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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요한삼서 1:1-4

2008년 요한삼서 공부
                                                   내 영혼이 잘 됨 같이
말씀:요한삼서 1:1-4

 

요한이서 1절에 보면 요한서신의 저자가 장로라고 자신을 소개합니다. 삼서에서도 자신을 장로라고만 하고 이름을 안 밝히고 있습니다. 이것은 아마 이 편지를 받는 자는 편지를 보내는 자가 누구인지 잘 알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장로 곧 사도 요한은 사랑하는 가이오에게 편지한다고 합니다. 장로는 복음을 전하는 자이고, 가이오는 그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 같습니다. 이들은 영적으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였습니다. 그래서 4절에 보면 자녀라고 합니다.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즐거움이 없도다.” 복음을 전하는 자에게 있어서 복음을 전했을 때 그가 복음을 받아들이고 그들이 복음의 진리 안에서 살아간다는 소식보다 더 큰 기쁜 소식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무슨 선물을 한다고 해서 기쁘겠습니까? 돈을 갖다 준다고 해서 기쁘겠습니까? 참으로 복음을 전하는 자에게 있어서는 복음을 받아들이고 복음의 진리 가운데 산다는 소식보다 더 기쁜 소식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3절에 보면 가이오 편에서 오는 형제들이 와서 전하는 소식이 무엇인가하면 가이오가 정말 복음의 진리 가운데 산다는 소식을 전해 주는 것입니다. 이 소식을 듣고 내가 심히 기뻐하며, 14절에 보면 속히 보기를 바라고 얼굴을 대면하여 말하기를 원한다고 하면서 요한 삼서를 써 보내는 것입니다.

 

요한삼서에는 가이오와 그의 대적 디오드레베, 두 사람이 있는데 아마 두 사람은 갈등과 다툼 가운데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장로는 편지를 통해 가이오를 격려하는 것입니다. 디오드레베는 진리를 순종하지 아니하는 사람입니다. 오히려 교회에서 순회 전도자들을 대적하고 섬기는 자들을 좇아내는 사람입니다. 이런 디오드레베로 인해 힘든 가운데 있는 가이오를 격려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격려합니까? 1절에 보면 “사랑하는 가이오, 참으로 사랑하는 자에게 편지한다”고 하면서 인사말을 합니다. 그 인사말이 무엇입니까? 2절에 보면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구하노라”고 합니다. 우리가 인사말을 할 때 이렇게 하고 끝나면 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안 되죠? 왜 그렇습니까? 이 말씀이 한국 교회에 너무나 왜곡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인사말은 한국교회의 교인들이라면 거의 다 아는 내용이 되었습니다. 기독교서점에 가면 용품을 파는 곳이 있습니다. 그 용품들에 새겨진 말씀 중에 이 말씀이 제일 많을 것입니다. 이 말씀이 왜 그렇게 많이 알려진 것입니까? 이 말씀으로 삼박자 구원이라는 책도 나왔습니다. 영혼이 잘되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아예 체계화하여 공식적인 신앙의 틀로 형성이 된 것입니다. 영혼만 잘 되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다는 것입니다. 영혼이 잘 못되어 있기에 범사에 일이 잘 안되고 병이 든다고 보는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맞기도 합니다. 범죄 하여 하나님과 단절된 인생이기에 수고와 슬픔과 사망의 고통이 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영혼이 잘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말하지 않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영혼이 잘 된다는 것을 종교적으로 풀어낸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 정성 바치는 식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물론 삼박자 구원을 말한 사람이 교회 개척을 할 때에 가난한 동네에서 천막치고 개척을 하여 가난하고 병든 자들이 어떻게 하면 부자도 되고 건강하게 될까를 생각하면서 성경을 보니 이런 말씀이 눈에 확 들어오게 된 것이 아닌지 추측해 봅니다. 우리가 자기의 필요를 위하여 성경을 보면 얼마든지 그렇게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영혼이 잘 된다는 것을 우리가 세상에서 무슨 일이 잘된다는 그런 개념을 가지고 있기에 일이 잘 풀리고 어려움이 없고 승진하고 성공하는 것을 잘 된다고 보는 것입니다. 교회도 개척하여 몇 년 만에 성공하였는가를 간증하며 성공사례로 제시하면서 잘되는 교회라고 하는 것이니 무엇이나 잘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성경에서 다시 점검해야 하는 것입니다.

