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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사무엘상 11장
성경본문내용 (1)암몬 사람 나하스가 올라와서 길르앗 야베스를 대하여 진 치매 야베스 모든 사람이 나하스에게 이르되 우리와 언약하자 그리하면 우리가 너를 섬기리라(2)암몬 사람 나하스가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 오른눈을 다 빼어야 너희와 언약하리라 내가 온 이스라엘을 이같이 모욕하리라(3)야베스 장로들이 이르되 우리에게 이레 유예를 주어 우리로 이스라엘 온 지경에 사자를 보내게 하라 우리를 구원할 자가 없으면 네게 나아가리라 하니라(4)이에 사자가 사울의 기브아에 이르러 이 말을 백성에게 고하매 모든 백성이 소리를 높여 울더니(5)마침 사울이 밭에서 소를 몰고 오다가 가로되 백성이 무슨 일로 우느냐 그들이 야베스 사람의 말로 고하니라(6)사울이 이 말을 들을 때에 하나님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매 그 노가 크게 일어나서(7)한 겨리 소를 취하여 각을 뜨고 사자의 손으로 그것을 이스라엘 모든 지경에 두루 보내어 가로되 누구든지 나와서 사울과 사무엘을 좇지 아니하면 그 소들도 이와 같이 하리라 하였더니 여호와의 두려움이 백성에게 임하매 그들이 한 사람 같이 나온지라(8)사울이 베섹에서 그들을 계수하니 이스라엘 자손이 삼십만이요 유다 사람이 삼만이더라(9)무리가 온 사자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길르앗 야베스 사람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내일 해가 더울 때에 너희가 구원을 얻으리라 하라 사자들이 돌아가서 야베스 사람들에게 고하매 그들이 기뻐하니라(10)야베스 사람들이 이에 가로되 우리가 내일 너희에게 나아가리니 너희 소견에 좋을대로 우리에게 다 행하라 하니라(11)이튿날에 사울이 백성을 삼대에 나누고 새벽에 적진 중에 들어가서 날이 더울 때까지 암몬 사람을 치매 남은 자가 다 흩어져서 둘도 함께 한 자가 없었더라(12)백성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사울이 어찌 우리를 다스리겠느냐 한 자가 누구니이까 그들을 끌어내소서 우리가 죽이겠나이다(13)사울이 가로되 이 날에는 사람을 죽이지 못하리니 여호와께서 오늘날 이스라엘 중에 구원을 베푸셨음이니라(14)사무엘이 백성에게 이르되 오라 우리가 길갈로 가서 나라를 새롭게 하자(15)모든 백성이 길갈로 가서 거기서 여호와 앞에 사울로 왕을 삼고 거기서 여호와 앞에 화목제를 드리고 사울과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거기서 크게 기뻐하니라
강설날짜 2015-03-25

2015년 사무엘상 공부


길갈로 가서 나라를 새롭게 하자


말씀:사무엘상 11장

 

우리는 지난 시간에 사무엘상 10장 말씀을 통해서 사무엘이 공식적으로 사울을 모든 백성들 앞에서 제비를 뽑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는 것을 살펴봤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사무엘상 11장 말씀은 사울이 암몬 사람을 쳐서 승리함으로써 실제적으로 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르는 과정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1-2절을 보면 암몬 사람 나하스가 요단강 동쪽 지역 므낫세 빈 지파의 영토인 길르앗 야베스를 침략하였습니다. 암몬 족속은 창세기 19장에 보면 롯이 딸과 동침하여 낳은 족속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에서 구원을 받은 후 롯은 두 딸과 함께 산에 올라가 굴에 거하였습니다. 이때 그 딸들이 자손을 잇게 하기 위해서 아버지에게 술을 먹인 후 동침하여 아들을 낳습니다. 큰 딸은 아들을 낳아 그 이름을 모압이라 하였고, 작은 딸은 아들을 낳아서 그 이름을 벤암미라고 하였습니다. 모압은 모압 족속의 조상이 되었고, 벤암미는 암몬 족속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은 암몬 사람 나하스의 침공을 받자 나하스에게 봉신 조약을 맺고자 제안을 했습니다. “우리와 언약하자. 그리하면 우리가 너희를 섬기리라”(1). 참으로 굴욕적인 제안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암몬 족속 나하스는 이와 같은 야베스 사람들의 제안을 거절하고 더 굴욕적인 제안을 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내가 너희 오른 눈을 다 빼어야 너희와 언약하리라”고 했습니다(2).

