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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골 1:1-8

2008년 골로새서 공부
                                                            복음의 열매
말씀:골로새서 1:1-8

 

골로새서는 바울이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게 쓴 서신입니다. 기록연대는 대략 A.D. 62년 경으로 보며, 바울이 처음 로마 감옥에 투옥되어 있을 때 쓴 것으로 봅니다. 바울이 골로새서를 기록한 직접적인 동기는 에바브라가 당시 골로새 교회의 질서를 위협하고 있었던 이단적인 가르침의 현황에 대한 소식을 가지고 로마에 도착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골로새 교회는 당시 로마 제국의 식민지인 아시아 내륙의 루쿠스 계곡 남안 곧 오늘날 터키에 위치한 조그마한 성읍에 세워진 교회입니다. 이 교회는 바울 사도가 직접 가서 복음을 전한 곳은 아닙니다. 2:1절에 보면 바울의 육신의 얼굴을 보지 못한 자들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1:7절에서는 에바브라에게서 배웠다고 하는 것을 보면 에바브라가 바울에게 복음을 듣고 가서 복음을 증거하여 세워진 교회가 바로 골로새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이 골로새 교회가 복음을 받고 복음의 열매가 나타나고 있는데, 그곳에 거짓 선생들이 나타난 것입니다. 초대교회의 대표적인 거짓선생들 곧 이단들은 율법주의와 영지주의 자들입니다. 2:8절에 보면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 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기초해 볼 때 골로새 교회에도 초대 교회에 나타났던 이런 거짓 선생들이 나타나 교회를 어지렵혔던 것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이로인해 교회 가운데 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런 이단들의 가르침으로 인해 고통 가운데 있는 골로새 교회 성도들을 권면하기 위해 이 서신을 쓴 것입니다.

 

바울 당시나 오늘날이나 할 것 없이 거짓 선생들 즉 이단들의 특징은 딱 한가지로 모아집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함을 부인하는 쪽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는 것은 모든 하나님의 언약을 다 이루신 것이기에 누구든지 예수님의 이름으로 온전히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예수님의 공로를 흠집 내는 것이 이단입니다. 여호와의 증인은 예수님을 피조물로 보고, 통일교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은 실패이며, 몰몬교는 새로운 계시가 미국에서 나왔다고 하고, 안식교는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고 합니다. 이러한 알려진 이단들보다 더 교묘한 이단들이 교회 안에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오늘날은 세미 펠라기안과 알미니안적인 사상을 가진 복음주의가 교회를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예수님을 믿는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믿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히브리서 10:26-31절에 보면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 세 증인을 인하여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하물며 하나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의 당연히 받을 형벌이 얼마나 더 중하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것이 심판에 이르는 것입니다. 히브리서가 유대 기독교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탁월성을 증거 한 것처럼 바울은 골로새 교회에서도 거짓 선생들의 선동 앞에서 흔들리지 않도록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성을 우주적인 필치로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선 1:14-16절을 먼저 보면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고 했습니다. 만물이 예수님에게서 창조되되 모든 것들이 다 그로 말미암아 창조되고 그를 위하여 창조된 것입니다. 우주만물만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까지도 예수님을 위하여 창조된 것입니다. 이런 웅장하고 완전한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고 골로새 교회에 편지를 보내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1절을 보면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된 바울과 형제 디모데는”라고 합니다. 바울은 자신을 소개할 때에 자기가 사도가 되고 싶어서 된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바울은 우리가 잘 알듯이 사도는커녕 예수님을 이단의 괴수로 보고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 죽이는 것이 자기가 섬기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줄 알았던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바울 개인의 결정으로 사도가 결코 될 수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손에 붙잡힌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알듯이 사도행전 9장에 보면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께 사로잡혀 이방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전한 것은 바울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주어진 것입니다. 이 편지를 받는 사람은 일차적으로 골로새 교회 성도들입니다. 그러나 이 편지는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여전히 유효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가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편지를 받는 사람들을 성도라고 합니다. 2절에 보면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 곧 그리스도 안에서 신신한 형제들에게 편지하노니”라고 했습니다. 골로새 교회 성도들은 복음을 받기 전에는 세상의 다른 사람들과 똑 같았습니다. 그런데 복음을 받아들인 것 때문에 그들은 성도 곧 거룩한 무리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란 용어는 항상 공동체적인 개념 속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그러면 도대체 복음이 무엇이기에 어제까지 세상에 속하여 세상의 것만 전부인줄 알고 살던 사람들이 오늘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었다고 해서 어떻게 거룩한 무리라고 할 수가 있는 것입니까? 성도가 된다는 것은 그 사람의 타고난 능력이나 소질을 개발하여 될 수가 있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이것은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사람이 스스로 태어날 수가 없듯이 복음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것도 결코 그 사람의 자질이 아닌 것입니다. 곧 그 사람 스스로 태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에 보면 율법의 선생인 니고데모도 예수님 앞에서는 아직 태어나지도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거듭나야 한다’는 말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믿기 이전의 상태를 성경은 ‘허물과 죄로 죽었다’라고 그렇게 말합니다. 에베소서 2:1절에 보면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라고 했습니다. 허물과 죄로 죽은 자들이 스스로 다시 살아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에스겔서 37장에 보면 에스겔 선지자가 하나님의 신에 이끌림을 받아 한 골짜기에 갔습니다. 그곳에 보니 바짝 마른 뼈들이 가득하였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이 뼈들이 살겠느냐고 에스겔에게 물으십니다. 그러자 에스겔이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신다’고 답을 합니다. 그때 주 여호와께서 에스겔에게 이 뼈들에 대하여 대언하라고 합니다.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고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호와께서 생기로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여 살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되면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에스겔이 명을 좇아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였습니다. 그러자 뼈들이 움직여 서로서로 연결되어 사람의 골격이 되고 거기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그 위에 가죽이 덮였습니다. 그러나 생기는 없었습니다. 그 때 또 에스겔이 대언하기를 ‘생기야 사방에서 불어와서 이 사망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게 하라’고 합니다. 그렇게 대언을 하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서 곧 살아나니 큰 군대가 되었습니다. 이 마른 뼈가 살아나는 환상은 이스라엘 백성이 범죄 함으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지만 하나님의 언약과 사랑과 자기의 이름을 위하여 다시 회복하시겠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되는 일이 즉 마른 뼈가 살아나는 것과 같은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나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니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니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이 마른 뼈들을 조직하고 사람의 모습이 되게 하고 또한 생기에 대하여 대언하니 생기가 들어와서 사람이 되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처럼 복음이란 하나님의 말씀이며 능력이기에 허물과 죄로 죽은 자들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는 것입니다(히 4:12). 하나님께서 천지를 말씀으로 창조하셨습니다.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 말씀이 살과 피를 입으시고 오셔서 그 살을 찢고 피를 흘리심으로 자기 백성에게 생명을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이 증거 되는 곳은 어디서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이름을 들은 자들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은 복음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믿게 된 자들을 성도라고 하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한 형제들입니다. 그냥 타고난 신실한 자들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한 자들입니다. 이렇게 성도가 되는 것은 에스겔이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자 마른 뼈들이 큰 군대가 되어 일어나듯이 복음을 증거 하자 허물과 죄로 죽은 자들이 다시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것이 복음의 능력인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파하면 그것을 듣고 믿는 자들이 나오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다시 살아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복음이 증거 되어 골로새 지역에 성도가 생겼습니다. 그러므로 이들에게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로부터 은혜와 평강을 전하는 것입니다.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 곧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한 형제들에게 편지하노니. 우리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으지어다”(2).