 

신명기 28장에 보면 하나님의 모든 명령과 규례를 다 지켜 행하면 범사에 복을 받는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단 한 가지라도 어기면 범사에 저주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도 영혼이 잘되는 길을 교회에서 제시하는 것은 몇 가지 안 됩니다. 주일을 잘 지키고, 십일조를 잘하고, 주의 종을 잘 섬기고, 교회의 봉사를 잘하고, 전도를 잘하면 범사에 복을 받는 다고 가르치고 설교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한다고 영혼이 잘되어 복을 받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인간의 행함으로는 어떤 것도 하나님 앞에서 의가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혼이 잘 된다는 것도, 범사에 잘 된다는 것도 세상의 가치관이 전혀 아니라는 것입니다. 구약의 거짓 선지자들이 외친 내용이 무엇입니까? 제사를 잘 드리면, 절기를 잘 지키면 복을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참된 선지자들은 그런 제사나 절기가 무슨 소용인가며 걷어치우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의 마음이 돌이켜지지 않았는데 그런 제사나 분향을 받지 않는다고 이사야 선지자나 예레미야 선지자나 아모스 선지자들이 외쳤습니다. 다른 선지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런 참된 선지자들은 도리어 거짓 선지자들에 의하여 많은 고난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영혼이 잘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잘 된다는 단어가 로마서 1:10절에서 쓰이고 있습니다. “어떠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 바울사도가 로마로 가기를 원하는데 그 길이 잘 열려지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사도가 자기의 사사로운 욕심이 아니라 복음을 위하여 길이 잘 열려지기를 기도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잘됨이 어떻게 나타났습니까? 죄수의 몸으로 묶여서 배를 타고 가다가 풍랑이 일어나 배가 파선하게 되었습니다. 도대체 잘 된 일이 하나도 없어 보입니다. 도리어 일이 꼬이고 어려움에 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이 그대로 이루어지기에 잘 된 것이라는 것입니다. 창세기의 요셉을 볼 때도 영혼이 잘된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배울 수 있습니다. 요셉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범죄 하지 않았을 때에 오히려 감옥에 갇혔습니다. 얼마나 억울하였으면 술 맡은 관원장의 꿈을 해석해 주면서 복직하면 자신의 신세를 왕에게 알려서 풀어달라고 했겠습니까? 그러나 술 맡은 관원장은 복직된 후 요셉을 잊어버렸습니다. 여전히 요셉은 감옥에 억울하게 갇혀 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감옥에 갇히는 것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니 형통하였다고 합니다. 창세기 39:23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더라”고 했습니다. 또 창세기 39:23절에 보면 “전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돌아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케 하셨더라”고 했습니다. 요셉이 나중에 총리가 되었기에 그렇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총리가 되어 죽고 유언할 때 보면 그는 후손들에게 자기의 해골을 매고 나가라고 하였습니다. 그가 그렇게 한 것은 애굽의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의 땅에, 하나님의 약속 안에 들어가는 것이 복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의 일반적인 현상은 세상에서 어렵고 힘들면 저주 받아서 그렇게 되었다고 봅니다. 무언가 세속적으로 성공하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비결이 무엇인지 또 간증하러 다닙니다. 나는 하나님께 이렇게 하여 이런 복을 받았다는 간증들이 오늘도 수백만부씩 찍혀서 온 거리에 흘러넘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런 설교나 간증 집회가 수도 없이 쏟아지고 있는 것을 봅니다.

 

