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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최상범
성경본문 골 3장
강설날짜 2013-01-30

2013년 1월 30일 한결교회 수요모임강설
사사기 제33강

 

이스라엘의 우상숭배

 

말씀 : 사사기 10:6-16; 골 3장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사시대 동안 끊임없이 우상숭배의 죄를 범하고, 그래서 하나님의 징치로 이방의 압제를 당였습니다. 자기 선조들이 우상숭배의 죄로 인해서 이방의 압제 하에서 고통을 당했으면, 이제는 교훈을 받고, 우상숭배를 멀리하고, 그 다음 세대에게도 이러한 사실을 잘 교훈시켜서 반복하지 말아야 하는데, 어리석게도 반복합니다. 다음 세대뿐만 아니라, 그 당대의 사람들도 사사가 죽자마자 다시금 우상숭배의 죄로 떨어졌습니다. 사람들이 어떻게 이렇게 쉽게 우상을 섬기게 데로 빠지게 되는지 우리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먼저 가나안 족속들을 쫓아내는데 실패한 것이 그들이 우상숭배에 계속적으로 빠지는 매우 중요한 요인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가나안 족속들을 다 쫓아낼 것을 명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들과 공존하면, 반드시 그들의 우상을 받아들일 것을 하나님은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사기 1장에서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은 철병거를 보고 두려워 하여서 정복하지 못했고, 또 노예로 써먹으면 좋을 것이라고 하는 인간적이고 합리적인 생각으로 다 진멸하지 않고 남겨두었습니다. 그래서 공존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불순종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내가 그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할 것이다. 그들이 너희에게 사단 마귀의 유혹의 올무가 될 것이고, 너희 옆구리를 찔러 너희를 해할 가시가 될 것이다.”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결국 공존하면서, 처음에는 이스라엘이 가나안 족속들을 제압하고 노예로 부려먹었지만, 점차로 상황이 역전되면서, 그들이 가나안 족속들의 문화에 잡아먹히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우상숭배에 빠져 들어가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먼저 그들의 문화를 받아들이고, 그리고 그 이후에 종교를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떤 민족입니까? 그들은 애굽의 노예로 있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어 출애굽해서, 광야 사막에서 민족으로 조직되어 가나안에 넘어온 민족입니다. 그들에게 무슨 유구한 역사가 있었습니까? 대대로 흘러오며 발전한 전통과 문화라는 것이 있었습니까? 그전에는 노예였고, 가나안 땅에 오기 직전에는 사막에서 먼지나 뒤집어쓰면서 허름한 옷을 입고서 목축이나 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그들이 아무도 없는 땅에 들어와서 개척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엄연히 선주민이 살고 있는 땅을 뚫고 들어와서 침략해서 땅을 차지해서 살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비로소 처음으로 농사도 짓고, 먹고 살게 되는 것입니다. 반면에 가나안 족속들의 문화는 어떠합니까? 아브라함 때부터, 아니 그 이전부터 역사와 전통을 이어오던, 고도로 발달된 문명공동체였습니다. 바알 종교라고 하는 것이 그냥 몇 사람이서 짝짝 꿍 해서 급조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유구한 역사와 오랜 전통을 통해서 서서히 형성된 것이 가나안의 바알종교였고, 그리고 그 종교에는 자연스럽게 그들의 모든 재능과 실력들을 발휘할 수 있는 예술적인 문화들이 그 종교에 딱 달라 붙어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화려한 문명과 전통과 문화를 완전히 촌놈인 이스라엘이 맞닥뜨리게 되었으니, 당연히 이스라엘이 그들의 문화에 먹힐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문화는 일반적으로 위에서 아래로 흐릅니다. 문화라는 것은 소위 고등한 곳에서 낮은 곳으로 물이 흘러가듯이 자꾸 흘러가는 것입니다. 후진국은 선진국의 문화를 흡수하고 배워서 자기네 나라를 발전시키고자 합니다. 그렇게 모방을 통해 야만스런 사회가 차츰차츰 문명화하고 시시하고 미미한 사회가 자연스럽게 노력을 하여 점점 훨씬 찬란하고 볼만한 사회로 발전해 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족속들의 찬란하고 화려하고 아름다운 문화, 풍요와 번영, 건축기술과 시민의식, 정체제도... 이런 것들을 우리가 벤치마킹해야 되겠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맨 처음에는 문화만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우상은 하나님께서 금하신 것이니 처음부터 덥석 물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가나안 문화에 빠져들면서, 그리고 그 문화가 있게 한 본질이 바로 종교임을 알게 되면서, 비로소 바알을 섬기게 되는 것입니다.