 

요세푸스에 의하면 오른쪽 눈을 뺀다는 것은 전투를 할 수 없도록 만드는 일이라고 합니다. 옛날에 전투를 할 때 보면 대부분의 병사는 왼손으로 방패를 잡고 왼쪽 눈까지 가리고 오른쪽 눈으로 적을 보고 칼과 창으로 공격을 합니다. 그런데 그 오른쪽 눈을 빼 버리면 전쟁을 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하스가 “너희 오른 눈을 다 빼어야 너희와 언약하겠다”고 하는 것은 그들로 하여금 전투를 할 수 없는 자들로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치욕적인 모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참으로 이스라엘은 나라꼴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이와 같은 이스라엘의 모욕은 여호와의 이름이 모독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3절을 보면 이에 야베스의 장로들은 나하스에게 일주일간의 말미를 달라고 합니다. 그 일주일 동안 이스라엘 전역에 사자들을 보내어 자신들을 구원할 자를 찾아보고 없으면 나하스에게로 나아가겠다고 했습니다. 곧 일주일 동안 전국에 사자를 보내어 구원할 자를 찾아보고 없으면 나하스의 제안대로 오른쪽 눈을 뽑고 봉신조약을 맺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제안은 상식적으로 보면 받아 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하스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러한 제안을 받아 주었습니다. 이것은 나하스가 얼마나 자신 만만 하였으며, 거만하였는가를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야베스의 장로들은 사자들을 온 이스라엘 지경으로 보내었습니다.

 

그러면 사자들의 소식을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응이 어떠하였습니까? 4절에 보면 “이에 사자가 사울의 기브아에 이르러 이 말을 백성에게 고하매 모든 백성이 소리를 높여 울더니”라고 했습니다. 사무엘서 저자는 야베스의 장로들이 이스라엘 각 지역으로 보낸 사자에 관해서 기술을 할 때에 사울의 기브아에 보낸 사자에 관해서만 기술을 하고 있습니다. 야베스의 사자가 사울의 기브아에 이르러 나하스의 말을 백성들에게 그대로 전하였습니다. 이때 이스라엘 지파들은 요단 동쪽 지파들의 위급한 형편에 마음이 아파 모든 백성들이 소리를 높여 울었습니다. 기브아는 요단강 서쪽 예루살렘 위쪽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기브아는 야베스와는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사사기서 21장에 보면 야베스의 처녀 400명을 기브아의 베냐민 지파에게 강제로 끌고 와서 결혼을 하게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사기 19-21장에 보면 어떤 레위인이 예루살렘에서 첩을 얻었습니다. 이들이 베냐민에 속한 기브아에 이르러 유숙을 하였는데 그 성의 비류들에 의해 욕보임을 당하고 죽게 됩니다. 이에 그 레위인이 첩의 시체를 열 두덩이로 나누어 온 이스라엘 사방으로 보내었습니다. 이 일로 인해 모든 이스라엘 자손들이 베냐민 지파를 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베냐민 지파가 진멸을 당하고 겨우 육백 명만 살아남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베냐민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딸을 아내로 내어주지 않기로 맹세를 하였습니다. 이로 인해서 한 지파가 이스라엘 중에서 사라질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베냐민 지파의 멸문을 막기 위해서 이스라엘 지파 중 미스바에 올라오지 아니한 야베스 길르앗 거민을 치고 젊은 처녀 400명을 얻어서 베냐민 자파의 남은 자들과 혼인하게 하였습니다. 이처럼 기브아와 야베스는 역사적으로 깊은 관계가 있었습니다.