그러면 영혼이 잘된다는 의미를 실 예를 들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가장 영혼이 잘 되신 분이 누구입니까? 예수님입니다. 우리는 그 분의 삶을 보면 무엇인 진리인지 아닌지 구별이 될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백퍼센트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신 분은 예수님뿐입니다. 이 예수님은 정말 그 영혼이 잘 되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의 실제 삶속에서는 어떤 대접을 받았습니까? 공중의 새도 깃 들 집이 있고 여우도 굴이 있지만 예수님은 머리 둘 곳조차 없었습니다(눅 9:57-58). 젊은 나이에 저주를 받아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이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믿고 산다고 하면서 영혼이 잘된다는 것을 세상에서의 성공을 말할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면 오히려 그 사람들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사람들은 땅의 영광을 구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는 이 땅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메시아를 기다려왔던 유대인들의 사고방식은 그들이 원한 메시아였던 것입니다. 그들은 이 땅의 메시아, 곧 정치적인 메시아를 기다렸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배척하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배척한 것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주지 않는다고 배척받은 것이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전한다는 것은 민중들의 요구를 채워주는 이야기는 아닌 것입니다. 송대관의 네 박자라는 노래를 직접 들어 본적이 있는데 그런 노래가 히트를 하는 것은 그 시대의 흐름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삼박자 구원이란 우리나라가 가난한 시절에 민중들에게 딱 들어맞는 신화였던 것입니다. 그와 함께 경제성장이 일어나면서 세상의 부요함이 하나님의 축복의 상징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야고보서 5장에서는 자본의 축적을 저주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 5:1-3절에 보면 “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으로 말미암아 울고 통곡하라.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먹었으며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 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왜 자본의 축적을 교회에서는 복이라고 여기는 것입니까? 막스 베브라는 독일의 사회과학자가 이 문제를 가지고 연구를 하였습니다. 자본주의의 발달이 서구에 집중이 되어있다는 것입니다. 서구에서 자본을 축적하는 자본주의가 그렇게 발달된 원인이 무엇인지를 연구해 본 것입니다. 간단히 말씀드리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증거가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부르심을 받는 것은 예정 되어 있어야 부르심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정 되었는지 아니 되었는지 불안한 것입니다. 내가 예정되었다는 징표를 자기 직업에 충실 하는 것이 구원의 징표로 본 것입니다. 그래서 직업 소명설이 나온 것입니다. 자기 직업에 충실하여 자본을 축적하게 되는 것은 자신의 욕심이 아니라 신이 주신 사명에 충실함으로 주어진 도덕적 성격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물론 칼빈이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이런 결과가 나오게 된 것입니다. 그 시대적 배경도 고정된 신분제도들이 무너지면서 상공인들이 자본을 축적하는 하나의 정당한 논리로 자리 잡게 된 것입니다. 그동안 자본이 힘이 되는 것을 알았지만 신분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였는데 이제는 자본이 많은 것이 하나님의 구원을 받은 표이며, 축복이라는 근거를 가지게 되니 얼마든지 자본을 축적하여 나가게 된 것입니다. 그러한 자본주의의 발달에 칼빈의 사상이 영향을 미친 것입니다. 이런 영향으로 많은 교회에서 특히 개혁주이라고 하고, 칼빈주의라고 하는 교회에서 조차도 부를 하나님의 축복의 기준으로 보는 것입니다. 얼마나 부자가 되었는가를 그 사람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것이라고 노골적으로 말하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위대한 종교개혁자요, 신학자인 칼빈의 사상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니 누가 반박도 하지 못하게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보다 더한 문제는 사람들마다 부자 되기를 좋아하는 마음이 더 문제이지만 그러한 마음에 불을 지르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한국 교회에서 부자는 복 받은 것이고 가난한 것은 저주 받은 것으로 통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혼이 잘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예수님과 비교하면 너무 벅차기에 바울사도와 비교해 봅시다. 그는 성령의 충만을 받은 사람입니다. 자신의 육체의 가기를 제거하여 달라고 세 번이나 간구하였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도구로 사용되는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 시험에 들 만한 육체적인 질병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제거하여 달라고 기도하였지만 네 은혜가 네게 족하다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2:7-9절에 보면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그 후에 바울은 자신의 약함을 자랑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 되고 강건하다는 것을 우리의 욕망에 기초하여 정립하면 안됩니다. 성경에서 진리를 따라 산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저런 모습이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 되고 강건한 것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내가 약할 그때에 오히려 강하다고 하였습니다. 세상의 시각으로는 결코 볼 수 없는 모습입니다. 오늘 우리의 영혼의 잘 됨이란 로마서 8장에 의하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의 형상을 본받는 것입니다. 비록 그 사람의 처한 상황이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양 같은 신세라고 할지라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지지 아니하는 것이 영혼이 잘 되고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된다는 것의 참된 의미를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먼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 거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현재 나에게 어려움이 있고, 나가 바라는 것이 꼬인다 할지라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짐을 인해 기뻐하며 어떤 상황과 형편 가운데서도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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