더욱이 바알종교가 그들에게 얼마나 매력적이었습니까? 바알종교는 그들에게 과학과 같이 세상 이치에 눈을 뜨게 해주는 것이었습니다. 남녀 암수, 음양 합일을 통해 열매와 풍성한 수확이 주어진다는 것이 세상 이치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쾌락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바알 제사가 성전창기와의 성관계를 통해 드리던 제사방식이었기 때문에 성적 쾌락을 종교라는 이름으로 장려하였습니다.


그리고 축제와 축전의 화려함과 즐거움은 단연 바알 종교가 선사해주는 최고의 선물이었습니다. 풍성한 추수를 한 후에 바알의 제사장을 중심으로 바알 신에게 제사를 드리고, 그 다음에 축제가 벌어집니다. 제사음식과 술을 풍성하게 마련해놓고 온 백성들이 함께 먹고 마시고 즐기는 축제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그들이 가진 모든 재능과 문명의 기술들을 다 뽐내는 기회로서, 화려하고 찬란한 예술이 동원되었습니다. 사람들마다 예쁜 옷을 입고, 춤을 추고, 노래하였습니다. 이런 것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눈을 끌고, 마음을 흥겹게 하였던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의 풍요와 번영, 윤택한 삶, 건강과 장수, 육신의 만족과 즐거움, 이것은 모두 자기 행복이라는 단어로 묶을 수 있는 것인데, 그러한 것들을 바알이 그들에게 주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근본 사람들은 자기 행복을 추구하고자 하는 본성이 있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연스럽게 그러한 행복을 준다고 하는 바알을 숭배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하나님을 얼마나 진노케 하는 큰 죄입니까?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미처 깨닫지 못하는 상태에 있었습니다. 마치 아담과 하와에게 사단 마귀가 유혹했을 때, 그것이 얼마나 하나님께 큰 반역이며 죄인지에 대한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하고, 다만 당장 눈앞에 있는, 보기 좋고 맛있어 보이고, 지혜롭게 하고, 하나님처럼 되게 할 것 같은 선악과에 온통 마음이 사로잡혀 있는 상태와 동일한 것입니다.


결국 영적인 부주의로 말미암아 우상숭배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늘 이 영적인 부주의에 대해 경고하셨고, 그렇게 되지 아니하도록, 여러 가지 제도를 두어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성막과 제사장 제도, 레위인 제도를 두셨고, 율법을 그들에게 주셔서 말씀의 가르침을 잘 받아가면서 하나님과의 교통 가운데 역사상 전무후무한 의롭고 거룩한 하나님 나라 문화를 건설하여 온 세상의 제사장 나라가 되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러한 영적인 의무를 게을리 하였고, 결과적으로 그러한 하나님이 주신 구원의 은혜나, 사명이나, 그러한 영적인 것들에 부주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더욱이 하나님을 위해서 살고자 하려면 얼마나 지켜야 할 것이 많고, 행해야 할 것이 많습니까? 그러므로 그들은 그러한 어렵고 힘든 길보다는 굉장히 손쉬운 바알숭배에 끌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루라고 명하신 하나님 나라와 의를 나타내는 삶보다는 당장 눈앞에 있는 즐거움과 만족, 쾌락, 행복이 중요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매를 맞으면서도 정신 차리지 못하고 반복적으로 우상숭배의 죄에 빠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반복적인 우상숭배의 원인은 깨어있지 못하는 영적부주의에 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이 적극적으로 하나님 나라의 일에 자기의 몸과 마음을 기울이고 하나님의 명령에 대해서 늘 긴장해 있고 깨어 있어서 어느 때든지 하나님이 부르시고 명하시는 것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행하고자 하는 상태로 있지 아니 하면, 우리도 자연히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긴장의 끈을 놓아버리고, 영적인 권태감을 느끼면서, 그리고 신앙의 매너리즘에 빠져 영적인 의무에 나태할 때, 그리고 마음에 어떠한 고뇌나 갈등이나 열망이나 간절함, 사모함 이런 것 없이, 구구한 평안에 마음이 푹 젖어서 세상을 살아갈 때, 우리도 이 세상의 풍조를 따라 우상숭배적인 삶에 자연스럽게 빠져 들어가는 것입니다.