 

5절에 보면 사울이 밭에서 소를 몰고 오다가 울부짖는 백성들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이에 백성들에게 물었습니다. “무슨 일로 우느냐?” 이에 그들은 야베스 사람들의 위급한 상황을 사자들이 말한 그대로 전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말을 들었을 때 사울에게서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6절에 보면 “사울이 이 말을 들을 때에 하나님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매 그 노가 크게 일어나서”라고 했습니다. 사울이 하나님의 신에 크게 감동되어서 그에게서 거룩한 분노가 크게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은 우리가 사사기서를 공부할 때 본 것처럼 사사시대에 사사들이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을 때 일어났던 전형적인 현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이 사울에게서 일어난 것입니다. 이것은 사울이 여호와의 전쟁을 지도할 군사 지도자로 변형되는 경험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임하자 사울은 갑짜기 엄청난 용기와 담력의 사람으로 변하였습니다. 곧 사울이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세워지는 것입니다.

 

7절에 보면 “한 겨리 소를 취하여 각을 뜨고 사자의 손으로 그것을 이스라엘 모든 지경에 두루 보내어 가로되 누구든지 나와서 사울과 사무엘을 좇지 아니하면 그 소들도 이와 같이 하리라 하였더니. 여호와의 두려움이 백성에게 임하매 그들이 한 사람 같이 나온지라”라고 했습니다. 사울은 즉시 일어나 자신이 몰고 가던 한 겨리의 소를 잡아 각을 뜨고 사자들에게 주어서 이스라엘 모든 지역에 두루 보내었습니다. 그러면서 말하기를 “누구든지 나와서 사울과 사무엘을 좇지 아니하면 그 소들도 이와 같이 하리라”고 하였습니다(7). 이에 백성들에게 여호와의 두려움이 임하여 한 사람같이 나왔습니다. 그때 모인 백성의 수가 어떠하였습니까? 8절에 보면 사울이 베섹에서 그들의 수를 계수해 보니 이스라엘 자손이 삼십만 명 이었고, 유다 사람이 삼만 명이었습니다.

 

9-11절을 보면 모인 무리들이 사자들에게 말합니다. “너희는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에게 내일 해가 더울 때에 너희가 구원을 받으리라”는 말을 전하라고 합니다. 이에 사자들이 돌아가서 야베스 사람들에게 고하자 야베스 사람들이 크게 기뻐하였습니다(9). 그리고 야베스 사람들이 암몬 족속에게 말하기를 “우리가 내일 너희에게로 나아가리니. 너희 소견에 좋은 대로 우리에게 다 행하라”고 합니다(10). 마치 구원자가 자신들에게 없는 것처럼 말을 하여서 그들로 안심하게 한 것입니다. 그런 후에 이튿날에 사울은 백성을 삼대로 나누어 새벽에 암몬 족속의 진을 기습하였습니다. 날이 더울 때까지 암몬 사람을 치매 그들이 다 흩어져서 둘도 함께 하는 자가 없었습니다(11). 사울은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이로 인해 사울은 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인정하는 왕으로 세움을 받게 되었습니다.

 

