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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사무엘상 28장
강설날짜 2015-07-22

2015년 사무엘상 공부


신접한 여인을 찾은 사울

말씀:사무엘상 28:1-25

 

사무엘상 28-31장 말씀은 사울의 영적인 파탄과 죽음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하나님의 버림을 받은 사울은 드디어 신접한 여인을 찾는 영적인 파탄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그리고 결국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패하여 아들 요나단과 함께 길보아산에서 죽음을 맞이합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28장 말씀에서는 사울이 하나님의 응답을 받지 못하자 신접한 여인을 찾는 영적인 파탄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살펴보는 가운데 사울의 영적인 파탄이 어떠하며, 이 사건을 통해서 사무엘서 저자가 우리에게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계시가 무엇인지를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치기 위해서 군대를 모집하였습니다. 블레셋 왕 아기스는 다윗에게도 참전을 명하였습니다. 1절을 보면 “너는 밝히 알라. 너와 네 사람들이 나와 한가지로 나가서 군대에 참가할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아기스는 다윗이 과연 자기 동족 이스라엘을 치는 전쟁에 참가할 것인가를 시험해 보기 위해서 그에게 출정 명령을 내렸던 것 같습니다. 아기스는 다윗을 앞세워 이스라엘을 치고자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때 다윗은 어떻게 합니까? 2절을 보면 “다윗이 아기스에게 이르되 그러면 당신이 종의 행할 바를 아시리이다. 아기스가 다윗에게 이르되 그러면 내가 너로 영영히 내 머리 지키는 자를 삼으리라 하니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적극적으로 아기스의 부름에 응합니다. 다윗은 아기스에게 자신을 가리켜 ‘당신의 종’이라고 말합니다. “당신이 종의 행할 바를 아시리이다.” 다윗은 자신이 아기스의 신실한 신하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여기서도 우리는 다윗의 능청스러운 연기를 볼 수 있습니다. 이에 아기스는 다윗에게 “내가 너로 영영히 내 머리 지키는 자를 삼으리라”고 합니다. 아기스는 다윗이 자신의 신하가 되어 이스라엘을 치는 일에 참가 하겠다고 하자 자신의 경호실장으로 삼겠다고 합니다.

 

3절을 보면 다윗이 자기 동족 이스라엘을 치는 전쟁에 출전해야 하는 그런 상황 가운데서 사무엘의 죽음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사무엘이 죽었으므로 온 이스라엘이 그를 애곡하며 그의 본성 라마에 장사하였고 사울은 신접한 자와 박수를 그 땅에서 쫓아내었었더라”(3). 사무엘이 죽으매 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를 애곡하며 그가 살던 라마에 장사하였습니다. 사무엘의 죽음과 장례는 이미 25장에서 보도를 하였습니다. 25:1절을 보면 “사무엘이 죽으매 온 이스라엘 무리가 모여 그를 애곡하며 라마 그의 집에서 그를 장사한지라. 다윗이 일어나 바란 광야로 내려가니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무엘서 저자는 오늘 본문에서 다시 사무엘의 죽음을 언급하면서 사울이 과거에 신접한 자와 박수를 이스라엘 땅에서 쫓아낸 것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사울이 언제 이스라엘 땅에서 신접한 자와 박수를 쫓아내었지 알 수는 없지만 그가 왕이 되었을 때 신명기 말씀에 기초해서 신접한 자들과 박수를 이스라엘 땅에서 쫓아내었던 것 같습니다.