 

“(24)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가로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25)와 보니 그 집이 소제되고 수리되었거늘(26)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심하게 되느니라”(눅 11:24-26)

 

신앙의 문제에 있어서 하나님을 적극적으로 늘 섬기고, 계시의 말씀을 듣고, 진리에 온전히 자기 마음이 지배를 받으며 살지 않으면, 결국 마귀가 찾아와서 우리를 지배하게 되는 것입니다. 방이 비어서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마귀의 통치를 받는 것도 아닌 중간상태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그 마음에 없으면 자연히 다른 주인이 마음에 와서 그 마음을 지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사는 것이 얼마나 큰 죄이고, 하나님께 대한 배신이며, 하나님을 진노케 하는 죄인 줄 미처 알지 못하고, 그저 눈앞에 즐거움과 만족을 위해서 세상의 풍조를 따라 그냥 가는 것입니다.


우상숭배의 본질은 자기 행복 추구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우상의 본질적인 공통점은 신이 자기를 잘 섬기는 백성들에게 복을 주는 것입니다. 무슨 우상이 백성들에게 화를 낸다거나 멸절하거나 하는 일이 없습니다. 자기를 섬기는 자들에게 풍요와 번영을 주고, 건강과 장수를 주고, 즐거움과 만족을 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말해주는 것은 우상이라고 하는 것이 결국 인간의 과대망상 가운데서 나온 것이고, 또한 인간의 자기 행복 추구에서 발생하는 것임을 보여줍니다.


인간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가장 중요한 것이 일단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어야 합니다. 인간의 역사가 아무리 많이 흘러도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가 먹는 것이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아마 다른 욕구보다도 가장 뛰어난 욕구일 것입니다. 이 생명체가 살아서 움직이려면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식물들은 광합성을 통해서 거기에 필요한 에너지를 얻는데, 우리 인간과 동물은 무언가를 먹어서 그것을 잘게 부수어 소화를 해서, 여기서 APT 라는 화학물질을 얻어냅니다. 그것을 가지고 모든 몸 안에 있는 기능들을 사용하는데 원료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먹는 문제는 생명과 직결된 것입니다. 이것을 제대로 못 먹으면 곧 죽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깐 먹는 것을 가지고서 치열하게 싸우는 것입니다.