12-15절 말씀은 사울이 길갈에서 왕으로 옹립되는 과정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백성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사울이 어찌 우리를 다스리겠느냐 한 자가 누구니이까. 그들을 끌어내소서 우리가 죽이겠나이다. 사울이 가로되 이 날에는 사람을 죽이지 못하리니. 여호와께서 오늘날 이스라엘 중에 구원을 베푸셨음이니라. 사무엘이 백성에게 이르되 오라. 우리가 길갈로 가서 나라를 새롭게 하자. 모든 백성이 길갈로 가서 거기서 여호와 앞에 사울로 왕을 삼고 거기서 여호와 앞에 화목제를 드리고 사울과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거기서 크게 기뻐하니라”(12-15). 백성들이 사울에게 말하기를 “사울이 어찌 우리를 다스리겠느냐고 한 자들을 끌어내어 죽이자”고 합니다. 그러자 사울은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13절을 다시 보면 “여호와께서 오늘 이스라엘 중에 구원을 베푸셨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사울은 암몬과의 전쟁에서 이긴 것이 여호와께서 구원을 베푸셨기 때문이라고 고백합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은혜에 기초해서 자신을 대적하는 자들을 용납하였습니다. 이러한 왕이 하나님께서 세우시고자 하시는 왕입니다. 그러므로 11장에서 구원이라는 말이 중심을 이루며 연결이 되는 것입니다. 3절에 보면 “우리를 구원할 자가 없으면…”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구원자가 없으면 자신들은 나하스에게 눈이 뽑히고 종이 될 수밖에 없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마치 삼손이 눈이 뽑히고 조롱을 당한 모습과 같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구원자가 있습니다. 누구입니까? 사울입니다.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사울에게 하나님의 영이 임하여 거룩한 영적인 분노가 일어나고 여호와의 두려움이 백성들에게 임하여 한 사람 같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를 통하여 구원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구원이 일어나고 나서 사울이 하는 말이 무엇입니까? 13절을 다시 보면 “여호와께서 오늘날 이스라엘 중에 구원을 베푸셨음이니라”고 고백을 하였습니다. 사울은 이때 처음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주어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암몬에 대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승리가 여호와 하나님께서 베푸신 구원임을 고백한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그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사무엘은 백성들에게 무엇을 명합니까? 14절을 다시 보면 “오라. 우리가 길갈로 가서 나라를 새롭게 하자”라고 합니다. 길갈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어떤 곳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처음 할례를 행한 곳입니다. 여호수아서 5:1-9절을 보면 “요단 서편의 아모리 사람의 모든 왕과 해변의 가나안 사람의 모든 왕이 여호와께서 요단 물을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서 말리시고 우리를 건네셨음을 듣고 마음이 녹았고 이스라엘 자손들의 연고로 정신을 잃었더라. 그 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다시 할례를 행하라 하시매. 여호수아가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할례산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할례를 행하니라. 여호수아가 할례를 시행한 까닭은 이것이니. 애굽에서 나온 모든 백성 중 남자 곧 모든 군사는 애굽에서 나온 후 광야 노중에서 죽었는데 그 나온 백성은 다 할례를 받았으나 오직 애굽에서 나온 후 광야 노중에서 난 자는 할례를 받지 못하였음이라.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치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대하여 맹세하사 그들의 열조에게 맹세하여 우리에게 주마 하신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그들로 보지 못하게 하리라 하시매. 애굽에서 나온 족속 곧 군사들이 다 멸절하기까지 사십년 동안을 광야에 행하였더니. 그들의 대를 잇게 하신 이 자손에게 여호수아가 할례를 행하였으니 길에서는 그들에게 할례를 행치 못하였으므로 할례 없는 자가 되었음이었더라. 온 백성에게 할례 행하기를 필하매 백성이 진중 각 처소에 처하여 낫기를 기다릴 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날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굴러가게 하였다 하셨으므로 그곳 이름을 오늘까지 길갈이라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길갈’이라는 이름의 뜻이 ‘굴러가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애굽의 수치를 길갈에서 굴러 버린 것처럼 이제 사사시대의 그 모든 모욕과 수치와 조롱을 굴러버리는 것이 바로 나라를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 나라를 새롭게 하기 위하여 왕을 세우는데 이 왕은 여호와의 구원을 증거 하는 자로 세워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길갈에서 사울을 왕으로 세우는데 여호와 앞에서 세웁니다. 그리고 여호와 앞에 화목제를 드립니다. 그러자 사울과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들이 거기서 크게 기뻐하였습니다. 15절을 다시 보면 “모든 백성이 길갈로 가서 거기서 여호와 앞에 사울로 왕을 삼고 거기서 여호와 앞에 화목제를 드리고 사울과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거기서 크게 기뻐하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길갈에 가서 나라를 새롭게 하자’라는 사무엘의 제안은 단지 왕정을 새롭게 도입하자는 말이 아닙니다. 이 말은 하나님 백성의 공동체로서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발전적으로 계승하자는 것입니다.