 

신명기 13:4-5절에 보면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순종하며 그를 경외하며 그 명령을 지키며 그 목소리를 청종하며 그를 섬기며 그에게 부종하고 그 선지자나 꿈 꾸는 자는 죽이라. 이는 그가 너희로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며 종 되었던 집에서 속량하여 취하신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배반케 하려 하며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행하라 명하신 도에서 너를 꾀어내려고 말하였음이라. 너는 이같이 하여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할찌니라”고 했습니다. 또 신명기 18:9-14절을 보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거든 너는 그 민족들의 가증한 행위를 본받지 말 것이니. 그 아들이나 딸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는 자나 복술자나 길흉을 말하는 자나 요술하는 자나 무당이나 진언자나 신접자나 박수나 초혼자를 너의 중에 용납하지 말라. 무릇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여호와께서 가증히 여기시나니. 이런 가증한 일로 인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시느니라.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완전하라. 네가 쫓아낼 이 민족들은 길흉을 말하는 자나 복술자의 말을 듣거니와 네게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런 일을 용납지 아니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이상의 신명기 말씀에서 보면 하나님께서는 신접한 자와 박수들의 활동을 이교도적인 풍습으로 단죄하고 이스라엘에게서 쫓아내라고 하셨습니다. 사울은 이와 같은 신명기 말씀에 입각해서 이들을 쫓아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4-6절 말씀을 보면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치기 위해서 수넴에 진을 치고 사울이 온 이스라엘을 모아 길보아에 진을 쳤을 때 사울은 블레셋의 엄청난 군대를 보고 두려움에 사로잡혀 그 마음이 크게 떨었습니다. 사울은 두려움 가운데서 여호와께 물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께서는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선지자로도 그에게 대답하지 아니하셨습니다. 이로 인하여 사울은 하나님의 뜻을 알 수가 없습니다. 참으로 답답한 지경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사울이 무엇을 합니까? 7절에 보면 과거 자신이 쫓아내어 버렸던 신접한 여인을 찾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녀에게 묻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자 신하들은 엔돌에 신접한 여인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8-11절을 보면 이에 사울이 변장을 하고 신접한 여인에게 찾아가서 죽은 사무엘을 불러달라고 합니다. 이것은 일종의 초혼(招魂-일종의 혼을 부르는 민간 의식)입니다. 그러자 9절에 보면 그 여인이 사울에게 이르기를 “네가 사울의 행한 일 곧 그가 신접한 자와 박수를 이 땅에서 멸절시켰음을 아나니. 네가 어찌하여 내 생명에 올무를 놓아 나를 죽게 하려느냐”라고 하였습니다. 이 때 10절에 보면 사울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면서 이 일로는 벌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자 11절에 보면 그 여인이 말하기를 “내가 누구를 네게로 불러올리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사울은 사무엘을 불러올리라고 합니다.

 

12-14절을 보면 “여인이 사무엘을 보고 큰 소리로 외치며 사울에게 말하여 가로되 당신이 어찌하여 나를 속이셨나이까. 당신이 사울이시니이다. 왕이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 말라. 네가 무엇을 보았느냐. 여인이 사울에게 이르되 내가 신이 땅에서 올라오는 것을 보았나이다. 사울이 그에게 이르되 그 모양이 어떠하냐. 그가 가로되 한 노인이 올라오는데 그가 겉옷을 입었나이다. 사울이 그가 사무엘인 줄 알고 그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니라”고 했습니다. 그 여인이 사무엘을 불러올리라는 말을 듣고 사울인줄 알았는지 아니면 사무엘의 모습을 한 자의 모습을 보고 사울을 알았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이 여인은 자기에게 물으러 온 자가 사울임을 알아보았습니다. 그 여인이 사울을 알아보고 큰 소리를 외치며 사울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어찌하여 나를 속였나이까. 당신이 사울이시니이다”(12). 이에 사울은 그 여인에게 두려워말라고 하면서 네가 본 것을 말하라고 합니다. 이에 여인이 사울에게 말하기를 “신이 땅에서 올라오는 것을 보았다”고 합니다(13). 사울이 그 모양이 어떠하냐고 묻자 그 여인은 한 노인이 올라오는데 그가 겉옷을 입었다고 하였습니다(14). 그러자 사울은 그가 사무엘인 줄 알고 얼굴을 땅에 대고 절을 하였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사울의 영적인 파탄을 볼 수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불순종한 사울을 버려 그와 함께 하시지 아니하셨습니다. 사울의 기도에 응답해 주지 않으셨습니다. 결국 사울은 하나님께서 금하신 신접한 여인에게 찾아가 묻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버림을 받은 사울의 영적 파탄을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사울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버릴 때 누구나 사울과 같이 죽은 자에게 가서 미래의 향방을 묻는 영적인 파탄에 빠질 수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사울을 우리의 교훈으로 삼아야 하겠습니다.