 

1-2절에서 이렇게 인사말을 하고나서 3절에 보면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하노라”고 합니다. 바울이 말한 하나님은 그냥 하나님이 아닙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인 것입니다. 세상의 사람들도 하나님을 안다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그런 하나님은 사람들마다 가지고 있는 자기들의 신의 개념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해서 그 사람들이 다 믿음의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곧 성도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내신 하나님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내신 하나님은 인간의 욕망을 채워주는 그런 하나님이 아닙니다. 우리도 평소에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데 어떤 하나님을 믿는가 하는 것을 오늘 말씀을 통하여 점검 해 보고자 합니다. 사람들마다 간증하는 하나님이 다 다릅니다. 그러면 도대체 바울 사도는 무엇을 듣고서 골로새 교회의 형제, 자매들을 성도들이라고 하는 것입니까? 4절에 보면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음이요”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듣고 그들을 성도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5절에 보면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둔 소망을 인함이니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을 들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과 성도에 대한 사랑은 하늘에 쌓아둔 소망을 인함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믿음과 사랑과 소망이 복음의 열매로 나타나는 것이며, 이를 인하여 3절에 보면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과 사랑과 소망입니까? 먼저 믿음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은 사람이 만들어 낼 수 없는 은혜의 선물로 주어지는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믿음이 좋다고 자랑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 정말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의 사람이라면 결단코 자기의 믿음을 과시할 수가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기가 잘나서 그 믿음을 소유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진정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이 믿음을 소유한 자는 죽도록 충성하고서도 자기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입니다. 이런 믿음은 세상의 영광이 아니라 십자가를 통하여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구하는 믿음입니다. 사랑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랑이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한 형제, 자매가 되었다는 사랑입니다. 이 사랑에는 빈부귀천의 차별이 없습니다. 인종이나 피부색의 차별이 없는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하신 그 사랑을 받은 자이기에 용서가 나오는 사랑입니다. 긍휼이 나오는 사랑인 것입니다.

 

세상의 사랑이란 다 자기의 욕심을 채우기 위하여 자기중심적으로 나오는 사랑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사랑이란 그리스도 안에서의 사랑 곧 자기를 버려 형제의 유익을 위하는 사랑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사랑은 형제 사랑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일서 4:7-11절에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바울이 말하는 사랑이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사랑입니다. 이런 사랑을 덧입은 자는 형제 사랑으로 그 사랑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과 사랑이란 결국 하늘에 쌓아둔 소망 때문에 나오는 것입니다. 5절을 다시 보면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둔 소망을 인함이니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늘에 쌓아둔 소망 때문인데 이 소망이란 곧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복음이란 땅에 소망을 두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사는 것입니다. 땅에 소망을 두고 산다면 이런 믿음과 사랑은 결코 나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늘에 쌓아둔 소망이 있는 사람에게 이런 열매들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것이 골로새 교회에서 언제부터 나왔습니까? 6절에 보면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라고 했습니다. 복음을 듣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 복음을 듣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것입니까? 그 때가 언제입니까? 그런데 믿음과 사랑과 소망이 열매로 나옵니까? 없다면 회개하여야 할 문제입니다. 다시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만약 은혜를 깨닫고 난 날부터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있다면 그것이 더 풍성하고 충만하여 열매로 나타나도록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도 복음의 은혜를 깨닫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믿음과 사랑이 하늘에 쌓아둔 소망으로 인하여 더 풍성하여지고 충만하여 지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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