 

여기서 ‘나라’라고 번역된 단어가 ‘함무르카’(hk;Wlmh])라는 단어 인데 ‘그 왕국’(the Kingdom)이라는 말입니다. 곧 출애굽기 15:17-18절에서 예언되고 있는 여호와의 다스림을 지칭합니다. 출애굽을 통한 구원 이래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왕국이 아닌 적이 한시도 없었습니다. 출애굽기 15:17-18절을 보면 “주께서 백성을 인도하사 그들을 주의 기업의 산에 심으시리이다. 여호와여 이는 주의 처소를 삼으시려고 예비하신 것이라. 주여 이것이 주의 손으로 세우신 성소로소이다. 여호와의 다스리심이 영원무궁하시도다 하였더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나라를 새롭게 하자’라는 말은 이미 출애굽의 구원의 역사 이후로 여호와께서 왕 노릇하신 그 왕국을 새롭게 하자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인간 대리자를 왕으로 세워 ‘하나님의 통치’를 새롭게 하자라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인간 왕을 중간에 두고 하나님 나라를 새롭게 하자는 사무엘의 호소는 결국 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서는 열왕기 시대의 인간 왕들의 학정을 미리 내다보면서 사무엘의 정신으로 분연히 일어나 인간 왕과 대결할 예언자들의 출연을 미리 내다 보고 있는 것입니다. 예언자들은 하나님 나라를 새롭게 하는 왕정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와 크게 대결하는 인간 왕국을 이룬 인간 왕들을 질책하고 탄핵하고 심판을 했습니다. 이처럼 사무엘이 인정했던 왕정은 인간 왕을 절대화 하는 이교도적인 왕정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제한적인 왕정, 곧 예언자적인 감시와 감찰의 영향 아래 있는 왕정이었습니다.

 

8장에서 우리가 살펴봤듯이 이스라엘 장로들과 유력자들이 처음으로 왕을 요구하자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요구에는 하나님의 왕되심을 거부하는 배교적인 동기가 작용하고 있음을 아시고 불쾌하게 응답하셨습니다. 사무엘상 8:6-9절을 보면 “우리에게 왕을 주어 우리를 다스리게 하라 한 그것을 사무엘이 기뻐하지 아니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 내가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날부터 오늘날까지 그들이 모든 행사로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김 같이 네게도 그리하는도다. 그러므로 그들의 말을 듣되 너는 그들에게 엄히 경계하고 그들을 다스릴 왕의 제도를 알게 하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왕을 구한 목적이 어디에 있는가를 볼 수 있습니다. 자신들을 애굽에서 구원해 주신 여호와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기를 거부한 것입니다.

 

사울의 경우를 보면 세 가지 절차를 통해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인정이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언자이자 사사요, 제사장인 사무엘을 통해서 먼저 기름 부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의 제비뽑기를 통해서 공개적인 임명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암몬과의 전쟁을 통해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서 사울을 왕으로 세우시는 것은 이스라엘의 왕이 하나님의 다스리심 아래 있도록 하시기 위한 안전 장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왕정 도입을 허락하시면서 왕의 임명과 옹립을 제사장과 예언자들의 감독 아래 두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예언자 사무엘을 통해서 사울을 왕으로 세움으로써 세속 왕권이 전제화 되는 것을 막고 군사적 지도력을 행사하는 직분으로 제한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사울은 처음부터 전제적인 권력을 휘두르는 이방 족속의 왕을 가리키는 ‘멜렉’이 아니라 군사령관을 나타내는 ‘나기드’로 불렸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새로워지는 것은 여호와 앞에 서는 것입니다. 여호와 앞에서 자신의 수치를 굴러 보내어 버리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여호와 앞에 선다는 것은 여호와의 말씀 앞에 서는 것입니다. 말씀 앞에 선다는 것은 모든 언약을 완성하시고 뱀의 머리를 부수어 버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서는 것입니다. 사람이 거울을 보면서 얼굴과 몸을 고치는 것처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 우리를 보는 것입니다. 이것을 언약의 갱신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날마다 주님 앞에서 새로워지지 않으면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뱀과 언약을 맺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은 뱀의 머리를 십자가로 부수어버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믿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구원자가 나타났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승리하셨습니다. 사단 마귀가 한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갈 것입니다. 신명기 28:7절에 보면 “네 대적들이 일어나 너를 치려하면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패하게 하시리니. 그들이 한 길로 너를 치러 들어왔으나 네 앞에서 일곱 길로 도망하리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구원자가 이미 나타났으며, 이미 승리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 안에서만 우리가 날마다 새롭게 됩니다. 고린도후서 5:17절을 보면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우리의 구원자가 예수 그리스도임을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이 주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음을 확신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새로운 피조물로써 날마다 기뻐하며 우리 왕의 통치를 온전히 받아가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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