 

15절을 보면 사무엘이 사울에게 왜 나를 불러 올려서 나로 분요케 하느냐 곧 성가시게 하느냐고 하자 사울의 대답이 어떠합니까? “나는 심히 군급하니이다. 블레셋 사람은 나를 향하여 군대를 일으켰고 하나님은 나를 떠나서 다시는 선지자로도, 꿈으로도 내게 대답지 아니하시기로 나의 행할 일을 배우려고 당신을 불러 올렸나이다”고 했습니다(15). 사울은 다급해서 그랬다는 것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자신을 향하여 군대를 일으켰고, 하나님은 자신을 떠나서 선지자로도, 꿈으로도 대답지 아니하시므로 자신의 행할 일을 묻기 위해서 불러 올렸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이런 사울에게 불려 올려진 사무엘이 무엇이라고 합니까? 16-19절을 보면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너를 떠나 네 대적이 되셨거늘 네가 어찌하여 내게 묻느냐. 여호와께서 나로 말씀하신 대로 네게 행하사 나라를 네 손에서 떼어 네 이웃 다윗에게 주셨느니라. 네가 여호와의 목소리를 순종치 아니하고 그의 진노를 아말렉에게 쏟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오늘날 이 일을 네게 행하셨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너와 함께 블레셋 사람의 손에 붙이시리니. 내일 너와 네 아들들이 나와 함께 있으리라. 여호와께서 또 이스라엘 군대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 붙이시리라”고 했습니다. 사무엘이 살아 있을 때 한 말을 그대로 반복하고 있습니다. 사무엘상 15장에 보면 사울이 여호와의 말씀을 불순종하고 블레셋 왕과 모든 좋은 짐승을 죽이지 아니하였을 때 사무엘은 사울에게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라고 했습니다(삼상 15:23, 26). 사무엘이 15장에서 한 말들을 지금 반복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다윗에게 왕위가 넘어갈 것과 사울이 아말렉을 진멸하지 않은 것으로 인하여 폐위가 될 것을 다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무엘은 사울에게 “내일 너와 네 아들들이 나와 함께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붙이심으로 사울과 그 아들들이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20절을 보면 사울이 사무엘의 말을 듣고 기진하여 땅에 엎드러졌습니다. 이것은 사무엘의 말을 듣고 두려워하였기 때문이요, 또한 하루 종일 음식을 먹지 못해서 기력이 쇠하여 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마 사울은 기도의 응답을 받기 위해서 금식을 한 모양입니다. 21-25절을 보면 이때 신접한 여인과 부하들이 사울을 권하여 음식을 먹고 기력을 회복할 것을 권하였습니다. 사울이 처음에는 거절하다가 그들의 강권함을 따라 그 여인의 집에 있던 살진 송아지를 급히 잡고 가루를 취하여 무교병을 만들어 구워먹고 기력을 찾은 후 그 밤에 자기 갈 길로 갔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한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신접한 여인에 의해 땅에서 올라온 영이 과연 사무엘의 영이냐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울에게 전한 말이 사무엘이 이미 한 말이며, 그리고 내일 길보아 전투에서 사울과 그 아들들이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말이 사실 그대로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31장에 보면 사무엘이 말한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치매 이스라엘이 블레셋 앞에서 패하여 도망을 갔습니다. 사울과 그 아들들이 길보아 산에서 죽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그러면 과연 무당이 죽은 자의 영을 불러낼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무당이나 점치는 자들에게 가는 것을 금할 뿐만 아니라 그들을 약속의 땅에서 반드시 죽이라고 했습니다(신명기 13장, 18장). 그런데 지금 사울이 엔돌의 신접한 여인에게 찾아가서 사무엘을 불러달라고 합니다. 신접한 여인이 사무엘을 부르자 그가 와서는 그동안 사울에게 말한 내용을 다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이러한 초혼을 금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신접한 여인이 본 내용은 무엇입니까? 사단은 처음부터 거짓말하는 자였습니다. 얼마든지 사람을 거짓된 것으로 속일 수 있습니다. 죽은 조상을 불러내기도 하고 그들의 억울함을 들어주어 소원을 풀어줌으로 후손이 잘 되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문화에서 살아온 우리나라 사람들이 교회를 다닙니다. 교회에서는 어떤 식으로 합니까? 기도한다고 합니다. 그것도 기도의 능력이 많은 사람이 기도하면 장래의 어떤 문제들도 해결해 준다고 합니다. 복을 불러들이고 화를 면하게 해준다는 예언기도를 한다고 합니다. 이들은 예수 무당들이 됩니다. 