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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딛 2:15-3:8
성경본문내용 (15)너는 이것을 말하고 권면하며 모든 권위로 책망하여 누구에게든지 업신여김을 받지 말라(1)너는 저희로 하여금 정사와 권세 잡은 자들에게 복종하며 순종하며 모든 선한 일 행하기를 예비하게 하며(2)아무도 훼방하지 말며 다투지 말며 관용하며 범사에 온유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낼 것을 기억하게 하라(3)우리도 전에는 어리석은 자요 순종치 아니한 자요 속은 자요 각색 정욕과 행락에 종노릇한 자요 악독과 투기로 지낸 자요 가증스러운 자요 피차 미워한 자이었으나(4)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을 나타내실 때에(5)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6)성령을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 주사(7)우리로 저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후사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8)이 말이 미쁘도다 원컨대 네가 이 여러 것에 대하여 굳세게 말하라 이는 하나님을 믿는 자들로 하여금 조심하여 선한 일을 힘쓰게 하려 함이라 이것은 아름다우며 사람들에게 유익하니라
강설날짜 2012-05-09

2012년 디도서 공부


선한 일을 힘쓰게 하라


말씀:디도서 2:15-3:8
 
우리는 지난 시간에 2:11-14절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은혜로 구속하시고, 또한 은혜로 양육하시는 것을 살펴봤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를 보면 ‘구원은 은혜로, 구원 받은 뒤에는 사람의 책임과 행함으로’라는 말을 마치 공식처럼 가르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로 즉 오직 은혜로 구원을 얻었다는 말을 개신교라면 다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구원 이후에는 우리의 행함을 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만약 이렇게 말하게 되면 결국 구원 이전에는 인간이 죄인이라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지만 구원 받은 후에는 이제 인간이 선한 일을 해 낼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성경을 볼 때도 그렇게 보이기도 합니다. 은혜로 구원 받는다는 이야기도 있고, 구원 받은 자로서 선하고 바르게 살라는 말씀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보아야 하는 것입니까? 성경은 인간의 구원이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 목적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창조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구속인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영광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골 1장). 골로새서 1:11-20절을 보면 “그 영광의 힘을 좇아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그가 근본이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구원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은 구원 이후에 인간이 은혜에 보답을 하거나 선하고 아름다운 행위를 함으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얼마나 대단하시기에 구원 이후의 인간에게서 나오는 모든 선한 일도 인간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인가를 드러내시는 차원입니다.

 

고린도전서 2:1-5절을 보면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라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수많은 서신에서 성도로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내용들을 많이 증거했습니다. 그런데 그 많은 증거를 할 때에 자신의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 박하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다고 합니다. 이것은 자신의 전도가 오직 성령의 나타남으로 인하여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함이었습니다.

 

구원받은 사람이 자기 의지나 결단으로 선한 일을 할 수도 있고, 은혜로 할 수도 있습니다. 그 일의 결과 곧 그 열매를 보면 꼭 같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 안의 원인은 다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향한 봉사가 정말로 은혜에 기초한 것인지, 아니면 자기의 행함에 기초한 것인지를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은혜라면 감사와 기쁨이 나올 것입니다. 사람들이 알아주든 알아주지 아니하든 오직 주님께 대한 감사가 나올 뿐입니다. 그러나 자기의 행함에 기초한 것이라면 무엇이 나오겠습니까? 자기 자랑이 나올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알아주지 아니하면 섭섭합니다. 그리고 알아주지 않더라도 자기 의에 스스로 도취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를 위해 일 할 때 그것이 자기 의지에 기초한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은혜에 기초한 것인지를 잘 살펴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생명이 달린 중요한 문제입니다. 갈라디아서 1:8-9절에 보면 바울은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는다고 선언했습니다. 또한 갈라디아서 3:3절에서는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치겠느냐고 책망하고 있습니다. 구원은 은혜로 받지만 구원 받은 후에는 우리의 의지와 행함으로 산다는 것은 갈라디아서에 기초해 보면 다른 복음인 것입니다.

 

이제 오늘 본문 디도서 2:15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너는 이것을 말하고 권면하며 모든 권위로 책망하여 누구에게든지 업신여김을 받지 말라”라고 합니다. 여기서 ‘이것을 말하라’라는 것은 우선적으로 2:1-14절의 내용을 말합니다. 곧 늙은 남자, 늙은 여자, 젊은 남자, 젊은 여자, 그리고 종에게 이르기까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내용들이 우리가 지난주에 보았던 대로 은혜로 양육을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오늘 본문 말씀에서도 계속해서 그 은혜를 증거 하고 있는 것입니다.

