들의 해석은 부모에게 작별하고 오라는 것으로 봅니다. 그 이유는 소 모는 기구로 소를 삶아 백성들에게 나누어주고 엘리야를 따라나섰기 때문입니다. 엘리사가 부모에게 가서 인사하고 소를 잡고 그 소의 기구를 불살라 고기를 삶아 먹였다는 것은 이제는 더 이상 돌아갈 수조차 없는 완전한 단절을 하고 엘리야를 따라 나섰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부르심의 모습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부르심의 모습을 신약에서 보도록 하겠습니다. 누가복음 9:61-62절을 보면 “또 다른 사람이 가로되 주여 내가 주를 좇겠나이다 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케 허락하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마태복음 8:18-22절 말씀과 평행구절입니다. 마태복음 8:18-22절을 보면 “예수께서 무리가 자기를 에워쌈을 보시고 저 편으로 건너가기를 명하시니라. 한 서기관이 나아와 예수께 말씀하되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좇으리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 제자 중에 또 하나가 가로되 주여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예수께서 가라사대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좇으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누가복음 9장에 보면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쫓겠는데 먼저 가족들과 작별 인사를 하게 해 달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때 예수님께서는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자기 스스로 자신을 따르고자 나서는 자들에게 그들의 태도를 분명히 하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엘리야가 엘리사를 부른 것은 엘리사의 선택이 아니라 일방적인 부르심입니다. 그러므로 엘리사가 쟁기를 잡고서 뒤를 돌아본 것이 아니라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바로 소를 버려두고 엘리야에게 나아왔던 것입니다. 또한 소를 잡고 쟁기를 불살라 잡은 소를 삶아서 백성에게 나누어줌으로써 다시는 뒤를 돌아보지 않겠다고 결단하였습니다. 그는 엘리야를 통한 하나님의 부르심에 온전히 순종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는 과연 주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았습니까? 부르심을 받았다면 우리는 무엇을 버렸습니까? 우리가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주님을 믿고 따르는 것은 세상의 그 어떤 것들을 얻고자 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세상의 모든 것들을 다 버려두고 따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까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무엇을 버렸습니까? 버리기는커녕 더욱 세상의 썩어질 것들을 더 달라고 하고, 그런 것들을 비축하며 늘려가는 재미로 살지는 않았습니까? 그렇게 살고 있는데도 아무 일 없이 형통하십니까? 그것은 사생자 일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12:5-8절을 보면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고 했습니다.

 

누가복음 9:23-25절을 보면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른다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합니다. 십자가란 죽음입니다. 날마다 자신이 죽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아 예수님을 믿고 따라가는 길입니다. 이런 부르심이 과연 오늘날 우리에게 있습니까?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허락하여 주셔서 우리 가운데 이런 부르심의 역사가 있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로 하여금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은 온전히 따르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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