성경에서 예언이라는 말씀도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예언이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선포하는 것이지 자신의 원화소복(遠禍召福)을 위한 예언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장래 일을 미리 알지 못하도록 막아두었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뜻을 막아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이 심판을 받는다는 것은 반드시 이루어질 예언입니다. 그 날과 그 시는 우리가 알지 못하지만 눈에 보이는 이 하늘과 땅들이 사라집니다. 그러므로 보이는 것에 목숨 걸고 살지 말라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 예언하는 것입니다. 공동번역에서는 예언을 말씀의 선포라고 합니다. 구약의 예언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언합니다. 신약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완성을 선포합니다. 그리고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예언합니다. 이러한 예언이란 다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선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당에게 점치듯이 소위 영발이 있다고 하는 자들에게 가서 장래 일을 물어 보고, 기도 많이 한다는 자들에게 찾아가서 기도 받는 것은 하나님 앞에 가증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일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전도서 7:13-14절을 보면 “하나님의 행하시는 일을 보라. 하나님이 굽게 하신 것을 누가 능히 곧게 하겠느냐.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하나님이 이 두 가지를 병행하게 하사 사람으로 그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장래 일을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시고 곤고한 날에는 뒤돌아보아 생각하라고 합니다. 이 두 가지를 병행하여 두셨기에 사람으로 예측하여 살지 못하게 합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다 예측하면 주님을 믿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무당에게 찾아가듯이 기도한다는 사람들에게 예언기도 받으려고 가는 자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역대상 10:13-14절을 보면 “사울의 죽은 것은 여호와께 범죄하였음이라. 저가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또 신접한 자에게 가르치기를 청하고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저를 죽이시고 그 나라를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 돌리셨더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사울에 대한 평가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고 신접한 자에게 가르치기를 청하였고 여호와께 묻지 않아서 죽이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호와께 물어도 대답도 하지 않으시고는 여기서는 여호와께 묻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대답하지 않는 것도 대답입니다. 그가 묻고자 한 것은 결국 자기의 위신과 체면과 승리를 위한 질문이기에 대답하지 않습니다(참고. 삼상 15:30). 그래서 자기가 원하는 대답을 듣고 싶어서 무당을 찾아간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지 않습니까? 내가 원하는 대답, 내가 원하는, 나를 위하는 복음을 찾아다니고 있지는 않습니까?

 

히브리서 1:1-2절을 보면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모든 날 마지막이 언제입니까? 예수님의 십자가로 다 이루었다고 하시고 성령이 임하여 성경이 완성된 때입니다. 이제 다른 모양으로 말씀하지 않습니다. 사울 시대는 꿈과 우림과 선지자들로 말씀하셨지만 이제는 아들을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모든 성경은 아들을 증거 합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통하여 그 아들의 말을 듣고 믿는 것이 참된 예언을 받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그것으로 인하여 보배가 드러나게 됩니다.

 

고린도후서 4:7-11절을 보면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 산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움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질그릇 같은 육체에 예수 그리스도라는 보배를 담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인하여 고난을 받을 때 예수님의 생명이 우리의 죽을 육체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사울의 영적 파탄을 우리의 교훈으로 삼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며,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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