 

먼저 지난 시간에 본 디도서 2:11-14절을 보면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치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우리를 양육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원은 은혜이고 그 다음 양육은 너희가 스스로 책임지라고 하지 않습니다. 부모가 아이를 낳은 후 아이에게 네 마음대로 자라라고 합니까? 아닙니다. 정상적인 부모라면 해산 후 그 아이를 부모가 양육해 나가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은혜로 구원하시고 또한 우리를 은혜로 양육 하신다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로 확실하게 양육하시는가 하면 자신을 주심까지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셔셔 구속하신 백성을 그리스도의 영광을 소망하도록 은혜로 양육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이 모범적인 행동을 해야 할 필요성(1-10절)은 11-14절에서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은혜에 근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이 해방하는 작용을 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그 곳에서 은혜가 또한 교육활동을 하기 시작하여 지금의 세상에서 구원을 이루는 새로워진 삶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서신서에 나오는 모든 명령의 말씀을 우리가 율법적으로 받는 것이 아니라 은혜로 받는 것입니다. 여기서 ‘율법적으로 받는다’는 것은 그 행함의 책임이 받는 자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은혜로 받는다’는 것은 우리가 행할 수 없기에 주님께서 이루어주실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권면의 말씀 한마디 한마디를 우리가 얼마나 순종하지 못하는 자인가를 깨닫고 회개하게 하시며 겸손히 우리 주님을 의지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는 자신이 힘을 다해 수고하였으나 자기가 아니요,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고 증거 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10절에 보면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 했습니다.

 

디도서 3:1-2절을 보면 “너는 저희로 하여금 정사와 권세 잡은 자들에게 복종하며 순종하며 모든 선한 일 행하기를 예비하게 하며 아무도 훼방하지 말며 다투지 말며 관용하며 범사에 온유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낼 것을 기억하게 하라”고 합니다. 우리가 이 말씀대로 살고 있습니까? 정사와 권세 잡은 자들에게 복종하고 순종하고 있습니까? 바울이 디도에게 권면하는 이 당시는 로마가 지배하고 있던 시대입니다. 그러므로 로마의 법에 복종하고 그 지도자들에게 순종하라고 합니다. 또 모든 선한 일을 예비하게 하고, 어떤 사람에게도 훼방하지 말고 다투지도 말고 관용하며 범사에 온유함을 모든 사람들에게 나타내라고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살고 있습니까? 대한민국의 정당한 법들을 다 복종하고 순종하고 있습니까?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 대해서도 관용과 온유로 대하고 있습니까? 만약 우리가 그렇게 안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다시 이를 악물로 도전해야 합니까? 우리가 잘 되지 않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내가 행할 능력이 없어서 그런 것입니까? 아니면 은혜가 없어서 그런 것입니까?

 

3-8절을 보면 “우리도 전에는 어리석은 자요, 순종치 아니한 자요, 속은 자요, 각색 정욕과 행락에 종노릇한 자요, 악독과 투기로 지낸 자요, 가증스러운 자요, 피차 미워한 자이었으나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을 나타내실 때에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성령을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 주사 우리로 저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후사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이 말이 미쁘도다. 원컨대 네가 이 여러 것에 대하여 굳세게 말하라. 이는 하나님을 믿는 자들로 하여금 조심하여 선한 일을 힘쓰게 하려 함이라. 이것은 아름다우며 사람들에게 유익하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어떤 상태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입게 되었는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들이 세상에 살면서 두 가지 인식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인식을 제대로 하고 산다면 물론 이것도 은혜로 되는 것입니다만 그 사람에게서 그리스도의 냄새가 날 것입니다.

 