히브리어에서 ‘전쟁’이라는 단어가 “밀르하마”라는 단어인데, 이 단어는 “라함”이라는 단어에서 왔습니다. 이 “라함”의 명사형인 “레헴”의 대표적인 사용 예가 ‘베들레헴’입니다. 이것은 “빵집”이라는 뜻입니다. 벧은 집이고, 레헴은 빵입니다. 즉 이 라함이라는 단어는 먹는 것을 의미합니다. 단어가 재미있습니다. 전쟁을 왜 하느냐 하면 다 먹고 살기 위해서 그러는 것입니다. 더 풍부하고 맛있는 먹거리를 쟁탈하기 위한 싸움이 전쟁입니다.
우리의 사회를 무한경쟁의 사회라고 말합니다. 생존경쟁입니다. 경쟁에서 밀려도 괜찮은 것이 아니라, 경쟁에서 밀리면 나의 생존이 위태해지는 그런 살얼음판의 전쟁터입니다. 그래서 인간이 행복해질 수 있기 위해서는 이 경쟁에서 우선순위를 차지하여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습니다. 바알은 그러한 풍요를 선사해줄 수 있는 농사의 신인데, 농사를 근간으로 하는 농경사회에서는 그러므로 절대적인 가치를 지니는 신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러한 풍요를 보장받기 위해서 사람들이 바알에 몰입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상숭배는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는 것을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먹고 살기만 하면 인간은 행복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즐거움이 주어져야 합니다. 감옥에서 3식 3끼 다 먹는다고 행복을 느끼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먹는 문제가 해결되었으면, 이제는 적극적으로 육신적인 쾌락과 만족이 있어야 합니다. 곧 성욕과 관련된 모든 즐거운 것들, 그리고 모든 세상적인 즐거움이 있어야 합니다. 바알은 바로 당장에 그러한 육신적인 만족과 쾌락을 가져다주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의 바알은 돈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자기 행복을 위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고, 그러한 행복을 돈이 가져다준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돈을 추구하는 삶을 삽니다. 먼저 돈이 자기들을 먹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돈이 있어야 먹고 살 것 아닙니까? 돈 없으면 굶어야 합니다. 그러니깐 어찌하든지 돈을 추구하면서 돈을 벌고자 애를 쓰면서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 사는 자들입니다. 재물을 자기를 위해 축적하지 않고, 자기 행복하고자 돈을 벌지 않고, 돈을 벌되, 그 번 돈으로 자기를 위해서는 검소하게 쓰고, 교회와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다 쓰는 삶을 사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때로는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서 좋은 조건의 직장도 포기하고, 세상의 성공적인 길도 포기해야 할 때가 있고, 심지어는 많은 물질적 손해를 볼 때도 있고, 심각한 결핍의 상황을 직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드는 생각이 당장에 뭐 먹고 사나 하는 염려가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와 복음을 위해 헌신해야 된다고 말하는 것은 쉬운데, 막상 하나님이 주시는 사명을 온전히 감당해 가려고 하는데, 집에 당장 쌀이 없으면 어떻게 됩니까? 현실에 부딪치면 이것이 굉장히 어려운 문제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주님 위해 헌신하고자 할 때,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나? 내 장래는... 내 노후는 어떻게 대비하나... 집 마련은 어떻게 하나... 뭐먹고 사나...” 그렇게 염려하고 근심하면서, 결국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보다도 당장 눈앞에 돈을 좇아 살아갈 때가 많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먹는 문제는 자기 생존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먹는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고, 먼저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삶을 산다는 것은 결국 자기 생존, 자기 목숨을 하나님께 내어맡기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삶입니다. 그래서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삶을 사는 것 그 하나의 계명도 순교의 정신이 아니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염려 하지 말고, “먼저 그의 나라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놀랍게 채워주실 것이다.” 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돈이 우리를 먹여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먹여 살리십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굳게 믿어야 합니다. 돈을 의지해서는 안 됩니다. 세상의 돈에 대한 염려 때문에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이루는 삶을 사는데 주저하거나 머뭇거려서는 안 됩니다.


두 번째로 또한 돈은 우리에게 즐거움을 선사해줍니다. 그래서 자기행복을 추구하는 세상 사람들은 바로 열심히 번 돈을 통해서 즐거움을 얻고자 하는 것입니다. 성적인 쾌락,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면서 스위트 홈을 이루는 꿈, 건강, 마음의 평안, 건전한 취미활동, 예술, 음악, 영화, TV 드라마, 게임, 스포츠... 등등을 통해서 즐거움을 추구합니다. 소위 3S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사단 마귀가 말세에 우리를 유혹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도구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곧 스크린, 섹스, 스포츠입니다. 이 세상의 화려하고 찬란한 문화와 예술을 통해 만족을 얻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다 그렇게 사는데, 이러한 돈과 즐거움이라는 행복추구를 우리가 “세상의 풍조”라고 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모두 이것을 좇아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깨어있지 않고, 정신 차리지 않으면, 영적으로 부주의하면, 바로 이 우상숭배적인 삶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나도 남들처럼 보람 있는 인생을 살고 싶다. 이 세상 사람들처럼 행복 하고 싶다.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이 행복을 얻기 위해 좇아가는가? 아.. 돈이구나... 나도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살고, 출세하고 성공하기 위해서, 좋은 성적, 좋은 대학, 좋은 직장 추구하면서 살아가야 되겠다.” 우리가 다른 종교 믿는 것만 우상을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 주일에만 하나님을 섬기고, 평일에는 이 세상의 풍조를 따라 사는 것이 우상숭배적 삶입니다.