그러면 그 두 가지가 무엇입니까? 첫째는, 자기가 어떤 자인지를 제대로 아는 것입니다. 사람들마다 자아를 찾고자 합니다. 그런데 자기가 누구인지를 모르는 것입니다. ‘나는 누구인가라고 묻고 있는 나는 누구인가?’ 그러고 사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끊임없이 자기를 좋게 보고 긍정하고 삽니다. 그러나 반대로 어떤 사람은 자기를 학대하고 미워합니다. 그 이유는 자기가 바라는 자아상이 미흡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자랑하든 미워하든 결국 모두 무엇입니까? 자기 사랑인 것입니다. 이러한 자기 사랑에서 나오는 것이라고는 다 어리석 자요, 순종치 아니하는 자요, 속은 자요, 정욕과 행락에 종노릇한 자요, 악독과 투기로 지내고, 가증스러운 자요, 피차 미워하는 자였다고 합니다. 우리가 여기서 자유로운 분이 있습니까? 3a절에 보면 “우리도 전에는”이라는 말로 끝이 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다 그런 자였다는 것입니다. 3-8절에 언급되고 있는 모습이 지금 우리의 모습이 아닙니까? 그렇다면 과연 우리가 지금 은혜를 받고 구원을 받은 사람이기는 한 것입니까? 이 부분이 제대로 인식되지 아니하였다면 우리는 아직도 속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자신의 죄와 비참함을 알게 되는데 아직도 자신의 죄와 비참한 모습을 보지 못하기에 남의 허물만 보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제대로 우리의 과거의 모습, 또는 현재의 모습이 이러함을 인식하게 된다면 우리에게는 회개 할 것 외에는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 은혜를 이야기 하고 은혜를 입었다고 하더라도 과거에 우리가 이러한 자였음을 잊어버리는 순간 벌써 자기 의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입니다. 개구리가 올챙이시절 모른다고 자기가 어떤 자리에서 은혜를 입었는지를 모르는 사람은 계속하여 어리석고, 순종치 아니하고, 속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피차 미워하고 있고, 용서하지 않는 채로 살아간다면 우리는 주님과 아무런 상관없이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만 달란트 빚진 자가 일백 데나리온 빚진 자의 멱살을 잡는 것처럼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자기 능력으로는 도저히 갚을 수 없는 빚을 탕감 받은 사실을 잊어버리고, 자기에게 아주 사소한 빚을 진 자에게 탕감해 주지 못하는 자가 바로 우리의 모습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자기가 어느 자리에서 나오게 되었는지를 늘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놀라고 부끄러워 입을 닫을 것이며, 주님의 은혜 외에는 이야기 하지 아니할 것입니다. 이런 차원에서 바울은 모든 사도들 보다 더 수고하고 충성하였지만 자기가 아니요,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우리 모두가 다 이러한 자라는 인식 곧 3-8절에서 말하고 있는 자라는 인식을 가지고 은혜를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식이 없는 자에게는 은혜란 장식품일 뿐입니다. 자기의 의로 대체할 수 있는 사람은 복음이 기쁜 소식이 되지 아니합니다. 그러나 성령이 임하고 자기가 얼마나 죄인인가를 제대로 인식하는 사람은 자기가 죽도록 충성하더라도 그것에 관심이 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에만 마음이 가는 것입니다. 4-5절을 다시 보면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을 나타내실 때에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어떠한 의로운 행위를 인함이 아니라 오직 주님의 긍휼하심으로 인하여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구원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이 우리의 어떠한 의로운 행위가 아니라는 것을 어떤 상황에서 드러내는 것입니까? 우리도 전에는 다 어리석고 순종치 아니하고 속고 있는 자로서 각색 정욕과 행락에 종노릇 하고 악독과 투기로 지내며 피차 미워하며 살았던 것입니다. 이런 상태에서 아무리 무엇을 만들어 낸다고 하더라고 우리에게서 선한 것이 나오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에 있으면서도 속고 있으니 모르는 것입니다. 이러할 때에 하나님의 사람 사랑하심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것이 긍휼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신 것입니다. 6절을 다시 보면 “성령을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 주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 구원이란 거듭남만이 아니라 성령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풍성히 부어주심으로 주님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후사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여기서는 믿음이라는 말도 없습니다. 우리가 믿었다는 반응도 없이 오직 주님께서 다 이루셨다는 것입니다. 이 은혜를 인식하라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비록 바르게 살고 있다고 하여도 불신자들에 대하여 관용하여야 하는 것은 자기들이 바르게 살고 있는 근거가 자기들에게 있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자신이 얼마나 엄청난 죄인인지를 제대로 알고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긍휼로 구원에 이르게 되었고 지금도 성령을 부어주심으로 영생을 소망하며 살게 하신다는 이 사실을 안다면 결코 자신의 행함을 자랑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직 나 같은 죄인을 이렇게 불러내시고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우리 주님을 찬양하며, 감사할 뿐입니다.

 

8절을 다시 보면 “이 말이 미쁘도다. 원컨대 네가 이 여러 것에 대하여 굳세게 말하라. 이는 하나님을 믿는 자들로 하여금 조심하여 선한 일을 힘쓰게 하려 함이라. 이것은 아름다우며 사람들에게 유익하니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이 말이 미쁘다고 합니다. 곧 신실하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원컨대 네가 이 여러 것에 대하여 굳세게 말하라고 합니다. 여기서 ‘이 여러 것’이란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행위에 의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의 긍휼로 인한 중생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과 영생의 소망을 가지게 하신 일들에 대하여 굳세게 말하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자들로 하여금 조심하여 선한 일을 힘쓰게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가 과거 어떤 자였는가를 잘 인식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또한 이러한 자들을 은혜로 구속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날마다 이 두 가지 사실을 인식함으로 오직 주님의 은혜만 드러나는 사람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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