 

(14)가시떨기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지내는 중 이생의 염려와 재리와 일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치 못하는 자요(눅 8:14)

 

이 말씀은 우상숭배의 본질을 잘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이 가시 떨기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계속해서 땅속에서 영양을 공급받는다는 말입니다. 즉 교회 나와서 은혜의 수단 아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생의 염려와 재리(돈)와 일락에 기운이 막혀서 결국 결실치 못하는 자입니다. 결국 중생하지 아니한 자를 말하는데, 교회 열심히 나오기는 하는데, 세상의 염려, 돈, 그리고 세상의 즐거움에 취해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돈을 사랑해서는 안 됩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 하였고, 돈은 하나님이 유일하게 이 세상에서 자기의 라이벌이 될 수 있겠다고 여기신 인간들에게 있어서 최고의 우상입니다. 맘몬신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재물을 하나님과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하셨을 때, 그 재물이라는 단어가 바로 “맘몬”이라는 단어입니다. 우리는 돈의 지배를 받으면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 돈을 지배하고 사용하는 삶으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세상의 일락을 버려야 합니다. TV 드라마, 영화 볼 시간 있으면, (유익한 것이라면 볼 필요가 있겠지만, 대부분 쓸데없는 것들입니다), 성경 한자 더 보고, 기도 한 시간 더 하는 것이 낫습니다. 말씀 읽고 기도할 시간은 없으면서 드라마 꼬박꼬박 챙겨보고 영화 재밌는 거 있으면 보고 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보다 일락을 사랑하는 삶입니다. 세상 음악 들을 시간 있으면, CCM 듣고 찬송가를 부르십시오. 밤새도록 게임하고 인터넷 하지 말고, 밤에 교회 와서, 또는 골방에서 은밀한 기도를 하든지, 아니면 일찍 자고, 아침에 새벽기도 하십시오. ‘건전한 취미생활’, ‘건강을 위한 스포츠’라는 그럴듯한 변명을 대면서 자신의 일락을 사랑하는 삶을 합리화 하지 마십시오. 그런 일락은 버려야 합니다.

 

(6)일락을 좋아하는 이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딤전 5:6)

 

물론 정말 주님을 위해서 더 주님을 잘 섬기기 위해서, 사람들과의 관계와 복음전도를 위해 취미생활이라든지 스포츠라든지 이런 것들을 해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만족을 위해 일락을 사랑하는 것은 우상숭배적 삶의 전형입니다.


우리 안에는 근본 죄악된 본성이 남아있기 때문에 이러한 자기행복을 추구하고자 하는 마음이 누구에게나 다 있습니다. 그러므로 골로새서 말씀처럼 자기를 죽이지 않고서는 결코 이 우상숭배적 삶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5)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6)이것들을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7)너희도 전에 그 가운데 살 때에는 그 가운데서 행하였으나(8)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 곧 분과 악의와 훼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9)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말라 옛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10)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골 3:5-10)

 

우리가 우상숭배적 삶에서 벗어나서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먼저 이러한 우상숭배적인 삶에 대해서 하나님이 얼마나 싫어하시고 진노하시는지에 대해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당장 눈앞에 만족과 즐거움을 보지 말고, 그 뒤에 있는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를 거기서 건져 내사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셔서 이 세상을 살아가게 하셨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것은 두 가지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첫째로 그러한 새 피조물이 되게 하신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이 주님의 십자가의 은혜의 사랑이 바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는 가장 치명적인 도구가 됩니다. 이 주님의 은혜의 사슬에 늘 매여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자신의 새롭게 된 신분과 사명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미 주님과 함께 내 마음대로 내 행복을 추구하며 살던 옛사람은 죽었고 그 옛사람은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주신 새생명으로 새인생을 선물받았습니다. 주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주님을 위해서 사는 새인생이 되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 새사람으로서 이 세상에 의롭고 거룩한 하나님 나라의 문화를 건설하고 증시하는 삶을 사는 사명인으로 부름을 받았다는 것을 알고, 그 사명의식으로 자신을 온통 무장해야 합니다. 사명의식 없고 흐리멍텅하게 있으면 자연스럽게 우상숭배적 삶으로 흘러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도바울처럼 “(24)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4) 라고 말했던 것처럼 사명으로 무장하고 그 사명을 이루기 위해 온전히 달려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 사사기 말씀을 통해서 우상숭배적 삶이 얼마나 큰 죄이고, 파멸을 가져오는 죄인지를 교훈을 받아 마음에 새기고,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이 죄와 싸우며, 늘 주님을 왕으로 모시고 주님이 주신 사명을 온전히 감당해 가는 우리 모든 한결지체들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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